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ight of the Soulless Unholy RAW novel - Chapter 70
69. 잠입 2
“크크크. 아하하. 재밌는 놈이군. 마음에 들었어. 혹시 주인을 바꿀 생각이 없나? 죽은 황제보다는 더 좋은 조건을 제시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음. 미안한데 황제와 내 사이가 상당히 돈독해서 그냥은 뒤집을 수가 없어.”
“우습군. 조합 놈들은 널 팔았는데 말이냐.”
“…….”
아자딘은 흠칫 놀랐다. 코라사르 보부상 조합이 사실 전령일족이 운영하는 것이라는 건 극비사항이다. 그런데 그것을 백작이 알고 있다니.
설마 데릭이 발설했나?
“아, 안심하도록. 내 경우는 따로 알아낼 방법이 있어서 알아낸 것이지. 보부상 조합이 전령일족이라는 건 현재로선 나만 알고 있다. 그래, 조합에서 널 팔았는데도 너는 조직에 충성할 셈인가?”
“별로 충성하고 싶지 않다고 해도 피 분수에서 목욕하고 있는 놈 밑에 들어가고 싶진 않은데?”
“영생을 얻을 수 있다. 그뿐만 아니라 권력을 얻을 수 있지. 권력과 영생, 부와 공명 그 모든 것을 얻을 수 있는데 굳이 그걸 마다하고 만인이 경멸하는 전령을 계속할 건가? 응?”
“미안하지만 당신은 내 미학에 안 맞아.”
아자딘은 화살이 떨어진 활을 몸통에 차고 검을 들었다. 그리고 심호흡, 화조풍월, 카자스 해서의 힘을 전신에 돌린다.
척추 전체를 따라 마치 우주와 연결된 듯한 개방감이 느껴지며 이 부정한 피의 욕장에서도 강력한 힘이 아자딘의 몸으로 흘러든다.
“호오?”
백작은 그런 아자딘에게서 무언가를 느낀 것 같았다.
“건방지군. 영혼 없는 불경자 주제에 감히 위대한 신의 혈통에게 그따위 말버릇이라니.”
백작이 아자딘을 노려보자 그의 몸에 엉켜 있던 여인 둘이 스르륵 미끄러지더니 마치 뱀처럼 핏물 속으로 잠겨 사라졌다.
“뭐 좋아. 그런 놈들에게 충성심을 끌어내는 법을 잘 알고 있거든.”
그 순간 피의 욕조 속에서 몇몇 인영이 일어났다.
“키키키.”
눈에서 푸른 귀화를 빛내고 있는 매의 가면을 쓴 남자 둘이었다.
“윽!?”
아자딘은 매의 가면을 보자마자 이들이 누군지 알아차렸다.
‘빌어먹을 지역장 놈! 전임 전령이 어떻게 되었냐고 해도 전혀 가르쳐 주지 않더니만, 왜 여기에 있는 거야?’
아자딘 이전 이 지역을 담당하던 전령 하라드와 역시 이곳에서 북쪽 인접 지역을 담당하던 전령 케브나였다.
둘 다 임무 중 사망이라고만 알려져 있었다. 백작의 성에 있다면 이곳 근처에서 관련된 임무를 하다 실종되었을 텐데, 지역장은 자신의 책임이 될까 봐 입을 다물고 있었던 것이다.
“이게 바로 내가 보부상 조합이 전령일족이라는 걸 알아낸 열쇠다. 이들의 충성심은 절대적이지. 일족의 비밀 정도는 쉽게 밝힐 정도로 말야.”
백작은 그리 말하고 뒤로 물러났다.
“그럼 나는 옷을 입고 준비하도록 하지. 그동안 이 버릇없는 놈을 죽이거나 아니면 생포해서 내게 충성하게 만들도록. 신왕진서 사본의 행방도 밝히고.”
“예!”
한때 전령이던 두 사람은 백작에게 예를 다했다. 그러자 백작이 피의 욕장 수면 아래로 사라졌다.
“…….”
아자딘은 백작을 추격하고 싶었지만 이 피의 욕장이 어떤 구조로 되어 있는지 모르고, 전직 전령들이 그의 앞을 가로막고 있어서 함부로 경거망동할 수 없었다.
“그나저나 이게 누구야? 그 유명한 아자딘 아니야? 설마 내 후임이 너라고? 아라가사에 인재가 없어도 너무 없나 보군!”
눈에서 푸른 귀화를 빛내고 있는 매의 가면을 쓴 남자, 하라드와 케브나가 월각궁을 빼 들었다.
*********
본래 월각궁은 젖으면 상태가 급격히 나빠진다. 복합소재로 만들어져 작은 크기에도 압도적 위력을 자랑하지만 그런 만큼 유지보수가 까다로워 비라도 오는 날에 사용하면 반드시 공들여 정비해야 했다.
그러니 피의 욕장에서 나타난 놈들의 월각궁이 제대로 작동할 리가 없다만….
-쉬익!
아자딘을 향해 화살이 날아든다.
‘말도 안 돼.’
피의 욕장에 드러누워 있던 놈들의 활이 제대로 작동한다. 아자딘은 날아드는 화살을 잡아챘지만 화살의 힘이 꽤 강해서 뒷걸음질 쳐야 했다.
아자딘이 다른 전령들보다 더 강한 신체 능력을 가지고 있지만 상대는 전령 둘이다. 인원도 많은데 화살을 동시에 쏘아대고 화살 또한 피에 젖어 있어 미끄러운지라 곤혹스러웠다.
“어?”
아자딘이 화살을 잡아채자 하라드와 케브나가 놀랐다.
“이 거리에서 화살을 잡아? 그것도 우리 화살을?”
“피에 젖어서 활이 약해졌나?”
그들은 아자딘의 능력이 뛰어나다기보다는 자신들의 활에 문제가 생겼다고 여겼다. 아자딘이 전령일족 내에서 워낙 무능한 것으로 유명해서 그 선입견을 깨지 못한 것이다.
‘나로서는 오히려 좋지. 그래, 방심해라.’
아자딘은 낚아챈 화살을 잡았다.
활에 걸어서 쏘아 보낼까? 그러나 이걸 활에 걸면 활에 피가 묻는다.
‘저놈들 활이 멀쩡한 걸 보면 피에 젖어도 괜찮은 것 같긴 한데. 그러다 아니면 수선하기 골치 아픈데.’
그때 갑자기 피의 욕장에서 핏방울들이 떠올랐다. 네 개의 구체가 아자딘 주위로 떠오른 것이다.
“후후후후.”
어둠 속에서 네 발의 핏덩이가 아자딘을 향해 핏물을 쏘아냈다. 초고압의 물줄기는 창처럼 아자딘을 향해 날아든다. 아자딘은 빙글 몸을 돌려 날아드는 핏방울을 피해내고 착지했다.
“저걸 피해?”
“제법인데! 일족 최고의 멍청이라고 들었다만!”
아자딘의 전임 전령, 하라드가 피의 욕장의 수면에 칼을 꽂고 달려들며 크게 올려쳤다. 피보라가 튀어 오르며 아자딘을 노린다.
“쳇!”
검을 휘둘러 그 피보라를 갈라 버렸지만 그 틈을 타서 전임 전령 둘이 아자딘의 좌우로 나뉘었다. 양쪽에서 포위한 그들이 입에서 침을 발사하고 비수를 날렸다.
하지만 아자딘은 왼손을 펼쳤다. 아까 전임 전령 둘이 쏘았던 화살들이 아자딘의 손가락 사이에 끼워져 있는데 그걸 부채처럼 휘둘러 날아드는 비수와 침을 쳐냈다.
그리고….
-퍼퍽!
전임 전령 하라드의 가슴에 화살이 박혔다.
“억?!”
아자딘은 화살을 활에 걸지도 않고 다트처럼 던져 하라드의 가슴팍에 박아 버린 것이다.
“바보 녀석.”
케브나가 비웃었다.
“아니 저 자식 투척이 예상보다 훨씬 빨라.”
화살에 맞은 전임 전령 하라드가 변명했다.
‘너무 여유가 넘치는데?’
아자딘은 혀를 차며 그들을 바라보았다. 상처를 입었음에도 통증을 느끼지 않고 기능장애를 일으키지 않는다.
“언데드인가? 아니면 타격이 너무 얕았나?”
아자딘이 화살을 투척해 전령의 몸에 꽂았지만 역시 손으로 투척한 화살의 위력은 한계가 있었다. 가죽 갑옷에 걸려 제대로 살까지 들어가지 않았다.
‘아니 저 상황에서 살까지 들어가도 효과가 있을까 의문이다만.’
아자딘은 이들이 백작에 의해 괴물로 변했음을 보고 한탄했다. 비록 저들이 아자딘을 무시하고 조롱하는 이들이라지만 그래도 같은 일족인데 타락한 백작의 주구가 되었다는 게 마음 아프다.
“크크크. 어쩌다 너 같은 얼간이가 전령이 되었나. 제국 전령의 명예도 이제 땅에 떨어졌군.”
“제국 전령의 명예가 땅에 떨어졌다면 그 이유는 나 때문이 아니라 당신 때문일 것 같은데, 하라드. 백작이 너희를 흡혈귀로 만들었나?”
“우리가 스스로 자원했다. 영원한 생명, 그리고 부귀공명을 누릴 수 있는데 왜 굳이 죽어 버린 황제에게 충성을 바치겠나?”
“게다가 아라가사는 썩었어. 처음의 목적의식을 잃고 이제는 오대 가문과 원로원의 이익을 위해 살아갈 뿐이다.”
“뭐 아라가사가 썩어 있다는 건 부정하지 않겠는데 그래서 백작에게 빌붙는 건 아니라고 보는데? 그래도 황제의 전령이면 아라가사의 어린애들이 동경이라도 하잖아? 하지만 지금 당신들은 뭐지? 정원 연못 바닥 이끼 뜯어먹으라고 투척하는 우렁이 신세 아냐? 이 욕장 밑바닥에 들러붙어서 무슨 부귀공명을 누린다고?”
“이 자식!”
전임 전령들은 자신들의 처지를 조롱하는 아자딘에게 격분해 다시금 화살을 날렸다. 그러나 아자딘은 가볍게 손을 뻗어 고권, 손목뼈로 화살의 중간을 쳐올렸다.
잡으려고 하면 피 때문에 미끄럽겠지만 쳐내는 건 아무 문제도 없다. 아자딘은 고권으로 화살들을 쳐내는 것과 동시에 손목을 폈다.
-쉬쉭….
조금 전 전임 전령들이 던졌던 비수가 어느새 아자딘의 손에 들려 있었는데 그것들이 공중을 날았다.
“호오!”
“제법!”
전임 전령들은 아자딘의 공격을 피하고 감탄했다.
-어스름!
전임 전령들의 몸이 흐릿해지며 아자딘에게 다가온다.
‘쳇. 카자스 해서는… 물이 무릎까지 고인 곳에선 쓸 수가.’
아자딘의 어스름은 진짜로 몸이 움직이는 것이기에 환술인 다른 전령일족의 어스름과 달리 물에서는 움직일 수 없었다.
“하앗!”
전임 전령들이 아자딘의 좌우에 나타나 연속으로 공격을 펼쳤다. 그 순간 아자딘 또한 반격했다.
-투쾅!
물기둥, 아니 핏물의 기둥이 치솟고 두 전임 전령이 수면 위로 튕겨 나가 굴렀다.
“어?!”
“이, 이게 어찌 된….”
전임 전령들은 예상 밖의 상황에 기겁했다. 그들은 아자딘을 포위했다고 자부하고 습격을 감행했는데, 그의 몸은 마치 전기 에너지가 가득 차 있는 것 같았다.
접촉하는 순간 무시무시한 떨림과 충격이 그들의 몸 안으로 스며들었다. 그 틈을 타서 아자딘이 주먹과 검으로 반격을 가해 오른쪽으로 다가왔던 전임 전령은 칼로 찔러버리고, 왼쪽으로 다가온 전임 전령의 몸통에는 주먹을 꽂아 넣었다.
-‘화조풍월 뇌운 카자스 해서!’
본래 전기의 마력을 충전했다가 접촉할 때 상대에게 흘려보내 감전시키는 마법인데, 아자딘은 지면을 구르며 순간적으로 충격을 격발시켜 접촉한 이에게 경력을 쏟아부은 것이다. 그 한 방을 맞았을 뿐인데 둘 다 튕겨 나가 낭패를 본 것이다.
“아, 아무래도 우리가.”
“아픔을 느끼지 않게 된 이후로 많이 무뎌진 모양이야. 일족의 얼간이라는 아자딘에게 이런 낭패를 보다니.”
그들은 눈앞에서 벌어진 현실을 부정했다. 아자딘의 무력함, 무능함은 전임 전령인 그들도 잘 알고 있었다.
일족의 유명인인 아자딘이다. 무능한 걸로 유명한 그에게 자신들이 한 방에 나가떨어졌다는 걸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아니 이 정도면 실력 차 뻔하지, 한심한 것들아. 그러니까 백작 욕조 밑에서 이끼나 뜯어먹고 살지.”
아자딘은 아직도 현실을 부정하는 하라드와 케브나에게 한 마디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방심해주는 건 고맙다. 너희들이 계속 그렇게 현실을 부정하면 나야 편하겠지. 하지만 아무리 백작에게 패해 그의 마물이 되었다 해도 너희들은 일족 모두가 긍지를 가지고 동경하던 전령 아니냐! 너희들을 쓰러뜨렸을 때 네놈들의 가족들에게 훌륭하게 끝까지 맞서 싸웠다고 말하고 싶으니까 전력을 다해 덤벼라. 계속 현실 부정하지 말고!”
아자딘의 말을 들은 하라드와 케브나가 흠칫 놀랐다.
“아자딘.”
“네 말이 맞다. 지금까지의 무례를 사과하지.”
방금까지 얼간이처럼 넋을 빼고 있던 하라드와 케브나가 정신을 집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