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ight of the Soulless Unholy RAW novel - Chapter 98
97. 아라엘 지파 7
“코다누스! 여름 아지랑이를 최대 출력으로!”
“예!”
코다누스가 화살에 마법을 걸고 그들이 침입하려는 요새 사면 쪽을 향해 쏘았다. 화살이 날아가 요새 방벽에 명중하자 화조풍월의 마법이 풀리며 따끈한 열풍이 잠깐 휩쓸었다.
선견조 마법을 유지하던 네마가 고개를 끄덕였다.
“망루 위 감시병 두 명, 잠들었습니다.”
화조풍월 여름 아지랑이, 그 따뜻하고 나른한 힘이 요새 상층부의 감시병들을 재웠다. 가뜩이나 피곤에 찌들어 있던 이들은 자신들이 의식을 잃는다는 것도 모른 채 그대로 더운 여름날 열기에 질식하듯 잠들어 버렸다.
“음….”
코다누스는 마력을 많이 썼는지 잠시 힘들어했다.
“좋아. 잘했다 코다누스. 그럼 코다누스, 네마는 여기 남아서 카흐산의 지시를 따르도록. 우린 올라가지!”
네프티는 가볍게 밭고랑 밑을 달려 요새 밑까지 도착했다. 야라빈도 그녀를 뒤따라오더니 먼저 요새 벽으로 뛰어올라 벽돌 틈을 손으로 잡고 마치 평지를 달리듯 빠르게 기어오르기 시작했다.
요새 벽에는 밑에서 기어오르는 사람들을 방해하고 낮은 곳에서 화살과 돌을 발사하기 위한 돌출형 창문이 만들어져 있었는데 야라빈은 그 창문을 가볍게 두 손만으로 잡고 공중에서 도약해 건너뛰었다.
네프티와 야라빈은 사람이 들어가기엔 너무 좁게 만들어진 창문을 피해서 요새 성벽을 기어올랐다.
마침내 성벽을 넘었을 때, 그곳에는 갑옷을 입고 검을 들고 있는 왕의 교회의 성기사와 아자딘, 그리고 아자딘의 종사 둘이 대기하고 있었다.
“우릴 기다리고 있었군? 감시병도 재우고 선견조로 감시하고 있었는데 어떻게 알았지?”
“왕의 교회의 마법입니다. ‘하나된 의지’. 덕분에 당신들이 경비병을 재울 때 알 수 있었지요.”
지벡은 경비병들에게 ‘하나된 의지’의 주문을 써서 경비병들이 죽거나 의식불명이 되면 알 수 있도록 하고 그들을 망루와 총안에 배치시켰다.
“아, 제법인데. 대체 어떻게 해서 성기사를 구워삶았지?”
네프티는 감탄했다. 왕의 교회의 성기사들은 상속 경쟁에서 밀려난 귀족의 잔당들이 대부분이라 하나같이 탐욕스러운 놈들뿐이다. 젊은이들 중에는 아직 세상 물을 덜 먹어서 깨끗한 이들도 있지만 지벡은 눈 밑이 어둡고 음울한 인상을 가지고 있어서 나이에 비해서 더 들어 보이는 외모였다.
“뜻이 높으면 동지가 생기는 법 아니겠어?”
그 말을 듣자 네프티의 하인인 야라빈이 아자딘 앞에 나섰다. 그는 눈을 부릅뜨고 턱을 내밀어 아자딘을 도발했다.
“이봐, 눈깔 없는 기형아 아자딘! 네놈 뜻이 높다고? 아라엘 님의 높으신 뜻을 훼방 놓으면서 자화자찬이라니, 얼굴에 철판을 깔았구나!”
“뭐야 넌? 전령은 아니지? 종사인가?”
“…….”
“하인이군요.”
이스마일이 그리 말하자 미디암이 풋 하고 웃었다.
“하인 주제에 전령에게 시비를….”
“다, 닥쳐 꼬마! 나는 하인이긴 하지만 실력만큼은 전령 못지않아!”
“…….”
“푸흡?! 드, 들었어 이스마일? 그거 전령에서 떨어진 사람들이 늘 하는 말 아냐? 정말 전령 못지않으면 종사라도 되었겠지. 와 진짜로 저런 말 하는 사람 처음 봤어!”
“아니 이 당돌한….”
야라빈은 미디암이 자신을 대놓고 비웃자 얼굴이 새빨개졌다. 본인은 가족이 가난하기 때문에 스스로 하인이 되었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남들이 보면 늘 듣는 변명일 뿐이었다. 그걸 저 어린 소녀에게 대놓고 지적당하니 부끄럽고 당황스럽다.
“그만. 야라빈, 물러나라.”
네프티가 야라빈을 물리고 자신이 나섰다.
“뜻이 높으니 동지가 생긴다. 좋은 말이야, 아자딘. 거기 성기사, 당신도 대단하군.”
“과찬의 말씀.”
지벡은 네프티에게 살짝 고개를 까닥여 목례를 했다. 네프티는 지벡에게 미소를 지어 보이고 아자딘과 이스마일, 미디암을 돌아본 후 입을 열었다.
“아자딘, 아라엘 님의 뜻을 알려주지. 아라엘 님은 아라가사의 나라를 만들려고 하신다.”
“나라?”
“그래. 복무의 저주를 벗어던지고 우리들의 힘으로 나라를 만드는 것! 그게 성공하면 휘브리스 백성 놈들이 감히 우리들을 영혼이 없다고 경멸하지 못하겠지. 그런 아라엘 님의 뜻이 높아서 우리는 그녀를 따르는 것이다.”
“……!?”
“나라라고?”
미디암과 이스마일은 그 말을 듣고 충격을 받았다. 하지만 아자딘은 시큰둥했다.
“그거 참 대단한 이야기긴 한데 구체적인 계획이 없으면 헛소리 아냐? 황제와 맺은 복무의 계약을 없앤다 치더라도 우리를 눈엣가시로 보는 팔왕국은 또 어떻게 하려고?”
“구체적인 계획이 있지. 아자딘, 신왕진서 사본이 바로 그 구체적인 계획이다.”
“신왕진서 사본이?”
“그래. 그것을 모으면 우리들은 복무의 저주를 해방할 수 있고 또한 야에가스 신족들에게 확고한 우위를 차지할 수 있지. 최근 들어 야에가스 신족들의 힘이 최근 약해지고 있다는 건 알고 있나? 왕과 귀족들이 신의 후손이라고 주장해도 그들에겐 이미 인간의 피가 너무 섞였어.”
“불경하군!”
듣고 있던 지벡이 반발했다.
“성기사 입장에서 듣기 싫은 소리겠지? 그러나 그건 란타릭 백작도 인정한 사실이다. 왕화의 빛이 약해지고 있어. 정당한 왕이 왕좌에 앉아도 인적이 드문 곳엔 마물들이 설치고 죽은 자들이 다시 무덤에서 일어나 배회하고 있지. 이 세상을 구원할 수 있는 건 인간의 상궤에서 태어나지 않은 현세의 여신, 아라엘 님뿐이다.”
“아라엘 님?”
아자딘은 그 말을 듣고 어이없어했다. 그에게 있어서 아라엘은 정말 미운 형제일 뿐인데 네프티는 윗기수이면서도 그녀를 흡사 여신이라도 되는 양 숭배하고 있었다.
복무의 저주 때문에 태어난 것을 아자딘에게는 저주의 아이라고 비난하면서, 아라엘에게는 그것이 범상치 않은 출생의 근거가 된다. 누구는 폄하하고 누구는 칭송하고, 차별이 너무 노골적이라서 짜증이 난다.
“그래서? 아라엘에게 대단한 힘이 있는데 고작 저 백성 죽이는 쓰레기 백작이랑 손을 잡아야 했나?”
“아하하핫! 전령답지 않게 어리석은 소리를 하는군 아자딘. 휘브리스 백성들을 아끼는 그 마음도 뭐 나쁘지는 않다만 그건 평화 시에나 미덕일 뿐이야. 전쟁에서는 적의 보급부터 파괴하는 게 철칙이 아닌가? 저 휘브리스 백성들이 불쌍하다고 살려주었다가 나중에 우리가 만들 나라를 핍박하는 세력이 된다면 그건 사사로운 정 때문에 대의를 그르치는 일이지.”
“이 세상에 불화를 불러일으키고 그 틈에 나라를 세우겠다? 망상이 심하군.”
“망상? 감히 아라엘 님의 뜻을 망상이라고?”
듣고 있던 야라빈이 발끈했다.
“아자딘, 뜻이 높으면 동지가 생긴다고 했지? 너는 아라엘 님의 뜻을 망상이라 치부하는지 모르겠지만 그쪽 종사들은 우리 동지가 되고 싶어 하는 것 같은데?”
“아, 아냐! 무슨 헛소리를!”
미디암은 부정했지만 이스마일은 부정도 긍정도 하지 않았다.
‘아라가사의 나라라…. 구현할 방법이 없다면 헛소리겠지만 아무런 근거도 없다면 네프티같이 유능한 전령이 아라엘 편에 서지 않았겠지. 많은 전령들이 갈아탄 걸 보면 아라엘은 분명 자신이 말한 걸 실현할 만한 능력이 있는 거야.’
그렇게 생각하니 저절로 가슴이 뛴다.
“어때, 아자딘. 아라가사의 나라를 세우자는 아라엘 님의 뜻이 높지 않은가? 동지가 되고 싶다면 지금이라도 말해. 아라엘 님은 너를 위해서라면 언제든지 군문을 활짝 열어놓으실 테니까.”
“하하하하. 그거 참 고마운 이야기인데.”
아자딘은 웃음을 터뜨렸다.
“과연 아라가사라면 피가 끓을 수밖에 없는 제안이로군. 게다가 이렇게 많은 이들이 아라엘 편에 선 걸 보면 단순한 망상 이상의 확실한 계획과 신빙성이 있는 것 같은데.”
“그렇지?”
네프티는 아자딘이 아라엘의 비전을 높이 평가하자 기뻐했다.
“아자딘, 환영하지.”
네프티가 악수를 청하며 손을 내밀었다.
‘아라엘의 동생인 것만 믿는 무능력자도 아닌 것 같으니 큰 도움이 될 거야.’
네프티는 아자딘을 진심으로 환영했다. 그러나 아자딘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환영해줘서 고맙긴 한데 그래도 거절해야겠어.”
“뭐?”
“너 이 자식!”
보고 있던 야라빈이 분개했다.
“너는 아라가사가 아니냐! 박해받는 동포들의 나라를 만들자는데 두 발 벗고 뛰어들진 못할망정 뭔 사사건건 시비야?”
“아니, 진정해, 진정. 원 참. 너무 쉽게 흥분하는군. 그러니까 나도 진심으로 너희들에게 합류해서 함께 힘쓰고 싶다고.”
“그런데 왜?”
“하지만 내가 그렇게 쉽게 설득당해 버리면 란타릭 백작이 너무 거저먹잖아?”
“뭐? 그게 무슨….”
“그러지 말고 란타릭 백작에게 가서 말해. 민간인들의 안전을 담보해주지 않으면 날 설득할 수 없겠다고. 그리고 나는 아라엘의 유일한 혈육이라서 나와 싸우거나 죽이는 건 무리고 아라엘과의 동맹을 성심성의껏 생각한다면 그까짓 백성들 좀 놔주자고.”
아자딘의 넉살을 들은 순간 지벡이 웃음을 터뜨렸다.
“그거 그럴싸하군요.”
지벡은 전령일족, 아라가사에 대해서 잘 모른다. 하지만 아자딘의 종사들, 미디암과 이스마일이 ‘아라가사의 나라’라는 말을 듣는 순간 동요하는 것을 보면서 그들이 얼마나 그걸 바라는지 알 수 있었다.
하긴, 이들은 영혼 없는 불경자라 불리는 박해받는 존재가 아닌가?
심지어 아자딘조차 혹하지 않은 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이런 억지를 부리는 것이었다.
네프티가 헛웃음을 터뜨렸다.
“뭐야? 그러니까 우리보고 너와 짜고 백작의 양보를 얻어내라 그런 말이야?”
“그렇지. 꽤 합리적인 제안 아냐? 날 아라엘의 혈육이라고 생각한다면 백작도 내 제안을 무겁게 여길 텐데?”
“미안하지만 무리야. 그런 억지가 통할 리가 없어. 란타릭 백작은….”
“흑마법을 연구하느라 사람을 마구 죽여야 하는 처지지?”
아자딘이 그리 말하자 네프티가 흠칫 놀랐다.
“너?”
“이 자식!”
야라빈과 네프티는 아자딘이 그 사실을 알면서 말을 꺼냈다는 걸 알아채고 눈살을 찌푸렸다.
“네프티! 이 자식 우릴 갖고 노는 겁니다! 처음부터 아라엘 님의 뜻에 합류할 생각 따윈 없다고요!”
“결국 무력을 쓰게 하는군.”
네프티도 검을 뽑았다. 그러나 아자딘은 칼을 뽑지 않았다.
“그만둬. 너희들을 죽이고 싶지 않다.”
“…뭐?”
“제정신이냐, 아자딘? 네가 부상을 입었다는 것쯤은 알고 있어. 그리고 과연 네 종사들이 널 지지할까? 확실히 네 편인 사람은 저 성기사와 여기 병사들이겠지만 여기 병사들은 아무리 많아 봐야 우리 상대가 아니라는 걸 잘 알 텐데?”
작은 요새지만 20여 명의 병사가 배치되어 있는데 전령인 네프티는 그 정도 병사는 무슨 허수아비 취급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사실이겠지.’
지벡은 전령들의 힘을 익히 보았기에 이들의 말이 허언이 아니라는 건 알고 있었다. 지벡도 실력에 자신은 있었지만 아자딘을 본 바, 자신이 전령일족 중 하나를 맡기만 해도 전력을 다해야 한다고 여기고 있었다.
그런데 만약 종사들이 돌아선다면?
‘상공에 인공정령이 날고 있고 피부가 아릴 정도의 살기가 느껴져. 아마 밑에 접근한 전령일족들이 언제든지 증원되겠지.’
이런 상황에서 아자딘은 넉살 좋게도 ‘너희들을 죽이고 싶지 않다.’라고 말하고 있다.
‘어쩔 셈이지, 이 남자?’
이스마일도 궁금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