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ight of the Soulless Unholy RAW novel - Chapter 50
49. 알디스 4
아랑기 왕국, 케림 산맥 깊은 곳에는 전령일족의 성역이 있다. 험준한 바위산들 안쪽, 돌풍과 안개가 다발해 보통 사람은 감히 넘어들 수도 없는 곳에서 전령일족들은 훈련을 받고 그 후 세계 각지로 퍼져 복무의 계약대로 황제에 종사하며 일족 해방의 염원을 위해 살아간다.
그러나 2년에 한 번, 하지 축제 때는 세계 각지에 퍼진 전령들이 성역으로 돌아와 수행상황에 대해 보고하고 전사자, 부상자에 대한 수속을 하며 포상 받을 자를 포상하고 징계할 자를 징계하며 인사이동을 갖는다.
그 하지 축제가 한참 남은 케림 산맥에 한 전령이 콧노래를 부르며 절벽을 오르고 있었다. 은발의 소녀, 알디스였다.
“아아, 이번엔 좀 선물들을 너무 많이 가져왔는데. 그 애들이 좋아할라나 모르겠네.”
알디스는 고향이 가까워지는 것에 기뻐하며 성역 앞에 섰다. 안개와 돌풍들이 자주 발생해서 보통사람은 찾을 수 없는 길. 하지만 알디스는 황제의 목소리를 불러 그 인도에 따라 움직여 미로를 뚫고 성역 안으로 들어왔다.
-쏴아아아아….
눈앞에 펼쳐진 것은 산 위에 자리한 폭포와 계곡이었다.
“음, 이번엔 남동쪽에서 들어왔구나. 아, 언제봐도 여긴 절경이라니까. 모기가 좀 많아서 그렇지.”
알디스는 황제의 목소리에게 말을 걸고 있었다.
[너는 야에가스 신족의 피가 짙게 흐르고 있다. 네 귀중한 피를 모기들에게 헌납하지 말도록. 살생에 이로움만 있다면 그것은 바로 모기에 대한 살생이니라.]황제의 목소리는 모기들을 주살할 것을 알디스에게 권하고 있었다.
“그러시다면야.”
알디스는 자신에게 날아드는 모기를 향해 가볍게 주문을 시전했다.
-화조풍월, 연작(燕雀)!
무수한 힘의 탄환들이 날아드는 모기를 전부 요격하고, 그래도 남는 힘의 탄들은 수풀 속으로 스며들며 발견하는 모기들을 족족 죽이며 마법의 힘이 다할 때까지 날아다녔다.
알디스는 그 모습을 보고 흡족해하며 케림 산양들을 끌고 걸어갔다. 그때였다.
-참방….
뭔가가 계곡물로 떨어졌다.
“음… 뭐지?”
[아이다.]황제의 목소리가 알디스의 의문에 대답해 주었다.
“엣?!”
깜짝 놀란 알디스가 계곡으로 달려가 보았다. 이곳 계곡은 물살이 매우 거칠고 수온이 낮아서 성인들도 수영하기 버거운 곳이었다. 그런 계곡에 어린아이가 빠졌다.
“에이!”
알디스는 월각궁과 각종 귀중품들을 집어던지듯 벗어 버리고 계곡물로 뛰어들었다.
*********
아자딘이 의식을 차렸을 때는 아름다운 보라색 눈이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알디스가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아자딘! 괜찮니?”
“어 알디스?”
“대체 왜 그랬어! 왜 성역 외곽까지… 이 바보야!”
“…….”
아자딘은 자신과 알디스 둘 다 알몸이라는 걸 깨닫고 부끄러워서 고개를 돌리려 했다. 하지만 알디스는 아자딘을 꼭 끌어안았다. 계곡의 찬물 때문에 체온이 너무 떨어져 있어서 알디스의 따스한 품 안이 너무나도 좋았다.
“…….”
자신을 위해서 울어주는 알디스를 보니 마음이 아파서 견딜 수가 없었다. 사실은 살아갈 자신이 없어서, 괴롭고 힘들어서 자살하려고 했다는 말은 차마 할 수가 없었다.
“아, 알디스는 어쩐 일이에요? 아직 하지까지는 한 달이나 남았는데?”
“나 없는 새에 어떤 장난꾸러기가 물에 빠질까 봐 걱정이 되어서 일찍 왔지 뭐야. 선물도 잔뜩 사왔는데.”
“…….”
“훈련 많이 힘들지?”
“아, 아뇨. 훈련은 이제 아무것도 아니에요. 어차피 잘렸고요.”
“잘렸어?”
“네. 전 전령이 될 수 없다고….”
“음, 뭐 괜찮아. 전령 말고도 세상에 직업이 얼마나 많은데. 오히려 전령이 되겠다는 게 이상한 거야. 매일 풍찬노숙이지. 난 말야. 어릴 적에 과자가 너무 먹고 싶어서 꼭 과자 공장 직원이 되고 싶었다고. 알아?”
“아하하. 그랬어요?”
“그래.”
알디스는 그리 말하고 모닥불을 살펴보았다.
“장작이 떨어졌네. 불쏘시개 좀 주워올게.”
그녀는 알몸인 채로 일어나 근처에서 불쏘시개를 주워왔다. 그동안 아자딘은 그녀가 마련한 모포 안에서 멍하니 앉아 있었다. 다시 모닥불을 피운 알디스가 아자딘을 껴안고 모포를 다시 둘렀다.
“마, 마을 안 가요?”
“오늘은 여기서 아자딘이랑 별이나 볼까 하는데?”
“별이요? 밤하늘에 빛나는 것들 말이죠?”
“그래. 아, 오늘은 요정들의 별자리 책을 가져왔단다.”
“별자리?”
“야에가스 신족이 이 땅에 당도하기 전에 있던 요정들의 신화야. 밤하늘에 빛나는 밝은 별과 별들을 연결해서 자리를 만들고 그들의 신화 이야기를 더한 거란다. 후후. 요새 요정 언어들을 배우고 있거든? 내가 읽어줄게.”
알디스는 선물로 사 온 과자를 뜯어서 아자딘과 나눠 먹으면서 해가 떨어진 초여름의 하늘에서 별을 헤아리고 요정들의 전설을 이야기해 주었다.
단언하건대 그 전까지 아자딘은 아름다움을 몰랐다. 밤하늘은 그저 커다란 공허였고, 그 안에 반짝이는 별들은 관심을 기울이기엔 너무나 하찮은 것들이었다.
하지만 알디스와 별을 헤아린 그날 이후로 아자딘은 아름다움이 무엇인지 알았고, 별들은 사무치는 그리움이 되었다.
*********
기초훈련에서 낙오한 아자딘은 직업훈련을 받았다. 전령일족인 이상 전령이 되지 못하면 종사가 되든가 아니면 상회의 상인, 혹은 일꾼이 되어야 했다.
기초훈련이 진행되는 동안 성역의 모든 인적자원은 기초훈련 과정에 집중되어서 낙오자인 아자딘은 시간적 여유가 생겼다. 마침 알디스가 와 있었기에 아자딘은 매일같이 알디스를 찾았다.
알디스 또한 자신이 없는 동안 고통받았을 아자딘을 위해 아낌없이 시간을 내주었다.
“이 책, 너무 재밌어요. 도, 돌려주러 왔어요.”
아자딘은 구난기사단의 입문서를 알디스에게 반납했다.
“아니 아자딘, 그건 네가 가지렴.”
“네? 그, 그래도 돼요?”
“그런데 어떤 부분이 그렇게 마음에 들었니?”
“세 가지 미덕이요. 구난기사들은 용기, 지혜, 자비의 미덕을 지키면 삼위의 대천사들로부터 힘을 받아서 백색 마력을 쓸 수 있대요. 백색 마력이면 그거죠? 야에가스 신왕들이 쓰는 힘?”
“아, 그렇지. 음. 후후.”
“저도 마법을 쓸 수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어린 아자딘이 구난기사단에 매혹된 것은 혈통에 상관없이 누구나 미덕을 지키면 백색 마법을 쓸 수 있다고 하는 구난기사단의 주장 때문이었다.
마법을 쓰지 못하는 결격품. 낙오자. 반편이. 흉물. 무안의 괴물.
온 세상에서 박해받는 전령일족 중에서도 경멸받는 이 어린 소년이 구난기사단의 주장에 매혹되는 건 필연이었다.
하지만 전령으로서 각지를 여행하던 알디스가 본 바, 구난기사단에서 백색 마력을 사용하는 이는 본 적이 없었다. 아니 적어도 세 가지 미덕의 힘으로 백색 마력을 사용하는 이들은 없었다.
구난기사단에서 백색 마력을 사용하는 이들은 왕의 교회처럼, 귀족의 혈통이면서 상속권이 없어서 강제로 출가 당한 야에가스 신족의 말예들뿐이었다.
‘으음, 구난기사단 말이지. 내가 보기엔 순 사기꾼 같은 놈들이었는데. 아니 뭐 좋은 사람들도 있었지만 거기 성직자란 것들은 다들 뭔가 좀….’
구난기사단들은 네더라고 하는 세상의 심연으로부터 인류를 지키겠다고 허풍을 떠는 자들이었다. 그들의 주장에 의하면 휘브리스 대륙 밑에는 네더라고 하는 더욱더 깊은 세상의 심연이 있으며, 그곳에는 형언할 수 없는 이형의 악들이 존재한다고 한다.
강력한 흑색 마력의 근원인 그 네더에 비하면 쿠르트 신족들은 아무것도 아니며, 쿠르트 신족을 물리쳐 인류를 구원한 야에가스 신족들 또한 별것 아니다.
그런 주장 때문에 한때 이단시되어 종교전쟁까지 벌어졌었다. 다만 이후 왕의 교회가 막장이 되면서 구난기사단의 위상이 올라 지금은 이단시되지 않고 인정받고 있지만….
‘백색 마력이라. 상위 계급 기사들이 사용하긴 했지만 그 작자들은 귀족자제들이잖아.’
결국 야에가스 신족의 피를 이어받은 이들만이 백색 마법을 사용했다. 아니면 구난기사단의 총본산인 ‘내해 반도’에서는 좀 더 백색 마법을 쓸 수 있는 이들이 많다고 하지만….
알디스가 확인해본 적이 없었다.
‘왕의 교회가 사생아 처리소가 되어서 막장화 되었다곤 하지만 그래도 왕의 교회 성기사들이 구난기사들 보다 월등히 인적자원 면에서 뛰어나던데.’
그러나 지금 그런 이야기를 할 필요는 없겠지. 침울해 있던 아자딘이 이렇게나 생기를 발하고 있는 걸 보니 알디스는 어떻게든 아자딘을 위로하고 싶었다.
*********
“구난기사단이 되고 싶니?”
“구, 구난기사요? 네. 하지만 전 아라가사인데… 그들이 절 좋아할까요?”
“흠?”
“아라가사는 모두가 싫어한다고 들었어요. 우리가 저들의 소중한 신왕들을 죽였다고. 그렇지만 다른 애들은 다들 좋아해요. 자신들이 신왕마저 죽일 정도로 강하니까 저들이 두려워하는 거 아니겠느냐. 그러면서 으스대요. 하지만 그럼 저는 뭐죠? 아라가사지만 약하고 힘도 없고… 그런데도 사람들은 저 역시 아라가사라서 미워하겠지요. 아니… 그 전에.”
아자딘은 자신의 얼굴을 매만져보았다. 눈이 있어야 할 자리에 살이 채워져 있는 얼굴.
“아라가사 이전의 문제로군요. 이 얼굴! 다들 제가 보기 역겹다고 얼굴을 가리래요. 저번에는 애들이 포대 자루를 제 얼굴에 덮어씌웠는데 질식해서 죽을 뻔했어요.”
“누가 그랬는데? 어떤 놈이!”
알디스의 목소리에 은근한 노기가 깔렸다.
“아, 그, 그건 좀.”
아이들끼리의 문제에 어른을 끼어들게 하면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더 심각해진다는 걸 아자딘은 경험으로 알고 있었다.
알디스는 제다하 일족이자 전령이며 마법을 연구하는 학예원 학사이기도 했다. 그녀의 목소리는 강력한 권위가 있지만 그녀에게 주어진 임무가 너무 많아 아자딘과 함께 할 수가 없다. 즉 알디스가 아자딘을 보호해줘도 그녀가 부재중일 때는 큰 도움이 되지 못한다.
지금은 알디스가 와 있어서 기쁘지만, 그녀가 결국은 떠나야 한다고 생각하니 아자딘은 다시금 침울해졌다.
“구난기사들도 절 싫어하겠지요?”
“아자딘.”
알디스는 아자딘을 꼬옥 끌어안았다. 옅은 라벤더 냄새가 아자딘의 코에 스며들었다.
“책을 봤다면 알고 있겠지? 용기와 지혜와 자비를 갖추면 누구나 구난기사가 될 수 있다는 게 구난기사단의 이념이란 걸?”
“네.”
“네가 용기와 지혜와 자비를 갖추면 된단다. 넌 무엇이든 될 수 있어.”
“아라가사로 태어나서 전령은커녕 종사조차 못 되는 데도요?”
“원래 아라가사들 중 전령이 되는 건 극히 일부뿐이란다. 대부분은 종사도 못 되는 게 당연한걸. 결국 중요한 건 남들이 널 어떻게 보냐가 아니라 네가 납득하는 너 스스로의 모습이지.”
“그, 그런.”
아자딘은 울상을 지었다.
“그게 문제예요. 저는 지금 제 자신이 싫어요.”
“그럼 아자딘 혹시 내가 싫으니?”
“그, 그럴 리가요!”
아자딘은 마치 신성모독이라도 들은 양 깜짝 놀라며 손사래를 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