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ight of the Soulless Unholy RAW novel - Chapter 90
89. 블랙애로우 2
“헉?”
“…….”
도네어와 도적들은 수풀에서 등장한 인물을 보며 당황했다.
금색 갑옷을 걸친 성기사가 걸어오는 게 아닌가?
바로 그들을 제압했던 심판자 젝트였다.
“아, 아니 젝트 경. 이, 이건….”
“신왕진서 사본을 찾았군요. 잘하셨습니다. 제게 넘겨주시지요. 아니면 설마, 저 나가 여자의 꾀임에 빠져 시험해 보시겠습니까?”
젝트 경이 웃으며 물었다.
“심판자의 위명이 허상인지 아닌지 확인해 보시겠습니까?”
“…….”
도적들은 당황했다.
‘우리는 지금 불사신의 몸 아냐?’
‘하지만 그런 우리를 불사신으로 만든 게 바로 저 남자….’
‘어.’
도적들은 젝트 경을 바라보면서 침을 꿀꺽 삼켰다.
“넘기시지요. 신왕진서 사본을.”
“그, 그렇게 하겠습니다.”
도네어는 젝트의 위압을 이기지 못하고 신왕진서 사본을 넘겨주었다. 그것을 받아든 젝트는 쓴웃음을 지었다.
“여러분들에게는 좀 실망했습니다. 성기사인 제 손을 더럽히지 않고 처리해줄 거라고 생각했는데.”
“네?”
“아, 아니 그게….”
“목격자를 남기지 말길 바랍니다. 그러면 저는 먼저 가도록 하겠습니다. 란타릭의 성기사단 본부에서 뵙도록 하겠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
-쐐액!
화살이 젝트를 향해 날아들었다.
“아니!”
도네어를 노렸던 이선궁, 아니 그 이상이다. 네 발의 화살이 동시에 사방에서 젝트를 노리고 있었다.
화조풍월 황학, 백학.
마법을 건 화살 두 발에 이선궁까지 포함해서 화살들이 날아들었다.
“흠?”
하지만 젝트는 가볍게 손을 털었다. 그 순간 젝트의 손끝에서 은은한 은색 빛살이 뿜어져 나갔고 날아오는 화살들이 공중에서 폭발해 버렸다.
“재밌는 활 솜씨로군요. 전령일족입니까?”
“그래!”
수풀 속에서 한 소녀가 모습을 드러내었다. 미디암이 화살을 활시위에 건 채로 걸어나왔다. 놀랍게도 당당하게 가슴을 펴고 으쓱대면서 젝트 경을 노려보았다.
“성기사라면서 도적 떼와 손잡고 양민들을 죽게 만들다니, 수치를 모르는 놈이로구나!”
“하하하, 이거 참 당돌하군요, 꼬마 아가씨. 전령일족인 당신이 지금 왕의 교회의 성기사인 제게 훈계를 늘어놓는 겁니까?”
“물론! 나는 미디암 에타르! 황제의 목소리를 전하는 자다! 속된 이들이 우리를 영혼이 없다 부르지만 정말 영혼이 없는 건 네놈들이 아니더냐!”
미디암은 그리 말하고 활을 젝트에게 겨누었다.
“타락하여 잔악무도한 도적 떼의 일부가 된 놈이 성기사를 자칭하다니 불손하다! 황제를 대신해 천벌을 내려주마!”
“하하하! 귀엽군요.”
젝트는 자신에게 활을 겨누고 있음에도 전혀 긴장하지 않고 오히려 재밌다는 듯 미디암의 호들갑을 지켜보았다. 그는 일부러 과장되게 말하는 미디암의 목소리와 행동에 흥미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좋아, 걸렸어!’
미디암이 활을 발사했다. 그와 동시에 나무 위로 이동하던 이스마일이 검을 들고 상공에서 급강하해 젝트 경을 노렸다.
“귀엽군요.”
젝트 경이 손을 펼치자 은색의 섬광이 각각 미디암과 이스마일을 향해 날아갔다.
-캉!
이스마일의 칼에 뭔가가 충돌하면서 칼날이 일곱 토막으로 부러지고 미디암이 발사한 화살도 공중에서 폭발했다. 그리고….
-퍽!
뭔가가 미디암의 몸을 꿰뚫었다.
“윽?!”
미디암은 그제야 자신의 몸을 꿰뚫은 게 뭔지 발견했다. 그것은 가느다란 실을 꿴 바늘이었다.
‘마, 말도 안 돼! 바늘이… 내 몸을 관통했어?’
워낙 굵기가 가늘어서 배를 관통해 몸을 꿰뚫었음에도 불구하고 약간의 아픔밖에 느껴지지 않는다. 하지만 실이 몸을 관통한 상태다.
“섣불리 움직이지 마시길. 이대로 제가 실에 조금만 힘을 주면….”
“아악!”
미디암은 갑자기 복부를 통해 전신을 태우는 듯한 고통이 밀려오자 비명을 질렀다.
“미디암!”
당황한 이스마일이 젝트 경에게 뛰어들려고 했지만 그가 또 실과 바늘을 날렸다.
-화조풍월, 어스름!
이스마일이 머리로 날아드는 실을 피하자마자 둔중한 굉음과 함께 아름드리나무가 관통당했다. 바늘이 아름드리나무를 꿰뚫은 것이었다. 게다가….
“흡!”
젝트가 가볍게 실을 흔들자.
-위이잉.
실이 진동하고 그와 동시에 나무가 폭발하듯 부서지며 중간이 뚝 부러져 버렸다.
“아!”
미디암은 그 광경을 보며 경악했다. 젝트의 실과 바늘에 관통당한 지금, 젝트가 저 짓을 하면 미디암은 시체조차 남기지 않고 박살 나리라.
미디암에게 고통을 주는 건 그녀를 죽이지 않기 위해서 힘 조절을 하는 것일 뿐, 젝트가 원한다면 언제든지 미디암을 산산조각 내고도 남으리라.
“헉.”
보고 있던 도적들도 혀를 내둘렀다.
“이게 시, 심판자.”
“맙소사.”
도적들은 화살을 맞아도 끄떡없는 몸을 얻어서 자신감이 부풀어 있던 상태였다. 하지만 젝트 경이 펼치는 힘을 보자니 그따위 몸으로 덤벼봤자 상대도 안 될 게 뻔했다.
“젠장!”
이스마일은 화살을 쏘면서 빈틈을 노리려 했지만 젝트가 실을 흔들자 허공에서 충격이 일어나며 화살들이 공중에서 부서져 버린다. 살짝 실에 스치기만 해도 강철 촉을 지닌 화살이 바스러졌다.
-퍽!
결국 이스마일도 바늘이 격중 당했다.
“아아악!”
팔을 꿰뚫은 바늘에 꿰여 이스마일이 비명을 질렀다. 바늘이 키가 큰 나무 위로 날아 올라 가지를 휘감으니 이스마일의 팔이 하늘로 들어 올려지며 발이 공중에서 떴다.
지면에 양발을 딛고 있는 미디암과 달리 허공에 매달린 이스마일은 실에 체중이 걸리면서 상처가 찢어지려고 한다. 당황한 이스마일은 얼른 실과 상처를 함께 손으로 움켜잡아 팔뚝이 찢어지는 걸 방지했다. 하지만 실에 꿰인 상처가 찢어지며 피가 실을 타고 흘렀다.
“이, 이게….”
이스마일도 미디암도 순식간에 젝트에게 제압당해 버렸다.
*********
젝트는 이스마일과 미디암을 제압할 뿐, 죽이려는 마음은 없어 보였다.
절대 강자의 여유라는 것일까?
이스마일이나 미디암이 무슨 수를 쓰더라도 그에겐 아무런 위협도, 방해도 되지 않기에 마치 어린아이의 재롱을 바라보는 부모처럼 관대한 시선으로 그들을 보고 있었다.
‘이상해. 미쳤어. 이놈은.’
그런 녀석이 어째서 도적 떼가 무고한 민간인들을 유린하는 걸 그대로 보고 있는단 말인가?
미디암은 자신에게 다가오는 젝트를 보며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아직 어린 소년 소녀 같은데 기개가 대단하군요. 전령일족 따위로 두기엔 아까운데 이제부터 제 제자가 되는 건 어떻습니까?”
“제안은 고맙지만 사양하겠어. 긍지 높은 에타르의 딸이 목숨을 구걸하겠다고 개새끼의 제자가 될 수는 없거든!”
“그렇습니까?”
또 하나의 실과 바늘이 날아와 미디암의 허벅지를 꿰뚫었다.
“큭!”
“기개 좋은 전령일족도 좋지만 굳이 둘 다 살려줄 필요는 없지요. 둘 중 하나만 수집품으로 삼겠습니다. 자, 누가 살고 누가 죽겠습니까?”
젝트가 그렇게 묻자 미디암과 이스마일 모두 눈에 불을 켰다. 죽을 위기에 처했음에도 둘 다 투지가 꺾이지 않는 모습을 보며 젝트는 다시금 감탄했다.
“이거 그냥은 설득이 불가능하겠군요. 그렇다면 뇌수를 좀 만져주면….”
그때 또 한 발의 화살이 날아들었다.
“쓸데없는 짓을!”
젝트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바늘을 날렸지만 화살과 바늘이 충돌하는 순간 이변이 일어났다.
-팅!
화살이 바늘을 튕기고 그대로 날아들었다.
“음?!”
놀란 젝트의 손바닥 근처까지 날아온 화살이 폭발하자 이스마일과 미디암을 구속하던 실의 장력이 사라져 이스마일은 다시 지상에 착지할 수 있었다.
“호오?”
젝트는 자신의 손을 펼쳐보았다. 그의 손에 들려 있는 실패가 덜덜덜 떨리고 있었다. 방금 화살을 튕겨내느라 손이 진동한다. 떨림은 이내 잦아들었지만 상대가 만만치 않다.
그때 미디암과 이스마일이 실에서 해방되었다. 아자딘이 비도를 날려 미디암과 이스마일을 구속하고 있던 실을 끊어낸 것이었다.
“아자딘!”
“오셨군요.”
아자딘에게 불만을 품고 있던 이스마일도 지금 이 순간만은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훌륭했다, 미디암 이스마일. 너희들이 자랑스럽구나.”
아자딘은 미디암과 이스마일을 칭찬했다. 미디암이 젝트의 주의를 끌기 위해 전령의 기개를 보인 것을 들은 모양이었다.
“그런 반면 심판자 젝트라는 작자는 어린아이들이나 괴롭히고 있군. 왕의 교회는 품위라는 게 없나?”
“재미있군요. 이번엔 도망치지 않고 덤벼들기로 했습니까, 전령?”
젝트는 아자딘이 지금까지 자신을 피해 도망친 것을 두고 비웃었다.
‘확실히, 아자딘은 이 심판자를 꺼려 했지.’
미디암도 이스마일도 이제 왜 아자딘이 심판자를 피해 다녔는지 알아챘다. 지금까지 심판자를 피해 도망치던 아자딘이 태연하게 대꾸했다.
“세상이 어지러우니까 심판자쯤 되는 인물을 죽여버리면 혼란이 가중될까 봐 참고 있었을 뿐이야. 너희 같은 것도 쿠르트 신족이나 마물들을 상대할 때는 쓸 만하니까.”
“하하하.”
“하지만 민간인이나 어린아이들을 괴롭히는 건 좀 아니지.”
“저 소년 소녀는 조혼 풍습이 있는 지방에서는 벌써 한두 아이의 부모가 되고도 남을 걸로 보입니다. 어린아이를 괴롭혔다고 비난받을 만한 일은 아닐 텐데요?”
“알 게 뭐야? 남의 동네 풍습 따위.”
“타문화권의 풍습을 무시하면 좋은 소리 못 듣습니다.”
“그럼 당신도 일찍 장례 치르는 동네에서는 벌써 관짝에 드러누워야 할 나이 같은데? 지금 당장 죽어서 그런 지방의 풍습을 몸소 존중해줄 생각은 없나?”
“…그런 지방이 있습니까? 어디?”
“아, 하여튼 있어. 있다고.”
아자딘은 억지를 부리고는 미디암과 이스마일에게 신호했다.
“내가 저놈을 맡을 테니까 너희는 사람들을 이끌고 도망치도록 해라.”
“네?!”
“혼자서 심판자를 상대하겠다고요?”
“그래.”
아자딘은 그리 말하고 숲으로 몸을 날렸다.
“아니 기껏 멋지게 등장하고 도망이라니!”
젝트가 어이없어할 때 그의 얼굴을 향해 화살이 날아들었다. 깜짝 놀란 젝트가 고개를 틀어 피했지만 화살 역시 공중에서 방향을 틀어 그가 피하는 방향으로 마치 급류 속 물고기처럼 스스로 방향을 틀어 날아든다.
-팍!
젝트의 갑옷에 화살이 미끄러지며 그 위에 커다란 상처를 남겼다. 엄청난 강궁이라 화살촉이 갑옷을 찢다시피한 것이다.
“갑옷이 살려줬군.”
아자딘이 빈정거렸다.
“이거 실례했군요.”
젝트는 아자딘의 전략이 자신의 예상 이상으로 까다롭다는 걸 깨닫고 혀를 찼다.
*********
“대단해.”
미디암은 자신들을 고전시킨 젝트의 바늘을 단박에 격추시킨 아자딘의 활 솜씨에 놀라고 있었다. 이스마일은 상처를 지혈하며 투덜거렸다.
“그냥 강궁을 쓴 거 아닙니까? 저도 성장하면 저 정도는…. 아니 흑강전(黑鋼箭)을 쓴다면 지금이라도….”
“이스마일은 아자딘 일이라면 항상 불만이네?”
“애초에 당신이 저 남자에게 이상한 영향을 받아서 심판자 상대로 도망치지도 않고 정면승부를 걸어서 이 모양이 된 거 아닙니까.”
“하지만 칭찬받았잖아?”
“…….”
바로 그 점이 문제다.
미디암은 원래 다른 사람의 인정이나 칭찬 따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에타르 혈족의 영애인 그녀에게 잘 보이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많았기에 사람들의 칭찬을 그녀는 곧 아부나 당연한 소리로 치부해왔다.
그런데 아자딘의 영향을 이렇게 받아서 그처럼 말하고, 그처럼 행동하고 그에게 칭찬받는 것에 기뻐하다니. 무엇보다 짜증 나는 건….
‘저 녀석이 칭찬할 때, 나도 살짝 기뻤어….’
그게 너무나 참을 수 없이 화가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