Night of the Soulless Unholy RAW novel - Chapter 45
44. 복무의 저주 6
“타르키!”
“음? 뭐야? 뷔네 아냐?”
“뷔네?”
“제 이복 누나입니다.”
뷔네라는 저 여성의 무장은 타르키 못지않고 말도 훌륭하지만 같이 대동하고 있는 이들의 무장은 코젤 공자 때나 타르키 때와 달리 부실했다. 그냥 롱소드 하나에 경화 가죽 갑옷 두른 게 전부다.
말도 없어서 뷔네만이 기마하고 있고 다른 이들은 걸어다니는데 그들 뒤에는 농부에서 빼앗은 게 분명해 보이는 달구지가 있었다.
‘어째 이복 남매가 하는 짓이 똑같냐?’
아자딘은 어이없어하며 둘의 해후를 지켜보았다.
“뭐야, 타르키! 함께 있던 용병들은 어쨌어?”
뷔네라는 이 또 다른 사생아는 기마한 채로 타르키에게 다가왔다. 타르키도 말에 타고 있으니 둘의 말머리가 서로 닿을 정도로 가까워졌다.
“아니 그게….”
“혹시 타르키, 네가 코젤을 발라 버렸어?”
“응? 코젤을 바르다니 무슨 소리야?”
“못 들었어? 코젤이 지금 부하들을 다 잃고 거시기가 잘렸다더라고. 그 탓에 난리가 났어.”
“뭐? 그게 진짜야! 아잣!”
타르키는 그 말에 기뻐했다. 정실의 자식인 코젤이 거세당했다면 상속권은 자연히 사지 멀쩡한 다음 상대에게 옮겨진다. 타르키가 가문의 상속자가 되는 것이다.
“아 역시, 바르게 살면 복이 온다더니. 그간 내 열심히 살았더니 조상님께서 보우하셨구나.”
“…….”
듣고 있던 아자딘으로서는 실소가 나왔다.
‘바르게 살아? 이 새끼들이 입이 뚫렸다고 아무 소리나 다 튀어나오네?’
그때 뷔네가 웃었다.
“그런데 너희 엄마가 붙여준 용병들은 다들 어디 가고 너만 남았어?”
“그게 말이….”
그 순간 뷔네가 칼을 뽑았다. 타르키의 대답을 기다리지도 않고 잽싸게 칼을 뽑아 기습을 감행한 것이었다.
타르키는 아예 방심하고 있다가 갑작스러운 기습에 속수무책이었다. 하지만 바람 가르는 소리가 뒤에서 들리더니….
-따당!
돌덩이가 검신에 충돌하며 칼날을 튕겨냈다. 처음부터 뷔네를 경계하고 있던 아자딘이 돌을 날려 타르키를 구한 것이었다.
‘어째 불필요할 정도로 가까이 오더라만.’
아자딘은 산양에 짐이 많아서 고삐를 잡고 걸어왔기 때문에 바닥에서 돌을 건져 올리기가 쉬웠다.
‘이런 허접들 상대로 화살을 낭비할 필요는 없지.’
전령일족은 화살을 아껴가며 쓰는 버릇이 있기에 아자딘은 이들에겐 화살 한 발조차도 아깝다는 결론을 내렸다.
“윽!”
타르키는 당황하면서 물러났다.
“뷔네! 날 죽이려고?”
“생각해 보니까 어디 있는지도 모를 신왕진서를 찾는 것보다 이게 더 낫겠더라고.”
뷔네가 빈정댔다.
“젠장!”
타르키도 칼을 빼 들었다.
“애들아 쳐!”
뷔네의 명령에 그녀의 휘하 병력들이 달려들기 시작했다.
*********
친밀하던 뷔네가 야심 때문에 공격해오는 것에 타르키는 놀라고 있었다.
“뷔네! 실수하는 거다. 내가 지금 누구랑 있는 줄 알아?”
타르키가 그리 말하고 자랑스럽게 아자딘과 그 일행을 돌아보았다. 하지만 아자딘과 미디암, 이스마일은 팔짱 끼고 구경만 하고 있었다.
“뭐 하는 겁니까 형님! 도와줘야지요!”
기겁한 타르키가 칼로 다가오는 적들의 공격을 받으며 뒤로 물러났다.
“실력 좀 보고 싶어서.”
“아니 참 너무하시는 거 아닙니까?”
타르키는 그리 말하며 몰려드는 이들의 공격을 막느라 정신이 없었다.
혼자서 네 남녀의 공격을 피하며 물러나는 걸 보면 꽤 잘 싸우는 것 같지만 냉정히 평가하자면 공격하는 이들의 실력이 수준 이하다. 합격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서 타르키가 말에 타고 물러나며 방어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코젤 공자랑 이 녀석에게 붙었던 놈들이 실력이 좋았군. 뭐 저들도 일반인들 상대로는 턱에 힘깨나 주고 다니겠지만 아라가사들에 비하면 너무 약하군.’
아자딘은 냉정히 그들을 평가하고 있었다. 그때 한 놈이 아자딘에게 달려들었다. 뒤에서 구경하고 있는 아자딘을 공격해서 타르키의 정신을 흐트러뜨릴 셈이었던 것 같다.
그러나 아자딘이 가볍게 백스텝을 한 번 뛰자 거리가 확 벌어졌다. 아자딘과 속도 차이가 엄청나서 도저히 쫓을 수 없다.
“미디암, 이스마일. 너희들이 해봐라. 죽이진 말고. 너희들 실력도 점검해 보자.”
“네? 죽이지 말고요? 상대가 진검을 휘두르며 덤벼드는데요?”
“그 정도는 할 수 있잖아?”
“알겠습니다.”
이스마일이 앞으로 뛰쳐나오며 소검을 빼 들었다.
“이, 이 자식들이….”
아자딘을 치러 나온 이는 자신을 향해 칼을 빼 드는 어린 소년을 보며 굴욕감에 몸을 떨었다. 이스마엘은 소검을 이용해 롱소드 공격을 받으려는 듯한 시늉을 했다.
“이 애새끼가 날 무시해?”
롱소드를 든 청년은 작은 검으로 자신의 공격을 막으려 하는 이스마일의 행동에 분개해 전력을 다한 공격을 퍼부었다. 하지만 그게 바로 이스마일의 노림수였다.
이스마일은 상대의 공격을 스위치 스텝으로 가볍게 피해 버렸다. 오른발이 앞선 자세에서 왼발로 바꾸면서 가볍고 경쾌하게 상대의 공격을 흘리고 빠져나가며 옆에서 공격한다.
피지컬이 약해서 타격만으로 상대를 무력화시킬 수 없고 마법을 써서 정체를 들킬 수도 없으니 대담하게 짧은 비수로 갑옷이 얕은 허벅지 안쪽 부위를 살짝 찔렀다. 죽지는 않을 상처지만 지혈하지 않으면 실혈사할 수도 있는 절묘한 부위다.
‘전에도 보았지만 실력이 꽤 좋군. 이 아이라면 전령이 되고도 남겠는데?’
이스마일이 소년치고는 체구도 크고 몸도 빠르지만 아자딘 같은 괴력이 있는 게 아니어서 타격 한 발로 상대가 무력화되진 않는다. 그래서 절묘하게 상처를 입혔다.
손으로 상처를 막으면 죽지는 않겠지만 더 이상 싸우긴 불가능한 상처. 무시하고 덤벼들면 싸울 순 있겠지만 실혈사할 상처를 말이다.
이런 걸 남길 수 있는 걸 보면 빠른 손과 해부학적 지식이 풍부하고 냉철하고 냉정한 성격이리라.
“훌륭하군.”
아자딘은 순수하게 칭찬하고 미디암을 보았다.
“저도 해야 해요?”
“응. 마법이 아닌 쪽의 실력도 보고 싶어서.”
미디암은 이미 강력한 마법 능력을 선보였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부분은 어떨까?
“알겠어요. 아자딘도 이제 홀몸이 아니니 제가….”
“뭐?”
“하지만 그거잖아요? 아자딘이 복무의 저주를 받았으면 지금쯤 뱃속에….”
“…….”
“그래서 저희에게 싸움을 맡기는 거 아니에요?”
“아냐! 넌 대체 무슨 끔찍한 생각을 하는….”
그때 타르키의 비명 소리가 들렸다. 타르키가 용병들의 공격에 휘말려 낙마해 버린 것이었다.
말을 계속 뒤로 물리며 방어해 대니 당연한 결과다. 쳐들어오는 적을 상대로 뒷걸음질을 이렇게 잘한 말이 오히려 꽤 명마였다고 할 수 있으리라.
‘바본가?’
말도 갑옷도 최상품인데 사실 그냥 앞으로 밟고 지나갔어도 롱소드로 무장한 남녀는 타르키의 상대가 되지 않았으리라. 그런데 이제 낙마해 버렸으니….
아자딘은 한숨을 내쉬고 그들 사이로 난입했다.
“넌 여기까지!”
“넌 뭐야!”
화가 난 롱소드 남녀가 검을 휘두르려 했지만 아자딘이 그들 손에서 검날을 움켜쥐었다. 날을 잡은 자와 손잡이를 잡은 자의 힘겨루기가 시작되었다.
상식적으론 손잡이를 잡은 쪽이 유리할 테지만 아자딘이 가볍게 칼을 비틀자 칼자루를 쥔 이들이 땅에 처박혔다.
“켁!”
“으!”
아자딘과 힘겨루기를 한 이들은 바로 깨달았다. 상대는 괴력을 가지고 있다. 자신들과는 상대가 안 되는 정밀도와 집중력 또한 가지고 있다.
그러나 아자딘과 직접 손을 대지 않은 이들은 칼도 안 빼 들고 난입한 아자딘을 우습게 보았다.
“어쭈?”
“이 자식 뭐 좀 배웠나 본데?”
“우리도 검술 좀 한다 이거야!”
“우리가 검술 스승에게 돈을 얼마나 갖다 바쳤는데.”
그들이 아자딘에게 달려들었지만 아자딘은 차례차례 그들을 땅에 패대기치고 롱소드를 압수했다. 결국 아자딘이 그들을 전부 땅에 메다꽂았다.
“크읍. 고, 고맙습니다. 역시 형님이군요.”
타르키가 일어나서 아자딘에게 감사 인사를 했다.
“그런 말 하지 마. 남들이 너랑 나랑 친한 줄 알까 봐 걱정이다.”
“이제 많이 친해지지 않았습니까?”
“아니 좀… 행실을 똑바로 하렴.”
아자딘은 백성을 약탈하는 버릇이 든 카젤 백작의 자식들에 질려 버렸다.
‘이 녀석들 평소에 어떻게 살기에 이러냐.’
온 세상에서 박해당하는 영혼 없는 불경자, 전령일족의 일원인 아자딘이지만 이런 행실의 놈들이랑 얽히고 싶지 않다는 게 솔직한 심경이었다.
“젠장. 뭐야 이놈은!”
뷔네는 분개해서 말을 돌진시켰다. 아자딘과 낙마한 타르키를 짓밟아 버리기 위해서였다.
‘얘는 적어도 전술에서는 타르키보다 낫네? 그런데….’
아자딘은 가볍게 말의 돌진을 피하고 뷔네의 다리를 붙잡았다. 뷔네가 아자딘의 머리를 향해 칼을 휘둘렀다. 하지만 아자딘은 그녀의 발을 박차에서 빼고 쭉 당기며 자리에 앉아 칼을 피했다. 뷔네 역시 낙마하고 말았다.
“악!”
낙마하면서 가랑이가 벌어진 채로 떨어졌는지 뷔네가 비명을 질렀다.
“아… 고, 골반! 내 골반이…….”
*********
아자딘은 뷔네 일당도 제압하고 길을 거슬러 올라가 보았다. 뷔네 일당에게 수레를 빼앗겨 울고 있는 농부를 곧 발견할 수 있었다.
아무렇게나 길가에 버려진 건초 더미들이 있는 걸로 보아서 본래 건초를 나르던 수레를 이놈들이 징발해서 빼앗고 건초는 내다 버린 후 대신 약탈품들로 수레를 채웠던 모양이다.
“수레는 돌려줄 테니 약탈품들도 최대한 돌려줄 수 있는 사람들에게 건네주자.”
아자딘이 그리 말하자 농부가 연신 머리를 조아렸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저 성함이….”
“카젤 백작의 진정한 후계자. 타르키다!”
“…….”
아자딘은 자신 옆에서 끼어든 타르키를 노려보았다.
“됐고. 야, 너희들. 수레에 건초 다시 쌓아.”
“네? 저희가요?”
“그럼 너희가 하지 내가 할까? 아니 이 자식들 뭐냐? 뭐 하는 놈팽이들이야?”
아자딘이 뷔네라는 사생아에게 물어보자 그녀가 신음하며 대답했다.
“끄응. 내 친구들이야.”
“친구?”
“훌륭한 모험가들이지.”
“훌륭?”
보아하니 이 뷔네라는 사생아는 자칭 모험가랍시고 한량 짓을 하며 이 놈팽이 패거리들을 만나 노닥거렸던 모양이다.
그러다가 신왕진서 찾아오면 가주로 만들어 주겠다는 백작의 말에 혹해서 밖으로 나왔다가 신왕진서는 집어치우고 약탈에 열을 올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 와중에 코젤 공자가 상속자 경쟁에서 탈락했다는 소식을 듣고 타르키를 찾아다닌 것 같았다.
‘생각 없는 철부지들이군. 어처구니가 없네. 가뜩이나 가뭄이 들어서 사람들이 힘들어하는 판에 이런 놈들이 신왕진서를 찾겠다고 돌아다닌단 말야?’
아자딘이 자칭 모험가라는 한량들을 심문해 보니 이 녀석들은 귀족까지는 아니더라도 서기 집안 자식이거나 기술자, 변호사 등등 유복한 집안 자식들로 놀기 좋아하는 뷔네와 함께 일확천금을 찾아 가출했다 한다.
“좋아. 건초 더미 안 옮길 거면 무장을 빼앗고 저기 나무에 묶어둘 거다. 바지는 벗겨둔 채로 말이지.”
아자딘이 협박하자 뷔네와 그녀의 모험가 동료들의 안색이 파리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