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ight of the Soulless Unholy RAW novel - Chapter 7
6. 당돌한 도전자 2
복무의 저주.
그것은 황제와 전령일족 간의 계약이다. 황제는 갖은 혜택과 마도서를 제공하는 대신 전령일족은 전령에 적합한 인재를 계속 제공하며 황제의 전령 제도에 모든 일족이 성심성의를 다해 협력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그런데 이 계약에는 만약 일족과 황제를 배신하는 자들에게는 끔찍한 죽음을 내릴 수 있는 조항이 붙어 있었다.
하지만 지금까지 이 조항을 발동시킨 사람은 단 한 명뿐.
그게 바로 아자딘의 부친인 ‘배반자 아크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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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령일족은 복무의 저주로부터 해방되기 위해 타라사르 왕국의 왕위계승전에 참전해 많은 희생 끝에 마침내 신왕진서 사본을 손에 넣었다.
그러나 일족 중 그 신왕진서 사본을 탈취해 도망친 자가 있으니, 바로 아크레. 이에 장로와 두령들은 배반자 아크레에게 복무의 저주를 발동시켜 아크레를 협박했다.
‘신왕진서 사본을 돌려주지 않으면 저주가 널 죽일 것이다.’
‘저주로 살해당하고 싶지 않으면 신왕진서 사본을 내놓아라.’
그러나 아크레는 신왕진서 사본을 세계의 심장 산맥에서 하늘로 뿌려 팔왕국 전체에 날려 버렸다.
결국 분노한 장로들은 저주를 풀어주지 않았고 아크레는 그로 인해 남자의 몸으로 쌍둥이를 낳고 죽었으니 그것이 바로 아자딘과 아라엘, 두 쌍둥이 남매였다.
얄궂게도 이 두 쌍둥이 남매 중 아라엘은 절세의 미녀이며 강력한 마도사, 천재적인 검술가로 성장해 일족 사상 최강의 전령이 되었으나….
아자딘은 덜 떨어진 얼간이였다.
아라엘은 모든 면에서 축복받았지만 아자딘은 일반적인 전령일족의 평균에도 못 미치는 무능력자였다.
전령일족이라면 8살에 누구나 활줄을 걸고 12살쯤 되면 이선궁(二仙弓)을 터득한다.
첫 번째 화살을 두 번째 화살로 쏘아 떨구는 기예.
활의 명수가 된다는 뜻이다.
하지만 아자딘은 8살까지 간혹 이불에 오줌을 쌌고 활줄도 걸지 못했다. 휘브리스의 백성들로 치자면 그리 이상할 것도 없지만 전령일족에게는 참을 수 없는 나약함이었다.
결국 아자딘은 전령일족의 기초 훈련에서 낙오했고 다른 아이들에게 괴롭힘을 받다가 12살 때 장로 카자스가 거두어 그의 시동이 되었다.
그런데 바로 3개월 전, 장로 카자스의 억지에 의해 아자딘이 전령이 되어 버린 것이다.
비록 복무의 저주 때문에 억지로 하는 일이긴 하나 전령일족에게 황제의 전령이란 명예롭고 영광된 자리였다.
일족 모두가 전령이 되기 위해 애를 쓰는데… 8살이 되는 순간 모두 모여 ‘선별 과정’을 거쳐 그 재능과 능력을 평가받고 전령이 되는 것이다.
아자딘은 그 선별 과정에서 탈락했다.
‘아자딘은 전령일족 중 가장 둔하고 멍청한 놈이다.’
‘그 녀석은 남들 다 하는 이선궁은커녕 12살 때까지 가장 가벼운 활줄 하나 채우지 못했다.’
‘그런 녀석이 전령의 임무를 수행할 수 있을 리 없다.’
‘전령은커녕 종사조차, 아니 하인조차 맡길 수 없는 놈이다.’
아자딘과 어린 시절을 함께 보냈던 이들은 그들의 기억 속 그가 나약하고 무력하며 겁이 많았다는 걸 주장하며 제아무리 장로의 추천이 있다고 해도 그가 전령이 되는 것은 부당하다고 외쳤다.
실제로 전령일족의 부모들은 딸이 말을 안 들으면 이런 말로 겁을 주곤 했었다.
‘자꾸 그러면 아자딘과 결혼시키겠다.’
즉 전령일족의 입장에서 아자딘은 모욕 그 자체였던 것이다.
저주받은 무능력자 아자딘.
그게 일족 내에서의 평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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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소문대로 마법을 못 써? 저주받았고?”
“저주가 진실인지 어떤지 모르겠습니다만 그는 마법을 못 쓴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그 까다로운 장로 카자스가 그를 제자로 거뒀습니다.”
“그래 봤자지. 어차피 배반자의 자식이잖아? 마법도 못 쓰는 배반자의 자식이 전령이라니. 그런 놈이 자리만 차지하고 있으니까 나처럼 유능한 자가 전령이 되지 못한 거 아냐? 어디 만나면 실력을 시험해봐야지.”
“아, 안 됩니다.”
소년은 실력을 시험해 보겠다는 소녀의 말에 기겁했다.
“뭐가 안 돼?”
“종사가 함부로 전령을 공격해선 안 됩니다.”
“결투는 해도 되잖아?”
“종사가 전령에게 결투를 걸었다가 지게 되면 처벌을 받습니다. 당신의 생사여탈, 모든 권리가 그의 것이 된다고요.”
“내가 진다면 말이지? 후후. 설마 마법도 못 쓰는 반편이에게 내가 질 리가 없잖아?”
“하지만 장로 카자스는 신비한 존재입니다. 원로원에 이름이 있지만 그를 직접 본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소문에 의하면 엘프라고도 하는데, 그가 아자딘을 전령으로 내세운 것이 단지 시동이었기 때문에 은혜를 입히려 밀어주었을까요?”
“그러면? 12살 때까지 활줄도 못 걸던 얼간이를 장로 카자스가 데려가 훈련시켜서 올해 초인가 작년 말인가에 하산시켰으니까 몇 년 훈련했지? 한 10년 훈련시켜서 갑자기 다른 전령들을 씹어먹는 강력한 존재로 탈바꿈시켰을까?”
“그건….”
만약 그런 게 가능하다면 좋겠지만 애석하게도 그럴 리 없다.
전령일족의 훈련 방식은 이미 한계에 가깝게 완성되어 있어서 나중에 순서가 뒤집히는 경우는 있지만 12살 때 압도적인 차이가 나면 그 차이는 평생 유지되기 마련이다.
적어도 12살 때 기초 훈련에서 낙오하지 않을 정도는 되어야 나중에 두각을 드러내거나 장족의 발전을 할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그때 머리 위에서 새 한 마리가 내려와 그녀의 어깨에 착지했다. 새는 은은한 빛으로 이루어진 반투명한 정령이었다.
선견조, 마법으로 만들어낸 인공정령이었다.
시각을 공유하고 주위를 감시할 수 있는데 몸체가 반투명해서 날려놓아도 주위에 들키지 않는다.
“음. 마침 그 소문의 전령님을 발견한 것 같은데? 잘됐다. 이스마일, 산양과 함께 저기 바위 뒤에 숨어.”
“네?”
“나는 아자딘의 실력을 확인해봐야겠다.”
소녀는 그리 말하고 허리에 차고 있던 월각궁을 풀어 활줄을 채웠다.
“아, 맙소사. 미디암 님….”
소년이 당황했지만 소녀의 명령을 어길 수는 없었는지 산양들을 끌고 길가 바위 뒤에 숨었다.
“자 그럼!”
소녀는 전통에서 화살 두 발을 꺼내어 화살촉을 뺐다.
“뭐 그럴 리는 없겠지만 맞으면 곤란하니까. 인사차 이 정도로 해볼까?”
그녀는 한 발은 하늘 높이, 다른 한 발은 약간 각도를 낮추어 쏘았다. 산길 아래에서 올라오고 있는 이에게 동시에 명중하도록 조정한 전령일족의 기예, 이선궁이었다.
그렇게 두 발의 화살을 발사한 소녀는 잽싸게 바위 뒤로 숨었다.
*********
-쐐애애액!
화살들이 아자딘을 노리고 날아들었다.
“윽?!”
비어 버린 화살통을 꺼내고 몸을 옆으로 비틀며 날아드는 화살을 받아냈다. 낮은 궤도와 높은 궤도, 두 발의 화살이 거의 동시에 화살통으로 빨려 들어갔다.
두 발의 화살이 거의 동시에 그를 노리고 날아든 것이다.
전령일족의 기예, 이선궁이다.
화살이 화살통 밑바닥을 때리는데 뚫고 나가지 않은 걸 보면 화살촉이 없는 빈 화살인 듯했다. 그렇다고는 해도 맞았다면 낭패를 볼 뻔했다.
“누구냐?”
메마른 바위 뒤에 숨어 있던 이들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산양을 데리고 있는 소년 소녀였다.
“흠. 소문에 의하면 마법도 다루지 못하는 반푼이라고 들었는데 그래도 전령은 전령이로군요.”
소녀가 으스대며 다가왔다. 화사한 금발에 사람을 깔보는 눈빛을 하고 있지만 마치 요정처럼 아름다운 소녀였다.
전령일족의 활인 월각궁을 손에 쥐고 있는 걸 보면 이 소녀가 아자딘에게 화살을 쏜 장본인인 듯했다.
“방금 쏜 화살이 네 짓이냐?”
“네, 인사차 가볍게 보냈습니다만. 어떻습니까? 제 인사는.”
“아으. 저, 저는….”
소녀 뒤를 따라온 소년은 당당한 소녀와 달리 겁을 집어먹고 있었다. 처진 눈을 가진 갈색 머리칼 소년은 소녀보다 신분이 낮은지 당황하고 있었다.
“너희들 이름은?”
“에타르의 미디암입니다.”
“저는 이스마일입니다. 이번에 종사로 당신을 보좌하게 되었습니다.”
“보좌? 이게?”
아자딘은 당돌한 꼬마들의 소행에 실소를 터뜨렸다. 일족을 배신한 배반자의 아들이라 어린 시절부터 일족의 괴롭힘을 받아온 그였기에 이런 일에는 익숙하다.
그러나 종사를 자처하는 꼬맹이들까지 그에게 공격을 가할 줄이야?
“당신의 전통이 비어 있는 것 같아서 제 화살을 보태주었을 뿐이랍니다. 훌륭한 보좌 아니었나요?”
소녀는 당돌하게도 그런 말로 자신의 공격을 변호했다.
“그리고 설마 전령이라는 분이 이렇게 먼 거리에서 쏜 촉 없는 화살에 죽을 리가 없잖아요? 만약 그렇다면 전령 자격이 없는 거지요. 그렇지 않나요?”
“지금 웃음이 나오나?”
아자딘의 표정은 굳어 있었다.
아무리 촉 없는 화살이라지만 기습을 감행하다니. 일족에게 경멸당하는 처지라는 건 뼈저리게 느끼고 있었지만 이런 어린애에게 모욕당하고 가만히 있을 만큼 뼈대 없는 인물은 아니었다.
“우선 무례에 대해서 사죄해라, 미디암. 그렇지 않으면 너와는 대화하지 않겠다.”
“대화하지 않는다고요? 하지만….”
“내게 원하는 게 있다면 날 존중해라. 아라가사의 일원으로서건 아니면 적으로서건! 어느 쪽이냐?”
적이냐 동족이냐?
아자딘은 그걸 물어보고 있었다. 미디암은 뭐라고 말하려다가 아자딘이 농담이 통하지 않는 상대라는 걸 알고 사과했다.
“에타르의 미디암이 무례를 사죄드립니다, 전령 아자딘. 저는 아라가사입니다.”
복무의 계약 안에서 아라가사들은 하나이니.
적이 아니라 동족으로 대해 달라는 뜻이었다.
“좋아. 사죄는 받아들이지. 다만 앞으로는 누구에게도 두 번 다시 함부로 무기를 날리지 마라. 만약 내가 신경질적으로 반격했다면 내 화살에는 촉이 달려 있었을 거다. 알겠나? 죽일 생각이 없다면 무기로 장난치는 게 아니다.”
“네.”
아자딘의 경고는 타당했다. 전령일족들 사이에서는 기수라는 개념으로 위아래가 강하게 엮여 있어서 촉 없는 화살로 누군가를 괴롭히는 일이 흔하지만….
다른 곳에서는 일단 화살이 날아오면 서로 죽고 죽이자는 소리나 다름없다. 이 소녀도 바보는 아니라서 아자딘이 하는 말을 바로 이해했다.
“그런데 물 있나?”
탈수 증상이 극심한데 갑자기 날아든 화살에 대응하느라 급하게 움직인 탓에 현기증이 다 난다.
“아 예. 여, 여기 있습니다.”
이스마일은 산양에서 내려서 자신의 수통을 꺼내 아자딘에게 건네주었다. 아자딘이 그 수통을 받아들어 입에 가져갔다.
조심스럽게 물을 입안에 머금고 천천히 점막으로 흡수를 유도하며 기다린다. 그것만으로도 몸에 생기가 조금씩 돌아온다.
“목이 타나 보군요.”
“음.”
소년 소녀는 대꾸도 없이 물을 마시는 데 열중하는 아자딘을 보며 기다려 주었다. 그는 그렇게 조금씩 조금씩, 몸에 탈이 나지 않도록 나눠서 물을 마시고는 잠시 자리에 앉아 정좌를 했다.
‘소문과는 전혀 다른데?’
전령일족의 소녀, 미디암은 당혹감을 느꼈다.
저주받은 아자딘은 전령일족들 사이에서 모욕과 놀림거리였다. 유머 감각이 없는 전령일족들이 그나마 웃을 때는 아자딘을 주제로 하는 조롱과 농담이 나올 때였는데 눈앞에 있는 이 청년은 상당히 엄격하고 긍지 있는 전령으로 보였다.
하지만 여기까지 온 이상 그녀는 돌이킬 수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