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ight of the Soulless Unholy RAW novel - Chapter 81
80. 심판자 젝트 5
엄청난 힘이 담긴 화살은 인간의 힘으로 발사된 것이 아니라 흡사 공성 병기에서 발사된 것 같다. 하지만 젝트 경 주위에서 무형의 방패가 나타나더니 화살을 막아냈다.
-신성한 방패!
화살이 힘을 버티지 못하고 폭발하듯 산산조각이 났다.
‘백작이 쓰던 것과 비슷한 마법인데?’
아자딘은 조금 전 광경을 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저것은 백작의 방어마법 중 가장 까다로운 것이었다. 그걸 저 성기사가 사용한다면 원거리에서 화살을 퍼붓는 것만으로는 잡기 힘들다.
‘미디암이나 이스마일이라면 화조풍월 백학으로 깰 수 있겠지만…. 아이들을 동원할 경우 녀석들이 노려지는 게 문제지.’
아자딘은 심판자 젝트가 아직 여유가 많다는 걸 알고 혀를 내둘렀다.
‘젠장. 왕의 교회 전체에서 심판자는 열여섯 놈밖에 없다고 했는데 과연 그럴 만하군! 제발 쫓아오지 마라.’
아자딘은 젝트 경이 추격을 단념하길 바라며 도주하기 시작했다.
아자딘이 도망치자 메이야는 발을 동동 굴렀다.
“어쩌죠? 멀어지고 있는데 너무 빨라요! 지금 추격하지 않으면….”
“괜찮습니다. 느긋하게 쫓아가지요.”
“느긋하게요? 아무리 망령기사가 추격한다지만 상대가 그걸 알고 있으면 무슨 수를 반드시 강구할 텐데요?”
“처음부터 상대가 도망가지 않고 남아서 우리를 상대해 시간을 끈 건 저 사람의 염소, 아니 알파카인가요?”
“케림 산양입니다.”
지벡이 수정해주었다.
“여하튼 저 알파카에 짐이 많기 때문입니다. 당장은 속도를 낼 수 있어도 지구력 면에서는 문제가 있으니까 뒤에 남아서 시간을 끈 거지요.”
털이 많은 케림 산양은 더위에 약하기 때문에 추운 지방이 아니면 말을 따돌릴 수 없다. 당장은 말보다 빠른 속력으로 도망갔지만 결국 지칠 것이고, 무엇보다도 이 근처에서 케림 산양을 타고 다니는 이들은 북방에서 온 이들뿐으로 추적하기가 쉽다.
게다가 그들에게는 망령기사 가즈렉 경이 있지 않은가?
“추적은 전혀 어렵지 않습니다. 문제는 매번 도망치지 못하게 확실히 잡는 방안을 세워야 한다는 거지요. 그리고….”
젝트 경이 건틀렛을 벗었다.
“어?”
피가 주르륵 흘러나오고 있었다.
“설마?”
“네. 방금 그가 휘두른 공격을 막을 때 손가락이 찢어졌습니다. 이거 참 엄청난 위력이군요.”
자신의 손을 바라보고 있는 젝트 경의 손이 덜덜 떨리고 있었다.
“괜찮습니까?”
“물론입니다.”
젝트 경은 자신의 손을 바라보고 주문을 외웠다. 상처의 피가 빠르게 멎었다.
“다행스럽게도 뼈는 상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랬다면 그가 투척한 투검을 걷어내지 못하고 죽었을 테니까요. 역시 전령일족은 만만한 상대가 아니군요.”
젝트 경이 손을 들자 이제 막 걸어서 성기사들을 따라온 하사관들이 창을 가져왔다.
“일 대 일 승부도 재밌긴 하지만 다음번에는 같이 잡도록 합시다. 창을 지니고 있다가 가세하도록 하세요.”
“…….”
“왜 그러십니까, 지벡 경?”
“가즈렉 경이….”
지벡 경이 가리킨 쪽을 보니 가즈렉 경이 몸을 비틀며 괴로워하고 있었다.
“아 그렇군요. 메이야 경!”
“예?”
“하사관들과 함께 도망친 말을 찾아오도록 하세요.”
“아, 알겠습니다.”
그렇게 메이야 경을 다른 곳으로 보낸 후에 젝트 경은 남은 하사관들에게 명했다.
“먹이를 주도록.”
“예!”
하사관들은 길을 벗어난 수풀로 가즈렉 경을 끌고 가서 그곳에서 짐말에 싣고 있던 고깃덩이를 던져주었다.
가즈렉 경은 마치 짐승처럼 그 고기에 달려들어서 뜯어먹는데, 그건 바로 사람의 허벅다리였다.
“…….”
“죽어 마땅한 죄인의 시체입니다. 보기 안 좋다는 건 인정합니다만 어차피 들판에 내다 버려야 할 놈들을 아주 효과적으로 쓰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런 마음가짐은 성기사의 것이 아니라 네크로맨서의 것에 가깝습니다만. 죽어 마땅한 죄인이라면 무슨 죄를 저질렀습니까?”
“성기사 살인죄입니다.”
“…네?”
순간 지벡 경은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그 농부 청년 말입니까?”
가즈렉 경 살해사건 때문에 잡혀 온 청년을 살해해서 저 괴물에게 먹였단 말인가?
지벡 경은 몸서리를 쳤다. 그가 본 수사 보고서는 철저히 왜곡된 것이었지만 그렇기 때문에 알 수 있는 게 있었다. 가즈렉 경이 정말로 민간인들 살해에 손을 댔으며, 그래서 농장 주민들이 보복으로 가즈렉 경과 그 수련기사들을 습격했다.
지벡은 저 청년이 말하던 것이 진실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런데 그 청년을 살해했단 말인가?
그때 젝트 경이 나직이 말했다.
“구난기사단이 얼간이들이긴 하지만 그들의 가르침에는 한 가지 진실이 있습니다.”
“…….”
“우리들의 대륙 밑바닥에서는 강력한 흑색 마력이 지금도 계속 뿜어져 나오고 있습니다. 즉 왕화의 빛이 없으면 모든 시체는 언데드가 된다는 말이지요. 그러니 시체를 먹여서 없애는 건 매우 효과적인 장례 방법인 겁니다.”
“하지만 농부 청년은… 가즈렉 경에게 가족을 살해당했습니다.”
“그래서 성기사에게 손을 댄 것을 용서해주란 말입니까? 그럼 사람들이 물어볼 겁니다. 왜 그는 용서받았습니까? 거기에 대해서 ‘아, 사실 가즈렉 경이 민간인을 학살했습니다.’ 그렇게 말하란 말입니까?”
“…….”
지벡 경은 말문이 막혔다.
그렇다.
왕의 교회의 성기사단이라는 조직을 위해서는 젝트 경이 하는 바가 옳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너무 추악하다. 조직을 위해서 진실을 덮으라니.
“죄는 죄입니다. 가즈렉 경의 잘못은 이미 그가 저런 몰골이 됨으로써 치른 거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리고 성기사에게 손을 댄 농부 청년에게는 뭐 죽음이 적합한 형벌이 되겠지요. 이건 절대로 과한 형벌이 아닙니다. 저 아닌 다른 누구라도 같은 판결을 내렸을 겁니다.”
“메이야 경은 괜찮겠습니까? 이런 모습을 보게 되면….”
“그래서 그녀를 치워두었지요.”
“아무리 그래도….”
“물론 보기 좋은 장면이 아니니 그녀에겐 보이지 않게 하고 있습니다. 지벡 경도 그 점은 배려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너도 함께 입 다물라고 하는 소리였다. 지벡 경은 쓴웃음을 지었다. 문득, 지금 막 도망간 전령일족 아자딘의 행동이 떠올랐다.
백작의 자식에게 살해당한 마을 사람들을 꼼꼼히 장사지내주고 이미 황제의 금화를 손에 넣었음에도 청원자들을 위해서 싸우던 그 모습을 떠올리면 교회의 성기사랍시고 치장한 자신의 모습이 한없이 부끄럽다.
“그럼 가즈렉 경의 상태가 회복되면 추격을 하도록 하지요. 그 전령은 아마 백작이 모아둔 신왕진서 사본을 가지고 있을 겁니다. 절대로 놓쳐서는 안 될 인물이지요.”
인육을 뜯어먹는 망령기사, 가즈렉 경의 몸에서 기이한 변화가 일어났다.
이미 죽어 신진대사가 끊어진 몸, 부패를 막기 위해 내장, 특히 소화기관들을 들어내 더 이상 뭔가를 먹고 소화할 수 없는 몸이 되었을 가즈렉 경의 육체에서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한 것이다.
*********
아자딘은 해가 지고 있는 길을 따라 달리며 숨을 헐떡였다. 마탄에 격중당한 상처가 점점 아파온다.
“도저히 해선 안 될 짓이지만 잠깐 쉴까?”
아자딘은 산양을 멈춰 세웠다. 산양의 체온이 너무 올라 있다.
“엉덩이랑 다리털은 미리 깎아뒀는데도 이렇군. 전신의 털을 다 깎아야겠어.”
아자딘은 그리 말하고 길가에서 옷을 벗기 시작했다. 마탄에 맞은 부위가 멍들었는데 시퍼렇게 내출혈이 벌써 일어나 있었다.
설령 망치에 맞았다 해도 이런 색으로 상처가 멍드는 데는 좀 시간이 걸릴 텐데. 맞은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도 벌써 상처가 이렇게 변색된다는 건 말도 안 된다.
게다가….
-꿈틀.
상처 안쪽에서 뭔가가 움직인다.
“젠장.”
아자딘은 안장가방에서 뭔가를 찾아냈다. 흑요석으로 만든 면도칼이다. 그 칼로 멍든 상처를 째 보았다.
-꾸불텅.
혈액이 뭉쳐져서 만들어진 검붉은 지렁이 같은 게 상처에서 튀어나왔다.
“젠장.”
아자딘은 배낭에서 도자기로 만들어진 작은 병을 꺼내 안의 내용물은 옷자락에 부어 흡수시키고 그 병 안에 검붉은 피지렁이를 넣었다. 다른 상처들도 째서 피지렁이를 뽑아 약병 안에 넣고 마개를 봉했다.
“아니 무슨 성기사가 흑마법을 이렇게 잘 쓰는 거야? 무색 마법인 마탄에 흑마법을 융합해서 쓰다니.”
저 심판자 젝트라는 작자는 독자적으로 마법을 융합할 정도로 뛰어난 마법사다.
“보통 사람이면 이미 죽었겠군.”
마법 저항력이 강한 아자딘이니까 살았지 다른 사람이라면 이런 끔찍한 마탄에 맞는 순간 죽었을 것이다.
아자딘은 흑요석 면도칼로 째서 피가 나는 상처를 조금 전 약을 적신 옷자락으로 닦아내고 연고를 발랐다.
그런 작업을 하고 있을 때였다.
“괜찮아요?”
“…….”
미디암과 이스마일이 길을 돌아온 것이다.
“아니, 내가 도망가라고 했는데….”
“백작 때는 저희가 돌아와서 당신이 살았잖아요.”
“그땐 그랬지. 하지만 그 성기사는 정말 위험하다. 강력한 마법사라서 날 돕다가 오히려 너희가 죽을 수 있어.”
“그럼 어쩌죠? 그 언데드는 계속 당신을 쫓아올 거 아니에요?”
“액막이 인형을 만들어야지.”
아자딘은 산양의 털을 단검으로 잘라서 손으로 꼬아 액막이 인형을 만들고 거기에 자신의 머리카락, 그리고 조금 전 봉인했던 검붉은 피지렁이를 담은 약병을 넣었다.
“대단하군요. 어디서 배운 건가요? 카자스 장로가 가르쳐준 건가요?”
“그래. 나는 카자스 장로가 흑마법을 연구할 때 그의 조수로 일했거든. 마법은 못 쓰지만 지식은 있지. 이걸로 잠깐은 망령기사의 추적을 피할 수 있을 거다. 문제는 이걸 이동시켜야 하는데.”
마침 근처에 횃불을 들고 이동하는 사람이 있어서 아자딘은 그에게 다가갔다.
“뭐, 뭐요?”
아직 해가 완전히 지지 않았지만 어두워지는 시간. 갑자기 길가에서 튀어나와 앞을 막아서니 당황할 수밖에 없다.
“아, 저 실례합니다. 혹시 어디까지 가시나요?”
“왜 물어보시오?”
“전해야 할 물건이 있는데 혹시 남쪽으로 가시면 들어주시겠습니까? 사례는 물론 드립니다.”
아자딘은 그리 말하고 은화를 꺼내서 보여주었다.
“전해야 할 물건 말이오?”
“네. 이걸 남쪽으로 가져가셔서 강물에 던져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은화 다섯 닢 드리죠.”
“다, 다섯 닢 말이오? 음. 뭐 아, 알겠소.”
“절대로 훼손하시면 안 됩니다.”
“그러리다.”
“선불로 지금 드리죠.”
아자딘은 그에게 은화와 액막이 인형을 넘겨주었다. 행인은 갑자기 은화를 벌게 되자 신이 났는지, 아니면 아자딘에게서 빨리 멀어지고 싶었는지 모르겠으나 빠른 걸음으로 아자딘에게서 사라져갔다.
“부디 이 액막이로 그 심판자를 따돌리면 좋겠군.”
“놀랍군요. 두려우신가요? 그가?”
이스마일이 물어왔다. 아자딘은 순순히 인정했다.
“싸움을 두려워해야 한다. 설령 자신의 실력에 아무리 자신 있다 하더라도 불필요한 싸움을 두려워하는 건 현명한 짓이지. 자, 가자. 이 속임수가 통하는 동안 최대한 거리를 벌려둬야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