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ight of the Soulless Unholy RAW novel - Chapter 71
70. 뱀의 신전 1
그들은 이제 아자딘이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적임을, 강자임을 직시했다.
“마물이 되어서 이미 잃은 줄 알았는데.”
“우리에게도 아직 약간의 긍지는 남아 있었군.”
그들은 욕장의 핏물을 마시기 시작했다.
“비겁하다 하지 마라.”
“할 수 있는 수단을 다 갖추도록 하지, 전령 아자딘!”
상처가 아물고 그들의 입이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쉭
-쉬쉭!
독사처럼 혀를 날름거리며 전임 전령이 수면 위로 매끄럽게 움직이기 시작한다. 어느새 그들의 다리는 두 개가 들러붙어 하나의 꼬리로 변해 있었는데 이 꼬리가 수면 위를 매끄럽게 타면서 마치 물뱀이 수면 위를 헤엄치듯 미끄러져 온다.
“각오해라!”
“그래, 그래야지! 전력을 다해 덤벼봐!”
아자딘은 왼손을 펼쳐 수면 위에 대었다가 주먹으로 바꾸어 쥐며 뱀들을 향해 보냈다.
-‘화조풍월, 잔잔한 수면을 때리는 번개, 카자스 해서!’
물기둥이 치솟으며 수면 위를 미끄러져 오던 전임 전령들에게 충격파가 수면을 타고 달려나갔다.
카자스 해서의 벽뢰는 사물을 꿰뚫는 전사경으로 상대를 제압하는 기술. 이것을 아자딘은 수면에 걸어 매질을 바꾸어 충격파로 바꾼 것이다.
물리적으로 보이는 충격파 속에서 아자딘의 몸에 있는 불완전한 화조풍월의 마력이 암경(暗勁)이 되어 전임 전령들을 덮쳤다.
“엑!”
“키엑?!”
괴상한 비명을 지르며 전임 전령들이 허우적거릴 때 갑자기 칼 한 자루가 하라드의 가슴팍을 관통했다. 물기둥 사이로 숨어서 달려온 아자딘이 단번에 전임 전령의 등 뒤에서 칼로 가슴팍까지 꿰뚫은 것이다.
-뚜둑, 으드드득.
칼이 위로 타고 오른다. 등에 박은 칼을 들어 올려 척추와 흉곽을 잘라 버렸다. 마치 생선을 등뼈 따라서 포 뜨듯 아자딘은 칼로 하라드를 쪼개 버린다. 놀란 하라드가 손으로 칼을 잡아서 막으려 했지만 손가락이 뭉텅이로 잘려 나간다.
“어, 엄청난… 힘!”
전령인 하라드 역시 보통 인간을 초월한 힘을 가지고 있었지만 아자딘의 힘은 그 이상이었다.
“젠장!”
케브나가 하라드를 돕기 위해 아자딘 주위를 돌며 공격의 틈을 노렸다. 하지만 아자딘은 하라드를 칼에 꽂은 채로 빙글 돌려 방패막이로 삼으며 칼날을 계속 들어 올려 산채로 그를 쪼개고 있었다.
결국 칼날이 어깨로 빠져나오며 폐를 절단하자….
“으웩!”
피를 마셔서 재생하던 재생력으로도 버틸 수 없었다. 하라드가 입에서 피를 흘리며 쓰러진다.
“이 괴, 괴물 자식. 이건 뭐냐?”
“화조풍월, 카자스 해서.”
“이, 이게?”
“유언이나 유족에게 남길 말은 없나? 전해주도록 하지.”
아자딘은 핏물에 쓰러진 전임 전령 하라드를 발로 짓밟고 아직 멀쩡한 다른 한 놈, 케브나를 바라보았다.
“…하. 이런 몰골이 되어서 무슨 할 말이 있겠나. 젠장. 일족 제일의 얼간이라던 놈에게 무슨 일이 벌어진 거야?”
케브나는 그렇게 말하고 있었지만 그의 눈에는 감탄의 기색이 역력했다.
아자딘이 강해서?
그건 그렇지만 그것만이 아니다. 마족으로 타락해 버린 그들에게 그래도 명예와 긍지를 논하는 아자딘에게 그는 마음속 깊이 감복해 버린 것이다.
피에 대한 갈망, 끔찍하고 사악한 마력의 맥동에 지금도 그 마음이 흔들리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자딘은 그들에게 전령의 긍지를 불러일으켜 주었다.
‘정작 전령일 때는 그런 긍지 따위 가져본 일이 없는데 말이지.’
케브나는 아자딘을 노려보았다.
‘소년은 어느새 어른이 되는 법이군. 이 녀석, 훌륭한데. 카자스 장로의 실력인가? 아니면… 복무의 저주로 태어난 자는 최고의 전령이 되는 법인가?’
그때 아자딘이 질문을 던졌다.
“백작의 배후에는? 나가슈라가 있나?”
나가슈라. 그것은 팔왕국의 신족들, 팔왕신족이 이 땅에 오기 전 인류를 지배하던 나가들의 제국이다.
전임 전령들이 나가의 모습 비슷하게 변한 걸 보니 백작을 홀린 게 바로 나가슈라의 나가들이라는 걸 알 수 있었지만 아자딘은 확인차 물어보았다.
“네가 직접 알아내도록 해라.”
케브나가 그리 말하고 주문을 시전했다.
-연작!
투명한 마탄들이 케브나 곁에 떠오른다. 그와 함께 케브나는 타락한 나가의 모습으로 돌진해오며 입에서 독액을 뿜어냈다.
하지만 아자딘은 검으로 수면을 쳐올려 물보라를 일으켰다. 이 물보라는 독니로부터 뿜어져 나오는 독액과 연작의 마탄을 막아냈다.
“아니!”
아자딘이 전진하며 검을 휘둘렀다.
-빠각!
케브나 또한 칼을 들고 아자딘과 맞섰다. 하지만 아자딘의 검은 무시무시한 힘으로 케브나의 칼을 가볍게 잘라 버리고 심장과 뇌수를 십문자로 그어 베어 버렸다.
“크억… 후, 훌륭하다.”
케브나가 핏물 속으로 쓰러졌다. 피를 마셔서 상처가 재생되고 있지만 재생력보다 상처 전체에서 흘러나오는 피가 더 많다.
결국 케브나도 헐떡이며, 오히려 재생력 때문에 바로 숨이 끊어지지 못하고 고통받으며 죽어갔다.
“마물의 능력보다 전령의 능력을 사용하면서 싸웠다면 오히려 더 까다로웠을 거야.”
“마물로서가 아니라 전령으로서? 후후. 그래, 그걸 생각 못 했군.”
“정말 남길 말이 없나?”
“백작은… 언데드 군대를 만들려고 한다. 이미 상당한 수가 밑에 비축되어 있고… 신왕진서 사본은 해석작업 없이 나가들의 여왕 데비슬린에게 제물로 바쳐질 거다.”
“이미 바쳤나?”
“아직… 바치지 못했다. 백작에겐 다섯 장이… 큭! 아자딘, 너는 훌륭한 전령이지만 우리 일족은 네가 그렇게 충성을 바칠 만한 존재는 아니야. 일족의 안에는 어둠이 있다.”
“어떤?”
“그건… 두령 하티르에 관련된 것이라는 것만, 우리도 잘은 모른다. 두령을 주의해라.”
“알겠다.”
아자딘은 전임 전령들의 몸 위에서 그들의 머리에 칼을 꽂기 위해 치켜들었다.
“고맙다 아자딘.”
아자딘은 감사 인사를 하는 전임 전령들을 고통에서 해방시켜 주었다. 나가의 모습으로 변했던 그들의 시체는 다시 인간의 형상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젠장. 자, 그럼 백작은 어디로… 응?”
피의 욕장의 수위가 내려가고 있었다. 욕장 밑바닥으로 핏물이 빠지고 있는 것이었다.
*********
피가 흘러내린 욕장 밑으로는 상당히 깊은 지하도가 뚫려 있었다. 그 깊이를 보아하니 노르트 남작 부인 저택의 우물 밑바닥, 메제리의 사도들이 침입해왔던 지하도와 같은 곳이리라. 아자딘의 진입을 막고 있던 철문 너머인 것 같았다.
‘뭐 이미 들통났겠지만….’
아자딘은 소리를 내지 않고 조심스럽게 욕장 밑, 피가 흘러 내려가는 구멍으로 기어 들어가 보았다.
지하에 거대한 홀이 형성되어 있었다. 넓은 홀에는 형언하기 힘든 불경한 아우라를 풍기는 이단의 신상이 있고, 그 주위에는 적어도 백여 구가 넘는 방부처리된 언데드들, 미이라 병사들과 그들을 지휘할 언데드 십부장들, 그리고 그들을 통제할 나가 둘과 카젤 백작이 대기하고 있었다.
아자딘은 그 모습을 보며 신음했다. 예상보다 훨씬 많은 숫자다. 게다가 다들 잘 무장되어 있고 언제든지 출정 가능한 모습이다.
방부처리된 시신들, 미이라들에게는 번뜩이는 야만의 칼이 함께 뉘어져 있었고, 그들을 지휘할 십부장들은 갑옷과 방패가 함께 들려 있다.
먹지도, 마시지도 않는 불사의 군대가 가뭄으로 고통받는 세계로 행군할 준비가 되어 있는 것이다.
게다가 지금 마을 밖에는 무력한 난민들이 몰려 있었는데 그들의 육체는 이들을 살찌우기에 딱 좋은 수단이었다.
‘난민들이 몰려와도 내버려 두면서 은근슬쩍 수용한 이유가 이거였군. 난민들을 죽여서 언데드 병사로 만들려고…. 방부처리하는 건 머미로 만드는 건가? 위험한데.’
방부처리하고 주술을 걸어 강화된 머미는 일반적인 좀비들보다 훨씬 강력한 언데드 몬스터이다. 코라사르 전체가 가물고 있는 이때 먹지도 마시지도 않는 언데드 군대가 침공을 시작한다면 그것은 거대한 위협이 될 것이다.
전쟁은 물이 없으면 하지 못하는 법. 언데드 군대에게 포위당한 성은 순식간에 보급이 마르고 물이 말라 죽게 될 것이다.
다만 팔왕국의 핵심 도시들은 왕화의 빛에 의해서 보호받고 있는데 과연 언데드들이 그 왕화의 빛 아래에서 제대로 움직일 수 있을까?
‘확인해 봐야겠군.’
적은 많고 아자딘은 홀로, 게다가 가지고 있는 화살도 얼마 없는 상황이다. 엄선해서 가져온 보검은 아직 괜찮지만 상태가 점점 나빠지는 게 느껴진다.
‘뭐 상대 검을 잘라 버렸으니까. 상대의 약한 부분을 내 강한 부분으로 자른 거긴 해도 날 정도는 무뎌지는 게 당연하지.’
무기도 부실하고 적도 많은 상황. 하지만 아자딘은 더 조사하기 위해 지하로 내려갔다.
*********
“준비를 좀 더 철저히 하고 싶었는데. 역시 세상은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아.”
마치 출정식 전의 영주처럼 카젤 백작은 언데드 군대를 앞에 두고 말했다. 아직 쓰러져 있어서 발동하지 않은 군대지만 이 군대가 일어나면 그 위력은 만만치 않으리라.
백작은 하늘을, 아니 정확히는 위쪽, 피의 욕장과 이어져 있는 통로를 올려다보았다.
“다른 두 전령들도 만만치 않은 놈이었을 텐데 용케도 처리했군. 정말 108령인가?”
아자딘이 그림자에 숨어서 이동하고 있지만 그의 접근을 발견한 모양이었다. 이미 들킨 이상 은신은 소용이 없다.
“그래, 108령이다.”
아자딘은 신상 위에 착지했다. 나가 여성들이 감히 자신들의 신상을 짓밟고 있는 아자딘을 불경하다 여겨 혀를 날름거렸지만 이미 다른 인간에게도 불경자로 낙인찍힌 아자딘이다. 이제 와서 인간도 아닌 나가들의 비난 따위에 움츠러들 이유 따윈 없다.
“아무래도 다른 전령들은 눈이 옹이구멍인가 보군. 너 같은 놈이 108령이라고? 위에 두 녀석들도 제법 강했지만 네게 비하면 쓰레기였나 보군.”
“순위가 딱히 강함을 증명하는 건 아냐. 높으면 좋지만 낮다고 해서 굳이… 그리고 그들은 전령일 때가 더 강했다.”
아자딘은 백작을 노려보았다. 가면 때문에 눈이 보이지 않지만 백작은 찌르는 듯한 그의 시선을 느꼈다.
“흠… 내가 전령일족을 모독했다고 해서 화를 내는 건가? 점점 더 마음에 드는군. 진짜로 주인을 바꿀 생각은 없나? 나가가 되라고 하진 않겠다. 인간 하인도 필요하거든. 네가 원하는 건 뭐든지 주지.”
“신왕진서 사본을 원하는데?”
“아, 그거는 좀 곤란하지.”
“그럼 교섭은 결렬이군.”
“결렬? 그럼 네가 죽을 텐데? 우리는 이제 이 군세를 가지고 널 난도질한 후에 밖으로 나가 저기 모여 있는 난민들을 도륙할 것이다. 우리의 기술자들이 도륙된 시체들 중 괜찮은 걸 건져 미이라로 만드는 동안 우리는 계속 나아가 걸리는 것들은 모조리 파괴하고 이 코라사르를 지배할 것이다.”
백작은 그리 말하고 웃었다.
“정말 언데드 군대 따위로 세계를 정복할 수 있다고 생각하나? 왕화의 빛 아래에서는 언데드들이 버티지 못할 텐데?”
아자딘은 그 점을 물어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