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1
1회. 와룡장의 귀한 손님
와룡장은 낙양 동편의 언사(倭師)에서 가장 큰 무가(武家)다. 연(淵)씨 집성촌에 자리한 와룡장의 주인은 연무룡이라는 협객이었다.
강호에 알려진 연무룡의 별호는 참월검객.
희대의 마녀 월하선자를 베었다고 해서 붙여진 별호다.
강호에 참월검객의 이름이 조금씩 알려지기 시작할 무렵, 그는 돌연 고향으로 돌아가 와룡장을 세우고 은거에 들어갔다.
그때 그의 나이 서른넷.
집안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연무룡은 다시 강호에 나가지 않았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의 이름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사라져 갔다.
오 월 초하루.
평소 조용하던 와룡장이 소란스러워졌다.
와룡장의 안주인 백미주가 마당 한복판에 서서 하인들에게 쉬지 않고 지시를 내리고 있는 탓이다.
“너희들은 마당을 다시 한 번 쓸거라. 그리고 총관님?”
“예.”
총관 연무독이 빠른 걸음으로 백미주의 앞에 나섰다.
“지금 즉시 아이들을 찾아서 안채로 보내 주세요.”
백미주는 상대가 비록 총관이지만 정중하게 부탁했다. 그의 나이가 자신보다 많은 것도 있지만 남편인 연무룡의 사촌 동생인지라 대하기가 쉽지 않았다.
“모두 말입니까?”
연무독이 의미심장한 눈으로 백미주를 바라보았다.
연무룡은 모두 삼 남 일 녀의 자식을 두었다. 그들 중 위로 셋은 백미주의 소생이다.
그러나 이제 여섯 살인 막내 연적하는 첩실이자 백미주의 몸종이 낳은 아이였다.
평소에 몸종의 아이를 챙기지 않던 백미주인지라 연무독은 확인이 필요했다.
백미주가 담담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래야지요. 행여 와룡장에서 서출을 업신여긴다는 소문이라도 나면 그이의 청명(淸名)에 누가 될 테니까요.”
“알겠습니다. 형수님.”
연무독이 가볍게 목례를 해 보인 후 물러갔다.
백미주가 입술을 깨물며 멀어져 가는 연무독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자신도 오늘 같은 날 연적하까지 부를 마음은 없다.
그러나 뒤에서 ‘속이 좁다’고 수군거리는 것도 듣고 싶지 않다.
“하아!”
백미주의 입에서 가느다란 한숨이 흘러나왔다.
오늘은 그 어느 때보다 더 연적하를 멀리하고 싶은 날이다.
신검세가의 가주인 검왕 남궁벽이 그의 가족들과 함께 와룡장을 방문하기로 한 날이기 때문이다.
신검세가는 남직례성의 남궁세가를 높여 부르는 말이다. 당금 무림을 좌우하는 가장 강한 무가 다섯을 가리켜 사람들은 ‘세가(勢家)’라고 했다.
남궁세가는 그중에서도 으뜸.
단지 그 이름만으로도 어지간한 분쟁은 거의 다 해결이 될 정도다.
문득 백미주는 고개를 돌려 장원을 둘러보았다.
아담한 와룡장의 전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작다.
지금의 와룡장은 무수히 많은 무가 중 하나다.
‘아직은…….’
백미주는 와룡장을 ‘무림의 세가’로 만들고 싶었다.
처음 그 꿈을 꾼 사람은 연무룡이다.
하지만 그 꿈은 깨졌다.
그 꿈을 깨뜨린 사람이 바로 자신의 몸종이었던, 연적하의 어미 이부용이다.
연무룡은 강호행을 하던 짧은 기간 중에 운 좋게도 검왕 남궁벽과 인연을 맺었다.
유명교(幽冥敎)라는 사교에 맞서 고군분투하고 있던 연무룡을 지나가던 남궁벽이 발견한 것이다.
결국 연무룡은 그의 도움으로 유명교를 물리치고 참월검객이라는 별호까지 얻었다.
그 뒤 무림의 기인인 검왕 남궁벽과 호형호제하는 관계로 발전했다.
그게 육 년 전의 일이다. 딱 거기까지다.
집에 돌아와 내외상을 치료하던 연무룡은, 잔심부름이나 하던 자신의 몸종 이부용에게 빠져들었다.
한심하게도 여자에 빠진 그는 무림세가를 세우겠다던 웅대한 꿈을 버렸다.
심지어 이부용을 첩실로 들이고, 연씨 일족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무림에서 은퇴를 선언했다.
‘배은망덕한 인간들…….’
두 사람을 생각하던 백미주는 속으로 이를 갈았다.
생각할수록 화가 났다.
그의 입술은 더 이상 자신에게 사랑을 속삭이지 않았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이 작은 와룡장을 세운 것도 이부용을 위해서다. 연씨 일족의 잔소리가 심해지자 한적한 곳에 장원을 마련해 나와 버린 것이다.
내막을 아는 연씨 일족은 연무룡이 유명교의 저주를 받았다고 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무림 세가를 만들겠다던 사람이 고작 계집종을 위해 은거에 들어갈 리가 없지 않은가!
그러나 연무룡과 요부(妖婦) 이부용의 사랑 놀이는 오래가지 못했다. 이부용이 연적하를 낳던 중 산고(産苦)로 죽어 버린 까닭이다.
그때 연무룡이 다시 강호로 나갈 줄 알았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알게 되었다. 연무룡의 마음도 이부용과 함께 죽었다는 사실을.
연무룡은 모든 일에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언제부터인가 그는 와룡장 밖으로 아예 한 걸음도 나가지 않았다.
그러던 중 의형인 남궁벽의 방문을 받게 된 것이다.
육 년 전 연무룡이 은거할 때도 찾아오지 않았던 남궁벽이다. 그런 그가 무슨 바람이 불어서인지 이 외진 언사까지 찾아오고 있었다.
천천히 안채로 걸음을 옮기던 백미주가 중얼거렸다.
“하늘이 나에게 주신 기회인가…….”
남궁벽의 큰아들인 남궁천은 십팔 세, 벌써 청운검이라는 별호를 얻을 정도로 뛰어난 무인이다. 그에 비해 둘째 딸은 이제 겨우 여덟 살.
‘설주와 남궁천을 짝지어 주자고 할까?’
그러나 나이 차이가 너무 크다.
셋째인 설주가 이제 아홉 살이니 남궁벽에게 씨도 먹히지 않을 소리다.
남은 건 자신의 아들과 남궁연을 짝지어 주는 것이다.
첫째 무백이 열네 살, 둘째 승백이 열한 살이니 이제 여덟 살인 남궁연과 딱 좋은 나이 차이다.
문제는 남편인 연무룡과 검왕 남궁벽이 어느 정도로 친한지 모른다는 점이다.
남궁벽의 최종 목적지는 와룡장이 아니었다. 그는 무당파로 가는 길에 들른다고 했다. 게다가 지금까지 연락 한 번 주지 않은 사람이다.
“흐음!”
혼자서 속을 끓이던 백미주가 어금니를 앙다물었다.
‘어떻게든 아들들과 남궁연을 맺어 줘야 한다.’
만약 그게 안 되면?
그때는 첫째인 연무백의 지도를 남궁벽에게 부탁할 생각이다.
어차피 연무룡은 무림 세가에 뜻이 없다.
그렇다면 무백이를 통해 그 일을 해야 한다.
먼 훗날 초라하게 늙은 연무룡을 비웃어 줄 작정이다.
당신이 요부의 치맛자락에 빠져 허우적거릴 때, 내가 당신이 포기한 꿈을 이루어 냈노라고.
***
네 마리의 말이 끄는 마차 안에 이 남 이 녀가 앉아 있었다.
남궁세가의 가주인 검왕 남궁벽과 그의 처 장하은, 그리고 아들 남궁천과 딸 남궁연이다.
사두마차의 앞뒤를 갈색의 말을 탄 열두 명의 검객이 호위하고 있다.
양쪽 태양혈이 두드러지게 튀어나온 그들은 날카로운 눈빛으로 연신 사방을 쓸어 보고 있었다.
바람막이에 새겨진 ‘창천(蒼天)’이라는 글자로 보아 남궁세가가 자랑하는 최강의 무력 집단, 창천대이리라.
창천대의 호위 속에 사두마차는 평화로워 보였다.
지루한 표정으로 창밖을 보던 남궁천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아버지, 그런데 연 숙부님은 왜 은거를 하신 건가요? 아직 나이가 한창이신데.”
아들의 말에 남궁벽이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허허! 이 녀석아, 한창인 건 너고. 연 숙부는 지금 불혹(사십 세)의 나이니라.”
“하지만 아버지는 연 숙부님보다 나이가 더 많은데도 강호를 주유하고 계시잖아요.”
“나야 네 엄마가 곁에 있으니 그렇지.”
애처가 기질이 있는 남궁벽은 항상 부인과 함께 여행을 다니곤 했다.
“에? 연 숙부님에게도 숙모님이 계시지 않은가요?”
남궁벽이 곤혹스러운 눈으로 아들을 바라보았다.
“흐음, 미리 말해 두는 것이 좋겠구나. 천과 연이는 아비의 말을 잘 새겨듣고 와룡장에서 말실수를 하지 않도록 해라. 알겠느냐?”
“예.”
“…….”
활발한 남궁천은 크게 대답했다.
반면 평소 말이 없는 남궁연은 고개만 끄덕였다.
호기심 가득한 남궁천과 달리 남궁연의 표정은 무덤덤했다. 그래도 흑백이 뚜렷한 두 눈은 남궁벽의 얼굴에 고정되어 있었다.
“연 숙부에게는 숙모가 두 분이 계셨다. 지금 계신 큰 숙모와 작은 숙모다. 그런데 연 숙부는 그중에도 작은 숙모와 정이 깊었다. 은거를 한 것도 작은 숙모의 건강이 좋지 않아서였지.”
“아! 작은 숙모님은 건강해지셨나요?”
다정다감한 성격의 남궁천이 급히 물었다.
그에 비해 이제 여덟 살인 남궁연은 여전히 마음을 내비치지 않는 얼굴이다.
‘쯧쯧!’
남궁벽은 너무 다른 두 자식의 표정을 보며 머리를 설레설레 저었다.
장성한 사내는 계집아이처럼 재잘대고, 어린 계집아이는 인생사에 도통한 노인처럼 말이 없다.
잠시 ‘두 아이의 성격이 뒤바뀌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상상하던 남궁벽은 이내 장탄식을 터뜨렸다.
“하아! 작은 숙모는 육 년 전에 아이를 낳다가 죽고 말았단다. 그 뒤로 연 숙부는 세상 사는 재미를 잃었다고 하더구나.”
남궁벽이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오래전 연무룡이 보낸 서신에 적혀 있는 이야기는 거기까지였다.
“그러니 와룡장에 가더라도 작은 숙모의 이야기는 꺼내지 않도록 해라. 연 숙부와 큰 숙모를 위해서 모르는 체하는 게 좋다. 알겠지?”
“예, 주의하겠습니다.”
“…….”
소녀 같은 감수성의 남궁천은 슬픈 얼굴로 답하고, 남궁연은 노인의 눈으로 고개만 까닥였다.
남궁벽은 어린 딸 남궁연의 머리를 가만히 쓰다듬었다.
이 아이는 어릴 때의 자신과 닮았다.
지금이야 괴팍하다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과격하게 살아가지만, 자신도 스무 살이 넘을 때까지 마음을 닫고 살았다.
칼을 들고 사람들과 맞부딪치며 살아가지 않았다면, 지금도 딸과 같은 모습이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무공을 익히고 초극의 경지에 드는 과정에서 수도 없이 자아를 깨부쉈다.
그러다가 형성된 새로운 성격이 지금의 자신감 넘치는 모습이다.
‘너도 언젠가는 껍질을 깨고 나올 날이 있을 게다.’
남궁벽은 나이에 비해 조숙한 남궁연이 안쓰럽기만 했다.
한편 맞은편에 자리한 그의 처 장하은은 아까부터 재미있다는 표정이다.
천하를 오시하며 ‘검왕’이라는 별호까지 가진 남편이 ‘와룡장에서 주의할 것’을 당부하고 있다.
그것은 남편이 진심으로 연무룡을 존중한다는 뜻이다.
그렇게나 중요한 사람을 왜 지난 육 년간 찾아가지 않았던 것일까?
“저는 당신처럼 까다로운 사람이 연 대협과 의형제를 맺었다는 게 신기하네요.”
“내가 까다롭다고?”
“후후, 그럼 아닌가요? 선우세가의 가주와 그렇게 자주 만났지만 의형제를 맺지 않았잖아요. 그런데 연 대협과는 딱 한 번 만나서 의형제를 맺었다죠?”
“딱 한 번 만났다고? 누가 그런 소리를…….”
“선우세가의 가주와 그것 때문에 몇 번이고 티격태격했잖아요. 기억이 나질 않으시나 봐요?”
“그건, 선우 가주가 지어낸 말이라오. 연 아우와는 칠 일이나 함께 지냈는걸.”
장하은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하지만 선우세가의 가주와는 이십 년 이상을 알고 지냈잖아요. 그래도 두 분은 언제나 서로를 ‘가주님’이라고 부르며 거리를 둔다고요.”
“알고 지내는 것과 마음이 통하는 것은 다르니까.”
“어머, 제가 보기에 당신은 선우세가의 가주와도 마음이 잘 통하는 것 같던데요?”
“연 아우와 통하는 마음과 선우 가주와 통하는 것은 질적으로 다르오.”
“어떻게요?”
온 가족의 시선이 남궁벽에게로 모아졌다.
가족들의 관심에 남궁벽이 어색한 얼굴로 헛기침을 터뜨렸다.
“험험, 간단히 말하자면 연 아우와의 교류가 생사를 나누는 것이라면……. 선우 가주의 경우 고락을 나누는 정도라고 할 수 있소.”
“쯧! 당신이 그런 마음을 먹고 있으니 선우세가의 가주가 못마땅해 하죠.”
“헐! 못마땅해 한다고? 욕심 부릴 일이 따로 있지.”
남궁벽은 말도 안 된다는 투였다.
생사지교는 어느 한쪽이 바란다고 되는 게 아니다. 그거야말로 하늘이 내리는 인연이다. 남궁벽은 자신과 연무룡이 그런 관계라고 자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