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ight of the Soulless Unholy RAW novel - Chapter 57
56. 살라스마의 어둠 4
누가 보더라도 저 건물이 수상했다. 아무리 구난기사단들이 지금은 안 쓰는 건물이라고 해도 저게 웨어 랫들의 소굴로 변해 있으면 반드시 관련이 있다.
현재 살라스마 상황을 봐서는 건물들 하나하나가 아쉬울 판이다. 아무리 비가 안 온다고 해도 난민들 중 몸이 불편하고 약한 사람들에게 바람과 이슬을 피할 공간을 제공할 수 있고, 구휼할 사람들을 위한 조리 시설을 갖출 수도 있고, 병자들을 치료할 병상으로 쓸 수도 있다.
그런 상황에서 굳이 건물 하나를 놀려둘 이유가 없으니… 모든 지표가 구난기사단 내에 쿠르트 사교도가 있음을 알리고 있었다.
“털자.”
아자딘은 정말 아쉬워하며 그렇게 말했다.
*********
강둑 옆, 구난기사단의 목조건물은 겉보기로는 허름하지만 본래 와인 창고를 개조해서 만든 것으로 땅과 벽을 파고 들어가 거대한 창고가 만들어져 있었다.
그 목조건물 입구를 향해 지팡이로 바닥을 짚으며 한 청년이 다가가고 있었다.
“들어오시면 안 됩니다.”
“여기는 저희 구난기사단이 관리하고 있으니까요. 안은 위험합니다.”
청년이 입구로 다가가자 구난기사단 문장이 새겨진 서코트를 두른 이들이 나와 그를 제지했다. 처음에 그들은 지나치게 긴장해서 막아섰지만 놀랍게도 이 청년은 장님이었다. 두 눈을 동시에 수평으로 갈라 버린 커다란 흉터가 그의 얼굴에 자리하고 있었다.
“아….”
“몸이 불편하신가 보군요.”
구난기사단의 성기사들은 그가 장님이라는 걸 확인하고는 긴장을 풀었다.
“무슨 일이십니까?”
“실은 저기 옛 수로가 있던 곳에서 어떤 분이 이걸 전해주라고 하더군요.”
청년은 그리 말하며 뭔가를 꺼내 성기사들에게 건네주었다. 그것은 인피에 새겨진 메제리의 표식이었다. 사람의 피와 바늘로 새긴 흉측한 발톱 문양이었다.
“도와줄 사람을 불러다 주면 식량을 줄 거라고 해서 가져왔습니다만….”
청년은 은근히 보상을 기대하면서 기다렸다. 그러자 구난기사단의 성기사들이 당혹스러워했다.
“이걸… 저 옛 수로 쪽에서요?”
“네. 철창이 둘러져 있어 안에 들어갈 수는 없었습니다만 안쪽에서 사람이 절 불러서 이걸 전해주면서 여기 가져다주면 보상을 줄 거라고 했습니다. 안에서 청소해야 할 게 많다고 도와줄 사람을 찾고 있더군요.”
“그게 전부입니까? 혹시 뭔가 암호 같은 걸 알려주진 않았습니까?”
“암호 말입니까? 음, 분명히 뭔가 들었던 것 같은데 생각이 잘 안 나는군요.”
“…….”
구난기사단 성기사들은 서로서로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잠시 기다리십시오. 아, 거기 도움은 얼마나 필요하다고 했습니까?”
“적어도 열 명은 와야 한다고 들었습니다만.”
“적어도 열 명? 그렇게 많이 말입니까?”
“예.”
그들은 목조건물 입구를 열었다.
“그런데 저희도 지금 구호품이 그렇게 넉넉하지 않아서….”
“혹시 괜찮으시다면 안에 들어오시겠습니까? 구호품을 가져오는 동안 기다려 주시지요.”
그렇게 말하는 구난기사단 성기사들의 얼굴에서 비열한 표정이 떠올랐다.
“네? 아, 안이요?”
“예. 안에서 잠시 기다려 주시면 저희가 구호품을 좀 가져오겠습니다.”
“알겠습니다.”
장님 청년은 조심스럽게 구난기사단 인도를 따르며 지팡이로 바닥을 짚고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버려진 건물 안쪽에는 많은 사람이 있었다.
“뭐야? 사람 들여보내면 안 된다고 했잖아. 대낮인데.”
“아, 이 사람 눈이 안 보여. 게다가… 그 지하수로 쪽에서 부탁받아서 왔다지 뭔가.”
“구호품을 나눠주려고 말야.”
“그래. 특별한 구호품 말이지. 킥킥.”
구난기사단의 성기사가 장님 청년 뒤에서 조롱의 손짓을 하면서 말했다.
“아, 구호품. 구호품 말이지?”
“그렇지 않아도 좀 있으면 신선한 고기가 생길 거야. 흐흐.”
그들은 눈먼 청년을 조롱하고 있었다. 지팡이를 짚고 들어오는 장님 청년은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두려워하는 눈치였다.
건물 입구는 홀처럼 되어 있고 2층 난간에 사람들이 올라서 있으니 장님 입장에서는 사방에서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려올 것이다.
“사, 사람들이 꽤 있군요. 구난기사단 분들인가요?”
“아 네. 저희 협력자들입니다.”
“그런데 신음 소리도… 들리는 것 같군요. 다친 사람들이 있나요?”
“예, 구난기사단이니까요. 다치고 병든 자를 치유하는 게 우리들의 사명 아니겠습니까?”
그들은 그리 말하며 웃고 있었다. 안에 있는 자들은 결코 부상자나 환자들이 아니었다. 그때였다.
“잠깐만.”
2층 난간에 앉아 있던 이들 중 한 명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 커벤 님.”
“야, 너희들이 데려온 놈. 얼굴 이쪽으로 돌려봐.”
“예?”
“내가 알던 사람 같아서 그래.”
“…….”
장님 청년이 당황해서 지팡이를 움켜쥐었다.
“그래. 너. 음, 혹시… 아자딘이냐?”
“아!”
그 순간 장님 청년을 데려온 구난기사단의 성기사가 칼을 뽑으려 했다. 하지만 장님 청년이 더 빨랐다. 그는 즉시 지팡이로 성기사의 머리통을 후려갈기고 몸을 숙이며 성기사의 검을 뽑았다.
“네놈!”
“아자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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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님 청년의 정체는 순례자로 위장한 아자딘이었다. 그가 위장하면 다들 방심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아자딘은 웨어 랫을 처치하고 얻은 메제리의 상징을 들고 일부러 모르는 척해서 적들을 적당히 불러내 각개격파할 생각이었다.
웨어 랫 열 놈을 지하수로 통로로 보내라.
그런 메시지를 전달해서 적들을 나누면 각개격파가 가능해질 것이다. 하지만 설마 전령일족의 동기가 저들 사이에 있었을 줄이야!
“야! 잠깐 비켜봐!”
그 순간 커벤이 몸을 날려 1층에 착지했다.
“많이 컸다, 아자딘! 네놈이 전령이 되었다는 소리는 들었다만 설마 여기로 올 줄이야.”
“그러는 너야말로 메제리 사교도가 되어 있었냐? 일족의 수치로군.”
“흥. 황제가 우리에게 복무의 저주를 건 것 말고 뭘 해줬다고? 메제리의 축복 덕분에 나는 그 저주에서 완전히 해방되었다. 이제 나는 범하고 싶으면 얼마든지 범하고, 먹고 싶으면 얼마든지 먹는다!”
커벤은 히죽 웃으며 양손에 클로를 끼고 아자딘의 앞을 막아섰다.
“어린 시절 기억나냐? 네놈이 내 사타구니 아래를 기어갔던 거? 야! 다들 보고 있어! 이놈은 내가 처리한다!”
커벤이 그렇게 말하는 걸 보니 이들 사이에서도 신분이 꽤 높은 모양이었다.
하긴 전령도, 종사도 아닌 커벤이지만 전령 선별 과정에서 체계적인 교육과 훈련을 받은 인물이다. 나중에 칼잡이가 되는 이들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실력자임에는 분명하다.
“그래서? 범하고 싶으면 범하고 먹고 싶으면 먹어서 일족을 배반했다고? 욕망이 완전히 일차원적이구나. 한심한 놈.”
“닥쳐 아자딘!”
커벤이 클로를 휘두르며 공격해왔다. 아자딘이 성기사에게서 빼앗은 검을 휘둘러 응수했다. 하지만 커벤은 그 검을 클로의 손톱 사이에 끼워 간단히 막아냈다.
“한심한 놈! 이 정도 실력으로 전령이라고!”
그리고 비틀어서 검을 빼앗으려고 한다. 그런데 꿈쩍하지 않는다.
“어?!”
커벤은 순간 당황했다. 원래부터 휘브리스인들에 비해 괴력을 지닌 그였다. 게다가 웨어 랫이 되면서 더욱더 강해진 근력이 어린 시절 갖고 놀던 아자딘에게 무용지물이 될 줄이야?
아자딘이 커벤의 손목을 붙잡았다.
-‘화조풍월 청일송 카자스 해서!’
아자딘의 몸이 커벤 밑으로 파고들더니 호쾌하게 그를 메쳤다.
본래 청일송은 상대를 반전시켜 땅에 추락시키는 마법인데 카자스 해서는 메치기로 직접 땅에 꽂는다. 문제는 이 메치기가 엄청나게 빠르고 강력하며….
-우드득!
상대 팔을 잡고 교차시켜 지렛대처럼 활용하기 때문에 그 순간 엇갈린 팔이 부러진다. 커벤은 무기를 든 채로 붕 하늘로 날았다가 바닥에 내다 꽂힌다.
깜짝 놀란 커벤이 몸을 돌려 발로 지면을 찍어 낙법을 시도했지만 아자딘의 메치기는 각속도가 엄청나고, 그 각도가 변화해서 두 발 중 한 발이, 그것도 옆으로 먼저 떨어졌다.
-빠직!
커벤의 발목이 그대로 부러졌다.
“크악!”
팔과 발목을 동시에 부러뜨리는 호쾌한 메치기! 이것이 아자딘의 화조풍월, 청일송이다.
“개자식! 이게 무슨 청일송이야?”
커벤이 클로를 휘둘러 아자딘에게 반격하려 했지만 아자딘의 검이 클로에 단단히 얽혀 있어 손을 쓸 수가 없었다.
“한 번 더?”
아자딘은 다시 ‘카자스 해서’의 ‘청일송’을 펼쳤다. 다리가 부러진 커벤은 이번엔 낙법 흉내도 못 내고 그대로 꽂혔다.
“크악!”
바닥에 떨어진 커벤이지만 함부로 일어날 수도 없다. 아자딘이 칼로 커벤의 클로를 제압한 채 집어던졌고, 그 칼을 다시금 그의 목을 노리며 누르고 있기 때문이었다.
“젠장! 뭣들 하는 거야! 구경났어?! 이놈 처리해!”
커벤은 아자딘과의 접전에서 뒤틀려 쓸모가 없어진 클로를 벗어던지며 공격에서 빠져나갔다. 그 즉시 다른 성기사와 구경꾼들이 달려들었다.
다들 눈에서 붉은 광기를 빛내며 아자딘을 공격한다. 몇몇 놈은 벌써 웨어 랫으로 변화한 후 아자딘에게 덤벼들었다.
“어서 와라!”
아자딘은 검을 수평으로 휘둘러 먼저 덤빈 놈의 목을 단번에 쳐 버렸다.
-빠각!
웨어 랫의 머리가 잘려 날아가고 칼날도 조각조각 깨졌다. 형틀에 묶어두어서 꼼짝 못 하는 사람을 참수할 때도 종종 칼날이 나가곤 하는데 팔팔하게 살아 움직이는 놈을 단칼에 잘랐으니 당연한 결과다.
“…….”
“키익!”
그러나 그 일격이 가져온 효과는 확실했다. 웨어 랫들이라고 해서 죽고 싶어 하지는 않는다. 아자딘이 단칼에 목을 쳐 날리는 걸 본 이들은 함부로 접근하지 못하고 망설일 수밖에 없다.
“야! 저 새끼 무기 금 갔어! 괜찮아! 공격해!”
커벤이 웨어 랫들을 독려했지만 그들은 그래도 아직 칼이 형태를 유지하고 있다는 것에 주목하고 있었다. 그러나 분명 다음 일격에는 버티지 못하고 부서질 것이다.
아자딘의 검이 균열을 일으킨 상황. 게다가 아자딘은 장님 순례자를 연기하느라 패검하지 않았다. 즉, 추가 무기가 없다. 성기사로 분장한 웨어 랫에게서 빼앗은 무기 외에는 무기가 없는 상황인 것이다. 그러나 설령 금이 간 철검이라 해도 웨어 랫들은 그것을 자기 몸으로 받아내고 싶진 않았다.
‘아무리 재생력이 있다고 하지만….’
‘목이 잘려 버리면 오히려 고통만 가중되는 데다가….’
‘이 자식 칼솜씨가 장난 아니던데?’
조금 전 아자딘이 보여준 칼솜씨는 그야말로 신기에 가까웠다. 전광석화 같은 칼질이 웨어 랫의 반사신경을 초월해 목뼈를 잘라 버렸지 않은가. 목이 잘린 웨어 랫의 몸이 파닥파닥 경련을 일으키다 점차 식어가는 걸 보면 더더욱 의욕이 사그라들었다.
이런데 무기 금 간 것만 믿고 뛰어들라고?
절대사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