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ight of the Soulless Unholy RAW novel - Chapter 48
47. 알디스 2
일반적으로 길드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은 그래도 자신들이 전령이 되지 못했다는 자격지심이 있어서 전령들에게 함부로 대하지 못한다.
하지만 살렘은 전직 전령이었고 기수도 높고, 가문도 좋다. 그가 보기에 아자딘은 수상한 경로로 전령된 주제에 까부는 애송이에 불과했으니 자신과 대등한 위치에서 교섭하려는 것만으로도 불쾌하다.
그러나 아자딘도 인내심의 한계를 느끼는 건 마찬가지였다.
‘도저히 못 참겠군. 이리된 거 이 작자를 조져 버릴까? 이 인간 성격에 나에게 처맞으면 수치를 당했다고 자결할 텐데? 하지만 도저히 못 참겠다.’
“잠깐 이 차양 밖으로 나가서 대화를 나눌까요?”
“덤빌 셈이냐? 내 비록 나이를 먹었어도 너 같은 놈에게 당할 나이는 아닌데?”
“그렇게 생각하신다면 잘됐군요.”
아자딘이 먼저 차양 밖으로 나가자 지역장 살렘이 어이없어했다.
“이 버르장머리 없는 놈! 잘됐다. 내 손으로 죽여주마.”
지역장 살렘도 분노해서 차양 밖으로 나온 그때였다. 어디선가 은은한 하프 소리가 들려왔다.
“혹시 여기 아자딘이 와 있나요?”
젊고 아름다운 여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 알디스?!”
아자딘은 그 목소리를 듣고 경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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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자딘과 지역장의 다툼에 끼어든 이는 거의 숨넘어가는 말 세 마리를 끌고 온 한 여성 모험가였다. 겉보기로는 20대 초반 정도로 보이는 여성으로 훤칠한 키에 허리에는 월각궁이 채워져 있는 걸로 보아 전령일족이다.
손에는 작은 하프를 하나 들고 있었는데 아마도 좀 전의 하프 소리는 그녀가 연주한 것이리라.
허릿춤엔 가느다란 은제 장식이 붙은 검 한 자루, 전통에는 우아한 꿩 깃털 화살들이 꽂혀 있고 서 있는 자태만으로도 아름답고 기품이 넘쳐 흐른다.
무엇보다도 그녀의 눈은… 진한 보라색을 띠고 있었다. 은발에 보라색 눈. 우아한 자태는 인간이 아니라 요정 같아 보일 정도였다.
“아, 알디스 님.”
“어찌 이런 변방까지.”
지역장을 제외한 다른 상인들, 모두 알디스 앞에 머리를 조아렸다. 지역장 살렘조차 알디스에게는 예를 다하고 있었다.
전령들의 계위가 그냥 단순히 빈 자리를 채워 넣으며 정립되는 것이라 하지만 알디스는 제1령. 108령 중 실력과 지위로 정점에 달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인물이다.
“그러지 마세요. 보는 사람들도 많으니….”
알디스는 그리 말하고 아자딘에게 다가왔다.
“아자딘, 오래간만이구나. 이젠 위로 올려다봐야겠는데?”
“아, 알디스. 어떻게 된 거예요?”
“널 파직했다는 소리를 듣고 아랑기에서 여기까지 쉴새 없이 달려왔단다. 세상에 그런 바보 같은 짓을 저지르다니 말야.”
알디스는 그리 말하고 아자딘에게 미소를 지어 보였다.
“안심해. 내가 대스승님께 탄원했어. 네가 배신할 리는 없다고 말야. 하지만 대스승님도 일단 조직을 바로 잡을 때까지는 파직을 유지하겠다고 하시면서 대신 날 보고 널 안심시키라고 하셨어.”
대스승이라면 바로 전령일족의 현 두령 하티르를 말하는 것이다.
‘화조풍월 해서’를 전수하고 마법을 가르치는 위치에 있으며 전령일족의 모든 의사결정을 담당하는 원로회의 의장.
알디스가 대스승에게 이미 탄원을 넣었다니….
듣고 있던 미디암이 혀를 찼다. 바보 같은 소리다. 이쪽은 저주를 받았는데 아무런 보증도 없이 나중에 저주를 취소해주겠다는 말만으로 안심이 되겠냐?
그런데 아자딘은 그 말을 듣고 정말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게 아닌가?
“아, 다행이군요 그건.”
“…….”
보아하니 아자딘이 저 알디스라는 인물에게 가지는 신뢰는 거의 절대적인 것 같았다.
‘아니 뭐야? 다른 사람들이랑 대하는 태도가 전혀 다르잖아?’
미디암이 당황할 때 알디스가 품에서 편지 한 장을 내주었다.
“하티르 님과 다른 장로들의 서명이 들어간 맹약서란다. 황제의 목소리 앞에 공증되었으니 반년 후 파직을 취소하겠다는 증서란다. 사실 지금 당장 파직을 취소해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조직에 벌어진 일이 너무 커서 당장 번복하긴 힘들다고 해서 이걸 받아왔단다.”
알디스는 단지 말만이 아니라 행동으로 보여주었다. 그 콧대 높은 원로들에게 이런 서명을 받아오다니, 알디스가 일족 내에서 지니는 영향력이 어느 정도인지 콧대 높은 미디암조차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자딘은 그 맹약서를 받아들고 고마워했다.
“감사합니다, 알디스. 이렇게까지… 무리를 하시다니.”
“올바른 일인걸. 오히려 다들 너무 고리타분해서 아자딘 네게 불필요한 모욕을 가했을까 걱정이구나. 하지만 아자딘 네가 이해해 주렴. 다들 나이도 많고 우리는 기수라는 문화가 있어서 특히 위계질서에 민감하잖니. 아무래도 나이 드신 분들이니까 살아오던 방식을 그리 쉽게 바꿀 수 없는 거지.”
*********
전령일족, 아라가사들은 본래부터 무예와 활에 뛰어난 민족이었다. 하지만 그들이 신왕살해자라 불리는 힘은 황제가 선사한 마도서 화조풍월의 힘. 그 화조풍월을 해석서로 만든 인물이 바로 초대 전령일족의 두령 하르코니아였다.
그녀는 여성이었기에 ‘하르코니아 해서’는 여성들에게 더 높은 효과가 있었다. 그래서 전령일족은 신체 능력이 더 강인한 남성과 마법 능력이 더 뛰어난 여성, 이들이 조화를 이루어 함께 임무를 수행해나갔다.
즉 ‘하르코니아의 재래’라는 것은 당대 전령 중 최강의 인물에게 붙는 칭호인 것이다. 아라엘이 그 칭호를 얻기 전에는 알디스가 ‘하르코니아의 재래’라고 불리고 있었다.
날 때부터 보라색 눈, 하르코니아의 눈을 타고 태어난 이 소녀는 창립자 일족 중 가장 권위 있는 제다하 혈족이었으며 뛰어난 마법과 궁술로 또래의 누구도 따를 수 없는 실력을 보여주었다.
그래서 전령일족의 두령, 대스승 하티르는 그녀를 자신의 직속 제자로 삼고 어린 시절부터 그녀를 대단한 위업에 투입시켰다. 바로 신왕진서 사본의 해석 작업이었다.
하지만 도중에 신왕진서 사본은 아크레에 의해서 탈취당했다. 분노한 원로회와 두령은 아크레에게 복무의 저주를 발동시키고 그를 추격했지만 아크레는 끝끝내 도망쳤다.
그 말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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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량한 가도에 어린아이의 울음소리가 들리고 있었다. 사람들은 길가에 죽어 있는 사람 시체에서 어린아이의 울음소리가 나는 것을 듣고 다가가 보았다.
하지만 그 끔찍한 몰골을 본 이들은 깜짝 놀라서 성호를 긋고 도망치는 것이었다.
“맙소사.”
“나, 남자의 배에서 탯줄이….”
“저주다! 저주야!”
“오 신왕이시여!”
사람들은 남자의 배가 갈라져 있고 그 안에서 탯줄이 이어진 아이들이 나와 있는 걸 보고 기겁했다. 너무 겁에 질려 울부짖는 이도 있을 정도였다.
전령일족의 배반자, 아크레는 지난 1년간 추격해오는 모든 추격자를 따돌렸지만 결국 저주를 따돌리지는 못했다.
노상에서 아이를 낳고 죽은 남자의 시체, 그것이 바로 전령일족의 배반자 아크레의 말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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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크레….”
이제 겨우 12살 소녀에 불과한 알디스는 케림 산양에서 내려 죽어 있는 아크레에게 다가갔다.
“흥. 아까운 놈이로군. 전령도 아니라 연구자였던 놈이 이런 실력을 감추고 있었을 줄이야.”
아크레의 시신을 바라보는 또 다른 남자, 대스승 하티르의 호박색 눈이 가늘어졌다.
아크레는 전령이 아니라 연구자였다. 마법을 해석하고 연구하는 데 천부적인 재능이 있던 마도사. 그런 그가 전령들의 추격을 따돌리고 도망치고 또 도망칠 줄이야. 뒤통수를 맞은 기분이었다.
“그럼 이 아이들이… 저주로 태어난 아이들이군요.”
“그렇다. 복무의 저주지. 지금까지 써본 일이 없었다만… 효과는 확실하군. 멍청한 제자 놈. 그런 재능을 가지고 있으면서 일족을 배반하다니.”
대스승 하티르는 아크레에 대한 혐오감을 감추지 않았다.
“그런데 저 아이들 괜찮은가요? 배가 고픈 것 같아요.”
“저건 저주의 산물이다. 복무 계약에 의하면… 이 복무의 저주로 태어난 아이는 다른 이들보다 더 뛰어난 재능을 가진다고 하지.”
“그러면 데려가야지요.”
“하지만 저건 아크레의 환생일 수 있다. 일족의 배신자의 피는 끊는 게 마땅해. 게다가 쌍둥이 아니냐! 복무 계약에 의하면 복무의 저주로 태어나는 건 한 놈이다.”
“그래도 확인해 볼게요!”
알디스가 그리 말하자 대스승 하티르는 그녀를 노려보았다.
“저주가 너에게도 영향을 끼칠지 모른다.”
“아직 젖먹이잖아요. 지금 이대로 두면 죽을지도 몰라요.”
알디스는 그리 말하고 한달음에 다가가 쌍둥이를 확인했다. 쌍둥이는 남자와 여자, 둘이었다.
“아….”
“왜 그러느냐? 아!”
다가온 대스승 하티르도 눈살을 찌푸렸다. 두 아이 중 한 명의 눈이 없었다. 눈이 있어야 할 부위에 눈 대신 살만 차 있다.
“역시, 쌍둥이는 불길하군.”
하티르는 검을 빼 들었다. 길고 푸른색 기운을 띤 강철검이었다.
“안 돼요, 스승님!”
알디스가 그 앞을 가로막았다.
“비켜라 알디스. 불길한 놈들이다. 치워야 한다!”
“하지만… 눈이 없다고 죽어야 할 이유는 없잖아요!”
“허튼소리. 보이지도 않는데 살 수 있겠느냐? 우리 아라가사의 가혹한 운명을 생각하면 저 녀석은 지금 죽는 게 나을 거다!”
“하지만… 잠시만요.”
알디스는 문득 자신의 품에 안은 아이들이 자신의 얼굴을 보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이 아이, 볼 수 있어요.”
“뭐?”
“눈이 없어도 볼 수 있는 것 같아요.”
“같아요는 뭐냐? 지금 설마 하찮은 동정심 때문에 내게 거짓말을 하는 거냐?”
“하지만 시선이 느껴지는걸요.”
“젖먹이 애가 벌써 눈을 뜰 리 없다. 음?”
대스승 하티르가 그렇게 말하기가 무섭게 그도 시선을 느꼈다. 알디스의 품에 안긴 여자아이가 눈을 뜨고 하티르를 바라보고 있는 것이었다.
“놀랍군. 이 아이도 하르코니아의 눈인가?”
“네. 제 눈과 같은 색이네요.”
알디스와 마찬가지로 방금 눈 뜬 어린 여자아이도 보라색 눈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대스승 하티르도 명백히 느낄 수 있는 또 다른 시선이 있었다. 남자아이의 시선이 느껴진다.
“제법이군. 과연 복무의 저주로 태어난 저주의 아이들. 더욱 우수한 일족을 만드는 저주란 말인가?”
대스승 하티르는 두 아이 모두에게 범상치 않은 힘이 있음을 알고 혀를 찼다.
“알겠다. 알디스 네가 책임져라.”
대스승 하티르는 검을 거두었다.
“신왕진서 사본을 잃었으니 뭐라도 가져가야겠지.”
*********
그리하여 알디스는 아자딘과 아라엘을 성역으로 데려왔다. 오는 도중 젖동냥을 하고, 산양의 젖을 먹이기도 하고, 기저귀도 갈아주면서 온갖 고생을 한 그녀를 맞이한 장로들은 길길이 날뛰었다.
“이 아이들이 신왕진서의 화신일지도 모르오! 죽입시다! 죽이면 책으로 변한다니까!”
“그럴 리가 있나!”
“아이가 책으로 변한다는 망상에는 동조하지 않지만 죽여야 한다는 점에는 동조한다. 아크레의 피와 살, 영혼은 설령 복무의 계약으로 정화되었다 하더라도 용서할 수 없다. 처벌이 필요하다.”
다들 상심해 있었다. 신왕진서 사본을 얻기 위해 전령일족은 막대한 희생을 감내했다. 타라사르의 왕위계승 전쟁에 참여해 많은 이들이 죽었다.
피와 금, 그 모든 것을 바쳐서 간신히 손에 얻은 신왕진서 사본이 허망하게 사라졌으니 제정신이 아닐 지경이 될 수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