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ight of the Soulless Unholy RAW novel - Chapter 51
50. 알디스 5
“아자딘, 나는 언제나 네 편이란다.”
“예?”
“내가 말하기는 우습지만 내가 곧 아자딘의 엄마 같은 존재잖니?”
“어, 엄마?”
아자딘과 알디스의 나이는 12살 차. 엄마라고 하기엔 좀 무리가 있는 나이 차다.
“그런데 아자딘이 스스로를 미워하면 그건 네게 살아갈 것을 강요한 나도 밉다는 거 아니겠니? 나는 좀 슬프구나.”
“아, 아니에요. 그건 아닌데….”
아자딘은 시선을 피했다. 자신을 좋아할 요소가 손톱만큼도 없는데 좋아하라는 건 아무리 알디스의 요구라 해도 무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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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 축제가 끝나자 기초훈련의 낙오자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훈련 와중의 아이들은 너무 바쁘고 피곤해서 아자딘을 건드릴 수 없지만 기초훈련에 낙오된 아이들은 시간적 여유가 생겼다.
물론 그들은 상인이나 직공이 되기 위한 훈련을 받아야 했지만 하지 축제가 끝난 뒤 얼마 되지 않은 시기라 아직 축제의 들뜬 열기가 남아 있었다. 그래서 시간이 남아돌게 된 아이들은 자연히 아자딘에게 화살을 돌리려 했다.
그러나 알디스가 함께 있으니 아무도 아자딘을 건드릴 수 없었다. 알디스는 일부러 자신의 근무지로 떠나지 않고 어떻게든 아자딘의 기분을 풀어주기 위해 함께 책을 읽고, 요정어를 가르쳐주고, 낚시를 하거나 옷을 수선해 주면서 함께 시간을 보내려 했다.
하지만 그녀도 전령인 이상 결국에는 떠나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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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알디스 님이 떠났대.”
“그래? 그럼 드디어… 오늘인가?”
“아, 이 배신자 자식 새끼가 그간 알디스 님에게 들러붙어서 호강했지?”
“내 오늘 그 새끼 죽인다.”
다들 아자딘을 벼르고 있었다. 특히 전령 선별 과정에서 떨어진 낙오자 아이들은 더더욱 그러했다. 아자딘이 자신들과 같은 낙오자라는 걸 참을 수 없었던 것이다.
어떻게든 아자딘과 자신들의 ‘차이’를 확인하고 싶다. 누군가 자기보다 아래에 있는 놈을 깔아뭉갬으로써 전령 선별 과정에서 낙오한 자신을 위로하고 싶다.
그런 욕구가 아이들을 움직이고 있었다.
“하아, 애새끼들이란 진짜. 알디스가 그렇게 걔를 애지중지하는데 건드렸다가 사고 터지면 가만히 있겠냐? 너희 부모까지 불똥이 튈 텐데 생각이 저렇게 짧아서야.”
그런 아이들을 멀리서 바라보는 한 그림자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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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과를 말하자면 아이들은 아자딘을 해칠 수 없었다. 그들이 아자딘에게 손을 대기 전에 먼저 아라엘이 아자딘에게 중상을 입혀 버린 것이었다. 아라엘은 아자딘과 말다툼하다 그의 얼굴에 커다란 흉터를 내버리고 말았다.
원래 눈이 있었어야 할 위치에 수평으로 그어진 긴 상처.
이런 당돌한 짓을 저지른 아라엘에게 장로들이 내린 벌은 그야말로 편파적이었다. 독방 사흘이 전부였다.
아자딘과 아라엘은 같은 반역자의 자식이지만 누가 봐도 예쁘고 귀엽게 자라난 아라엘과 보기만 해도 역겹고 불쾌한 아자딘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지는 건 어쩔 수 없다. 무엇보다도 아라가사들은 무력한 어린아이를 처음 대해보는 것이었다.
어린아이가 나약하고 미성숙한 것은 당연한 것인데도 그들은 그런 것을 용납할 만큼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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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윽…. 아아….”
아자딘은 상처에서 오는 고통 때문에 괴로워했다. 상처가 감염되지 않도록 소독초로 만든 고약을 발라 붙이고 있다. 그래도 주위가 보이는 게 아자딘의 특수한 시력이었지만….
고통스럽다.
육체의 고통도 고통이지만 아라엘이 그에게 퍼부은 폭언과 폭력이 견딜 수 없이 괴로웠다.
“아라엘!!!”
아자딘은 분노와 증오를 담아 자신의 유일한 혈육의 이름을 불렀다. 그동안 다른 일족들에게 학대와 멸시를 받아왔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번도 느끼지 못한 증오를… 그의 혈육인 아라엘이 아자딘에게 안겨주었다.
“죽여 버리겠어! 모든 신에게 맹세코 반드시 죽여 버리겠어!”
상처 입은 아자딘은 정말 신화 속 무안의 사룡처럼 울부짖으며 증오 속에서 몸부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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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디스가 떠난 날, 아라엘은 아자딘을 찾아왔다.
“역겹구나 아자딘. 약한 아이 흉내를 내면서 알디스의 관심을 혼자 독차지하다니.”
“아라엘….”
“이번 하지 축제 때 난 알디스와 거의 이야기도 못 했어. 나도 알디스가 이름을 지어준 사람인데 어째서 너만 그녀를 독차지하는 거지?”
“그건 기초훈련 중이니까….”
“그래? 누가 징징 짜면서 매달려서가 아니라?”
그녀는 아자딘이 소중히 여기는 구난기사단의 책을 들어 보였다. 알디스가 선물해준 책이다.
“아! 그건….”
“왜 이런 이단의 책을 가지고 있지?”
“이단은 우리가 논할 처지가 아니잖아? 알아둬서 나쁠 건 없잖아?”
“그래? 책 모서리가 거의 닳아 버렸던데. 정말 애지중지 열심히 읽었나 보구나?”
아라엘은 아자딘의 눈앞에서 책을 붙잡더니 그대로 좌우로 찢어 버렸다. 책 내부는 종이로 되어 있지만 외피는 양장으로 되어 있었는데 아라엘은 무시무시한 힘으로 간단히 그것을 찢어버리고 아자딘 앞에 내던졌다.
“아라엘! 무슨 짓을!”
격노한 아자딘이 아라엘에게 달려들었다.
당연히 상대도 되지 않았다. 아라엘은 간단히 아자딘의 팔을 잡고 비틀어 그를 내동댕이쳤다. 그리고 발을 들어 아자딘의 사타구니를 짓밟았다.
“악!”
“안됐구나 아자딘. 알디스는 널 아들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은데….”
“뭐?”
“사실 알디스를 좋아하지? 엄마가 아니라 여자로.”
“무슨 소릴 하는 거야?”
“아직이야. 이게 덜 여물어서 잘 모르겠지만 그녀와 네 나이는 고작 12살 차이야. 게다가 알디스에게는 황제의 피가 진하게 흐르고 있지. 하르코니아가 황제의 연인이었다는 건 알고 있지?”
전령일족의 전설적인 두령, 하르코니아는 황제 야에슬라트의 연인이었으며 황제와의 사이에서 아이를 낳았다.
그것은 전령일족들 사이에서 이미 기정사실로 전해지고 있었으며 실제로 알디스에게서는 황제의 특징인 은발이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그녀는 야에가스 신족이나 다름없으니 장생할 거야. 네가 성인이 되어도 여전히 아름답겠지. 그때도 너는 그녀를 어머니라고 생각할 수 있을까? 사실 지금도 별로 그렇게는 생각하지 않지?”
“그만둬….”
아자딘은 아라엘이 가하는 폭력보다 자신에게 속삭이는 말에 더 상처받았다.
물론 아라엘의 말은 맞을지도 모른다. 아름다운 알디스, 아자딘에게 알디스는 아름다움의 기준이자 모든 것이다.
그녀에게 배우기 전, 아자딘은 세상에 아름다운 것이 있다는 걸 알지 못했다. 바람은 그저 바람이었고 밤하늘은 공허였고 별은 한미한 빛일 뿐이었다.
그것들에 의미를 부여하고 그리움과 동경을 안겨준 것이 알디스.
그녀에 대한 동경과 욕망을 느끼지 않는다면 거짓말이겠지.
하지만 설령 그녀에게 육욕을 느끼더라도 그것은 생물된 숙명으로 여기고 그저 표면에 드러나지 않게 스스로 간직할 셈이었다. 그것조차 초월해서 사랑하고 있기에 이 욕망이 사랑을 더럽히길 원하지 않는다.
어차피 이루어지지 못할 동경이니까 그저 가슴속 깊이 감추어 두고 살아가겠다고 맹세한 것이었다.
하지만 아라엘은 아자딘이 홀로 끌어안고 영원히 간직하려 한 비밀을 일부러 진탕 쳐 수면으로 끌어내면서 그에게 상처 주는 것을 즐기고 있었다. 아자딘의 맹세를 조롱하고 마음을 가지고 논다.
“아라엘!”
“그래, 분노해봐 아자딘. 성질내보라고. 알디스는 황제의 핏줄이니까 그녀를 안고 싶다면 넌 아라가사에서 가장 강력한 존재가 되어야 해! 그 정도 패기는 있겠지?”
아라엘은 아자딘을 폭행하고 폭언으로 유린하고, 결국에는 아자딘의 얼굴을 베어 버렸다.
“끄아아악!”
아자딘이 고통에 몸부림치며 피를 흩뿌렸다. 순간 아라엘도 자신이 실수했다고 느꼈는지 혀를 찼지만….
손에 묻은 피를 핥으며 웃었다.
“눈이 있을 위치에 살덩이가 있는 것보다는 상처가 있는 게 어울리겠지. 내게 고마워해야 할 거야, 아자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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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자딘은 열병에 걸려 시름시름 앓았다. 상처는 대수롭지 않지만 아라엘에게 신나게 두들겨 맞은 데다가 무엇보다도 그녀의 표독한 말이 아자딘의 영혼을 유린했다.
다른 아이들의 폭언과 욕설은 그저 표층을 떠돌 뿐이었다.
배반자의 아들.
저주받은 놈.
못생겼고 끔찍한 괴물.
무능력하고 약한 놈.
그러한 비난들은 물론 괴롭고 고달프지만 아자딘의 표층을 할퀴고 지나갈 뿐이었다. 하지만 아라엘은 아자딘이 알디스에게 품고 있는 마음을 공격했다.
그것은 아자딘에게 목숨보다 더 소중한 것이었기에 육체를 때리고 그의 피부를 찢는 폭력과 욕설들보다 더 아프고 깊은 상처를 남겼다.
아자딘은 하인들의 오두막에서 끙끙 앓으며 버티고 있었다. 그때 오두막의 문이 열렸다.
“이게 소문의 아자딘인가, 무안의 사룡?”
“으으….”
“재밌군. 하지만 눈에 상처가 있는데. 이제 안 보이게 된 거 아냐?”
젊은 남자의 목소리였다. 아자딘은 희미해진 시력을 집중해 상대를 바라보았다. 그것은 금발 벽안의 엘프이었다.
“어? 엘프… 헉!”
아자딘은 경악했다.
“자, 잡아먹지 마세요.”
아자딘은 엘프들의 책과 설화 등을 좋아했다. 하지만 엘프들을 좋아하냐면 그건 아니다. 오히려 두려워했다. 아자딘만이 아니라 다른 모두들 엘프들을 두려워했는데….
그들은 아름답고 오래 살지만 쾌락주의자들이며 인육을 탐한다. 청순가련하고 아름다워 보이는 용모와 달리 온갖 끔찍하고 잔혹하고 변태적인 짓들을 저지르는 것으로 유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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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에가스 신족이 당도하기 전 휘브리스를 지배하던 종족들의 정점에는 나가들이 있었다.
나가슈라 제국.
그 제국의 행정관료로 고용된 것들이 바로 엘프들이었다. 나가슈라 제국은 인간을 가축처럼 사육하고 매일같이 도축해 그들의 신전을 피로 물들였으며 그 작업은 엘프들 역시 함께 하였다.
인간을 죽이고 잡아먹는 광란의 축제에서 엘프들은 나가들 못지않게 열광했었다고 한다.
“아아, 나가슈라 시대 이야기를 알고 있구나. 책 읽기를 좋아하고 머리가 좋다더니만 제법이군.”
오두막에 들어온 엘프 남자는 그리 말하고 웃었다.
“안심해라. 난 인육 끊은 지 좀 됐으니까. 오늘 아침에 먹은 거로 이제 당분간 안 먹을 거야.”
“으으… 누구세요?”
“장로 카자스다.”
“카자스? 장로라고요? 하지만…….”
“그래. 아라가사가 아닌데 장로라니 이상하지? 게다가 원로원에서도 날 못 봤을 거야. 뭐 난 사실 숨겨진 장로거든.”
스스로 카자스라고 소개한 엘프는 씨익 미소를 지었다.
“기뻐해라 애송아. 너는 이 위대한 카자스의 제자로 선택받았으니. 내가 너에게 화조풍월, 카자스 해서를 전수해 주마.”
“네?”
“뭐가 ‘네?’야? 지금은 눈물을 흘리며 감동해야 할 때다. 아, 눈이 없어서 눈물도 못 흘리나?”
카자스는 아자딘이 생각보다 별로 고마워하는 기색이 없자 툴툴거렸다.
“당신은 아라가사가 아니잖아요? 화조풍월은….”
“전혀 없지!”
“그런데 카자스 해서라니…?”
“아하하. 꼬마야, 너에게 마법사들의 비밀을 알려줄까?”
“뭐, 뭔가요?”
“마법사들은 목을 잘라 버리면 죽는단다.”
“…….”
“심장을 꿰뚫어도 죽고.”
“…….”
“척추를 꺾어 버려도 죽지.”
“그, 그렇겠죠.”
“그걸 하는 게 바로 카자스 해서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