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ight of the Soulless Unholy RAW novel - Chapter 77
76. 심판자 젝트 1
“쯧, 신분도 한미한 것이 뭐 예쁘게 생긴 것도 아니고. 한심한 소리 하지 말고 자네는 징계나 기다리도록 하게.”
주교 윌리엄은 그리 말하고 손을 들었다. 그러자 옆에 있던 젊은 복사가 주교 손에 포도주 잔을 들려주었다. 주교의 취향이 반영되어서 그런지 다들 젊고 아름다운 미청년들이었다.
살라스마 주교 윌리엄은 어리고 아름다운 사람들을 좋아한다. 그래서 본래 교단 주무관이 되기에 부족함이 없는 실력자이나 삼십 대인 지벡 경을 쳐내고 대신 경험이 부족해도 가문 좋고 미모가 출중한 젊고 예쁜 미남미녀들로 주무관 자리를 다 채워 넣었다.
그 때문에 지벡 경은 자신의 제자이던 메이야에게도 추월당하는 수모를 겪게 된 것이다. 게다가 이제 또, 주교의 위신에 흠집이 갈 만한 일이 발생했고 그걸 수습한 게 지벡 경이 되었으니….
주교 입장에서는 지벡 경을 미워할 이유가 한 줄 더 추가된 것이었다.
“행여나 쓸데없는 이야기가 새어 나가지 않도록 하는 게 좋을 거야. 백작이 흑마술에 연루되어 있다면 이는 왕의 교회의 위신 문제니 말일세!”
“예, 알겠습니다.”
지벡 경은 그렇게 답했지만 주교의 말에 현기증을 느꼈다.
백작이 흑마법에 가담한 것은 명백하다. 그런데 그걸 왕의 교회의 위신을 어지럽히는 일이라고 규정해서 사건을 덮겠다고? 조작하겠단 말인가?
사건을 덮고 조작하면 뒷수습이 안 된다. 백성들, 하인들, 병사들, 기사들, 너나 할 거 없이 모두 궁금해할 것이고 소문을 낼 것인데….
그걸 막겠다고 하면 대체 일이 어디까지 벌어질지 상상하기도 싫은 일이었다.
“그럼 자네의 처벌은….”
그때 주교관의 문이 벌컥 열렸다. 황금빛 갑옷을 걸친 기사가 안으로 걸어 들어왔다.
“안녕하십니까, 주교님.”
“헉?”
주교가 그 모습을 보곤 사시나무 떨 듯 떨었다.
“아, 지벡 경. 당신도 여기 있었군요. 최근 참회 기사가 될 만한 일이 있었다지요?”
기사는 주교를 앞에 두고도 마음대로 지벡 경에게 말을 걸었다.
“예, 젝트 경.”
“그럼 제 조수가 되어서 참회기사의 수행을 하도록 하시지요.”
젝트 경은 그리 말하고 투구를 벗었다. 야에가스 신족의 피가 진한 이들의 특징은 보통 은발로 나타나지만 젝트 경은 금색 머리칼 사이에 앞머리 일부만 은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언제나 세상이 눈부신 듯 눈을 가늘게 뜨고 있어 웃는 듯한 인상을 지닌 가느다란 눈이 지벡과 주교를 번갈아 바라본다.
“제 청원을 들어주시겠습니까, 주교님?”
“아, 그, 그야 물론이네. 누가 감히 심판자 젝트 경의 청원을 거절하겠나?”
주교는 벌벌 떨면서 지벡 경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 그럼 그만 같이 물러나게.”
“황송합니다.”
젝트 경이 미소를 지으며 주교 앞에서 멀어졌다.
*********
교단 이단심문관, 그중 심판자는 왕의 교회 전체에 16명밖에 없는 높은 직위다.
교회 원칙상 성기사들은 정치나 정책에 관여하지 않고 오로지 성직자들이 정한 일을 실천하는 무력행사에만 관여한다. 하지만 이단심문관의 정점에 있는 심판자는 교회 안의 이단, 혹은 잠입한 사교도를 축출한다는 명분으로 얼마든지 왕의 교회의 내분에 관여할 수 있었다.
조직을 내사할 수 있는 권한이 있는 이들이니 이들이야말로 성기사단 권력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런 높은 지위의 젝트 경이 지벡 경의 노고를 치하했다.
“멍청한 놈 보필하느라 고생이 많군요, 지벡 경.”
“아, 아닙니다.”
지벡은 젝트 경이 자신을 기억하고 있다는 것에 감격했다. 왕의 교회에 들어왔을 때 그는 젝트 경 밑에서 신성마법을 배웠다.
왕의 교회의 성기사들은 가장 전투적이고 효과적인 신성마법 몇 가지 중 하나를 골라 그것만을 집중적으로 익혀 단기간에 전투력을 끌어올리는 것을 선호한다. 지벡 경은 그러한 성기사들 사이에서 신성마법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서 주목받았다.
다만 그 태생이 변변찮아 마력이 약한 게 흠이어서 훈련 과정에서 방출되었으니, 그 기간은 고작 2주에 불과했다. 그 2주간의 교육 과정에서 젝트 경은 지벡을 기억해두고 이름까지 착실히 외워둔 것이다. 그러니 지벡 입장에서는 감격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어쩐 일로 여기까지 오셨습니까?”
“살라스마에 가뭄이 들고 마물들이 들끓는다 해서 찾아와 보았습니다. 오던 중 재밌는 일도 있고 말이지요.”
“네?”
그때 교회 밖으로 걸어나간 지벡 경은 수레를 발견했다. 수레에는 시체가 실려 있었다.
“가즈렉 경?”
가즈렉 경과 그의 수련기사들이 시체가 되어 수레에 실려 있었다. 이미 죽은 지 시간이 좀 지나 역한 냄새를 풍기고 있었지만 살라스마 전역이 악취로 가득찬 상황이라 시체 하나둘 썩는 냄새를 더한다 해서 특이할 건 없었다.
“알고 있는 이인가요? 시체가 꽤 썩어 있는데 용케 알아보는군요?”
“아 저 칼과 무구가 가즈렉 경의 것이라서 알아보는 것뿐입니다.”
“네. 이 기사를 살해한 이는 가즈렉 경의 무구를 약탈하지 않았습니다. 성기사의 것이라 그런 것일 수도 있지만….”
수레 옆에는 젝트 경이 데리고 다니는 하사관들과 병사들이 있었다. 그들은 농민과 어린아이들을 붙잡아두고 있었는데, 바로 가즈렉 경 일당에게 학살당한 농장의 생존자들이었다.
“처음에 성기사들을 살해한 이들은 약탈하지 않고 매장했지만 이자들이 그 무덤을 파헤치다 걸렸습니다. 심문을 좀 해보니 전령일족이 살해했다는 증언을 들었습니다만.”
“예?”
“황제의 전령 말입니다. 황제 추종자, 신왕살해자라는 놈들. 하긴 그 정도는 되어야 우리 교단의 성기사를 해칠 수 있겠지요.”
“…….”
그때 잡혀 있던 청년이 피를 토하며 외쳤다.
“웃기지 마! 저 성기사라는 놈이 우리 아버지를 죽였어! 사냥하다 화살이 빗나가서 우리 가족을 죽여놓고선 입을 막겠다고 농장 사람들을 전부 몰살시키려 했다고!”
그러자 젝트 경이 늘 웃는 듯한 그 얼굴로 하사관들을 바라보았다. 하사관이 말채찍으로 청년의 입술을 후려갈겼다.
“아가리 닥쳐라! 천한 것!”
채찍으로 얼굴을 후려갈기니 입술이 터지고 살점이 떨어져 나갔다.
“…….”
지벡 경은 그 광경을 보며 얼굴이 굳었다. 왜냐면 마침 맞은편에서 주무관 메이야 경이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화들짝 놀라 달려온 그녀는 수레에 실린 시체를 살펴보고 무릎을 꿇었다.
“이, 이건….”
“당신은 누구십니까?”
“아! 죄송합니다, 젝트 경. 저는….”
“그녀는 메이야 경입니다. 여기 가즈렉 경의 딸이지요.”
“흠? 딸? 성기사가 말입니까?”
젝트 경은 그렇게 반문하다 고개를 끄덕였다.
“뭐 그럴 수도 있겠지요.”
그때 붙잡혀 있던 청년이 피식 웃었다.
“그 학살자의 딸이라고?!”
“닥쳐라!”
하사관이 또 채찍으로 얼굴을 후려갈기려 했지만 그때 지벡 경이 칼집으로 채찍을 막았다.
“사람들이 보고 있습니다. 이런 곳에서 이런 행동은 민심에 좋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 녀석이 떠들게 둘 수는….”
“재갈을 물리고 치우죠.”
지벡 경은 그리 말하고 메이야의 표정을 살폈다. 메이야는 처참한 몰골이 된 부친의 시신을 앞에 두고 혼란스러워하고 있었다.
“이, 이건… 아버지가 학살자라는 건 무슨 뜻이지요?”
“그, 그건.”
“아, 수사 기록을 공유해 주도록 하세요. 아무래도 가즈렉 경의 딸인 듯하니 알고 싶겠지요.”
젝트 경은 하사관들에게 일러 메이야에게 수사 정보를 공유해줄 것을 허가하고 지벡을 돌아보았다.
“그래서 지벡 경. 저는 이곳 살라스마의 혼란을 수습하는 일을 할 셈입니다. 당신의 도움이 필요합니다만.”
그때 그 말을 들은 메이야가 젝트 경 앞에 머리를 조아렸다.
“부탁입니다. 저도 젝트 경을 보필할 수 있도록 허락해주십시오.”
주무관 메이야의 임무는 주교가 있는 이곳, 주교구를 지키는 것이다. 주교의 명에 따라 여기저기 수사를 다닐 수도 있고 가끔은 따로 행동할 수도 있지만 근본적으로 그녀의 직속 상사는 주교. 주교의 뜻을 따라야 한다.
하지만 가즈렉 경 살해사건의 진상을 알고 복수를 하고 싶다는 열망이 그녀를 움직였다. 그녀에게 보여준 수사 보고서에는 민간인 학살에 대한 증언이 빠져 있었기 때문이다.
젝트 경과 그 휘하 하사관들은 성기사단의 권위를 강화하기 위해서 움직이는 이들. 당연히 추문은 덮어야 한다.
“흠, 이거 참.”
젝트 경은 메이야의 요청을 듣고 웃었다.
“미리 말해두지만 저희는 딱히 가즈렉 경을 살해한 이를 쫓는 게 아닙니다. 그저 살라스마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수사하고 그 대책을 강구할 뿐이죠. 그런데 주교 허락도 없이 주무관인 그대가 절 따르겠다고 해도 되겠습니까?”
“그, 그건… 송구스럽습니다. 하지만 저는 젝트 경을 따르고 싶습니다.”
“흠, 알겠습니다. 그럼 지벡 경.”
“예.”
“절차에 맞춰서 그녀의 수속을 잠시 제게로 옮겨주세요. 마침 기사들이 많이 필요하던 차였으니 말입니다.”
“잠시입니까? 아니면 항구적입니까?”
“그건… 그녀의 의향과 주교의 의향에 따라 달라지겠지요?”
주무관 자리는 편하고 떨어지는 거 많은 안락한 자리다. 반면 이단심문관, 그중에서도 심판자 젝트를 따라다니는 일은 기사들 입장에서는 명예롭지만 가장 위험한 일이었다.
보통은 주무관 자리를 박차고 이단심문관이 되려고 하지 않는다. 하지만 복수에 눈이 먼 메이야는 아예 보직을 통째로 옮기고 싶어 했다.
“이단심문관이 되겠습니다!”
“훌륭하십니다. 그런 의욕을 무시해서는 안 되겠지요.”
젝트 경은 메이야의 전속요청을 받아들였다.
“그런데 그 수사 기록을 내가 봐도 되겠는가?”
지벡 경은 하사관들에게 부탁해 그 역시 수사 기록을 살펴보았다.
“이건….”
누가 보더라도 조작된 수사 기록이다. 가즈렉 경과 그 일당은 농장에서 휴식을 취하던 도중 비열한 전령일족과 황제 추종자인 농장 사람들에게 급습당해 죽었다고 되어 있었다.
저 청년이 증언하는 게 거짓은 아닌 것 같아 보이는데….
‘눈앞에 이런 상황을 보고도 메이야 경은 이 수사 기록을 믿는단 말인가?’
지벡 경은 쓴웃음을 지었다.
그는 가즈렉 경을 살해한 전령을 알고 있었다. 전령 아자딘. 그가 성기사들에게 손을 댔다면 그건 농장의 청년이 증언하는 게 사실이기 때문이겠지.
*********
“으음.”
아자딘은 침대에서 눈을 떴다. 전신이 찢어지는 것 같은 격통이 밀려온다.
“아이고 나 죽네.”
입을 열자 저절로 곡소리가 나온다. 근육통에 타박상에, 뇌진탕과 장기 내 출혈도 좀 있는 것 같다. 그래도 골절이 없는 건 그나마 다행이다. 아자딘은 힘겹게 주변으로 목을 돌렸다.
‘황제의 목소리가 있었으면 대신 둘러봐 달라고 할 수도 있었을 텐데 이거 참 불편하네. 어서 빨리 파직을 철회하고 황제의 목소리를 돌려받지 않으면….’
황제의 목소리, 그 빈자리를 처절히 느끼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노르트 남작 부인의 저택이었다.
“끄응. 아, 목말라.”
침대 옆 콘솔의 물그릇을 향해 손을 뻗었다가 그만 물그릇을 엎고 말았다. 몸에 근육통이 너무 심해서 이런 간단한 것에서도 실수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