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ight of the Soulless Unholy RAW novel - Chapter 97
96. 아라엘 지파 6
아자딘과 아라엘은 한 배에서 태어난 쌍둥이.
아라엘은 본래 아자딘의 것이어야 할 화조풍월의 마도서를 뜯어가 전령일족 역사상 유래 없는 최강의 마력을 지니고 태어났다. 그에 반해 아자딘은 변변한 마법 하나 못 쓰고 눈조차 없는 기형아로 태어났다.
본래 자신의 것이었어야 할 재능까지 빼앗고 태어난 쌍둥이를 증오하지 말라는 건 매우 어려운 요구다. 아자딘 또한 예외는 아니라서 그는 아라엘이 미웠다. 하지만 그런 한편으로는 인정하는 게 있었다.
만인을 휘어잡는 매력과 힘.
그러나 그런 매력과 힘도 의문이 든다.
“무슨 이유가 있어야 백성들을 저렇게 함부로 죽이는 놈에게 협력하는 게 정당화되지?”
공기 중에 피 냄새와 타는 냄새가 섞여 있었다. 이 요새 망루에 올라서서 주위를 둘러보면 불타고 있는 마을들의 연기가 여럿 보인다.
란타릭 백작의 군대는 이미 주위를 약탈하고 많은 이들을 죽였다. 두말할 것 없는 쓰레기다. 설사 어떤 슬픈 사연이 있다고 해도, 아라엘은 저런 용납할 수 없는 짓을 하는 놈과 손을 잡았는가?
“여기 방어는 잠시 동안 내가 맡겠다. 불만 있나?”
“어, 음.”
“우린 불만 없수다.”
망루의 병사들, 그리고 요새 경비대장조차 굴복했다.
평시라면 전령일족처럼 수상한 존재에게 자신의 목줄을 맡기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이 상황에서 믿을 수 있는 것은 저 수상한 전령일족뿐이다.
“그럼 요새 안 화살들을 가져와서 여기 쌓아두도록! 병사들은 전부 흉벽에서 물러나!”
아자딘은 스스로 성벽 위에 섰다. 바람 가르는 소리와 함께 화살들이 아자딘을 향해 날아들었다. 그러나 아자딘은 망토를 휘둘러 날아오는 화살들을 쳐냈다.
힘을 잃은 화살들이 요새 위에 차곡차곡 쌓이고 그중 하나는 아자딘의 손에 쥐어졌다.
-쐐액!
아자딘이 화살을 되쏘았다. 다가오는 병사들을 향해 날아간 화살이 휘어지더니 지면에 낮게 깔리며 공성추를 들고 이동하는 병사들을 덮쳤다.
-퍼억!
활의 위력이 어찌나 강한지 화살이 사람 하나를 뚫고 그다음 사람마저 관통했다.
“으악!”
“바, 방패병은 뭐 하는 거야!”
“젠장! 위에서 쐈는데 왜 앞에서 오냐고!”
병사들이 비명을 질렀지만 아자딘이 또 화살을 연거푸 쏘았다.
-쐐애애액!
바람 가르는 소리와 함께 공성추 운반병들의 오른쪽 한 열이 전부 쓰러졌다. 운반병의 한 축이 사라지자 반대쪽 측에선 공성추를 놓칠 수밖에 없었고, 자신들이 떨어뜨린 공성추에 발이 찧이거나 심지어 깔리는 이도 있었다.
“크악!”
“제, 젠장!”
“말도 안 돼!”
공성추 운반병들이 쓰러지자 하사관들이 방패를 집어 들고 병사들을 독려했다.
“방패병! 공성추를 지켜라! 병사들! 가서 공성추를 들어!”
“…….”
하지만 병사들의 얼굴에 공포가 가득했다.
공성추를 집으면 집중포화의 대상이 된다. 죽고 싶으면 공성추에 붙어봐라.
아자딘은 화살로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저까짓 화살쯤 방패로 막으면 되잖….”
-퍽!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방패를 들고 있던 하사관의 턱이 날아갔다. 방패 틈 사이로 날아온 화살이 하사관의 턱을 날려 버린 것이다.
“흐아아아아!”
턱이 날아간 하사관이 비명을 지르며 주저앉았다.
“공성추는 포기해! 그냥 도끼로 찍자!”
“방패랑 도끼를 들어!”
병사들이 방패를 머리 위로 들고 요새를 향해 달려갔다. 그러나 이번에는 요새 창문 쪽에서 화살이 날아왔다.
화살은 이스마일과 미디암이 쏘았는데 여기에는 전령일족의 마법이 걸려 있어서 아자딘의 화살보다 훨씬 자유자재로 움직이며 다가오는 병사들을 유린했다.
“우리 쪽 궁사들은 뭐해! 쏴라!”
란타릭의 궁사들이 요새 위로, 그리고 창문을 향해 화살을 쏘아보지만 아자딘은 날아오는 화살을 잡아서 그대로 자신의 활에 걸고 되쏘았다.
-퍼억!
또 병사가 쓰러진다. 대놓고 화살을 잡고 되쏘는 모습을 보여주니 궁사들로서는 사기가 꺾일 수밖에 없었다.
“저, 저거….”
“우리가 쏴봤자 화살만 보급해줄 뿐 아닌가?”
“가, 갈 수가 없어!”
“바보냐! 상대는 고작 한 놈인데 성문에 접근도 못 한다고?”
그러나 지금 잠깐의 접전으로 병사 열 명 정도가 쓰러졌다.
사망 다섯, 부상 다섯.
얼마 되지 않아도 열 명은 현재 이곳에 집결한 란타릭 백작의 전체병력 중 5퍼센트가 된다. 짧은 시간에 잃은 인명치고는 너무 많다. 병사들의 사기는 한없이 밑바닥으로 추락할 수밖에 없었다.
“이게 전령일족인가!”
“정말 끔찍한 괴물이로군!”
병사들은 제발 자신에게 화살이 날아오지 않길 신들에게 기도할 수밖에 없었다.
*********
“뭣들 하는 건가, 전령일족!”
란타릭 백작 가르나헤어는 이 상황에도 수수방관하는 전령일족들에게 분개했다.
“저희들도 쏘고는 있습니다만.”
“요새 위로 쏘는 건 낭비거든요. 저놈도 우리 일족이라 날아오는 화살에 힘이 안 실리면 잡아서 되쏩니다.”
“저희가 여기서 쏴봤자 화살만 공급해줄 뿐이지요.”
란타릭 백작 측의 전령일족들도 성벽 위로 화살을 날렸지만 고저차 때문인지 화살의 위력이 급감하는지라 별다른 피해를 입히지 못하고 있었다.
물론 화살에 마법을 걸어서 쏘면 이야기가 달라지겠지만 여기의 전령일족들은 란타릭 백작에게 충성하는 입장이 아니다. 공통의 이익을 위해 잠시 손잡았을 뿐인 느슨한 동맹관계다.
“그래서 저는 밤에 해가 지면 공략하는 걸 추천 드렸습니다. 만약 시간적 여유가 없어서 대낮에 당당히 요새 공략에 나설 거라면 전 병력을 쇄도시켜 단번에 끝내야 한다고도 했었지요.”
네프티가 말하자 란타릭 백작이 입을 다물었다.
네프티가 그리 조언한 것은 사실이었다. 그러나 란타릭 백작은 조언을 무시하고 저까짓 요새쯤 바로 떨어뜨릴 수 있다고 호언장담하며 공성추 부대를 따로 떼어 돌격시켰다. 저런 작은 요새를 향해 전 병력이 우르르 달려들어 도끼로 문짝을 찍는 건 병력 낭비라고 보았던 것이다.
그 결과가 이거였다. 병사들의 사기가 떨어진 탓에 지금 뭐 해본 것도 없이 공세종말점에 도달해 버렸다. 네프티는 그걸로 은근히 백작을 비난하고 있었다.
‘감히 날 비난해?’
대귀족인 가르나헤어는 비난에 익숙하지 않다. 그러나 전령일족의 강력함은 뼈저리게 느끼게 되었으니 그들을 함부로 대할 수도 없다.
“잘도 쏘는군. 혼자 쏘는데 능히 궁사 열 명분을 해내는구만. 대체 전령일족은 저걸 얼마나 쏠 수 있지?”
“하루에 약 천 발 정도는 너끈히 쏩니다.”
“하루에 천 발? 저렇게 강궁인데?”
애쉬우드 장궁을 쓰는 숙련된 궁사들도 하루에 백 발 정도 쏘고 나면 탈진해서 입에서 침을 질질 흘릴 정도다. 그런데 천 발이라니?
‘허풍 떠는 거 아닌가? 아니 하지만 사실이라면 병력을 아무리 때려 박아도 힘들겠군? 투석기를 만들어야 공성이 가능하겠어! 그러나 제대로 된 성도 아니고 그냥 경비초소 같은 요새인데….’
본래는 투석기 같은 걸 조립할 필요도 없는 하찮은 요새에 불과했다. 그런 요새에 명궁인 전령일족이 들어서자 난공불락의 요새로 탈바꿈해 버렸다.
‘그 녀석이 성문을 여는 조건으로 교섭을 걸면서 자신만만했던 이유가 있었군.’
가르나헤어는 자신이 실수를 범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일단 밤이 되길 기다려 주시지요. 그러면 저희 일족이 요새에 직접 잠입해 해결하겠습니다.”
“잠입한다고?”
“저런 요새 벽은 평지처럼 기어오를 수 있습니다.”
“으음, 알겠다. 병사를 물리도록 하지. 이 이상 돌격시켜봐야 병력만 날릴 테니 말이다.”
사오십 발 정도 쏘고 지친다면 병력을 많이 들이부어서 요새를 부술 수 있겠지만 천 발을 쏴야 지친다면 파상공격도 무의미하다.
“그럼 저희도 물러나서 쉬어도 되겠습니까? 밤에 움직이려면 지금 쉬어줘야….”
“그렇게 해라.”
란타릭 백작은 불쾌해하면서도 휴식을 허가해주고 병력을 물렸다.
*********
전령일족의 젊은 청년 야라빈은 네프티의 하인이었다. 종사가 되길 포기했지만 네프티 밑에서 독자적으로 상업과 정보수집 활동을 하는 그는 전령일족의 구조에 불만이 많았다.
본래 그는 종사가 되기에 충분한 실력을 가지고 있지만 가난한 집안을 먹여 살리기 위해 종사보다 스스로 하인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장사를 해서 뭔가 벌어먹을 것을 가져가지 않으면 형제와 병든 부모가 굶어 죽을 판이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 역시 이선궁을 펼치고 화조풍월의 마도서를 다룰 줄 아는 인재다. 본인 스스로는 어지간한 하위전령에 뒤지지 않는다고 자부하고 있었고 실제로 그만큼의 실력은 있었다.
그래서 아라엘이 기존의 전령일족의 질서를 부정하고 새로운 구조를 만들겠다고 할 때 기뻐서 어쩔 수 없었다.
그뿐만이 아니다. 지금 네프티의 휘하에 있는 전령일족들은 다들 기존 질서에 불만이 있던 이들이며, 그렇기에 아라엘의 깃발 아래 모인 것이다.
“흐흐. 백작 놈 아주 꼴좋군요.”
야라빈은 란타릭 백작의 체면이 구겨지는 걸 보며 기뻐했다. 비록 아자딘은 좋아하지 않지만 그래도 아라가사 민족이다. 아자딘을 얕잡아보던 휘브리스 귀족이 망신을 당하는 걸 보니 신이 날 수밖에. 아라가사들은 이래저래 휘브리스 귀족들에게 억하심정이 있었다.
“너무 그러지 마. 고객이잖아.”
네프티는 야라빈을 말리고 일어났다. 마치 날렵한 암표범 같은 그녀의 몸에 은은한 달빛이 스쳐 지나간다.
강하고 매력적인 인물이다. 젊은 나이에 별다른 배경도 없이 75령이라는 지위를 획득한 것은 그저 운이 좋다고 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자, 그럼 저 요새를 기어올라가 볼까? 모두 조심해라. 아자딘은 만만치 않아. 내가 손을 섞어봤는데 상당한 실력이다.”
“하지만 부상을 입은 것 같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 아자딘이 그렇게 대단한 실력자가 되었다고는 믿어지지 않습니다.”
“부상을 입은 걸로 보였지만 그것조차 위장일지도 모르지. 조심해라. 카자스 해서는 살인에 특화되어 있다고 하니까.”
네프티도 카자스 해서가 어떤 것인지는 잘 몰랐다. 다만 장로 카자스는 아라가사가 아니라서 화조풍월의 마도서를 타고나지 못했음에도 후천적으로 화조풍월의 마도서를 자신의 방식으로 터득했고, 그 기술은 위험하고 파괴적이라고 들었다.
아자딘이 그것을 터득했다고 생각하면 절대 방심할 수 없었다. 하물며 지금 그들은 요새를 기어올라야 했다.
“엄호조는 화살을 준비해 밑에 있고, 돌입조를 고르자. 누가 올라갈까?”
“제가 가겠습니다.”
야라빈이 자청했다.
“저는 밑에 남겠습니다.”
아자딘에게 던져져 부상을 입은 카흐산은 요새를 오르기 힘들어서 밑에서 활로 지원하겠다고 선언했다.
“그래, 그럼 야라빈 너와 내가 올라간다. 카흐산, 네마, 코다누스. 너희들은 밑에서 화살로 응원하도록. 선견조는?”
네마라 불린 종사가 선견조 마법을 시전해 요새 상공을 돌며 주위를 감시하고 있었다.
“요새 위에는 불도 밝히지 않았습니다. 감시병들이 있습니다만 방벽 뒤에 숨어서 밑을 보고 있습니다.”
“밑을 본다고? 예측하고 있었군.”
네프티는 감시병을 방벽에 감추고 밑을 보게 하는 것에서 아자딘이 야습을 경계하고 있음을, 그것도 전령일족들이 성벽을 타고 올라올 것을 경계하고 있다는 걸 알아챘다.
“함정일지도 모릅니다. 피할까요?”
“아니. 백작을 그렇게 놀렸는데 피하면 백작의 인내심이 바닥날 거야. 뚫자.”
“함정이 있어도요?”
“그 정도는 할 수 있잖아?”
네프티는 자신만만한 미소를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