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ight of the Soulless Unholy RAW novel - Chapter 93
92. 아라엘 지파 2
-쐐액!
바람을 찢으며 날아간 화살은 정확하게 후방에서 민간인들을 휘몰아치던 병사의 머리를 꿰뚫었다.
“흡!”
미디암은 연거푸 화살을 날려 사람들을 전선으로 내모는 병사들을 노렸고, 쏘는 족족 그들이 쓰러졌다.
“방패병!”
보통 화살이 닿지 않는 거리라 별다른 경계심 없이 백성들을 화살받이로 내세우던 병사들은 그제야 기겁해서 방패를 들어 목을 지켰다.
타인을 위험에 내몰고 뒤에서 웃으며 지켜보던 이들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사라지는 순간.
“아하하하!”
미디암은 폭소를 터뜨리며 성벽 위에서 당당히 서 있었다.
그래, 그 남자는 틀리지 않았다.
백성을 지키는 모습은 아름답다.
아직 세상 더러움을 모르고 오로지 올곧기만 한 미디암의 모습에서 이스마일은 더할 나위 없는 아름다움을 보았다. 긍지와 용기, 순수한 열정의 화신이 아침 햇살 아래 반짝인다.
어찌 매혹되지 않을 수 있을까?
하지만 이 아름다움에 드리워진 것은 그 남자의 그림자다. 아자딘이 미디암에게 얼마나 큰 영향을 주었는지 알게 되기에 이스마일은 지금 이 상황을 온전히 즐길 수 없었다.
무엇보다 병사 몇몇 쓰러뜨렸다고 해서 상황이 나아질 것도 아니고. 오히려 이 활약은 그녀와 이스마일의 입장을 더욱더 악화시킬 테니까.
*********
미디암이 적 병사들의 접근을 막는 동안 이스마일은 성안 병사들에게 부탁해 성문을 잠깐 동안 열게 했다.
“성문을 열라니 미쳤어?”
“어디 꼬맹이가!”
“…아니 야, 잠깐. 이놈 그거래.”
“그거가 뭔데?”
“전령일족.”
“어? 뭐?! 전령이면 그 영혼 없는 괴물?”
“…….”
“야 듣겠다.”
‘아니 귀머거리 아니면 다 들리지. 하여튼 휘브리스 백성 놈들 하곤….’
이스마일의 강요에 병사들이 마지못해 주 성문이 아닌 부 성문을 잠깐 열자 이스마일은 작은 단도를 사람들에게 내주었다.
그러자 방금까지 내몰려 성벽을 공격하던 사람들이 단도로 밧줄을 끊고 요새 안으로 들어왔다. 그러나 전부가 다 들어오진 않았다.
“왜 안 들어오지? 지금 준 칼로 발목의 밧줄을 자르고 들어와!”
“우리 가족이 인질로 잡혀 있습니다!”
“아이들을 두고 와서 지금 성문 안에 들어가면 저희 애들을 죽일 겁니다.”
그들은 성문 안으로 피신하는 것은 거부했지만 무기로 성문을 갉아내는 것 또한 하는 둥 마는 둥 했다. 미디암이 화살로 병사들의 접근을 막는 동안 의도적으로 태업을 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병사들이 창칼로 위협하면 또 금방 들이닥치겠지.
“할 수 없군. 닫으세요.”
이스마일은 다시 성문을 닫게 하고 물러났다.
*********
마치 주머니 안 송곳이 스스로 튀어나오듯, 아직 어린 소년 소녀가 이렇게 활약하니 자연히 그들에 대한 이야기도 흐를 수밖에 없었다.
“전령일족이라고?”
“그래. 저기 그 도적 떼한테 탈출한 여자들 있잖아? 그녀들이 하는 말인데….”
“전령일족이라면 영혼 없는 불경자들이잖아? 그런데… 예쁘게 생겼네?”
그들은 이스마일과 미디암에 대해서 함부로 이야기하고 있었고, 그 이야기가 이스마일의 귀에도 들어왔다.
‘젠장. 우리가 구조한 여자들이 우리에 대해서 떠들고 있군.’
이스마일과 미디암이 구출해 여기까지 끌고 온 사람들은 입단속이라는 걸 아예 모르는 듯했다. 사람들이 생각이라는 게 있음 입을 다물어줘야지. 대뜸 저 아이들은 전령일족이다, 이렇게 말해 버리는 걸 보면 속에서 열불이 치솟는다.
물론 머리로는 알고 있다. 저 여자들은 그저 평범한 양민들이다. 전투 훈련도 받지 않았고 교육도 제대로 받지 않아서 상당수는 문맹이다.
그런 사람들의 생각이 깊기를 바라는 건 어불성설. 그저 물으니 답하고 그 와중에 미디암과 이스마일의 신분을 별생각 없이 노출시켰으리라.
“저, 전령일족이라니 자, 잘됐군!”
“우릴 살려줘!”
이 요새를 지켜야 할 병사들은 이스마일과 미디암이 전령일족이라는 게 알려지자 오히려 그들에게 자신들을 의탁했다.
지금이야 란타릭 백작의 군대가 몰려와 코앞에서 위협을 가하고 있으니 그러는 거겠지만, 이 위협이 가시면 이들도 이스마일과 미디암이 전령일족이라는 것을 잊지 않고 틀림없이 누군가에게 말하겠지.
이스마일은 아무리 생각해도 이들, 휘브리스 백성들을 좋아할 수 없었다. 하지만 미디암은 달랐다.
“화살과 활을 가져오세요.”
미디암은 그들에게 보급을 받기로 하고 연거푸 화살을 날려 방패로 몸을 지키고 있는 병사들을 위협해 물러나게 했다.
“너무 활을 많이 쏘면 손이 상합니다. 이미 어젯밤에도 꽤 강행군을 했는데….”
이스마일은 미디암을 쉬게 하고 자신이 망루에 섰다.
“숨을 돌리세요. 할 수 있다면 눈을 좀 붙이는 것도 좋을 겁니다.”
“그래, 고마워 이스마일.”
미디암은 이스마일에게 뒤를 맡기고 물러났다. 병사로 보이는 이가 물통에서 국자로 물을 떠서 미디암에게 건넸다.
“괘, 괜찮나 아가씨?”
“물론이죠.”
미디암은 기꺼이 그 물을 받아서 마셨다. 약을 탔을지도 모르지만 미디암은 기꺼이 물을 받아마셔서 자신이 이들을 신뢰하고 있음을 증명해 보였다.
*********
정오가 될 때까지 란타릭 백작의 병사들은 가끔씩 간을 보기 위해 접근해 왔다가 이스마일의 화살에 맞고 물러나는 것을 반복했다.
이스마일은 활을 쥔 채 휴식을 취하다가 주위 병사들이 깨우면 일어나 화살을 날리는 걸 반복했다. 어젯밤 강행군을 펼쳐 그도 미디암도 많이 지쳐 있었지만 화살로 상대를 위협해 함부로 들이닥치지 못하게 하는 것만으로도 이쪽의 사기에 큰 도움이 되었다.
하지만….
‘뭔가 노리고 있군.’
이스마일은 상대의 반응을 보고 그들이 다른 수가 있음을 눈치챘다.
‘공성병기를 안 끌고 왔다고 해도 이 요새를 정말 함락시키고자 한다면 사람들을 때려 박아서 어떻게든 함락시켰을 거야. 여기서 이러고 있다는 건… 앗?’
이스마일은 갑자기 등 뒤에 서늘한 살기를 느끼고 돌아보았다. 그곳에는 역시 전령 가면을 쓴 남자가 망루 위에 서 있었다.
아자딘은 아니다. 그는 상당히 큰 키를 가지고 있지만 이 남자는 아자딘 못지않은 키에 옆으로도 엄청나게 거대한 체구를 가지고 있었다. 얼마나 거대하냐면 전령일족의 월각궁을 허리에 차지 못하고 다리에 각반처럼 차고 있을 지경이었다.
특이하게도 다리 하나에 활을 두 개씩, 총 네 개를 가지고 다니는 모습이 인상 깊었다.
“안녕, 꼬마야. 우리 아라가사구나.”
“다, 당신은?”
“흠. 그런데 너희는 전령이 아니라 종사지? 전령은 어딨지? 너희를 관리하는 전령은 누구야?”
“저희는 108령 아자딘의 종사입니다.”
“아자딘… 무안의 아자딘 말이야?”
그는 아자딘의 이름을 듣고 놀랐다.
“아, 대단한데? 그런 놈도 종사가 있구나. 너희는 종사치고는 꽤 똘똘한 것 같은데. 아자딘 놈에게는 아깝군.”
“당신은 누구십니까?”
“이거 실망인데. 날 모르나? 동기들 사이에서 나 모르는 놈 없는데. 나는 94령 카흐산이다.”
“카흐산….”
“활 부수는 카흐산이라고 하면 유명할 텐데.”
카흐산은 그리 말하며 팔에 힘을 줘 근육을 부풀려 보였다. 보기만 해도 무시무시한 근육이다. 인간이라기보다는 말이나 거대한 사냥개의 군살 없는 육질을 연상케 한다. 그 모습은 야만성과 폭력을 사람의 형상으로 빚어 놓은 것 같다.
“…….”
힘이 세서 월각궁을 잘 부순다. 그런 의미에서의 별명이지만 전령일족에게 활이 깨지는 건 마냥 칭찬은 아니다. 활을 부러뜨린다는 건 부주의한 놈, 미숙한 놈이라는 욕이기도 했다.
“이거 곤란하구만. 란타릭 백작이 우리 쪽 고객이라서 말야.”
“설마 백작이 청원자입니까? 하지만….”
금화의 청원제도는 백성들이 억울함을 해소하기 위한 황제의 염원이 담겨 있는 것이다. 귀족들 간의 영토 분쟁, 권력 다툼에 그것이 작동해서야 황제의 염원이 헛되지 않겠는가?
살라스마 변경백의 사생아, 타르키가 금화의 청원자가 되었을 때 아자딘이 불만을 표했던 것은 바로 그 때문이었다.
보통 귀족이 금화의 청원자가 되는 일은 매우 드물다. 하물며 란타릭 백작처럼 노골적으로 영토 욕심에 전쟁을 일으킨 자가 금화의 청원자일 리가 없다.
“물론 금화의 청원자는 아니지. 하지만 다른 이유로 고객이 될 수 있는 거잖아?”
“…….”
이스마일은 카흐산의 말을 듣고 눈살을 찌푸렸다. 말하자면 카흐산은 금화의 계약이 아니라 다른 이유로 란타릭 백작과 결탁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말인데, 물러나 줄 수 있겠냐? 아자딘은 어디 있어? 아자딘과 이야기해 보고 싶은데? 아라엘 님의 동생이잖아 그 녀석?”
“그게….”
“흠. 보아하니 여기 없나 보군. 웃기는 놈일세. 종사에게 성을 지키게 하고 정작 자신은 없어?”
카흐산은 이야기가 안 통하니 답답해했다.
“그럼 뭐 아자딘 따위에게 방해받는 것도 모욕이 될 테니까 일단 처리해볼까?”
카흐산은 그와 동시에 질주했다.
-화조풍월, 어스름!
그 거구가 마치 유령처럼 흔들거리며 환영과 함께 달려든다. 그야말로 완벽한 기습이었다. 그러나 이스마일은 대비하고 있었다.
‘아자딘의 평판을 생각하면 나라고 해도 내 일과 아자딘의 일이 충돌할 경우 무력으로 해결하고 싶을 테니까.’
이스마일은 성벽 밖으로 몸을 날려서 카흐산의 접근을 피하고 요새 외벽에 걸린 살라스마의 깃발을 잡고 스윙을 해서 다시 성벽 위로 돌아왔다.
“와우! 제법인데?”
카흐산은 이스마일이 재주도 좋게 자신의 돌격을 피한 걸 보며 감탄했다.
“카흐산!”
그때 등 뒤에서 소녀의 목소리가 들렸다. 휴식을 취하고 있던 미디암이 깨어난 것이다.
“음!”
카흐산이 목소리가 들린 곳으로 돌아보았지만 그곳에는 벗어둔 외투가 떨리면서 혼자서 말을 하고 있었다. 화조풍월의 마법, 뻐꾸기였다.
“아하!”
관자놀이를 향해 화살이 날아들었다. 카흐산은 손을 펼쳐 날아드는 화살을 옆으로 쳐냈다. 그 순간 전기 충격이 카흐산의 몸을 관통했다. 벽뢰가 걸린 화살이었다.
“오!”
카흐산은 전기 충격에 감전되어 팔다리의 맥이 풀리는 상황에서도 웃고 있었다.
“내게 쓰러져도 너무 부끄러워하지 않아도 된다. 나는 에타르의 미디암이니까!”
미디암은 전기 충격에 마비된 카흐산의 목줄기를 노리고 다시 화살을 날렸다. 하지만 카흐산이 언제 전격에 맞았냐는 듯 펄떡 움직이며 미디암의 화살 공격을 피해냈다. 그리고….
“에타르라고?”
카흐산이 지면을 발로 구르자 굉음과 함께 성벽 위쪽 벽돌이 일어났다. 벽돌이라고 해도 한 개가 사람 다리 하나만 한 커다란 돌이다.
“윽!?”
미디암이 당황할 때 카흐산이 어느새 그녀 앞에 접근해 있었다. 급한 대로 미디암이 검을 뽑아 휘둘렀다. 그러나 카흐산은 미디암의 칼을 손날로 간단히 내리쳐 부숴 버리고, 그녀를 붙잡아 요새 밖으로 던져 버렸다.
이 요새 망루의 높이는 아무리 전령일족이라고 해도 그냥 뛰어내릴 수 있는 높이가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