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ight of the Soulless Unholy RAW novel - Chapter 46
45. 복무의 저주 7
“하겠습니다.”
“아니, 하게 해주십시오.”
“약탈한 것도 보상해라. 너희들 집 다 적어뒀다. 어설프게 헛짓거리하다가 나와 재회하고 싶진 않겠지?”
아자딘은 길을 가며 찾을 수 있는 피해자들, 그러니까 물건을 빼앗기고 길가에서 울면서 주저앉아 있는 이들이나 힘없이 터벅터벅 걷는 피해자들을 찾아 최대한 보상시키고 그러지 못한 이들은 증언을 모아 명단에 적었다.
갈 길이 바쁘니 이 이상 보상에 관여하지는 못하지만 할 수 있는 건 최대한 한 것이다.
*********
“이, 이제 다 됐지?”
뷔네가 물어보자 아자딘이 미소를 지었다.
“아니 하나 남았지.”
“뭐?”
“너희들의 전투력을 당분간 없애는 것.”
“응? 뭐? 무슨 소리야?”
대답 대신 아자딘은 짐에서 집게를 꺼내었다. 화살을 만들거나 다룰 때 쓰는 화살촉용 집게다.
“다행으로 여겨라. 살인을 했으면 보통 영구 손상을 입히는데, 내가 확인한 선에서는 살인까지는 하지 않은 것 같으니까 이걸로 봐주는 거다.”
“어? 이걸로 봐준다니? 무슨 소리를 하는… 으아아악!”
생으로 손톱을 뽑는 고통은 다 큰 어른도 어린아이처럼 엉엉 울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아자딘이 뷔네 일행의 엄지와 검지 손톱을 뽑고 내쫓자 타르키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설마 상속권 때문에 혈육인 절 해치려 하다니. 사람들이란 진짜 못돼먹었군요. 뷔네와는 그래도 친하게 지내고 있었는데 말이죠 형님.”
“그러게 말이다. 상속권 따위 별 의미가 없을 텐데.”
아자딘은 타르키에게 그리 말하고 집게를 닦았다. 그때 미디암이 아자딘에게 말했다.
“그래도 이제 좀 마음이 회복되었나 보네요.”
“왜?”
“아뇨. 약탈당한 사람들에게 짐을 돌려줬잖아요. 원래의 당신으로 돌아온 것 같아서 보기 좋아요. 역시 임신을 하면 감정이 막 널뛰고 그러지요?”
“오 맙소사.”
아자딘은 한숨을 내쉬었다.
“복무의 저주에서 아이를 낳는 행위는 통상적인 임신이 아니다. 그런 일은 없어.”
“그래도 당신은 정말 평소의 모습과 전혀 달랐거든요.”
“나도 화를 내고 감정이 격해질 수 있어. 그러면 누구나 자기를 다잡지 못하지. 참고로 지금 나를 화나게 하는 건 너야, 미디암.”
“엑? 제가요?”
“그래.”
그때 이스마일이 물어왔다.
“타르키의 용병단이 약탈했던 은촛대는 그대로 팔지 않았습니까? 이번 건 왜 열심히 돌려주죠?”
“그건 너무 많았어. 나 혼자 돌려줄 수 있는 양이 안 되었고 그때 용병 놈들이 너무 많았지. 그리고 어차피 그곳 마을 사람들은 피난해야 했을 거다.”
“피난….”
“오우거가 더 올 거거든. 피난해야 하는데 대부분 가구류에 가깝던 약탈물을 돌려줘봤자 그들의 행보에 방해만 되었을 거다.”
“그래도 당신이 그 이익을 갈취했잖습니까?”
“어쩔 수 없어. 나도 때에 따라서 융통성을 발휘하며 사는 타입이거든.”
아자딘은 호인이지만 무골호인은 아니다. 황제의 전령으로서 냉혹한 현실 파악은 반드시 필요하다.
“그에 반해 이번 건 돌려주기 쉽고 양도 적었고. 왜? 그게 불만이냐?”
“저로서는 당신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당신은 마치… 이물 같아요. 차라리 살인이나 약탈에 심취한 놈들이 훨씬 이해하기 편합니다.”
“그러냐? 나는 널 어느 정도 이해하겠는데?”
“당신이 저를 이해한다고요?”
이스마일은 아자딘이 자신을 이해했다는 데 불쾌감을 느꼈다. 마치 넌 알기 쉬운 놈이라고 말하는 것 같아서 반감이 들었다.
그때 선두에 가던 타르키가 혀를 차는 게 들려왔다.
“모두 조용히 하세요. 앞에 구난기사단이 있습니다.”
“응? 구난기사단?”
아자딘은 흥미를 보이기 시작했다.
*********
살라스마에 접근하자 어디든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다. 각지에서 난민이 몰려들고 있었다. 한 달 동안 계속된 가뭄에 강물은 마르고 개척지에는 아무런 지원도 없으며 여기저기서 흉흉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그런데 백작의 자식들, 사생아들은 신왕진서를 찾겠다고 설쳐대고 있으며 가는 곳마다 사람들을 약탈하고 있으니 삶의 터전을 잃은 사람들이 그나마 먹을 것과 입을 게 있는 살라스마로 향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살라스마 인근 공터에서 상회 몇 곳과 구난기사단이 여인숙을 통째로 빌려 구휼소를 운영하고 있었다.
“오. 세 날개의 바퀴!”
아자딘이 구난기사단의 상징인 날개 세 개 달린 수레바퀴의 깃발을 보며 기뻐했다.
“역시 구난기사단이군. 음, 훌륭해.”
“…….”
미디암과 이스마일은 구난기사단의 선행을 보며 기뻐하는 아자딘에게 할 말을 잃었다.
구난기사단은 왕의 교회와 달리 전령일족을 보자마자 죽이겠다고 달려들진 않지만 그 구성원들 역시 휘브리스 백성들이다. 그들도 아라가사를 영혼 없는 불경한 것들로 여기고 있으며 저주받은 존재로 멸시하는 것은 다른 이들과 다를 게 없다.
저 구휼소라는 것도 상회들을 협박하다시피 해 ‘시주’를 받고 운영하는 것이다. 게다가 구난기사단은 자신들의 덩치를 불리기 위해 난민들 중 자식을 포기하는 부모들에게서 아이들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소문에는 구난기사단의 총본산인 ‘내해 반도’에 엄청난 땅을 가지고 있어서 그 일대를 개간하기 위해 무수히 많은 수의 농노가 필요하다고 한다.
각지에서 고아들이나 난민들을 모아서 구휼한다는 명목으로 데려가 내해 반도를 개발하고 있다는 게 구난기사단에 들려오는 어두운 소문이었다.
“말할까? 아니 말한다고 해도 그에게 구난기사단은 소중한 것 같아. 말해봐야 소용없겠지?”
미디암은 아자딘이 구난기사단의 구휼 행위에 흡족해 하는 것을 보며 입을 다물었다.
“놀랍군요. 아가씨가 그렇게 남의 눈치를 보다니.”
“아니 그, 그렇잖아?”
미디암이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아자딘 몸 안에 새 생명이 깃들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되니까 너무 스트레스를 많이 주는 것도 임산부에게 안 좋아.”
“야. 다 들리거든?”
아자딘은 자신을 임산부 취급하는 미디암의 말에 기가 막혀서 콧김을 내뿜었다.
“뭐 날 파직한 건 아마 아라엘이 두려워서 상층부가 벌인 실수일 테니까 가서 이야기하면 수습은 될 거다.”
시간이 조금 지나서 냉정해진 아자딘은 자신이 아라가사의 상층부와 교섭할 수단이 많다는 것을 깨달았다.
신왕진서 사본도 두 장이나 있고 금화도 단기간 안에 많이 모았다. 이렇게 짧은 기간 안에 금화의 청원을 세 개나 처리한 전령은 아마 전무후무할 것이다.
‘지금은 위기 상황이 많아서 사람들이 청원을 아낌없이 하는 거겠지. 휘브리스 백성들은 전령을 부르는 걸 무슨 악마에게 영혼 파는 것처럼 생각하고 있으니.’
황제의 금화를 쟁여놓은 사람들도 정말 위험하고 궁지에 몰렸을 때나 쓰려고 하는 거지… 전령일족이 좋아서 황제의 금화를 가지고 있는 게 아니다.
즉 지금처럼 가뭄이 들고, 신왕진서를 찾겠다고 쿠르트 신족 놈들이 들고 일어난다면 다른 곳의 전령들도 지금 막 역대급 금화 회수율을 자랑하지 않을까?
그리 생각하면 조금은 불안해지는 것이었다.
‘일족에서는 날 다들 싫어하지? 파직을 물려 달라고 해도 안 들어주면 어쩌지? 내 신왕진서 사본은 날 죽여서 빼앗으려고 할지도?’
거기까지 생각하던 아자딘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무리 그가 싫다고 해도 그렇게까지 억지를 부려가며 적대한다는 건 이미 피해망상의 영역이다.
“야영이나 준비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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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마른 강가에서 야영을 준비한다. 텐트는 무거워서 갖고 다니지 않고 있어서 야영 준비라면 보통 평탄화 작업이다.
“왜 내가 이런 잡일을 해야 하지. 나는 귀족에 기사인데.”
타르키는 투덜거리며 바닥의 돌을 골라내고 있었다.
“잠깐 거기서 작업 좀 하고 있어.”
아자딘은 불평하는 타르키에게 일을 시키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다른 난민들도 있지만 기사인 타르키가 야영 준비를 하자 다들 슬금슬금 피해 자리를 내주었다.
저녁 식사시간이 되자 여인숙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구난기사단의 낙인을 찍은 면 모포와 빵을 나눠주는 게 보였다.
“모포가 필요하신 분들은 빌려드립니다. 빌려드리는 거니까 반드시 반납해야 하는 겁니다.”
“반납하지 않으면 내세에 지옥에 떨어지거나 전령일족으로 환생할 겁니다.”
미디암이 그 말을 듣고 실소했다.
“아주 의욕을 샘솟게 하는 말인데요.”
“뭐 모포 회수율은 처참할 테니까 그럼 이 많은 사람이 일족으로 환생하나.”
“그렇겠네요.”
미디암은 그리 말하면서 아자딘의 배 쪽을 바라보았다.
“뭐야? 왜 내 쪽을 봐?”
“아니 모포를 반납 안 한 사람 중 일부가 우리 일족으로 태어난다면 만약 복무의 저주가 발동해서 당신이 낳게 되는 아이도…….”
“야. 처진 눈. 쟤 원래 저랬냐?”
“네.”
이스마일이 고개를 숙이고 그렇게 말했다. 미디암의 언행에 부끄러움을 느끼고 있는 것 같았다.
“쟤 동기들이 엄청 싫어했겠다?”
“무슨 말씀이세요. 제 동기들은 절 숭배했지요.”
미디암이 어깨를 으쓱하며 자랑했다.
“아 그런데 저 빵 받아보자.”
“네? 저희들 식량 있잖아요? 당신이라면 굳이 구휼품에 손대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는데요?”
미디암은 아자딘을 보며 그가 선을 잘 지키지만 그래도 본질적으로는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기본적으로 휘브리스의 백성들에게 친근감을 가지고 있고 약자들을 돕고 강자들에게 엄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기서 구난기사단이 난민들에게 나눠주는 구휼품에 손을 댄다고? 그런 짓을 한다면 난민들 먹을 게 그만큼 줄지 않겠는가?
“아니 그, 구난기사단 구휼품이 어떤가 보고 싶어서.”
아자딘은 그리 말하고 구휼품을 나눠주는 수레로 다가가 구난기사단원에게 말을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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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 상대하느라 바쁠 텐데 왜 말을 걸고 있지?”
“아마도 그는 구난기사단의 설화를 굉장히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구난기사단이랑 어떻게든 말도 섞고 친해지고 싶어서 저러는 것 같은데요.”
잠시 후 아자딘은 구난기사단이 나눠주는 빵을 하나 받아왔다.
“빵을 정말 받아왔어요?”
“물론 구휼품을 약탈한 건 아냐. 시주 좀 했지.”
“전령이 구난기사단에게 돈을 줬단 말이에요? 시주를?”
“그래.”
“…….”
“뭐, 왜? 불만 있냐?”
“그런 것 치고는 꽤 오래 있었더군요. 무슨 이야기를 하셨습니까?”
이스마일이 냉정한 어조로 물어보았다.
“음 저 모포에 찍은 구난기사단 낙인을 혹시 내 이 양피지에 받을 수 있냐고 물어봤는데 그건 안 해준다고 하더라고.”
“…….”
“아니 그 낙인을 왜 받으려고요?”
“구난기사단 문장이 갖고 싶었거든. 멋있잖아?”
“…….”
미디암과 이스마일이 서로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별로라고 생각하는데요. 용도 아니고 그냥 수레바퀴잖아요.”
“그래도 구난기사단이니까. 으음. 우리 아라가사는 상징이 별로 없단 말야. 매가 우리 상징이지만 어디 내놓고 다닐 것도 아니고.”
아자딘은 품 안의 새 가면을 만지작거렸다. 매의 형상으로 만든 가면이 아라가사의 상징이지만 박해받는 처지다 보니 대놓고 내놓을 수 없다.
“이야기책의 구난기사단은 누구든 차별 없이 대하는 영웅들이었을지 모르지만 현실의 구난기사단은 우리가 전령일족이라는 걸 알자마자 죽이려 들걸요. 당신이 구난기사단을 좋아해도 저들은 당신의 마음을 배신할 텐데 그게 두렵지 않으세요?”
미디암이 은근히 아자딘을 괴롭히고 싶은지 그렇게 물었다.
“괜찮아. 내 믿음은 그런 게 아니니까. 저들이 날 박해하고 결국엔 죽인다 할지라도 그게 내 믿음을 배신하는 것은 아니야.”
“…….”
미디암은 아자딘의 말을 듣고 그가 구난기사단을 좋아하는 건 그렇게 단순한 어린아이의 동경이 아니라 그보다 좀 더 깊은, 강한 신념에 가깝다는 걸 깨달았다.
과연 정말 믿음은 그를 배신하지 않을까?
불현듯 미디암은 아자딘에게 다가올 운명이 곧 그 믿음을 시험하게 되리라는 예감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