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ight of the Soulless Unholy RAW novel - Chapter 55
54. 살라스마의 어둠 2
병사들이 이미 한 차례 주위를 뒤졌는지 군홧발 흔적들이 남아 있었다. 별다른 훈련을 받지 못한 이들이 조잡하게 뒤진 탓에 오히려 흔적들이 많이 지워졌다.
“아니 이놈들이 진짜. 어딜 감히 쳐들어와서 다 뒤진 거야?”
타르키는 모친의 집에 병사들이 침입한 흔적을 보며 버럭 성을 냈다.
“귀금속 같은 게 없어졌나?”
“그, 그렇진 않을 겁니다. 어머님은 비교적 검소하셔서 귀금속보다는 보검이나 갑옷을 더 좋아하셨지요.”
“호부견자 없다더니만 거짓말인가 보네.”
아자딘은 남작 부인에 비해 타르키의 인물이 떨어진다는 의미에서 그렇게 말하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전체적으로 절제된 집이다. 좀 넓고 깨끗한 것 빼고는 귀족의 저택이라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자식을 위해 용병을 그만큼 고용했을 정도면 상당한 부자일 텐데도 말이다.
곧 그들은 2층, 남작 부인 침실에서 수상한 걸 발견할 수 있었다. 침실 문짝 닫히는 부분에 짐승의 털이 끼어 있었다.
“이건.”
“음.”
아자딘은 그 털을 조심스럽게 살펴보았다.
“쥐털이군. 이게 남아 있는 걸 보니까 병사들이 정말 대충 뒤졌나 보네.”
병사들을 탓할 게 못 되는 게 타르키의 태도만 봐도 알 수 있었다. 감히 귀족 집에 병사들이 들어온 것만으로도 저렇게 화를 내는데 제대로 수사를 할 수 있겠는가?
“쥐털이라고요? 설마?”
타르키는 그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
“웨어 랫인가? 은 반응을 봐야겠어.”
아자딘은 화살을 만들 때 왁스를 바르는 데 쓰는 판을 꺼내서 은화를 비벼 갈아 은가루를 내고 그 위에 털을 놓았다. 은가루와 접촉하자 털이 마치 은과의 접촉에 그슬리는 것처럼 끝이 쪼개지기 시작한다.
“웨어 랫 맞네.”
“웨어 랫이 어머님을 납치했다는 말입니까?!”
타르키가 기겁했다.
웨어 랫.
쥐 인간은 쿠르트 신족, 쥐의 왕의 권속으로 저주받은 생명체들이다. 일반적인 인간들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강력하며 탐욕스럽고 폭력적이며 인육을 즐겨 먹는다.
그런 이들에게 잡혀갔다면 그의 모친이 살아 있을 가능성이 한없이 낮아진다.
“그것도 한두 마리가 아닌 것 같은데. 음?”
아자딘은 침실 침대 밑을 살펴보았다. 그곳에 거미줄이 있었다.
“거미줄이군.”
“그, 그게 왜요?”
“마력이 느껴지는 거미줄이야. 무슨 뜻인지 알겠어?”
“아!”
타르키는 아자딘의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 그러고 보면 타르키를 농락했던 용병대장도 거미 마족이었다.
“어디….”
아자딘이 침대를 들어보니 밑에 트랩 도어가 있었다.
“2층인데 트랩 도어가 있어?”
트랩 도어를 열어보니 문이 아니라 작은 빈 공간이 있고, 밑에는 거미여왕 아트라의 상징이 새겨진 동판이 들어 있었다.
“너희 어머님이 쿠르트 신족 사교도셨군.”
“네? 말도 안 됩니다. 어머님은 귀족이신데.”
“귀족 중에도 많아. 특히 거미여왕 아트라는 귀족 여성들에게 인기가 있다고 들었다.”
거미여왕 아트라는 자신을 추종하는 여성들에게 이성을 유혹하고 지배하는 힘을 부여한다. 신왕에의 신앙이 강건한 세상에서, 한때 인간을 도축해 잡아먹던 쿠르트 신족들임에도 불구하고 계속 사교도가 발생하는 것은 바로 그 때문이었다.
인류 전체에는 위협이지만 당장 나에게는 이득이다. 그런 이유로 사교도가 되는 이들이 차고 넘쳤다.
“하지만 어머님을 납치한 놈들은 웨어 랫 아닙니까?”
“그렇지. 웨어 랫이면 섬기는 게 거미여왕 아트라가 아니라 쥐의 왕 메제리일 텐데. 흠, 쿠르트 신족들끼리도 싸우니까. 자세한 이유까지는 모르겠군.”
아자딘은 침실 말고 서재 쪽으로 향했다.
“어?”
“뭔가 있습니까?”
“잠시.”
아자딘은 서재 벽에 걸린 초상화를 치웠다. 벽에 숨겨진 금고가 나타났다. 아자딘은 락픽을 이용해 그걸 따고 안을 열더니 금화를 몇 개 꺼냈다.
“어?!”
“황제의 금화?”
미디암과 이스마일이 경탄했다. 평소에 도통 보기 힘든 황제의 금화가 무려 다섯 닢이나 있었다. 그 외에도 금고에는 각종 서류와 보물들이 들어 있었다.
“너희 어머님은 대단하신 분인 것 같은데?”
아자딘은 그리 말하고 황제의 금화를 바라보았다.
어지간해서는 물욕이 없는 아자딘이지만 황제의 금화만은 예외였다. 황제의 금화를 구해오는 숫자에 따라 전령의 위계가 오르고 일족들에게 존경을 받을 수 있다. 게다가 이렇게 계약을 하지 않고 현물로 구하게 되면 일반적인 금화보다 더 큰 가치가 있었다.
‘집안 좋은 녀석들은 막대한 돈을 주고 이걸 사려고 한단 말이지.’
현물 금화를 보유하고 있으면 공훈 밀어주기가 가능해진다. 하인들에게 금화를 쓰게 해서 특정 전령에게 공훈을 밀어준다. 그렇게 함으로써 집안 좋은 전령들은 자식의 위계를 인공적으로 높일 수 있으니 그 가치는 측량하기 힘들 정도다.
“이, 이 금화는 안 됩니다! 어머님을 구해 주시면 드리겠습니다.”
타르키도 이 황제의 금화가 전령일족에게 어떤 가치가 있는지 잘 알고 있었다. 투구를 쓰고 있어서 표정을 알아볼 수 없는 아자딘에게서도 심상치 않은 징조가 보일 정도였으니 말이다.
그러자 이스마일이 미디암에게 손짓했다.
‘지금 당장 그를 죽이고 빼앗으면 어떻습니까?’
이스마일은 타르키를 죽이는 게 낫지 않냐고 손으로 사인을 보냈다.
“안 돼.”
아자딘이 막았다.
“네?”
이스마일의 손짓을 보지 못한 타르키로서는 아자딘이 안 된다고 말하자 겁을 덜컥 먹었다.
“아, 안 된다니요.”
“아니 그런 게 아니라. 알겠다. 손 안 댈 거야. 전령의 품격이 있지 내 어찌 약탈을 하겠냐?”
아자딘은 입맛을 다시며 금화를 돌려놓고 금고를 다시 닫았다.
“파직당했으니까 전령의 품격과는 상관없지 않을까요?”
미디암이 눈치 없게 타르키가 듣고 있는 앞에서도 파직을 논했다.
*********
저택을 나와 주위를 둘러보던 아자딘은 저택 우물에서 또 단서를 찾았다.
“드레스 자락이군.”
바위틈에 여성의 의복 일부가 찢겨 있었다.
“우물이라고요?”
“밑엔 다 말라 있어. 아마 여기로 지하통로가 있는 것 같다.”
“그럼 구하러 가실 겁니까?”
“잠깐, 지금 적이 얼마나 되는지 모르겠어.”
아자딘은 냉정하게 멈춰 섰다.
무작정 쳐들어가서 남작 부인을 구하면 금화 다섯 개를 얻을 수 있겠지만 그건 성공했을 때 이야기다. 실패하면 아자딘도 목숨이 위험하다.
상대가 어떤 놈인지, 얼마나 있는지 어떤 함정이 있는지도 모르고 무작정 들어가는 건 위험한 일이다.
“주위 사람들이 계속 실종된 걸 보면 쿠르트 권속의 숫자가 꽤 될 거야. 그렇지 않으면 이렇게 많은 사람을 납치할 수 없을 테니까.”
“그럼 어떻게 하실 겁니까?”
“완전무장이지.”
아자딘은 우물 위로 나와 산양을 불렀다. 그러고는 산양의 안장 가방에서 사슬과 판금으로 된 갑옷을 꺼냈다.
“무거워서 평소엔 안 입는데….”
아자딘은 갑옷을 두껍게 껴입고 건틀렛과 강철 부츠까지 장비했다.
“이런 갑옷을 가지고 다니는 전령은 처음 봤어요.”
보통 황제의 전령들은 경무장을 선호한다.
‘이런 무거운 장비를 가지고 다니니까 산양에 짐이 그렇게 많지. 그래서 산양을 안 타고 고삐 잡고 걸어 다니는구나.’
미디암은 왜 아자딘이 산양을 안 타고 걸어 다니는지 이해했다.
“좁은 곳에서는 갑옷이 최고야. 몸 날랜 거 믿고 경장으로 함부로 좁은 곳에 진입했다간 큰일난다.”
아자딘은 갑옷을 입고 우물에 밧줄을 보강해 달아 혹시 두레박 줄이 끊어져도 올라올 수 있도록 확실히 준비한 후에야 우물 아래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밑바닥에 내려선 아자딘은 바짝 메마른 우물 안을 살펴보았다. 과연 옆으로 사람이 지날 만한 통로가 있었다.
“흠.”
바닥에 털도 있다.
“으아, 안 보여요!”
그때 머리 위에서 타르키가 주문을 외었다. 램프에 불을 붙이기 위해 발화의 주문을 시전한 것이었다.
“불이 없어도 보이는군요 당신은?”
미디암은 아자딘이 불이 켜지기 전에도 바닥을 조사한 걸 보며 그의 시력이 빛의 유무에 상관없다는 걸 알아챘다. 아자딘은 대답 대신 바닥에서 털을 집어 들었다.
“웨어 랫 털이다. 발자국도 있어. 이쪽 방향이 맞는 것 같군.”
“아, 그렇군요.”
우물 밑에 내려선 타르키는 램프를 바닥에 비춰보고 발자국들을 찾았다. 무수한 발자국이 어지럽게 찍혀 있었다.
“가보자.”
아자딘은 방향을 잡고 걸어갔다. 우물을 통해 움직이자 다른 우물들의 바닥이 보였고, 그 대부분에도 발자국들이 보였다.
“음?”
아자딘은 길을 가다가 함정을 발견했다. 발목 높이에 줄이 처져 있고 그 줄에 방울들이 달려 있었다.
“이건?”
“쉿.”
아자딘은 소리를 못 내게 했다. 방울들이 달린 함정이라면 누군가 이 방울 소리를 들을 거리에 대기하고 있다고 생각해야 했다.
방울 함정을 설치해놓고 관리하지 않으면 아무런 의미 없이 오히려 누군가 인공적으로 손을 댔다는 사실만 가르쳐주는 꼴이니 말이다.
과연 저 앞에서 기척이 나타났다.
“어?”
“누구야?”
횃불을 들고 있는 난민 두 사람이 안으로 들어온 것이었다.
아자딘은 타르키에게 손짓해 램프 후드를 덮도록 시켰다. 불이 꺼졌지만 이미 늦었다.
“누구 계십니까?”
“빛이 방금 보인 것 같은데? 착각 아니지?”
“게 누구요?”
역시 들킨 것 같다. 일행들 모두가 아자딘을 바라보았다. 그가 결정을 내려주길 기다렸다.
아자딘이 타르키에게 손짓했다.
“야, 신분으로 찍어눌러 봐.”
“네? 제가요?”
타르키는 아자딘의 뜻을 알아채고 앞으로 나섰다.
“에헴. 나는 살라스마 변경백의 아들 타르키다!”
“아! 기, 기사분이시군요.”
“여긴 어쩐 일이십니까?”
난민들은 타르키가 신분을 밝히자 경계하는 듯했다.
‘너무 연기를 못하는군.’
아자딘은 그들의 눈빛에 귀족에 대한 두려움보다는 귀찮음과 짜증, 그리고 자신들끼리 공유하는 비열한 웃음이 떠오르는 걸 보며 확신했다.
“내가 물을 말이다. 너희들은 어쩐 일이지?”
“저희는 그저 피할 곳을 찾아온 유랑민들일 뿐입니다.”
“네. 어떻게든 머물 곳을 찾다 보니 그만….”
그들은 그리 말하고 있었지만 타르키가 비웃었다.
“웃기고 있네. 네놈들 눈에서 빛나는 탐욕이나 감추고 말하지 그러냐, 웨어 랫 놈들아.”
“아.”
“하하하.”
난민들이 웃기 시작했다.
“죽고 싶다는데 봐줄 필요 없지.”
“사내놈은 죽이고, 여자는 잡아먹자!”
“그거 별 차이 없는 거 아냐? 킬킬킬!”
난민들이 몸을 웅크리더니 변신을 시작했다.
“이 자식들! 우리 엄마에게 무슨 짓을 한 거야!”
타르키가 달려들어 변신 중인 웨어 랫 한 놈의 머리통을 칼로 내리쳤다. 변신 중엔 무방비가 아닐까 기대하며 가한 공격이었다.
그러나 웨어 랫 난민이 품에서 꺼낸 철퇴를 들어 타르키의 롱소드를 맞받아쳤다. 굉장한 힘과 빠르기였다.
“윽!”
변신 중에도 무방비가 아니라니! 첫 격돌에서 타르키는 강한 충격을 받았다. 웨어 랫의 힘이 너무 세다.
“키키키! 겁쟁이! 겁쟁이의 냄새가 나는군.”
웨어 랫들도 타르키가 자신들에게 겁을 먹었다는 걸 눈치챘다.
“램프 부수자! 어둠은 우리 편이다!”
웨어 랫들이 타르키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쐐액!
바람 가르는 소리와 함께 웨어 랫의 입에 화살 하나가 박혔다. 미디암이 화살을 날려 웨어 랫의 주둥이를 꿰뚫어 버린 것이었다.
입천장을 뚫고 뇌수를 후비고 나온 화살 때문에 웨어 랫이 휘청거리다 주저앉았다. 보통 사람이라면 죽을 상처겠지만 이 웨어 랫은 죽지 않고 화살을 뽑아내려 안간힘을 썼다.
“으아!”
정작 비명을 지른 건 타르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