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ight of the Soulless Unholy RAW novel - Chapter 79
78. 심판자 젝트 3
서동 벨돈은 금화의 청원자가 아니다. 그러니 그들에게 정체를 밝힐 이유가 없다.
무엇보다 코젤 공자가 전령일족에게, 아니 아예 아자딘 본인에게 눈을 잃었으니 전령일족에 대한 감정이 예사롭지 않을 터. 괜히 전령일족이라는 사실을 밝혔다가 코젤의 감정이 폭주해 버리는 경우도 고려해야 했다.
‘사실은 내가 바로 자기를 폐인으로 만든 장본인이라는 걸 알면 복수하겠다고 성기사건 뭐건 다 데려오겠지.’
아자딘이 능청스럽게 말하니 벨돈은 한숨을 내쉬었다. 다행히 아자딘의 허풍이 먹힌 모양이었다. 뭐 그게 아니더라도 거대한 괴물로 변모한 백작과 미이라 병사들을 처단하는 집단을 자세히 뒷조사하는 건 그리 현명한 짓이 못 된다.
‘설령 진짜 전령일족이라면 코젤 공자님 성격상 반드시 싸움이 날 텐데. 하지만 백작님을 죽여 버린 자와 싸우는 건 현명한 짓이 아니지.’
평지풍파 일으키지 않고 무난하게 가려는 성향이 강한 벨돈은 아자딘이 전령일족이라 하더라도 그 사실을 고용주들에게 알리지 않을 생각이었다. 그래도 흥정은 해야 했다.
“어째서 선금이나 비용에 대한 합의도 없이 일을 진행하셨습니까?”
“사전 조사차 잠입해서 보고 있었는데 백작이 여기 일대 사람들을 싹 다 죽이려고 준비 중이더라고. 아무리 우리 입장에서 남의 일이라고 해도 시간 끌면 피해가 막심하고 그때 되면 손도 못 쓸 것 같기에 어쩔 수 없이 급하게 움직였지. 동료들이 고생 많이 했어.”
아자딘이 말하는 동료들은 물론 미디암과 이스마일을 말하는 것이다. 하지만 벨돈이 듣기에는 아자딘과 비슷한 다른 암살자들이 더 있다는 뜻으로밖에는 들리지 않았다. 설마 그런 엄청난 전투를 아자딘 혼자서 수행했을 리 없으니 말이다.
“그러니 지금 날 만나러 올 때 보수는 가져왔겠지?”
“무, 물론입니다.”
벨돈은 아자딘에게 가죽 주머니를 내밀었다. 열어보니 금과 오팔로 장식된 브로치와 금화가 들어 있었다.
“이건….”
“금화가 부족해서 장신구를 가져왔습니다. 대충 금화 50닢의 가치가 있을 겁니다.”
“처리하기 까다롭잖아? 시세가 정말 금화 50닢인지도 모르겠고. 게다가 이걸 추적하면….”
“죄송합니다. 저희로서도 애쓴 결과입니다.”
사실 백작 부인과 코젤은 잔말이 많았다.
‘진짜 암살자가 한 일이 맞느냐?’
‘그 돈 꼭 줘야 해?’
‘우리는 금화 50닢에 대해서 확답 준 적 없는데 왜 멋대로 일을 진행했지? 그걸 감안하면 깎을 수 있지 않을까?’
이렇게 돈을 주지 않거나 깎으려고 했었다. 벨돈은 그런 백작 부인과 코젤을 설득하느라 진땀을 흘렸다.
‘만약 그놈들이 정말 백작님을 살해한 장본인이라면… 보수를 주지 않을 경우 백작 부인과 코젤 공자님을 위협할 겁니다. 그건 어찌 감당하시겠습니까?’
백작 부인과 코젤 공자에게 암살자의 급료를 깎는 행위가 가져오는 위험을 설명하자 그제야 마지못해 받아온 브로치였다.
이걸로 이 남자가 납득하지 못한다면 백작 부인의 처가에 손을 벌릴 수밖에 없는데, 그건 매우 귀찮은 일이었다.
“알겠어. 그래, 이 정도로 타협하지. 이 브로치가 백작 부인 거라는 걸 이 근처 사람들은 다들 알 것 같은데 처분하려면 다른 나라에 가서 해야겠군.”
아자딘은 주머니를 받아들고 벨돈에게 또 여러 가지 물어보았다.
“혹시 달리 도움이 필요한 일 있나? 백작 부인과 교회에서 살라스마의 영지를 두고 힘겨루기 중이라며?”
“혹시 교회 사람도 암살할 수 있습니까?”
“흐음. 누구?”
“심판자 젝트 경입니다.”
“심판자? 심판자면 기사단 최고위 인물이잖아? 전 세계에 열여섯 명밖에 없는? 그런 인물이 살라스마에 와 있다고?”
“예. 그가 살라스마 령에 개입하고 있는데, 왕의 교회 측에서는 백작의 혈통에게 상속을 금하고 다시 왕의 교회에 살라스마 령을 반환하는 것을 꾀하고 있습니다. 백작이 나가로 변했으니 백작의 혈통 모두가 오염되었을 수도 있다는 것이 바로 그 이유죠.”
“아하.”
아자딘은 그 이야기를 듣고 혀를 찼다.
“설마 그걸 대중들에게 밝히진 않을 거고.”
정통 귀족인 백작이 마물로 타락했다는 걸 이유로 백작 혈통의 상속권을 박탈하겠다는 건 교회 입장에서 매력적인 선택지가 아니다.
귀족들의 혈통, 야에가스 신족의 혈통이 완벽하지 않다고 스스로 공인하는 것이며 이는 왕의 교회의 근간을 버리는 짓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심판자를 죽인다고 해서 딱히 상황이 나아질 것 같지는 않은데? 그 의뢰는 거절하지.”
“음. 아, 알겠습니다.”
“그럼 수고하라고.”
아자딘은 벨돈에게 인장반지를 넘겨주고 골목길을 빠져나왔다.
*********
아자딘은 노르트 남작 부인과 작별인사를 나누고 저택 밖으로 나왔다.
“그럼 이제 어디로 가죠?”
“나가들을 추격해보자. 흔적이 어디서 끊겼지?”
“서남쪽으로 이어집니다만….”
“서남쪽인가…. 일단은 그쪽으로 따라가 보자.”
고지대에서 내려가면서 살라스마 외벽 상황을 보니 여전히 많은 난민들이 꾸역꾸역 밀려 들어오고 있었다.
도시 곳곳에서 강물이 마르고 몰려든 난민에 의해 쌓이는 오물들이 청소되지 않아서 황폐화가 가속되고 있다. 여기에 이제 지도자도 없으니 이 도시에 몰려든 사람들의 앞날도 순탄치 않으리라.
그런 생각을 하며 걸어가고 있을 때였다.
살라스마 외벽 밖, 농장 거리쯤 왔을 때 뒤에서 무언가가 달려오는 게 보였다. 기마한 기사들과 하사관들이었다. 그들 선두에 갑옷을 입은 무언가가 짐승처럼 달리고 있었다.
“…어?”
사람이 짐승처럼 네 발로 달려온다. 그 눈에서는 흉흉한 빛이 감돈다. 아자딘의 시력으로 보니 검은 아우라가 풍겨 나고 있었다. 흑마법의 산물이었다.
“뭐야 저건?”
아자딘은 시력에 정신을 집중해 후방에 쫓아오는 이들을 살펴보았다. 왕의 교회의 성기사들이었다.
‘언데드가 탈출해서 뒤쫓고 있나? 하지만….’
정당한 왕이 옥좌에 앉을 때 왕화의 빛이 국토를 수호한다.
야에가스 신족들이 가져온 옥좌, 팔왕좌는 그 자체로 신왕진서의 마도서이며 강력한 마법유물이다.
그리고 왕화의 빛은 실존한다. 도시와 마을들, 왕의 교회의 신자들이 있는 곳에서 왕화의 빛은 실제로 작용해 언데드와 마물들의 활동을 억압하고 인간들을 지킨다.
‘백주 대낮 대도시에서 언데드가 나선다는 건 어지간히 마법에 공을 들이지 않고는 힘들어.’
물론 그걸 가능하게 한 게 카젤 백작이었지만 그도 그만한 언데드를 만들기 위해서 막대한 돈과 인력, 나가들의 도움이 필요했을 것이다.
그런데 저건….
“저희를 노리고 오는 것 같은데요?”
“어쩔까요?”
미디암과 이스마일이 물어왔다.
“어쩌긴. 도망치자. 저런 걸 상대할 이유가 없어.”
아자딘은 케림 산양에 타지 않고 고삐를 잡고 있다. 반면 미디암과 이스마일은 케림 산양에 타고 있다. 여기서 갑자기 산양에 타면 주위 사람들에게 수상하게 보일 테니 아자딘은 걸음을 빠르게 하고 미디암과 이스마일에게는 먼저 앞서가라고 수신호를 보냈다.
때마침 갈림길이 있어서 아자딘 일행은 그곳으로 들어섰는데… 언데드가 길을 이탈해 일직선으로, 아자딘 일행을 향해 달려온다. 게다가….
-몽롱!
성기사들에게서 마법 공격이 날아오는데 언데드를 노린 게 아니라 명백하게 아자딘 일행을 노린다. 빛도 나지 않고 소리도 없는 무색의 기초 마법이지만 그래서 위험한 주문이다.
마법은 아주 찰나에 의식을 멍하게 만드는데, 달리던 말이나 짐승들에게 사용하면 효과가 엄청나다. 아자딘과 미디암, 이스마일이야 괜찮지만 그들이 타고 있는 케림 산양이 마법에 걸려 잠시 몽롱해졌다.
“아!”
“제기랄!”
미디암과 이스마일도 이제 상대가 자신들을 노리고 공격해오고 있다는 걸 확실히 알았다. 명예를 중시하는 성기사들이 마법으로 선제공격하다니. 어쩌면 이쪽이 전령일족이라는 게 들통났을지도 모른다.
이런 상황에서 아자딘은 미디암과 이스마일에게 명했다.
“먼저 가라!”
“네?”
“내가 막지.”
“아니 저번에도 그러다 저희 도움받아 놓으시고.”
“당신의 몸 상태도 좋지 않습니다!”
미디암과 이스마일이 그렇게 말렸지만 아자딘은 돌아서서 달려오는 언데드를 막아섰다.
그런데….
“크르르르!”
짐승처럼 으르렁거리며 돌격해온 놈은 놀랍게도 아자딘도 안면이 있는 놈이었다.
‘이거 그놈이잖아? 뭐였더라? 민간인에게 화살 흘려서 민간인 농가 몰살하려고 한 놈!’
가즈렉 경이 언데드가 되어서 아자딘에게 돌격한 것이다.
“좋아! 스웨터!”
아자딘은 케림 산양의 고삐를 잡고 안장가방에서 검을 꺼냈다. 언데드가 된 가즈렉 경의 공격을 침착하게 바라본 아자딘은 검으로 그의 공격을 막고 외쳤다.
“지금!”
그 순간 아자딘의 케림 산양, 스웨터가 뒷발차기를 날려 가즈렉 경의 시신을 뻥 차 버렸다. 무시무시한 각력 덕분에 가즈렉 경의 몸이 그대로 붕 날아갔다.
“어….”
쫓아오던 성기사들이 당황했다. 안장에서 무기를 꺼내는 것처럼 하더니만 산양이 뒷발을 날려 공격하다니. 완전히 허를 찔리고 말았다.
‘맞은 게 언데드인 가즈렉 경이니까 망정이지 만약 나였다면?’
아무리 갑옷을 입었다지만 과연 멀쩡할까? 그런 의문을 품으니 등골이 오싹해졌다.
성기사들이 갑작스러운 사건에 당황하는 사이에 아자딘은 마무리를 짓기 위해 가즈렉 경을 추격했다. 케림 산양의 등자에 발 하나만 건 채 마치 달리는 마차에 매달린 모양새로 함께 달려나간다.
“크르르르.”
언데드가 된 가즈렉 경이 몸을 일으켰다. 인간이라면 케림 산양의 뒷발차기에 맞고 날아가서 내출혈이나 골절로 고생할 테지만 가즈렉 경은 별 타격 없이 일어났다.
하지만 케림 산양과 함께 쇄도한 아자딘이 가즈렉 경의 정수리를 향해 검을 꽂는다. 그가 일어나서 균형을 잡기도 전에 벌어진 일이었다.
평상시라면 반드시 명중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순간 검은 마력이 갑자기 가즈렉 경에게서 폭주하며 마치 뒷걸음질 치는 짐승처럼 뒤로 후퇴한다.
“…….”
아자딘은 그 마력을 행사한 이를 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금색 갑옷을 입은 성기사가 다가오고 있었다. 투구를 써서 얼굴은 보이지 않지만 목소리가 젊다.
“이런 이런. 대단한 실력이군요. 일반적인 순례자라고는 전혀 생각지도 못하겠는데요.”
“성기사님, 언데드가 백주 대낮에 돌아다니는데 가만히 계실 겁니까?”
“그는 가즈렉 경입니다. 슬프게도 어디서 전령일족에게 살해당하고 그들을 찾아 복수하겠다는 일념으로 망령기사가 되었지요. 그런데 이런 망령들의 특징이 뭔지 아십니까?”
“…….”
“일정 거리 내의 원수를 찾고 추적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즉, 당신이 가즈렉 경을 살해한 범인이라는 소리지요.”
금색 갑옷의 성기사는 아자딘을 가즈렉 경 살해범으로 지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