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1000
1000회. 어떻게 살아야 하는 거죠?
충격 다음으로 혼란이 찾아왔다.
벽력부에 담긴 벼락의 현실화는 오직 ‘구천응원뇌성보화천존’의 마음에 달린 까닭이다.
그런데 구천현녀의 이름으로도 벼락을 구현하다니?
도사들과 수련생들 사이에서 가벼운 술렁거림이 일어났다.
그들은 남천 대협이 그것에 대해 설명해 주길 바랐다.
하지만 연적하는 입을 열지 않았다.
자신의 부신(符神, 의지의 대상)은 구천현녀지만, 그게 ‘구천현녀의 이름으로 벽력부를 현실화할 수 있었던 이유’가 될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그가 애매한 얼굴로 서 있을 때, 오룡궁 궁주인 천명 도사가 나섰다.
“조금 전에 남천이 말하지 않더냐. ‘나는 신을 믿는다. 그러나 신에게 의지하지 않는다’라고. 그는 자신이 우주이며, 우주가 바로 자신이라는 걸 믿고 있다. 믿음이야말로 바라는 것의 실상, 즉 현실화인 것이다.”
“아아!”
“그런!”
혼란에 빠져 있던 도사들의 입에서 탄성이 흘러나왔다.
수련생들은 무슨 뜻인지 정확히 알 수 없었지만 도사들이 납득하는 듯하자 자기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 이해하지 못한 것은 내일 도사들에게 물어보면 되니 급할 것은 없었다.
그렇게 해서 자칫 혼돈으로 빠질 수 있었던 연적하의 강론은 무사히 끝났다.
때마침 ―연적하의 방문 소식을 듣자마자 경신술로 달려온― 진무궁 궁주 천지상인이 오룡궁 앞마당에 표표히 떨어져 내렸다.
진무궁의 궁주가 등장하자 오룡궁 도사들과 수련생들은 쫓아내지도 않았는데 알아서 흩어졌다.
덕분에 여유 있게 오룡육사들과 작별 인사를 나눈 연적하는 천지상인과 함께 오룡궁을 떠날 수 있었다.
묵묵히 걷던 천지상인이 불현듯 말했다.
“장문인과는 벌써 만났다고 들었네.”
“강론 전에 찾아오셨더라고요.”
“육파이문에서 무당파를 예의 주시하고 있지만 별일은 없을 걸세. 비밀이 새어 나가서 패한 게 아니라 자네의 무위가 뛰어나 패한 것이니.”
“무당파에 빚을 졌네요. 언제고 갚을게요.”
“빚이라니 무슨 그런 소리를. 오히려 그건 칠파이문을 지키기 위한 일이었네. 게다가 자네는 무당파의 제자가 아닌가. 빚이라 생각하지 말게.”
“말씀만이라도 감사하네요.”
연적하는 천지상인의 말에 적잖게 위로를 받았다.
오룡궁에서의 강론에 이어 저런 말을 들으니 자신이 무당파의 일원이라는 게 실감 났다.
“이제 어디로 갈 생각인가?”
“구천현녀의 사당에서 명상을 좀 하고 가려고요.”
“허허. 구천현녀라. 자네의 부신이 구천현녀라는 말은 들었네. 술법도 구천현녀에게 배웠나?”
“술법은 오룡궁에서 배웠어요.”
“아!”
천지상인이 연적하를 힐끔 보았다.
검술과 술법의 발현이 구천현녀와 관계되었으니 구천현녀의 사당을 찾는 것도 이해가 갔다.
“사는 게 참 재밌네요. 오봉산에서 천지상인님을 처음 만날 때만 해도 내가 무당파 제자가 될 줄은 몰랐는데.”
“나도 자네가 청불노 노사의 기명제자라는 소리를 듣고 깜짝 놀랐었네.”
무당파에는 다섯 개의 궁이 있다.
다섯 개 궁마다 추구하는 바가 조금씩 달랐는데 ‘상청궁’은 기공, ‘진무궁’은 무술, ‘오룡궁’은 술법, ‘남암궁’은 단약, ‘태화궁’은 방술에 매진했다.
다섯 개 궁이 무당파의 뿌리인 셈이다.
그래서 오룡궁의 기명제자는 무당파 본산제자로 인정받았다.
한참을 걸어가던 연적하는 마침내 천명 도사가 말한 장소에 도달했다.
사람이 다니지 않은 지 꽤 오래됐는지 잡초 우거진 소로(小路) 끝에 작고 허름한 신당 하나가 서 있었다.
편액조차 붙어 있지 않았지만 연적하는 저곳이 구천현녀의 사당임을 직감적으로 알았다.
무심코 천지상인을 돌아보았지만 천지상인은 끝까지 따라올 기세였다.
연적하의 시선을 느낀 천지상인이 변명처럼 말했다.
“나는 진무궁의 궁주가 되기 전까지 태화궁에 있었네. 정확히는 태화궁의 관리자 중에 하나였지. 혹 태화궁이 뭘 하는 곳인지 아나?”
“모르는데요?”
“오룡궁이 술법이라면 태화궁은 방술을 수련하는 곳이라네.”
“방술요?”
“도술이나 선술 등을 방술이라 하네.”
“아하!”
“최근에는 천문, 역술, 관상, 점술까지도 연구하고 있지.”
“점요? 운명이나 팔자 뭐 그런 거 봐 주는 거요?”
“그렇네. 나는 본래 태화궁 출신으로 그런 쪽으로 관심이 많은 사람이라네.”
연적하가 새삼스러운 눈으로 천지상인을 보았다.
무공의 고수가 그런 독특한 취향을 가지고 있다니 신기했다.
“그런데요?”
“자네가 석경장에 안주했을 때 솔직히 나는 놀랐네. 내가 볼 때 자네는 역마살(驛馬煞)을 타고났거든.”
“쩝…….”
연적하는 떨떠름한 얼굴로 입맛을 다셨다.
사천성의 토지신묘에서 만난 괴 노인도 그런 말을 했었다.
“본래 역마는 살(煞)이 아니라 신(神)을 두고 하는 말이다. 그러니 역마살이 아니라 그냥 역마라고 해야 한다. 너는 역마의 기운을 타고났다.”
“그래서 좋은 거예요? 나쁜 거예요?”
“네가 떠나고자 할 때는 좋은 것이겠지만, 남고자 할 때는 그 반대겠지.”
“남고 싶으면 남으면 되는데 안 좋을 게 뭐예요?”
“그게 자기 뜻대로 되면 그걸 역마라고 하겠느냐? 운명은 거스를 수 없다. 네가 범천욕계에 간 것도 역마의 운을 타고나서 그리된 것이다.”
그때는 무슨 헛소리인가 싶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다 맞는 소리였다.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 싶을 때는 좋겠지만, 지금처럼 가족들 곁에 있고 싶을 때는 저주라고 할 만큼 싫으니까.
“호천맹의 음모를 알리고 돌아와 자네의 점을 봤었네. 일출 후에 태양이 호수를 떠나고 있더군. 해석하자면 반목과 결별, 출가 등을 의미하지. 천하십대고수들을 무릎 꿇린 자네와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 점괘라……. 궁금했네.”
“뭐가요?”
“그 점괘와 자네의 역마살이 가리키는 게 뭔가 싶어서.”
“떠나는 거죠.”
연적하가 무심한 얼굴로 말했다.
노골적인 대답에 놀란 천지상인은 입을 꾹 다물었다.
‘떠난다’는 말의 의미를 곱씹어 봤지만 알기 어려웠다.
그런 그의 귓가에 연적하의 음성이 들여왔다.
“나는 남들과 다르게 살고 싶었어요. 와룡장이나 오봉산에서 만난 사람들과 다른……. 좋은 사람이 되고 싶었거든요. 검왕 장인과 부딪쳤던 것도 그래서였어요. 그런데 이상하게도 항상 결과가 좋지 않았어요. 남맹과 호천맹 모두 내가 관여하기 전보다 훨씬 나빠졌죠. 내가 남들과 다르게 살려고 하면 할수록 결과는 신통치 않았어요. 그래서 다 포기하고 남들처럼 살기로 했어요. 그랬더니 어떻게 된 줄 아세요?”
“…….”
천지상인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자조적인 음성을 들으니 결과가 어땠는지 듣지 않아도 알 것 같았다.
“여전히 좋지 않았어요. 남들과 다르게 살려고 해도 나쁘고, 남들처럼 살려고 해도 나빠요. 나 같은 사람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 거죠?”
“흐음……. 그것이 남맹과 호천맹의 상황을 두고 하는 말이라면, 그러려니 하고 흘려버리게. 자네도, 남맹도, 호천맹도 장구한 천지자연의 흐름 속에서 보면 호수에 잠깐 이는 파문과 같네. 지나가고 말 것에 집착하여 스스로를 괴롭히지 말게.”
위로하고자 한 말임을 알지만 연적하는 동의하지 않았다.
“나 때문에 사람들이 죽어 가는데 어떻게 흘려버리라는 건가요?”
“그게 어째서 자네 때문인가? 자네가 아니라 남맹과 호천맹을 움직이는 사람들의 욕심으로 죽어 가는 걸세.”
“천지상인 님의 말은 맞지만, 그 중심에 내가 있잖아요. 원하든 원하지 않든 내가 혈난의 원인이라는 말입니다.”
“설마, 그래서 이승을 하직하기라도 하겠다는 소린가?”
“푸하하핫!”
천지상인의 말에 연적하는 배를 잡고 웃었다.
‘떠난다’는 말을 엉뚱하게 그런 쪽으로 해석했나 보다.
“그럴 리가요. 나는 생판 모르는 남들을 위해 죽어 줄 정도로 이타적인 사람은 아니에요.”
“허면 어디로 떠난다는 말인가?”
“남맹과 호천맹이 찾지 못할 곳으로 가 볼 생각이에요.”
“역시, 자네를 만나러 오길 잘한 것 같구먼.”
천지상인이 애잔한 눈으로 연적하를 보았다.
이럴 때 보면 고금제일의 무위가 마냥 좋은 것만도 아닌 것 같다.
만약 그가 천하십대고수 급에 머물렀다면 천하를 떠돌 일은 없었을 터.
인외(人外)의 힘은 결국 그를 인간들 곁에서 떠나게 만들었다.
잠시 후 구천현녀의 사당 앞에 도달한 연적하는 그곳까지 따라온 천지상인에게 작별 인사를 건넸다.
“그만 돌아가 보세요. 나는 명상을 하다가 갈 생각이에요.”
“알겠네. 아무쪼록 보중하시게.”
천지상인은 연적하에게 눈인사를 건넨 후에 왔던 길을 돌아갔다.
천지상인이 사라지자 연적하는 사당 안으로 들어갔다.
천명 도사가 손을 썼는지 유등이 희미하게 내부를 밝히고 있었다.
제사를 지내지 않겠다고 말했음에도 불구하고 향로 옆에는 새로 가져다 놓은 향이 수북했다.
고개를 설레설레 젓던 연적하는 제단으로 시선을 돌렸다.
나무로 깎아 만든 구천현녀의 조각상이 제단 한가운데 서 있었다.
빛바랜 구천현녀상을 보고 있으려니 기분이 묘했다.
요즘은 사람들이 구천현녀를 찾지 않는 것일까?
지금까지 구천현녀가 자신에게 행한 이적(異蹟)을 생각하면 고개를 갸웃할 수밖에 없다.
‘그나저나 어떻게 구천현녀님을 부르지?’
거울이라도 있으면 좋겠는데 이곳에는 거울이 없었다.
“향이라도 피워야 하나?”
중얼거리던 연적하는 문득 오래전 적월이 가르쳐 준 ‘태상정일강림신주(太上正一降臨神呪)’를 떠올렸다.
‘신을 부르는 주문이라고 했겠다.’
연적하는 되면 다행이고 아니면 만다는 심정으로 주문을 외웠다.
주문의 암송이 끝날 즈음, 구천현녀상을 받치고 있던 구름 조각들에서 뭉글뭉글 구름이 밀려 나왔다.
‘허! 이게 되네?’
구천현녀의 강림을 직감한 연적하는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
순간 빛바랜 구천현녀상에서 강렬한 빛이 쏟아져 나왔다.
너무도 밝은 빛에 연적하는 손바닥으로 눈을 가려야 했다.
이내 빛이 사라지자 연적하도 손을 내렸다.
퇴색한 조각상이 있던 자리에 눈부시게 화사하고 생동감 넘치는 구천현녀가 구름을 밟고 서 있었다.
“나를 찾았느냐?”
“제가 외운 주문이 정말 통한 건가요?”
연적하의 질문에 구천현녀가 빙그레 웃었다.
“주문은 큰 의미가 없다. 너의 바람이 나에게 닿았을 뿐이다.”
“아, 쩝…….”
연적하는 멋쩍은 얼굴로 입맛을 다셨다.
그렇다면 주문이 왜 있는 건지를 모르겠다.
“연적하, 너는 ‘네 번째 하늘’로 갈 준비가 되었느냐?”
“그 전에 몇 가지 물어볼 게 있는데요.”
연적하가 구천현녀를 빤히 보았다.
석경장에 두고 온 남궁연과 어쩌면 저렇게 닮았는지 모르겠다.
“무엇이냐?”
“제 처가 이상한 소리를 하더라고요. ‘도솔천(兜率天)’의 하루가 인간의 사백 년이고, ‘타화자재천(他化自在天)’의 하루는 인간의 천육백 년이라고. 그러면서 상계의 시간이 현세와 다르다고 하던데, 사실인가요?”
“그러하다. 상계와 하계의 시간은 다르다.”
“‘네 번째 하늘’과 현세의 시간도 다르겠네요?”
“물론이다. ‘너의 인생이 걸린 일이니 강요하지 않겠다’고 한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다.”
연적하는 ‘네 번째 하늘’과 현세의 시간 차이를 묻지 않았다.
그랬다가는 쓸데없이 생각만 많아질 것 같았다.
남궁연이 ‘다시 만날 수 있다’고 했으니 일 년 후든, 십 년 후든, 백 년 후든 다시 만날 방법은 있을 터였다.
연적하를 지그시 보던 구천현녀가 입을 열었다.
“‘네 번째 하늘’과 현세의 시간이 어떻게 다른지 알고 싶으냐?”
“아니요.”
연적하는 단호하게 거절했다.
그가 궁금한 것은 ―당장 어떻게 할 수 없는― 시간이 아닌, 적들에 대한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