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ight of the Soulless Unholy RAW novel - Chapter 99
98. 아라엘 지파 8
멀리서 휘슬소리가 들려왔다. 란타릭 백작 병영의 경비병들이 휘슬을 불고 진영에서 소란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누군가가 백작의 진지에 공격을 감행한 것이다.
“윽?! 뭐야? 저게 설마 네놈 소행이냐?”
야라빈은 그 광경을 보고 놀라서 아자딘에게 물었다.
“침착해! 이놈 소행이건 아니건 지금 처리한다!”
네프티는 현혹되지 않고 아자딘에게 검을 겨누었다.
“힘들 텐데?”
아자딘이 칼을 뽑아 들었다. 하지만 네프티는 아자딘을 보았을 때 맡았던 피 냄새, 그리고 고통을 참느라 일그러진 입술을 봐서 잘 알고 있었다.
이놈은 부상을 입었고, 지금 떠는 넉살들은 허세일 뿐이다! 설령 부상을 입지 않았다 하더라도 그녀가 질 이유가 없다!
“나 역시 아라엘 님의 동생을 죽이고 싶지 않은데 어쩔 수 없군.”
네프티는 전광석화 같은 찌르기로 단숨에 아자딘의 목을 공격했다. 아자딘이 뒤로 물러나며 칼을 걷어내려 한다.
완력에서 여성인 네프티보다 더 우월하다고 확신하고 하는 행동. 그러나 그 순간 네프티는 손목 찌르기로 전환했다.
걷어내기를 유도하고 손목을 찌른다!
아자딘은 어쩔 수 없이 한 걸음 더 물러났고 그 순간 네프티는 왼손으로 비수를 투척했다.
-캉!
허공에서 비수와 비수가 충돌했다. 아자딘도 뒤로 물러나며 비수를 투척했다. 누가 전령일족 아니랄까 봐 둘 다 하는 짓이 비슷하지만 네프티는 자신의 예상이 맞았음을 확인했다.
‘사내놈 주제에 힘이 비실비실하군. 부상이 심한가 보지?’
아자딘과 네프티가 던진 비수가 서로 튕겨나가는 걸 보니 아자딘의 힘이 변변찮은 모양이다. 네프티는 그의 사면으로 돌아가며 연속 찌르기를 날렸다.
-파팍!
아자딘은 전투가 벌어질 것을 예측하고 사슬 갑옷을 껴입고 있었는데, 그 갑옷이 칼날에 스치며 끊어진 사슬들이 성벽 위로 튀었다.
“아자딘!”
미디암이 도우려 했지만 야라빈이 그녀의 진로를 차단했다. 지벡이 칼을 빼 들자 야라빈은 전투용 시클, 앞으로 크게 휘어진 갈고리 낫을 휘둘러 그의 목을 노렸다.
-칵!
지벡의 검과 야라빈의 시클이 얽혔다.
“제법인데 성기사!”
야라빈은 폭발적으로 공격을 퍼부어대며 지벡을 밀어붙였다.
“어, 어쩌지?”
미디암은 활에 화살을 걸었지만 쏠 수 없었다. 아자딘과 네프티의 공방이 너무나 빠르고 격렬해서 먼저 쏜 화살도 맞추는 명사수라고 해도 감히 쏠 수 없는 상황이다. 그런데….
‘어?’
야라빈 뒤로 아자딘이 접근했다.
“아!”
네프티가 아자딘의 등을 향해 찌르기를 날렸지만 아자딘이 더 빠르다. 그리고 다시 날아오는 또 다른 비수. 아자딘이 네프티에게 등을 돌리며 뒤로 비수를 날린 것이었다.
네프티는 별생각 없이 검으로 비수를 받아 쳐냈지만….
“큭?!”
굉음과 함께 네프티가 뒤로 물러났다. 그녀의 칼에 금이 가고 손이 떨린다. 방금 전과는 비교도 안 되는 묵직한 일격이었다.
만약 네프티가 고개를 빠르게 돌리지 않았다면 아자딘이 던진 비수는 그녀의 칼을 치고 그대로 머리에 꽂혔을 것이다.
‘뭐야, 부상자가 이런 힘을?’
더 놀라운 것은 그다음 일이었다.
“의외로 가볍네?”
아자딘이 가볍게 야라빈을 들어 망루 밖으로 집어 던졌다.
“……?!”
야라빈은 카흐산보다는 못해도 그래도 거구의 남자다. 전령일족들이 단련에 단련을 거듭해 다들 엄청난 힘을 발휘한다지만 야라빈을 무슨 공깃돌 던지듯 던지다니?
“……?!”
놀라는 건 지벡도, 미디암과 이스마일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분명히 아자딘이 부상을 입었던 걸 알고 있었는데 언제 부상이 나았는지 태연히 움직이는 게 아닌가?
“자, 이 정도면 상대도 난처하겠지? 이스마일!”
“네.”
“상공에 맴도는 선견조를 처리해.”
“알겠습니다.”
이스마일은 아라엘 지파의 주장에 현혹되어 있었다. 에타르 혈족의 하인 집안 출신인 그는 새로운 질서를 주장하는 아라엘에게 끌릴 수밖에 없다. 하인 집안 출생은 대대로 자신들이 섬기는 가문을 위해 헌신하기 때문이다.
전령이 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어도 같은 기수에 자신이 섬기는 집안 자식이 나오면 그에게 평가점을 몰아주어야 한다. 설령 자신을 섬기는 이를 이성적으로 좋아하게 된다 하더라도 그 연심이 이뤄지는 건 감히 꿈도 꿀 수 없다.
전령으로서 엄청난 성공을 거두면 양자로 거둬지거나 가문 계승 순위가 낮은 귀족가의 자식과 혼사를 치를 수도 있겠지만 그건 아주 운이 좋은 경우고, 대부분 하인은 그저 하인으로 끝난다.
즉, 이스마일이 지금처럼 미디암에게 충성하며 살아봐야 앞날이 밝다고 할 수는 없다.
종사까지는 되었지만 아라엘의 반역으로 아라가사 일족 전체가 흔들리고 있는 상황. 그래서 그는 내심 네프티 일행과 아자딘을 저울질하고 있었는데, 아자딘이 이겨 버렸다.
‘적당히 보고 있다가 이기는 쪽에 붙으려고 했지만 이 남자가 이길 줄이야. 하지만 굉장하네. 어떻게 그 부상을 입고도 이렇게 압도적이지?’
이스마일은 아자딘에게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며 마법을 시전한 화살을 상공의 선견조에게 날렸다.
“자, 그럼 네프티.”
지벡과 아자딘이 다가가자 네프티는 더 이상 승산이 없음을 깨달았다. 처음부터 자신이 너무 아자딘을 얕잡아봤다. 무엇보다도 아자딘의 움직임이 매끄럽다. 부상의 여파를 찾아볼 수 없는 게 아닌가?
처음에 그녀와 칼을 섞을 때는 부상자인 양 빼더니만 어느새 능청 떨기를 그만두고 본색을 드러낸 것이다.
“쳇! 내가 속았군! 두고 보자!”
네프티는 스스로 요새 밖으로 몸을 날린 후 자신의 검과 갈고리로 요새 벽을 긁으며 감속, 멋지게 지상에 착지했다. 지벡이 그 모습을 보며 눈을 크게 떴다.
“정말 놀랍군요. 어떻게 이 높이를?”
보통 사람이라면 떡이 될 높이를 아무렇지 않게 뛰어내리다니. 하지만 그때 아자딘이 그의 망토를 잡아당겼다.
-쐐액!
요새 밖으로 머리를 내밀었던 지벡을 향해 지상에서 화살이 날아왔다. 밑에서 대기하던 다른 전령일족들이 화살을 날린 것이다. 네프티가 뛰어내린 걸 확인하려 고개를 내밀리라 예측한 것이다.
그걸 예측하고 화살을 날린 전령일족들도 놀랍고 동족들의 전투패턴을 예측하고 지벡을 끌어당긴 아자딘도 놀랍다.
“감사합니다. 이거 참 간담이 서늘하군요. 그런데 부상은 어찌된 겁니까? 몸은 괜찮습니까?”
“그건….”
그때 성벽 밑 트랩도어가 열리고 사람 머리 하나가 튀어나왔다. 나가들이 살라스마에 잠입시켰던 요원, 샤티였다.
“이봐, 온혈동물! 언데드 군대가 백작 뒤에 나타났어! 아무래도 신왕진서를 노리고 온 것 같은데? 우리 도망쳐야 하는 거 아냐?”
“그래? 예상보다 빠르군.”
아자딘은 샤티에게 다가갔다.
“몸은 괜찮아, 온혈동물? 코브라 여왕의 마법이 잘 맞는지 모르겠군.”
“덕분에.”
“어?”
듣고 있던 지벡은 깜짝 놀랐다.
“설마 쿠르트 신족의 마법을 받은 겁니까?”
“네.”
“아니 그런데 그게 어떻게….”
“이야기하자면 긴데, 간단히 말해서 저 나가 여자는 내게 협력할 수밖에 없는 처지고 쿠르트 신족의 마법 중 녹색 마력은 생명의 신진대사를 끌어올리는 힘입니다. 한 달 걸려 나을 부상을 일주일 정도로 앞당겨 줄 수 있지요.”
“그럼 몸 상태가 완전하다고 할 수는 없겠군요.”
“네. 게다가 나가의 신체에 맞게 만들어진 마법이라 저와는 좀 안 맞는 것 같습니다만 네프티를 현혹시키는 데는 충분하죠.”
“그럼 지금 저 백작의 군대를 습격한 건 뭡니까?”
“그건 신왕진서의 봉인을 풀어서 그래요.”
“네?”
“신왕진서를 그냥 들고 다니면 추적 마법을 쓴 날파리 놈들이 쫓아오는데….”
지벡도 그건 알고 있었다. 젝트 경이 마법을 써서 신왕진서 사본을 추적하는 걸 본 적이 있으니까. 그런데 아자딘은 그걸로 추적되지 않아서 대신 이용한 게 망령기사 아니었던가?
“란타릭 백작이 말을 안 들을 것 같아서 봉인을 풀었습니다.”
즉, 아자딘은 란타릭 백작에게 포위당한 상태를 타개하기 위해 일부러 신왕진서의 봉인을 풀었다는 소리다.
“그 무슨 무모한….”
젝트 경에게 추격당하면서 이런 짓이라니? 너무 과감한 것 아닌가? 하지만 놀라기에는 아직 일렀다.
“자, 그럼 해볼까?”
“뭘 말입니까?”
지벡은 이 상황에서 또 뭘 더 하겠다는 아자딘에게 기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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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장, 부상자라 여기고 방심했어.”
네프티가 투덜거리자 카흐산이 미소를 지었다.
“우리 아라가사들에게 방심해서 졌다는 건 상대를 칭찬하는 거 아닙니까?”
카흐산 역시 아자딘의 평소의 악명을 믿고 방심했다 내던져진 처지였다. 다른 이들도 자신처럼 아자딘에게 집어 던져져 낭패를 보니 카흐산으로서는 오히려 좋았다.
“웃을 일이 아니야. 백작의 부대로 돌아가자. 저긴 또 무슨 일이지?”
네프티가 앞으로 걸어갈 때 갑자기 그들 뒤에서 쇳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끼릭, 끼릭….
요새 문이 열리고 말과 케림 산양, 그리고 아자딘 일행이 밖으로 나오고 있었다.
“뭐야? 지금 뭐 하자는 거야, 아자딘!”
“뭐긴.”
네프티의 의문에 아자딘이 답했다.
“백작이 붙잡고 있는 주민들을 구해서 달아나려고.”
“뭐?!”
네프티가 활을 잡았다. 하지만 요새에서 사람들이 나오고 있고 아자딘과 지벡, 그리고 아자딘의 종사들까지 붙어 있으니 상대도 결코 만만치 않다. 거기에 더해서 아자딘의 태도는 어째 적개심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래서 말인데, 잠시 휴전하지 않겠어? 대신이라고 하긴 뭐하지만 신왕진서 사본을 한 장 주지.”
“……?!”
“신왕진서 사본을 가지고 있어?”
“그래.”
아자딘이 신왕진서를 꺼내 보였다. 평범한 종이로 만들어진 페이지지만 스스로 은은한 마법의 빛을 발하고 있고 끝을 모를 힘이 느껴졌다.
“이건….”
“진짜로군!”
보고 있던 네프티와 카흐산이 신음했다.
“어쩔래? 휴전에 응할 거야? 아니면 싸울 건가?”
“…….”
네프티 입장에서는 지금 이 상황에서 아자딘 일행과 싸워서 이긴다는 보장이 없다.
‘게다가 이놈은 아라엘의 동생이지.’
아자딘을 죽이면 아라엘의 혈육을 죽였다는 부담을 짊어져야 하는데 이긴다는 보장도 없는 상대, 이겨도 좋을 게 없는 상대가 신왕진서 사본이라는 선물까지 주면서 화평을 제안하니 받아들이지 않는 게 이상하다.
“알겠다. 휴전을 받아들이지. 하지만 백작이 뭐라고 하면 그때는 어떻게 될지 몰라.”
“그래, 그럼 받아.”
아자딘은 기꺼이 신왕진서 사본을 넘겨주었다. 그걸 보고 있던 미디암과 이스마일은 혀를 찼다.
‘신왕진서 사본을 넘겨주다니….’
‘이 무슨 제멋대로람. 가문의 장로나 조장들이 보면 반역자들과 거래한 반역행위잖아?’
아라엘 지파의 꼬임에 흔들렸던 이스마일이지만 아자딘의 행동이 얼마나 위험하고 무책임한 것인지는 잘 안다. 나중에 이 사실이 밝혀지면 반역자로 문책당한다 해도 할 말이 없다.
실제로 아자딘은 아라엘과 손잡았을지도 모른다는 이유로 전령에서 파직된 상태가 아닌가? 그런데 신왕진서를 넘겨주다니?
‘아무리 이게 함정이라지만 너무한 거 아냐? 담도 크지.’
아자딘과 지내는 게 익숙해졌다고 생각했지만 이 남자는 매번 놀라게 하는 구석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