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ight of the Soulless Unholy RAW novel - Chapter 5
4. 금화의 악마 4
병사들은 저 기괴한 전령일족이 자신들을 멀쩡히 내보낼 생각이 없다는 걸 알고 기겁했다.
“끄아아악!”
날카로운 비명이 고막을 뒤흔든다. 결국 마지막 병사까지 눈을 잃고 거세당한 뒤에야 아자딘은 변경백의 아들에게 돌아섰다.
“후우, 오래 기다렸지. 백성들에게 고통만 가중시키는 쓰레기 놈아.”
금속 갑옷으로 무장한 스무 명의 병사들을 정말 혼자서 쓰러뜨려 버렸다. 그것도 죽이는 게 아니라 눈을 멀게 만들고 거세한 것이다.
“이, 이 자식!”
공자 코젤은 아자딘의 행동에 겁을 집어먹고 있었다.
“나는 귀족이다! 다른 놈들과는 달라! 호락호락 당할 것 같으냐?”
그 순간 눈부신 섬광이 번쩍였다. 코젤이 마법을 써서 강렬한 섬광을 발생시킨 것이었다.
“으아아악!”
“고, 공자님!”
너무 눈부셔서 이미 눈알이 훼손된 병사들까지 비명을 질렀다. 코젤의 마법이 뭔지 알고 있던 지벡 경도 눈앞이 보이지 않아 어지러울 정도였다. 눈을 미리 감고 손으로 가리기까지 했는데도 빛이 손을 뚫고 들어와 기어이 안구를 유린했다.
“봤냐! 이게 나의 마법이다! 네놈들과는 비할 데 없는 고결한 혈통의 증거란 말이다!”
그 순간 서걱 하고 뭔가가 날아갔다. 깜짝 놀란 코젤 공자가 자신의 아랫도리를 보니 바지가 피로 물들고 있었다.
“아, 아아아악!”
아자딘의 칼이 코젤 공자의 사타구니 사이, 양물을 잘라 버린 것이었다.
“이, 이 자식! 내… 내….”
“어이쿠 실례.”
아자딘의 칼이 다시 번뜩이며 이번엔 그의 코와 눈알 하나를 날려 버렸다.
“크악!”
코젤 공자가 허우적거리자 아자딘은 그에게 다가가 그를 번쩍 집어 들어 일으켜 세웠다.
“으아아아. 이, 이 자식… 감히 내게 무슨 짓을 한 거냐?”
“혹시 몸에 뭐 문제 있어? 당한 놈이 모르다니? 뭐 통증을 모르는 병이라던가?”
“이, 이 자식.”
코젤 공자는 아자딘의 손을 떨쳐내고 뒤로 물러나며 외쳤다.
“자, 잠깐만!”
아직 눈알 하나는 남아 있다. 이거라도 지켜야 한다. 만약 이 눈알조차 잃게 된다면 남은 평생을 어둠 속에서 살아야 할 것이다.
“워, 원하는 게 뭐냐? 돈? 여자? 보검? 뭐든 주마. 나는 귀족이라고! 신왕, 야에가스 신족의 후손이다!”
“그래? 공교롭게도 나는 신왕살해자, 전령일족이로군. 괜찮아. 죽이려는 건 아니니까.”
아자딘이 웃으며 다가서자 코젤 공자가 주위를 두리번거리다 아직 멀쩡한 지벡 경을 바라보았다.
“서, 선생! 뭣하고 있어! 도와줘!”
“…눈이 안 보입니다.”
방금 전 코젤 공자가 발한 빛 때문에 지벡 경은 눈이 잘 보이지 않았다. 물론 지금은 흐릿하게 윤곽이 보여 싸우자고 하면 못 싸울 것도 없지만 고통받는 마을 사람들을 가차 없이 유린하는 코젤의 모습이 뇌리에 남아서 몸을 무겁게 했다.
이래서야 저런 괴물과 싸워 이길 수 있을 리 없다.
“이 자식, 나는 귀족이다. 신왕의 혈통이라고! 그까짓 천민들 좀 어찌했다고 내게?”
“흠, 기운이 넘치는 걸 보니 신체 손상을 당해도 아주 기운차게 살아갈 것 같군. 좋아, 바로 그 자세야. 긍정적으로 살아가라고. 너에겐 특히 필요할 테니까.”
“끄아아악!”
결국 코젤 공자는 마지막 눈알까지 잃고 말았다.
*********
전령일족 아자딘은 아무도 죽이지 않았다. 그저 영구적인 손상을 입혔을 뿐.
거세하고 눈알을 훼손하거나 팔다리를 잘라 그들이 더 이상 백성들에게 무력을 행사할 수 없는 상태로 만들고 나서야 검을 거두었다.
“청원자는 없지만 이 정도면 성의는 다 보인 것 같군. 황제의 법이 이루어졌다.”
황제의 법, 신왕의 피를 이어받은 이들도 죄를 범했다면 죽어 마땅하다는 그 법을 선언하며 아자딘은 돌아섰다.
그의 뒤에서 스르릉 하고 칼 뽑는 소리가 들려왔다. 지벡 경이 검을 뽑은 것이다.
“아무리 그대가….”
“응?”
“아무리 그대가 옳은 짓을 했다 하더라도 나는 왕의 교회의 기사. 그대를 묵과할 수는 없다. 하물며 황제의 법이라니.”
“아, 정말.”
아자딘은 고집을 부리는 지벡 경을 보며 쓴웃음을 지었다.
“고지식한 성기사로군. 요즘 왕의 교회 기사들답지 않은데?”
“네놈, 날 모독할 셈이냐?”
“아니 칭찬하는 거지. 다른 왕의 교회 기사들은 뭐랄까, 그냥 상속권 정리하느라 강제로 출가 당한 불한당들 같았거든.”
“…….”
지벡 또한 그러했다. 물려받을 영지와 작위가 없는 차남, 혹은 사생아들. 신왕의 핏줄이라고 자처하기에도 민망한 한미한 가문의 핏줄들.
그래서 아자딘의 그런 지적에 부끄러움을 느꼈다. 무엇보다도 눈앞의 이 전령일족이 자신이 본 그 어떤 이들보다 더 기사다웠기 때문에, 수치심을 느낀 것이다.
“그런데 갑옷 입고 날 쫓아올 수 있겠어?”
“뭣?!”
“난 가지. 나중에 인연 닿으면 또 보자고, 지벡 경!”
아자딘은 그 말을 남기고 몸을 돌려 도주하기 시작했다. 너무나 빨라서 벌써 밤의 어둠 너머로 사라져갔다.
“윽?!”
지벡 경이 그를 추격하려 했지만 눈멀고 거세당한 병사들과 코젤 공자의 몸이 그의 길목을 가로막고 있었다.
그들을 짓밟고 나갈 생각이 아니라면 아자딘을 추격하지도 못하고 멈춰서 있어야 했다.
“이거 참 후련할 정도로 당했군.”
지벡 경은 무심코 미소를 짓고 말았다.
*********
살라스마 변경백, 카젤 백작은 변경 도시 살라스마와 그 부속 촌락들의 영주였다. 최근 살라스마 인근에 한 달 내내 비가 오지 않아 많은 이가 그에게 청원하기 위해 몰려와 있었다.
“영주님, 올해는 세금을 면제해 주십시오.”
“부탁입니다. 영민들이 다들 도망쳐 유랑민이 되고 길거리엔 말라죽은 이들이 언데드가 되어 배회하고 있습니다.”
“도적과 마물들이 들끓어 감히 세금을 낼 처지가 못 됩니다.”
각 향촌의 촌장들은 세금을 면제해 달라고 탄원하기 위해 직접 몸을 이끌고 먼길을 마다하지 않고 와서 탄원을 날렸다.
하지만 카젤 백작은 마치 강철을 닦아 만든 것 같은 눈동자로 그들을 무심히 바라볼 뿐이었다.
“세금을 면제해 달라고? 뻔뻔한 놈들이구나. 이러다간 아예 식량을 지원해 달라고 할 판이 아니더냐?”
카젤 백작은 빈정대느라 말한 것이었는데 촌장들은 그 빈정거림에도 오히려 달려들었다.
“…해주신다면 감사하겠습니다.”
“외람되오나 그만큼 위태로운 상황입니다.”
“하, 좋다. 어리석은 놈들, 어쩔 수 없지. 민초들이 뻔뻔하고 무도한 것이야 어쩌겠느냐? 그 피가 비천한 것을.”
카젤 백작은 그들을 보며 피식 웃었다. 이들은 카젤 백작의 괴팍한 성격을 알고서도 감히 식량 구휼을 요청해왔다. 그 정도로 백성들이 위험에 몰려 있는 상태였다.
“너희들이 구휼을 원한다면 내줄 수도 있지.”
“저, 정말이십니까?”
“그러나 만약 내가 요청하는 일을 해내지 못하면 너희들은 납세를 성실히 못한 죄로 전부 목이 매달릴 것이야.”
“…….”
“안심해라. 너희에게 원하는 건 그저 한 장의 종이에 불과하니 말이다.”
“조, 종이 말입니까?”
“그래, 이런 마도서다.”
카젤 백작은 그리 말하고 손을 펼쳤다. 아무것도 없던 빈손이었는데 그의 손안에 한 장의 종이가 나타나 스스로 바람을 불러일으키며 빙글 돌기 시작했다.
마치 물살에 흔들리는 수초처럼 스스로 움직이는 종이를 보며 모여든 청원자들은 당혹스러워했다.
“마, 마도서….”
“저희들은 마법에 무지하여 이런 것을 모릅니다.”
“아니 이건 너희들이 찾을 수 있는 것이다. 진실로 바란다면 반드시 찾을 수 있지. 만약 이와 같은 마도서를 구해온다면 그 마을은 3년간 세금을 면하고 밀과 보리, 귀리를 50부셀(1부셀=36리터)씩 하사하겠다.”
“…….”
3년간의 세금 면제도 파격적인데 곡식을 주겠다는 말에 다들 놀랐다. 평소 심성이 잔학한 카젤 백작이 이렇게 선심을 쓰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만큼 찾아오라는 마도서가 중요한 거겠지. 하지만 마도서를 어떻게 찾으란 말인가?
“시, 실례지만 이 마도서의 이름이 무엇입니까?”
“흥? 너희들 같은 무지렁이들이 봐서 알 수 있을 것 같은가?”
“그런 건 아니지만 뭐인지 알기라도 해야 찾고 분간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신왕진서 사본.”
“네?!”
모두들 그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
*********
휘브리스 대륙에는 8개의 왕좌가 있다.
이 왕좌는 야에가스 신족들이 그들의 고향에서 가져온 것으로 정당한 왕이 앉으면 왕화의 빛으로 마물들을 몰아내고, 백색 마력의 힘으로 세계를 정화하며, 왕에게 충성하는 자들에게 신성한 백색 마력의 힘을 부여한다고 한다.
또한 옥좌에 앉은 왕에게는 강력한 마도서가 그들의 정신에 각인되게 되니 이것이 바로 신왕진서. 왕들의 마도서였다.
그런데 그 사본이 있고 카젤 백작이 그것을 노리고 있단 말인가?
“백성들이 도탄에 빠졌을 때 신왕진서를 갈망한다면 그 사본이라 하더라도 사람들의 부름에 응하여 모습을 드러내겠지.”
“…….”
마을 촌장들은 먼 산을 바라보며 말하는 카젤 백작의 말에 소름이 돋았다.
카젤 백작은 백성들이 고통받건 말건 관심이 없다. 신왕진서 사본이라는 저 마도서를 구하기 위해서 백성들이 도탄에 빠져 고통받는 이 상황을 이용할 생각뿐이다.
“아, 알겠습니다. 그럼 즉시 마을로 돌아가 사람들과 함께 신왕진서 사본을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예. 저희도….”
“그, 그리하겠습니다.”
가뭄에 고통받아 몰려온 마을 촌장들은 카젤 백작의 광기에 놀라서, 혹은 정말 신왕진서 사본을 찾아 세금을 면제받고자 하는 마음에 백작에게 읍하고 자리를 떠났다.
그들이 떠나가자 백작의 거처, 커튼 뒤에서 스르륵 하고 한 마리 거대한 뱀이 모습을 드러냈다. 뱀은 몸을 꼿꼿이 세우더니 구릿빛 피부를 가진 젊고 아름다운 여성의 모습으로 변했다.
“신왕진서의 이름을 언급하신 건 경솔하신 것 같습니다, 백작님.”
“허튼소리. 너희들이 이미 열심히 마도서를 찾아 여기저기 들쑤시고 있지 않느냐? 어차피 소문은 곧 전 대륙에 다 나겠지. 그전에 빨리 한 장이라도 더 이 마도서를 찾고 싶어서 그럴 뿐이다. 그래서, 무슨 일이지 마녀?”
“아뢰옵기 황공하오나… 아드님 한 분이 당한 것 같습니다. 코젤 경이 동부 내륙지에서….”
“코젤이?”
“예.”
“코젤의 병력이면 그리 쉽게 당하진 않을 텐데. 지벡 경도 붙어 있었고. 상대는 누구지? 도적인가? 마물인가?”
“전령일족입니다.”
“전령일족?”
카젤 백작이 눈살을 찌푸렸다.
“하긴 그들도 신왕진서에 목말라 있겠지. 복무의 저주를 풀고 싶다면 신왕진서가 필요할 테니까.”
“애초에 신왕진서의 사본이 세상에 풀리게 된 게 바로 그들의 소행 때문입니다. 그들 입장에서는 자신들의 신왕진서 사본을 되찾으려고 하는 것이겠지요.”
“코젤은 죽었나?”
“그게… 눈을 상하고 생식능력 또한 훼손당했다고 합니다.”
“거세를 당했다고?”
카젤 백작은 혀를 찼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코젤의 땅 인근에 병사를 깔아야지. 전령일족을 잡는다. 어쩌면 그놈들도 신왕진서 사본을 좀 가지고 있을지 모르겠군.”
“알겠습니다. 그럼 제장에게 제가 연락할까요?”
“아니, 아니다. 다른 녀석들에게 명령을 내리도록 하지. 그리고….”
카젤 백작은 음흉하게 웃었다.
“자식이 하나 거세되었으면 새로 하나 만들어야겠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