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1008
1008회. 천공성과 어비스
무덤덤한 얼굴로 서 있는 연적하에게 일리아나가 말했다.
“영주들을 쉽게 생각하지 마세요.”
“무슨 소리예요?”
“푸토코아 백작가를 협박할 생각을 하지 말라는 말이에요.”
“협박한 적 없는데요?”
“푸토코아 백작령의 야인들을 괴롭히면 새로운 후계자를 찾아야 할 거라고 했잖아요. 그게 협박이 아니면 뭐예요?”
“경고죠.”
일리아나가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저런 소리가 푸토코아 백작가에 전해지면 그는 물론, 푸토코아 백작령의 야인족들도 무사하지 못할 터였다.
“그래서 영주들을 쉽게 생각하지 말라고 한 거예요. 북방 지역 영주들의 영지는 어마어마하게 커요. 그중에서도 3대 영주들의 힘은 무시무시하죠. 푸토코아 백작가는 3대 영주들 중 하나예요. 그곳의 그리폰 기사단에는 ‘소드 익스퍼트(전문가)’가 세 분이나 계시다고 들었어요.”
“그런데요?”
“그리폰 기사단이 움직이면 엘리오 님도 위험해진다는 거죠. 엘리오 님의 뒤에 베르나르도 후작님이 계시니까 그렇게까지 하지는 않겠지만.”
“‘소드 익스퍼트’가 그렇게 대단한 사람들이에요? 프릿츠 남작을 보니까 별로던데.”
“하아! 프릿츠 남작은 고작 ‘소드 비기너(입문자)’예요. 천 명의 ‘소드 비기너’ 중에서 ‘소드 익스퍼트’가 되는 사람이 몇 명이나 있을 것 같아요? 한두 명에 불과해요.”
일리아나가 답답한 얼굴로 엘리오를 보았다.
에스카토스 왕국에 ‘소드 익스퍼트’는 스무 명이 조금 넘는다.
그중 절반이 북방 3대 영지의 기사단에 속해 있다.
북방의 미개척 지대에서 내려오는 마수들을 막다 보니 자연히 기사단이 강해진 것이었다.
연적하가 무덤덤한 얼굴로 말했다.
“그러니까 그리폰 기사단을 조심하라는 건가요?”
“맞아요. 그리폰 기사단이 움직일 빌미를 주지 않는 게 좋을 거예요. 베르나르도 후작님이 뒤를 봐주는 것도 한계가 있으니까요.”
“푸토코아 백작가는 나를 상대할 여력이 없을 거예요.”
“왜요?”
“푸토코아 백작이 히르헤라에서 죽었잖아요.”
“그래서요?”
일리아나가 엘리오를 뚫어져라 보았다.
푸토코아 백작의 장자가 모든 것을 물려받았는데 왜 상대할 여력이 없다고 하는지 모르겠다.
연적하는 그녀의 눈빛에서 아직 히르헤라의 참사가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음을 알았다.
하기사 빙벽에 문제가 생겼다는 게 알려지면 로디나 대륙이 발칵 뒤집힐 테니 쉬쉬하고 있을 게다.
“아니, 뭐, 그렇다고요.”
연적하도 사안의 중대성을 알기에 대충 얼버무렸다.
“공식적인 후계자가 없다면 경황이 없겠지만, 푸토코아 백작가의 경우 장자가 모든 것을 물려받았다고 들었어요. 그러니까…….”
“아 네, 주의하겠습니다. 그런데 궁금한 게 있는데요. 혹시 ‘카마 데비아스’와 ‘우샤스 운드라’에 대해 알아요?”
“카마 데비아스는 ‘태양신’이고, 우샤스 운드라는 ‘어비스’를 만든 신이에요.”
“그 신들을 만나려면 어떻게 해야 돼요?”
“카마 데비아스는 ‘천공성’, 우샤스 운드라는 ‘어비스’에 있다고 해요.”
“‘천공성’과 ‘어비스’에 있다는 거네요?”
“그렇죠.”
“혹시 ‘천공성’과 ‘어비스’가 어디에 있는지도 알아요?”
“‘천공성’은 오래전부터 마탑에서 연구하고 있으니까, 마탑이라면 알지 않을까요?”
“마탑은 어디 있는데요?”
“로디나 대륙의 마탑은 전부 제국에 있어요. 제국이 대륙의 중심이다 보니.”
“아……. 그럼, ‘어비스’는요?”
“로디나 대륙 남부의 대수림(大樹林)에 있어요.”
“대수림요?”
“정확히는 대수림이라고 불리는 미개척 지대예요.”
“미개척 지대면……. 위치도 알려져 있지 않겠네요?”
“그런 건 아니에요. ‘어비스’ 주변에 도시가 건설되어 있거든요. 도시라기보다는 엄청나게 큰 마을이라고 할까? 저도 말로만 들어서 그게 도시인지 마을인지 잘 모르겠네요.”
연적하가 고개를 끄덕였다.
“여하튼 ‘어비스’ 주변에 엄청나게 큰 마을이 있으니까 쉽게 찾을 수 있다는 거죠?”
“그렇죠.”
“미개척 지대라면서 엄청나게 큰 마을은 또 뭐예요? 그 정도면 개척된 거 아니에요? 막 영주도 있고 그럴 것 같은데.”
“대수림의 주인은 없어요. 제국에서도 손 놓은 땅인데 누가 주인 행세를 할 수 있겠어요?”
“그래도 마을이 있다면서요?”
“‘어비스’ 주위에 트레저 헌터(보물 사냥꾼)들이 정착하면서 생긴 마을이라서, 엔아르케같이 평범한 마을을 생각하면 안 돼요.”
“그곳에 트레저 헌터들이 정착할 만한 이유가 있나요?”
“그야 당연히 ‘어비스’에서 나오는 보물 때문이죠. 하지만 대수림을 뚫고 들어가야 하니까, 일반인은 접근할 수도 없고요. 그러다 보니 마을이 생겼어도 소속 영지가 없는 거죠.”
“아하!”
그제야 연적하는 ‘대수림’과 ‘어비스’와 ‘트레저 헌터 마을’의 관계를 대략 이해할 수 있었다.
한편으로 이상했다.
구천현녀는 왜 ‘천공성’과 ‘어비스’가 아닌 ‘혼돈’을 따라가라고 했을까?
그래도 ‘천공성’과 ‘어비스’라는 구체적인 장소를 알게 되니 막막함이 좀 가셨다.
물론 마탑과 어비스로 간다 해서 카마 데비아스와 우샤스 운드라를 만나게 되는 건 아니겠지만 말이다.
생각에 잠겨 있는 그의 귓가로 일리아나의 음성이 들려왔다.
“혹시 ‘천공성’과 ‘어비스’에 가려는 건 아니죠?”
“글쎄요.”
연적하가 애매한 얼굴로 그녀를 보았다.
자신도 혼돈을 따라가서 천자마와 금사를 만났으면 좋겠다.
하지만 세상일이 어디 계획대로 되던가.
일리아나가 담담한 어조로 말했다.
“쉽지 않을 거예요.”
마법사는 검사보다 상위의 존재다.
그들이 일개 남작에게 세계의 비밀을 알려 줄까?
아니, 어쩌면 마탑의 근처에도 못 갈 수 있다.
마탑이 있는 제국은 에스카토스 왕국보다 더한 강자들로 바글거리기 때문이다.
‘어비스’도 불가능하기는 마찬가지다.
대수림에 있으니 찾아갈 수는 있겠지만 그게 전부다.
지난 수천 년간 트레저 헌터들이 ‘어비스’의 신비를 파헤치려 했지만, 그들이 그곳에서 얻은 건 단지 보물 몇 점뿐이다.
그 보물로 인생이 바뀐 사람들도 있지만 ‘어비스’의 주인과 만났다는 사람은 아직 없었다.
연적하는 어깨를 으쓱해 보인 후 걸음을 떼어 놓았다.
‘그래도 혼돈보다는 천공성과 어비스가 훨씬 낫지.’
‘혼돈’에서 천자마와 금사의 꼬리를 찾지 못하면, ‘천공성’과 ‘어비스’로 방향을 전환하는 것도 괜찮아 보였다.
***
푸토코아 백작령.
파고스.
영주성.
상석에 앉은 새 영주 토비아스 푸토코아 백작이 불쾌한 눈빛으로 프릿츠 남작을 내려다보았다.
“거절을 했다고?”
프릿츠 남작이 허리를 접으며 답했다.
“그렇습니다. 베르나르도 후작께서 작위를 약속했다 합니다.”
“그런 뻔뻔한 말을 듣고 그냥 돌아왔다?”
“아닙니다. 거절을 빌미로 결투를 신청했으나 부끄럽게도 패했습니다. 하여 물러설 수밖에 없었습니다.”
“남작이 내 휘하의 기사인 것을 알고도 싸웠다는 말인가?”
“그렇습니다. 송구합니다.”
프릿츠 남작이 고개를 떨구자 그리폰 기사단 부단장 밴 리치터 자작이 끼어들었다.
“영주님의 소환을 거부한 것만으로 야인은 죽어 마땅합니다! 그리폰 기사단에서 놈의 목을 베어 오겠습니다.”
그러자 기사단장 콜라시오 키퍼 자작이 만류했다.
“베르나르도 후작에게 작위를 약속받았다고 하지 않던가. 영주님, 우리가 놈을 죽이면 베르나르도 후작은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원할 겁니다.”
토비아스 푸토코아 백작이 빠드득 이를 갈았다.
“아버지의 죽음에 대해 듣고 싶었는데, 그걸 거절하다니! 경들은 그 명예를 모르는 야인 놈에게 어떤 벌이 어울린다고 생각하시오?”
부단장보다 한발 앞서 기사단장 키퍼 자작이 말했다.
“야인들은 부족을 가족 돌보듯 합니다. ‘산의 부족’을 죽이면, 놈이 받게 될 충격도 클 것입니다. 베르나르도 후작도 뭐라 하지 못할 테고요.”
그제야 토비아스 푸토코아 백작의 얼굴이 풀어졌다.
“좋은 생각이시오. 그러나 야인들의 죽음만으로는 부족한 감이 있소. 그들의 귀를 잘라 놈에게 보내는 건 어떻소? 부족의 죽음이 제 탓이라는 걸 알게 하자 이 말이오.”
기사단장이 고개를 끄덕여 공감을 표시했다.
“현명하신 말씀이십니다. 그렇게 하면 이후에 계약하는 야인들도 배신할 생각을 하지 못할 것입니다.”
회의에 참석했던 다른 귀족들도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그들에게 야인의 토벌은 손해나는 일이 아니었다.
오히려 세금 도둑들에게서 재물을 약탈할 소중한 기회였다.
게다가 다시 계약할 야인 부족들에게 공포심을 심어 주기에도 좋았다.
그날 오후, 그리폰 기사단 서른 명이 영주성을 나섰다.
그들의 목적지는 ‘산의 부족’이 거주하는 ‘알바 누베스’ 산맥.
그로부터 칠 일 후, 그리폰 기사단은 사람 귀가 가득 든 푸대를 짊어지고 영주성으로 돌아왔다.
***
베르나르도 후작령.
엔아르케.
열흘쯤 지나자 연적하는 팔과 다리의 붕대를 풀었다.
그의 빠른 회복에 치료사인 일리아나는 혀를 내둘렀다.
“지금까지 내가 본 환자들 중에 엘리오 님의 회복이 가장 빠르네요. 이 정도 속도면 마법사를 찾아갈 필요도 없겠는데요?”
“마법사도 치료를 할 줄 알아요?”
연적하가 놀란 눈으로 일리아나를 보았다.
자신도 부적과 주문을 쓰지만, 치료는 완전히 다른 영역인 까닭이다.
“그럼요. 마법사의 힐에 비하면 치료사는 정말 아무것도 아니에요. 아직 마법사를 못 만나 보셨어요?”
“예. 본 적도 없어요.”
“그럴 리가요. 후작님과 함께 방문하셨던 분들 중에 마법사도 있었는데.”
“누구요?”
“지팡이를 들고 계시던 할아버지요. 그분에게 아티팩트를 받은 거 아니었어요?”
“아! 맞아요. 그 할아버지에게 받았어요. 그분이 마법사였구나. 어쩐지 이상한 술법을 쓰더라니. 그분의 경지가 어느 정도인지 아세요?”
“5서클 메이지세요.”
“높은 건가요?”
“굉장히 높죠. 기사로 치면 ‘소드 마스터’와 ‘소드 익스퍼트’의 중간이니까요. 게다가 마법사는 희귀한 것도 있지만, 메이지의 공격 마법을 기사가 감당하기 어렵거든요. 그래서 기사보다 더 좋은 대접을 받아요.”
연적하는 일리아나의 말을 완전히 알아듣지 못했지만 더 묻지 않았다.
백번 듣는 것보다 한번 보는 게 낫다[百聞不如一見]고 하지 않던가!
어차피 만나 보면 알 일이었다.
엘리오의 팔과 다리를 매만지던 일리아나가 혼잣말하듯 중얼거렸다.
“후작님 일행이 떠난 지도 벌써 열흘쯤 됐네요. 비공정(飛空艇)을 가까이서 보기는 그때가 처음이었는데.”
“비공정이 뭐예요?”
“아, 비공정을 아직 모르시는구나. 마법사들은 여러 학파로 나누어져 있거든요. 그중에 연금술과 마공학을 연구하는 학파가 타불라예요. 그곳에서 공중을 부양하는 배를 만들었는데 그걸 비공정이라고 해요.”
“배가 하늘을 날아다닌다는 건가요?”
“네, 우리 왕국에 딱 한 대가 있다고 들었는데, 그걸 후작님 일행이 타고 오셨더라고요.”
“아니, 배가 어떻게 하늘을 날아다녀요?”
“훗! 마법사들이 불과 벼락, 얼음을 만들어 내는 건 이상하지 않고요? 심지어 다친 사람들을 마법 영창으로 치료까지 한다고요. 그걸 생각하면 배가 하늘을 날아다니는 건 아무것도 아니죠.”
“아, 또 그게 그렇게 되나? 그러네요.”
연적하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하기야 자신의 몸속에도 아홉 개의 구천검령이 들어 있는데, 배가 하늘을 날아다니는 게 뭐 어떻다고.
“그런데 연금술과 마공학에는 돈이 엄청 들어가거든요.”
“아 마법 영창으로 하는 게 아닌가 봐요?”
“연금술과 마공학을 연구하는 데 값비싼 재료가 필요하거든요. 그래서 비공정 한 대 값이 어마어마하대요. 왕궁에 한 대뿐이라니 말 다했죠. 그런데 그걸 타고 이곳까지 올 정도의 일이 뭘까요? 마을에 머무르지 않고 바로 떠난 걸 보면 엘리오 님 때문은 아닌 것 같은데. 혹시 왜 그런지 아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