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ight of the Soulless Unholy RAW novel - Chapter 62
61. 아라엘의 목소리 1
“혹시 다른 곳에 가실 겁니까? 아니면 살라스마에 체류하실 건가요? 만약 살라스마에 체류하실 거라면 저희 집에 빈방이 있으니 거기서 머무르시면 어떻겠습니까? 지금 난민들이 너무 많아서 여관은 전부 구난기사단에게 징발된 상태입니다. 어디서도 제대로 숙박을 못 하실 겁니다.”
“네?”
“금화는 물론 드리겠습니다. 하지만 어찌 금화 다섯 닢 정도로 구명지은에 답했다 할 수 있을까요? 부디 저희 저택에서 은인을 모셔 제가 조금이나마 은혜를 갚을 기회를 주시지요.”
“…….”
사실 황제의 금화 다섯 닢이면 구명지은에 답한 정도가 아니라 충분한 보상이 되고도 남는다. 그러나 남작 부인은 진심으로 아자딘에게 고마워하고 있어서 어떻게든 대접하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여러분이 보내주신 아이들을 저희 저택의 하인으로 고용했는데 아이들의 상황도 보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음, 뭐 그러면 염치 불고하고 실례하겠습니다.”
살라스마 백작에 대한 이야기도 들어보고 싶고 이 남작 부인의 진정한 정체도 궁금해서 아자딘은 그녀의 집에 신세를 지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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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려고 했는데 졸리네.”
다음 날 아침, 아자딘은 침대에서 뒹굴거리고 있었다. 목욕을 하고 드러누우니까 피로가 몰려온다. 요새 길을 따라 여행을 계속했으니 그것만으로도 피로가 상당히 쌓여 있었다.
거기에 하루가 멀다 하고 목숨을 건 사투를 벌여왔으니 피곤하다. 너무 강행군을 했다.
‘계약에 쓰지 않은 미사용 금화 다섯 닢을 획득했고 신왕진서 사본도 세 장. 이 정도면 어디 가서도 꽤 활약했다고 자부할 수 있겠지?’
복무의 저주 때문에 자꾸 미디암이 놀리는데 아자딘이 그 저주로 죽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래서일까? 마음이 좀 풀어진 그는 노르트 남작 부인이 마련해준 숙소에서 몸을 풀고 있었다.
“뭐 하고 있어요?”
미디암이 아자딘이 묵는 방문을 노크했다.
“쉬고 있지.”
“그래요? 저희는 웨어 랫의 소굴을 다시 한 번 가볼 생각인데요? 구난기사단들이 과연 뒤처리를 잘하고 있는지, 우리가 뭐 놓친 건 없는지 확인해 보려고요.”
“훌륭하군. 나도 가야지.”
그렇게 말했지만 아자딘은 몸을 일으킬 수가 없었다. 전신에 근육통이 그를 괴롭혔다.
“그런데 보아하니 얼굴에 피로가 덕지덕지 붙어 있군요. 저희끼리 다녀오도록 하죠.”
“조심해라.”
“염려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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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암과 이스마일은 웨어 랫의 소굴 근처를 돌아보았다. 구난기사단이 사건을 수습하고 있었다. 수습이라고 해봐야 시체들을 끌어내고 웨어 랫들의 사체를 소각하는 것이었다.
인육을 먹어 살이 통통하게 오른 쥐들은 난민들이 깔끔히 사냥하고 있었다.
“구난기사단들이 사건을 수습하고 있군요.”
“뭐 자기네 치부니까 감추려고 하겠지.”
“구난기사단은 조직이 방만하니까요.”
내세를 중시하는 휘브리스 사람들의 특성상 선인이건 악인이건 공덕을 쌓기 위해 기부하라고 하면 대부분 열린 마음으로 응한다. 기부하고 보시하는 행위 그 자체에 다들 익숙한 것이다.
지금처럼 가뭄으로 굶주리고 있을 때는 지갑이 안 열리기 마련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난기사단에는 상당한 양의 기부와 보시가 이어졌다.
문제는 구난기사단이 상당히 방만한 조직이라는 것. 지금 당장 살라스마에도 세 개의 지부가 난립해 있었다.
지혜의 학예원, 자비의 구휼원, 용기의 기사단.
이런 세 조직이 각자 따로 파벌을 형성하고 있으니 조직 시설 하나가 웨어 랫의 소굴이 되고 성기사가 타락해 메제리의 사도가 되어도 모르고 있던 것이다.
“음… 대단한데.”
미디암은 웨어 랫의 소굴에서 구난기사단들이 놈들의 시체들을 꺼내 불태우는 걸 보며 놀라워했다. 엄청난 숫자였다.
“아자딘 혼자서 저걸 다 처리한 거겠지? 구난기사단들은 그냥 시체를 끌어내서 소각하는 것뿐이고?”
“네. 물론 저들은 자기들이 토벌했다고 주장하고 있군요.”
“애초에 자기네 시설인데 누워서 침 뱉기 하고 있네. 평소에 조직 관리를 개판으로 하니까 자기네 건물에 웨어 랫들이 아주 둥지를 트고 본격적으로 사람을 납치해다 죽이고 신왕진서 사본을 찾아다녀도 몰랐지.”
미디암은 그리 중얼거리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스산한 시선들이 많이 느껴지는데.”
메제리의 권속들이 파멸하긴 했지만 쿠르트 신족들은 그들만이 아니다. 아마 이 도시엔 더 많은 쿠르트 사교도들이 숨어들었으리라.
“아가씨.”
“돌아가자. 여기 오래 있어 봐야 좋을 게 없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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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덕 위, 노르트 남작 부인의 저택에는 파견된 하인과 요리사들이 분주하게 드나들고 있었다. 평소 검소하게 지내던 남작 부인은 이번에 손님들에게 접대하기 위해서인지 하인, 하녀, 요리사들을 불러 저택을 청소하고 식사를 준비했다.
“본격적이네. 음, 아 혹시 그 여자 아자딘에게 반한 거 아냐?”
“억측이 지나치십니다만. 이미 장성한 아이도 있는 여자 아닙니까?”
“아니 그런데 외관은 20대로밖에 안 보이던데?”
“거미 여왕의 가호겠지요. 쿠르트 신족 사교도일 겁니다. 사실 그녀의 제안을 거절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목에 칼을 들이대고 고문하면서 정보를 뱉어내게 해야 할 텐데.”
“그건 무리지. 어쨌건 그 남작 부인은 카젤 백작의 애인이잖아? 함부로 손댔다가는 후환이 클걸? 이스마일은 세상에 대한 불만을 종종 이렇게 말도 안 되는 이야기로 분출하더라?”
미디암은 자신이 이스마일의 울분의 원인이라는 건 아는지 모르는지 그리 말하며 다시 저택으로 들어왔다.
마침 저택 입구에서 타르키를 만났다. 타르키는 갑옷을 벗고 일반 복장을 하고 있었는데 그러니까 확실히 귀족 집안 자식처럼 보인다.
“아, 타르키.”
“너희 같은 애들까지 날 반말로 대하냐. 전령일족은 장유유서를 매우 중요시한다면서?”
“그러니까 반말을 하는 거지. 신분도 매우 중요하거든.”
“윽.”
귀족 태생으로 코젤 같은 놈들을 제외하면 신분이 하찮다는 소리를 들어본 적 없는 타르키는 당돌한 미디암의 발언에 혀를 찼다.
“너희 어머님은?”
“아버지를 만나러 성에 가신 모양이야.”
“뭐? 왜?”
“납치되었다가 풀려났으니까 상황을 보고한다고. 저택은 하인들이 관리하고 있으니 뭐 먹고 싶은 게 있으면 그들에게 명하도록 해.”
“아 그래? 참, 너희 아버지와 어머니의 부부 사이는 좋은 것 같아?”
“나야 말할 입장이 아니지.”
“사생아니까?”
“아니 나는… 아니 됐다. 말을 말자.”
타르키는 고개를 절레절레 젓다가 문득 미디엄을 바라보았다.
“그런데 소문에 의하면 웨어 랫 소굴에 신왕진서 사본이 있었다는데 사실이야?”
“어디서 그런 소리를 들었어?”
“어머니에게.”
“뭐?”
“웨어 랫들의 대장을 물리치니까 신왕진서 사본이 아자딘을 인정해서 그에게 스스로 다가왔다던데?”
“흠. 신왕진서 사본이라고?”
“시, 신왕진서 사본이라니 그게 있으면 나도 가주가….”
타르키는 아자딘이 신왕진서 사본을 얻었다는 소문을 듣고 눈이 벌게져 있었다.
“포기하는 게 좋을걸. 신왕진서 사본이라고 하지만 전체 페이지가 모인 게 아니야. 조각조각 나 있을 거야. 설마 한 페이지 정도로 백작이 만족해서 널 가주로 인정하진 않겠지?”
“그렇지만!”
“그리고 우리 아라가사도 신왕진서 사본이 필요해. 네가 뭘 제안하건 너에게 그걸 넘겨줄 수는 없지.”
*********
아자딘은 저택의 탈출 루트를 확인하고 있었다. 노르트 남작 부인이 그에게 호의를 보이고 있긴 하지만 그렇다고 이곳이 안전하다는 보장은 없으니 말이다.
“황제의 목소리가 없으니 불편하군.”
노르트 남작 부인은 아자딘에게 분명 호의를 느끼고 있다. 하지만 그것과 별개로 그녀가 쿠르트 신족 추종자이며 거미 여왕 아트라에 관련된 물품들을 가지고 있었다는 점은 확실하다. 함부로 방심해서는 안 될 상대인 것이다.
그런데 그때 새 한 마리가 날아왔다.
[전령일족의 아자딘.]“황제의 목소리인가?”
아자딘은 새소리가 나는 곳을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배에 커다란 눈알이 달린 까마귀가 앉아 있었다.
[아자딘….]“윽!”
아자딘은 놀라서 단도를 꺼내 들었다. 여차하면 투척해서 상대를 제압하기 위해서였다. 저런 기형적인 새는 절대로 황제의 목소리일 수가 없기 때문이었다.
[진정하도록. 나는 아라엘의 목소리다.]“…뭐?”
아자딘은 그 말을 듣고 경악했다. 아라엘이 천재라는 소리는 귀에 못이 박이도록 들어왔다. 그런데 아라엘이 황제의 목소리와 비슷하게 인공정령을 만들어낸단 말인가?
[그대의 위치를 발견했으니 곧 사람을 보내겠다. 아자딘, 아라엘에게 충성을 바친다면 그대는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지위를 가지게 될 것이다.]“제정신인가?”
아자딘은 실소했다. 아라엘이 자신을 회유하려고 한다는 것도 놀랍지만 그녀가 말하는 말이 우습기만 하다.
일인지하 만인지상.
자기가 새로운 황제라도 되겠다는 것인가? 야에가스 신족들인 신왕들을 전부 타도하고 그들의 왕좌를 빼앗고 휘브리스 백성들을 무력으로 굽히겠다고?
그게 가능하려면 정말 휘브리스 백성들을 이 잡듯 잡아야 할 것이다.
우선 사람들이 전령일족을 싫어한다. 지금보다 훨씬 권세가 대단하던 황제 치하에서도 전령일족들은 감히 자신들이 권력을 찬탈할 꿈도 꾸지 못했다.
황제가 죽고 팔왕국에 환란이 찾아왔을 때가 훨씬 좋은 때였으나, 그때도 성공 못 했는데 이제 와서 아라엘이?
“미친 거 아냐? 일족도 통일하지 못했으면서, 게다가 파직당했잖아?”
[파직이라면 복무의 저주를 회피할 방법을 이미 알고 있다.]하긴 그렇지 않으면 그렇게 많은 전령이 아라엘의 편이 되어 반역하진 않았으리라.
‘허풍이라기엔… 눈앞의 성과가 너무 대단하지.’
황제의 목소리를 흉내 낸 인공정령의 완성도가 너무 대단하다. 문제는….
‘사악한 기운이 느껴지는데.’
이 인공정령에게는 흑색 마력의 냄새가 났다. 사악한 마법에 손을 댔음이 틀림없다.
[전령 일족들은 그대가 황제의 금화를 바쳐도, 신왕진서 사본을 바쳐도 구제해 주지 않을 것이다. 복무의 저주로 그대를 살해하려 할 것이니 아라엘에게 구원을 청하라.]그렇게 말하던 인공정령은 몸을 웅크렸다. 배에만 나 있던 그의 눈알이 전신에서 돋아나더니….
-퍽!
폭음과 함께 한 줌 육편으로 화하며 노르트 남작 부인의 정원을 피와 살, 눈알들로 더럽혔다.
“무, 무슨 일입니까?”
하녀가 놀란 얼굴로 다가왔다.
“아니, 고양이입니다.”
아자딘은 그리 말하고 정원에서 물러났다.
*********
아자딘이 불길한 아라엘의 목소리와 만나고 난 이후, 미디암과 이스마일 그리고 타르키가 돌아왔다.
“일어나 있었군요.”
“근육통이 있고 피곤할 뿐이지 계속 잘 수는 없으니까.”
잠을 자려고 해도 더 잘 수 없는 상황이었다. 아자딘은 타르키에게 물어보았다.
“그래서, 백작의 궁성은 분위기가 어떻지?”
“그게… 들어가는 걸 금지당했습니다.”
“음? 사생아긴 하지만 현재 너는 기사잖아? 그런데도?”
“네. ”
“너희 어머니는?”
“입구를 지키던 병사들이 이미 저택으로 향하셨다고 했습니다.”
“흠.”
아자딘은 그 말을 듣고 반신반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