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ight of the Soulless Unholy RAW novel - Chapter 72
71. 뱀의 신전 2
왕화의 빛.
왕의 교회의 신앙의 근본이며 야에가스 신족들이 신왕으로 추앙받는 이유.
정당한 왕이 왕좌에 앉으면 백색 마력의 결계가 이 땅을 수호하며 암흑의 마물들을 몰아낸다. 특히 언데드들은 그 왕화의 빛 앞에서는 마치 여름의 열풍을 맞이한 눈사람처럼 녹아 버린다.
“흐흐. 왕화의 빛이라. 정당한 왕이 앉았다면 말이겠지. 야에가스 신족의 피는 흐려지고 그 힘은 약해지고 있다. 그러니 신왕진서 사본을 대가로 데비슬린의 가호를 요청할 것이다.”
“데비슬린의 가호?”
“쿠르트 신족, 코브라 여왕의 힘이 왕화의 빛을 밀어내고 내가 코라사르의 왕좌를 차지하는 것을 도와줄 것이다. 신왕진서 사본을 유출한 너희 전령일족 덕에 내가 다시금 왕좌에 도전할 수 있게 된 거지.”
“그렇게 해서 언데드와 나가들만 가득한 세계로 만들려고? 그게 아름답다고 생각하나? 당신이 갖고 싶었던 건 코라사르의 왕좌였을 텐데. 그 왕좌 위에 올라섰을 때 부하들이 전부 언데드나 나가여도 만족한다고? 그게 당신이 원했던 건가?”
아자딘은 순수한 의문으로 물어보았다. 그래서일까? 백작도 진지하게 대답해 주었다.
“내 것이 아닌 세계가 아무리 아름다워 봤자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내 손에 넣을 수만 있다면 모든 휘브리스 백성들이 다 언데드가 되어도 좋다. 내가 갖지 못한다면 이 세계가 아름다운 것이 오히려 역겹다.”
“아… 그런가? 당신은 그런 사람이로군.”
아자딘은 혀를 찼다.
설득도 안 되고 적이 될 수밖에 없다. 아니, 내버려 두면 주위 사람들을 불행의 구렁텅이로 몰아넣을 절대악이다.
권력을 갈구하는 자.
어떤 의미에서는 아라엘과 같다.
‘아라엘….’
아자딘은 아라엘에게 당한 옛 상처가 욱신거리는 것을 느꼈다.
*********
“네가 원하는 건 뭐든 주겠다. 내 편이 되어라.”
아라엘의 편지를 연 순간 아자딘은 검은 공간에 빨려 들어갔다.
온통 어두운 공간, 그곳에 혼자 빛을 등지고 서 있는 여성이 있었다. 아라엘이었다.
그 강렬한 역광 때문에 얼굴은 보이지 않는다. 아니 보이고 싶지 않은 거겠지.
아자딘의 시력은 어둠과 역광도 꿰뚫어 보기 때문에 지금 그녀의 얼굴이 보이지 않는 것은 그녀의 의지이리라.
“오래간만이군, 아라엘.”
“보고 싶었나?”
“아니 전혀.”
아자딘은 얼굴을 어루만졌다. 오랜 상처가 찢어져 피가 흐르고 있었다. 지금까지 이런 적은 한 번도 없었는데 이 공간에서는 아자딘의 상처가 마치 방금 찢어진 것처럼 새롭게 찢어져 피를 흘렸다.
“보고 싶지 않았어.”
“십 년 만에 만나서 할 말이 그게 전부인가? 왜 내가 반역했는지 궁금하지 않아?”
“전혀. 보나 마나 온 세상을 손에 넣겠다든지, 현재의 전령일족은 썩었다든지 그런 이야기겠지.”
“원로원과 두령은 ‘네더’에 홀려 있다. 너라면 알고 있겠지? 카자스 장로와 함께 ‘네더’의 언어를 해독하고 있었으니까.”
“그래. 알고 있어.”
전령일족, 아라가사는 복무의 저주에서 해방되겠다는 일념하에 많은 마법을 연구하고 있었다. 그중에는 금지된 흑마법들, 네더의 마법도 있었다.
다만 네더의 마법은 심흑마법이라고 해서 감히 인간은 접근하는 것조차 힘들었다. 평범한 인간이 네더의 언어를 발설하기만 해도 혀부터 말라 들어갈 정도였다.
선천적으로 강력한 마력저항을 가진 아자딘은 카자스를 위해 네더의 언어를 발설하는 역할을 맡았고, 그 대신 카자스는 아자딘에게 화조풍월 카자스 해서를 가르쳐준 것이다.
“좋아. 이야기가 빠르겠군. 아자딘, 나는 네가 필요해. 네가 원하는 건 뭐든 주지.”
“내가 원하는 것이 뭔데?”
“널 업신여긴 일족들에게 복수하고 싶어? 그들에게 복수해. 일단 내가 원하는 정복사업이 끝나고 나면 모든 아라가사를 네 노예로 만들어 주지. 너는 일족의 남자들을 영원히 고문하고 학대할 수 있고 거대한 육벽의 마물로 만들어 네가 이룩할 성벽에 전시할 수도 있지. 여자는 다 네 하녀로 만들 수도 있어. 심지어 알디스마저 말이지.”
“……!”
“그래. 넌 어렸을 때부터 알디스를 가지고 싶어 했지?”
“…아무것도 모르는군.”
아자딘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나는 그녀가 행복했으면 좋겠어. 그리고 그건… 그런 식으로 이룩할 수 있는 꿈이 아니지.”
“멍청한 소리를 하는군, 아자딘. 알디스는 두령인 하티르를 사랑해.”
“…….”
“이대로 네가 탐내는 걸 남의 것이 되는 걸 바라만 보고 있을 거냐?”
“내가 가지려 하면 파괴될 거야.”
“그게 뭐 어때서? 내 손에 들어오지 못할 거라면 차라리 부숴서 그 파편이라도 가지는 게 낫지.”
“만약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한다면, 아라엘.”
아자딘은 상처에서 흘러나오는 피를 훔치며 노려보았다.
“너와는 결렬이다. 넌 나의 적이야.”
“…멍청한 남동생을 둬서 고생하게 생겼군.”
“내가 오빠야.”
“흥? 너 혼자만의 주장이잖아?”
말하는 것과 달리 아라엘은 역광 속에서 미소를 지었다.
“어째서 이제 와서 날 설득하려는 거지 아라엘? 내가 네더의 언어를 연구하는 데 도움이 되니까?”
“그것도 있지만 아자딘, 너와 나는 이 세상의 유일한 혈육이지?”
“이제 와서 그런 소리를?”
“잘 들어봐. 나는 이 세상 모든 걸 손에 넣을 거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나는 좋은 음식이나 옷, 근사한 성이나 아름다운 이성 등에 구애받지 않아. 내가 진짜 원하는 건 그저 권력 그 자체일 뿐이지.”
실제로 그녀는 권력과 힘 외엔 관심이 없었다. 좋게 말하면 탐욕이 없지만 나쁘게 말하면 사랑하는 게 없었다.
오직 유일하게 그녀의 마음을 끄는 것은 바로 힘.
권력뿐이다.
“그렇다고 해서 내 눈앞에 있는 보물이나 노예들, 왕국들을 놔줄 생각은 없다. 모든 돈과 부귀, 명예를 나는 다 손에 넣을 생각이다. 그렇지 않으면 죄다 파괴해 버릴 거야. 내 손에 들어오지 못할 것은 존재할 가치도 없으니까.”
물욕이 없으면서도 그 모든 것을 차지하고, 내 것이 아니라면 파괴하고야 말겠다는 야욕.
세상에 피해를 주건 말건 자신의 야욕에만 충실하겠다는 아라엘의 발언을 들으며 아자딘은 실소했다. 길가의 주정뱅이가 떠들 법한 광언이다.
문제는 아라엘의 힘이 살아 있는 여신에 가깝다는 것. 그녀는 자신이 내뱉은 광언을 실천할 힘이 있었다.
“멍청하고 혐오스러운 내 추종자들은 그때까지는 쓸모가 있겠지. 그런데 그런 놈들에게 내가 얻어낼 부귀공명을 나누어 주는 걸 생각해 보니 불현듯 네가 떠오른 거야. 아무래도 그 혐오스러운 것들보다는 혈육인 네가 부귀공명을 누리는 게 낫겠지. 그렇게 하면 다른 추종자들은 싫어도 알게 될 거야. 우리의 혈육이 존귀하다는 걸.”
“…….”
이기주의와 자기애가 극에 달하면 이런 발상도 나오는 것인가? 어떤 의미에서는 참으로 감탄할 만한 발언이었다.
“너는 내 유일한 혈육이니, 아자딘. 나는 널 내 방식대로 사랑하기로 결정했다.”
아자딘에게 가장 깊은 상처를 안긴 장본인이… 아자딘을 사랑하겠다고 선언한다.
하지만 그것이 과연 사랑인가? 자신이 스스로의 인생을 사랑할 줄 몰라서, 남들이 탐내는 것들을 손에 넣어도 기쁘지 않다. 그렇기에 그녀는 아자딘에게 눈을 돌린 것이다.
아자딘을 혈육으로서 사랑한다고 하면 손에 넣은 것들을 나누어 줄 때 의미가 생길 테니까. 단지 그런 이유로 ‘사랑’을 논한다고?
“거절하지. 그따위 사랑은 필요 없어. 그건 사랑이 아니라 너의 야욕을 장식하기 위한 장식물이지. 네 승리를 찬미하기 위한 장식물이 되기엔….”
아자딘은 얼굴의 상처에 손을 가져갔다.
“나에게도 자존심이란 게 있거든!”
“말했지, 아자딘?”
역광 속의 아라엘이 일어났다.
“내 손에 들어오지 않는 것은 존재할 필요가 없어. 설령 그게 내 유일한 혈육인 너라고 해도!”
아자딘의 얼굴에서 흐르는 피가 땅에 떨어지면서… 아자딘은 편지의 마력에서 벗어났다.
*********
지금 아자딘 앞에는 카젤 백작이 있었다. 그런 그가 아라엘과 똑같은 소리를 하다니.
‘권력 지향형 인간다운 발상이다.’
아자딘은 자신을 회유하던 아라엘의 편지를 떠올리고 다시 상처가 욱신거리는 걸 느꼈다.
“백작님, 왜 저 불경한 것에게 신경을 쓰십니까?”
나가들은 백작이 아자딘과 진지하게 대화하는 것에 불만을 드러냈다.
‘아라가사라서인지 신상을 밟고 있어서인지 모르겠으나 나가들에게까지 불경하다는 소리를 듣다니.’
듣고 있던 아자딘이 실소했다.
“전령일족 노예들을 자랑스러워하셨던 것은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그것들이 없더라도 백작님의 군세를 막을 수 있는 것이 없을 겁니다.”
백작에게 있어서 전령일족을 꺾고 수하로 부리는 것은 대단한 자랑거리였다. 그래서 아자딘을 노리는 거겠지만 이제 미이라 병사들을 꾸리게 된 지금은… 굳이 전령일족 노예를 둘 필요가 없다.
“그래 그렇지. 무력으로 제압하면 그만이다. 하지만 뭔가 이 녀석은 재미있군. 일반적인 전령일족과는 어딘가 다른 느낌이야.”
백작은 아자딘에게 다른 전령일족과 다른 이질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래서 갖고 싶어 한다.
“탐나는 인재다. 그 전령 둘을 별다른 상처 없이 제압했다면 더더욱.”
카젤 백작은 그리 말하다 쓴웃음을 지었다.
“그래도 모든 걸 얻을 수는 없겠지. 자, 미이라들을 일으켜라.”
“예.”
나가들이 주문을 시전했다.
“그러면 곤란하지.”
아자딘은 신상 위에서 피에 젖은 화살들을 꺼냈다. 전임 전령들 하라드와 케브나에게서 얻은 화살들을 백작에게 날린다.
백작은 앞서 화살을 막았던 무형의 장벽으로 화살을 막아내려 했지만… 아자딘이 발사한 화살은 백작 앞에서 핏줄기를 뿌리며 휘어진다. 보통은 잘 보이지 않을 변환이지만 피에 젖은 화살이 회전하며 피를 뿌린다.
“음?!”
아자딘의 화살이 휘어서 백작 옆에 있던 나가들을 노린다. 깜짝 놀란 나가들이 펄쩍 뛰어 독사처럼 회피했지만 화살은 그녀들의 배와 가슴을 할퀴고 지나갔다.
단단한 나가의 비늘 때문에 그녀들의 몸통을 관통할 수는 없었지만 심한 상처가 났다.
“캬악!”
“샤아!”
분노한 나가들이 주문을 시전했다. 핏방울들이 신상에서 떠올라 아자딘을 향해 날아오르지만 그는 이미 이 마법을 보았다.
-쉬쉬쉭!
아자딘은 비수를 던져 떠오르는 핏방울들이 자신을 향해 핏물을 쏘기 전에 먼저 맞춰 버렸다. 핏방울들이 풍선처럼 터지고 아자딘은 다시 화살을 날렸다.
“제길!”
“빌어먹을 전령!”
아자딘의 화살이 자유자재로 휘어져 표적을 맞춘다는 걸 알기에 모두 긴장하며 피해 다니느라 낭패를 볼 때, 백작이 오히려 나서서 화살에 몸을 던졌다.
-펑!
백작의 몸 앞에서 구형의 마력 장벽이 생겨나더니 화살이 터졌다.
“내 여자들을 너무 괴롭히는군. 저놈은 내가 상대할 테니 너희는 미이라를 깨워라.”
“예!”
“알겠습니다!”
나가들이 물러나 주문을 시전하자 지하도의 핏물들이 미이라들에게 모여들기 시작했다.
피에 적셔지자 바닥에 누워 있던 미이라들이 일어난다. 그들 눈에서 귀화가 피어오르고 끔찍한 저주의 힘이 그 미이라들에 감돈다.
“그렇게 놔둘 순 없어!”
아자딘은 화살을 날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