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ight of the Soulless Unholy RAW novel - Chapter 86
85. 놋쇠의 기사 5
“흠, 절 아십니까?”
젝트 경이 미소를 지으며 반문했다. 그 순간 싸늘한 한기가 젝트 경에게서 뿜어져 나왔다. 얼굴은 웃고 있지만 그는 지금 이 도적에게 불쾌감을 느끼고 있었다.
젝트를 수행해온 성기사들도, 심지어 지금 초면인 도적왕 도네어도 젝트의 심경을 느낄 수 있었다. 도네어는 서둘러서 말을 꺼냈다.
“저는 란타릭 백작의 공작원인 도네어라고 합니다. 단순한 도적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공작 작업의 일환이었습니다.”
“오….”
“젝트 경 당신이 찾고 있는 전령일족은 제가 똑똑히 보았습니다.”
“그렇습니까? 잘됐군요. 안내 부탁드립니다.”
젝트 경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좋아. 살았군. 일단은….’
도네어는 젝트의 살기가 사라지는 걸 느끼며 안도했다. 조금 전 젝트는 도네어가 자신을 본 것만으로도 죽이려는 마음을 품고 있었다.
하지만 그가 란타릭 백작의 공작원이라면? 죽였을 경우 란타릭 백작에게 뭔가 흠집을 잡힐 게 분명하다. 도적들을 토벌했다는 소문이 나지 않을 리 없으니 말이다.
“어서 안내 부탁드립니다.”
“아, 네. 그런데 이게….”
도네어는 휘청거리며 몸을 일으켰다. 허벅다리에서 피가 흘러나온다.
“아, 상처를 입으셨군요. 흠. 뭐 좀 도와드려야겠군요.”
젝트 경이 미소를 지어 보였다.
“아 네. 감사합… 헉?!”
도네어는 경악했다. 젝트 경의 손에서 검붉은 피지렁이 하나가, 아니 이제는 지렁이라기보다는 작은 독사만큼 커진 검붉은 것이 다가왔다.
“안심하십시오. 별거 아닙니다. 상처를 치료해주고 몸에 힘을 좀 줄 뿐입니다.”
“아, 아아.”
검붉은 피의 독사가 도네어의 허벅다리를 파고들었다. 성기사 지벡은 그 광경을 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끄아아아악!”
도네어의 비명 소리가 처참하게 공기를 뒤흔들었다.
*********
나가 요원 샤티는 칼을 찬 채로 지하 감옥에 갇혀 있었다. 도적들이 떠나기 전 그녀의 목에 칼을 채워두었다.
‘꼼짝을 못 하겠네. 이거 왜 이리 튼튼해?’
나가는 보통 인간보다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지만 목에 칼을 찬 채로 힘을 썼다간 자기 목을 스스로 찢을 판이다. 그때 감옥에 사람 발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야, 괜찮을까? 여기 노예들은 두목이 아끼잖아?”
“그러니까 두목 없을 때 잠깐 건드리자니까.”
“그것들이 두목에게 이르면 어쩌고?”
“어차피 이번 주에 다 처리할 거잖아.”
도적들이 두목이 없는 동안 자신들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 온 모양이었다. 그런데 이번 주에 다 처리한다니?
그때 도적들 사이에서 소란이 일어났다. 또 한 명의 발소리가 감옥으로 내려온 것이다.
도적왕 도네어의 지하실, 그곳에 마련된 감옥에 들어온 이는 도네어의 광대 브란드 경이었다.
“어? 뭐야?”
“영감탱이 아니야? 뭐야? 여긴 왜 왔….”
도적들은 그렇게 말하며 웃다가 자신들을 찾아온 노인이 쇠지렛대를 들고 있음을 보고 안색을 고쳤다.
“이봐 영감탱이, 그거 내려놔.”
“아니 무기를 내려놔야 할 것은 그대들이다.”
“뭐?”
그다음 순간 도적들은 자신들이 함정에 빠졌음을 깨달았다. 지하실 복도가 좁아서 피할 곳이 없고, 이 노인은 조롱하기 위해 입혀둔 천갑옷에 놋쇠 식기를 덕지덕지 매달아서 만만치 않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아니!”
도적들이 칼을 뽑으려 했지만 그보다 먼저 노인의 쇠지렛대가 바람을 갈랐다.
‘어떻게 되고 있는 거야?’
샤티는 바깥의 소리를 들었다. 제한된 정보 안에서 상상력을 발휘하니 대부분의 상상이 그리 좋지 않은 방향으로 폭주했다.
하긴 지금 처한 환경에서 좋은 상상을 한다면 그것은 망상일 가능성이 높았다. 임무는 실패하고 동료는 살해당하고 그녀의 목에는 구속구가 채워져 있지 않은가? 그때 문이 열렸다.
“나오시오, 아가씨.”
놋쇠 세숫대야를 투구 대신 뒤집어쓴 광대 노인이 감옥 문을 열었다. 그의 뒤에는 다른 여성들이 배석해 있었는데 그녀처럼 당황하고 있는 인물이 반, 무슨 상황인지 명확히 이해하고 있는 인물이 반이었다.
‘준비된 반란이군. 몇몇 구성원들은 치밀하게 준비했다. 그걸 깨닫지 못한 이들은 신참자들인가?’
샤티는 눈치를 채고 감옥에서 나왔다. 침착한 여성들 사이에서 우두머리로 보이는 여성이 걸어 나왔다. 옷이라 부르기에도 민망한 누더기를 걸친 그녀는 열쇠를 꺼내 그녀의 목에 달린 구속구를 풀어주었다.
“자, 그럼 탈출합시다. 식량과 물자, 옷과 신발 등을 챙기시오. 그러고 나면 여기에 불을 지를 거요.”
“어디로 탈출할 거지요?”
“이 소굴을 빠져나가 란타릭 영지 방면으로 향할 거요. 서쪽으로 물을 따라가면 란타릭 백작의 땅에 당도할 수 있을 거요.”
“일직선이지요. 하지만 다른 길은 없을 것 같군요. 아, 그런데 제 짐은 혹시 없나요? 그 안에 매우 중요한 게 있는데….”
“이걸 찾으시나 보군요.”
누더기를 입은 여성이 샤티의 서류 가방을 집어 들어 보였다.
“아!”
“이건 제가 가지고 있도록 하지요.”
그녀는 그리 말하고 살해당한 도적들의 몸에서 소검을 집어 들었다.
“…….”
칼날을 살짝 뽑아보았다가 칼집에 꽂아 넣고 허리에 매는 모습이 무기를 다루는 게 익숙해 보였다.
“도적들이 하는 말을 들었는데 당신이 나가라더군요. 사실인가요?”
추궁하는 여성의 눈빛이 날카롭다. 칼 다루는 자세나 눈빛을 볼 때 아무래도 만만치 않은 인물인 것 같다.
“맞아요. 위대한 코브라 여왕 데비슬린의 심복이지요. 하지만 저 도적 떼에게 중요한 물건을 빼앗겼으니 그걸 돌려주세요. 그걸 다시 봉하지 않으면….”
“봉하지 않으면 뭐요?”
샤티는 도적들에게 잡혀갈 때 신왕진서 사본의 봉인을 풀어 다시금 추적마법에 걸리도록 해놓았다. 그런데 그걸 다시 봉하지 않으면 결국 추적당할 것이다.
‘하지만 지금 달라고 하면 이것들과 싸워야겠군.’
샤티는 자신을 흘겨보는 여자의 모습을 보고 말을 골랐다.
“일단 저희에게 협력해 주면 그때 가서 이걸 돌려드리지요. 그때까진 제가 맡아두겠습니다.”
탈주 노예 여성은 샤티가 가방에 관심을 보이는 걸 알고 그녀를 제어하기 위한 담보로 가방을 잡아두었다.
“자, 갑시다.”
쇠지렛대를 든 노인이 앞장을 섰다. 여성들은 소굴에서 필요한 물건을 챙기고 불을 질렀다.
‘굳이 이럴 필요가 있나? 오히려 도적들을 불러들이는 거 아냐?’
샤티는 그렇게 생각했지만 곧 왜 불을 질렀는지 알 수 있었다.
도적들의 소굴에서 란타릭 백작령으로 이어지는 길에는 험한 계곡이 자리 잡고 있었는데 그 위에 나무와 밧줄로 만든 현수교가 걸려 있었다.
임시로 만든 현수교가 아닌지 팔뚝보다 두꺼운 삼 밧줄에 철사까지 감겨 있어서 칼로 쳐서 끊으려 하면 칼날이 휘고 튕겨 나갈 정도였다.
놋쇠 세숫대야를 뒤집어쓴 노인은 그 다리에 기름을 붓고 불을 질러 다리를 파괴했다. 아예 소리 소문 없이 도망가면 모르되 어차피 이 다리를 끊을 거라면 연기를 내는 걸 두려워할 이유가 없었다.
그런데 그들이 다리를 불태울 때 도적들 소굴에 일단의 무리가 도착했다. 케림 산양 세 마리를 끌고 온 아자딘 일행이었다.
“안녕하십니까, 여러분.”
“윽. 저, 저자가….”
나가의 요원인 샤티는 이곳까지 추적해온 아자딘을 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저희는 저희에게 중요한 물건을 가지고 있는 저 여성을 잡기 위해 왔습니다. 그녀를 넘겨주시면 대단히 감사하겠습니다만.”
“하, 어이가 없네! 원래 당신 것도 아니잖아?”
“원래 우리 거야! 우리 아라가사의 것이지!”
참다못한 미디암이 그리 말하자 사람들이 의아해했다.
“아라가사? 그게 뭐지?”
“전령일족이라고 말하는 거예요!”
샤티는 아자딘 일행이 전령일족임을 폭로했다.
“그렇다면 적어도 도적들과 한패는 아니로군.”
브란드는 아자딘 일행이 전령일족이라는 말을 듣고 오히려 안심했다.
“어차피 다리를 끊었으니 화살 공격이나 하겠지? 위험하긴 하지만 거리가 꽤 되는 데다가 민간인이…. 응?”
그때 아자딘 일행이 산양에 타고 달리기 시작했다. 비탈길 아래를 달려 내려가던 그들은 곧 절벽을 가볍게 타고 올랐다. 산양들은 말보다 훨씬 험로 주파를 잘해서 말로는 오르는 게 불가능한 절벽도 기어오른다.
“어!”
샤티는 자신 앞에 쇄도하는 아자딘 일행을 보며 당황했다. 험한 절벽을 평지처럼 가볍게 타고 오르는 그 모습은 이미 세상에 널리 알려진 전령일족의 소문에 신빙성을 더해주었다.
하지만 놋쇠 세숫대야의 노인 브란드는 쇠지렛대를 아자딘에게 겨누었다.
“멈춰서게!”
“아하하. 뭐야 이 노인은? 왜 세숫대야를 뒤집어쓰고 있어?”
미디암이 비웃으며 산양 위에서 칼을 뽑으려 했지만 아자딘이 손을 펼쳐 그녀를 제지하고 자신도 멈춰 섰다.
“에?”
“우린 당신들을 해치려는 게 아니라 그녀가 훔쳐 간 물건을 되돌려받고자 하는 겁니다.”
“자네가 도적과 한패가 아니라는 건 알겠네만 곤경에 처한 아녀자가 가진 물건을 무력으로 빼앗고자 하면 용서치 않겠네.”
“왜입니까? 그녀가 당신들과 인연이 깊지도 않을 텐데 왜 그녀를 그렇게까지 믿는 겁니까?”
아자딘은 문득 궁금해졌다. 이들 노인과 탈주 노예 무리는 절대로 여유로운 상태가 아니다.
“수상한 나가 여자를 굳이 무리에 안고 갈 이유가 있습니까?”
“우리는 노약자들뿐이네. 이 중에는 임산부도 있지. 안고 갈 이유가 없다고 버리기 시작하면 결국에는 다들 뿔뿔이 흩어질 뿐이야.”
노인은 쇠지렛대를 아자딘에게 겨누었다.
“그러니 여기서 누구 하나를 버리고 안전을 도모하느니 차라리 싸우다 죽겠네. 설령 자네 말이 맞아 그녀가 도둑일지라도 지금은 물러나 주지 않겠나?”
“하하. 억지를 쓰시는군요. 무리라는 걸 알면서도 그녀를 지키겠다는 겁니까?”
“왜냐면 지금도 이 무릎이 꺾일 것같이 부들부들 떨리고 있기 때문이네. 오기를 부려서라도, 억지를 써서라도 맞서지 않으면 다시 비굴하게 악에 굴복할까 두렵기 때문이네.”
“비굴해지지 않기 위해서 오기를 부린다 이겁니까? 좋습니다.”
아자딘은 케림 산양에서 뛰어내려 착지했다.
싸우려는 것일까?
모두들 두려움에 한 걸음 물러났지만 아자딘은 착지한 채로 예를 표했다.
“백성들의 목소리에 답하는 것이 황제의 전령으로서의 사명이니 당신들을 돕겠습니다.”
“진심인가?”
이번에는 노인이 놀랐다. 뒤에서 이스마일이 투덜거렸다.
“금화도 없는데 굳이….”
“자, 잠깐만요!”
나가 여성 샤티가 반대했다. 아자딘이 말하는 걸 보니 이 탈주 노예 일행과 동행하겠다는 게 아닌가?
“거짓말일 게 당연하잖아요! 저 전령일족은 제 물건을 노리고 같이 행동하려고 아무 말이나 주워 담고 있는 거라고요!”
정작 당황해서 아무 말이나 주워 담고 있는 건 그녀 쪽이었다. 아자딘은 말실수를 하는 샤티를 보며 은근히 압박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