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101
101회. 내 부덕의 소치요
소수마검 진가희가 검은 괴물로 변해 갈 때 연적하는 당황했지만 놀라지는 않았다. 남양상방 앞에서 대력귀가 그렇게 돼 가는 과정을 본 까닭이다.
그러나 눈앞에서 진가희가 사라졌을 때는 정말 심장이 철렁했다.
대력귀는 미련할 만큼 천천히 움직이다가, 일정 시간이 지난 후에 빨라졌다.
진가희도 그런 과정을 거칠 거라 지레짐작했다.
하지만 그 생각을 비웃기라도 하듯 진가희의 움직임은 처음부터 전광석화였다.
화르르륵.
머리 위에서 뜨거운 기운이 느껴졌다.
본능적으로 위를 올려다본 연적하는 기함을 하고 말았다.
“헉!”
한 아름이 넘어 보이는 불덩어리가 똑바로 날아오고 있었다.
그 너머로 두 팔을 뻗고 있는 진가희가 보였다.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 순간 멈칫했지만, 다행히 몸이 먼저 반응했다.
팟.
지면을 박찬 연적하의 신형이 앞으로 튀어 나갔다.
콰아앙!
방금까지 연적하가 서 있던 자리에 불기둥이 솟았다.
시뻘건 불길은 마치 지옥의 겁화인 양 바닥의 흙까지도 녹였다.
연적하는 검을 머리 위로 세우고 벼락처럼 진가희를 향해 날아갔다.
퍽-.
검 끝이 검붉은 몸체를 때리자 진가희의 몸은 일 장이나 위로 밀려났다.
“죽어!”
연적하는 지면으로 떨어지기 직전, 있는 힘껏 검기로 충만한 검을 던졌다.
쉬이이익! 퍼억!
격중당한 진가희의 몸에서 검은 연기가 왈칵 쏟아져 나왔다.
하지만 그뿐이다.
진가희는 죽지 않고 허공에서 몇 번 몸을 뒤집더니 담장 위에 내려섰다.
그래도 충격이 상당한지 두 팔을 축 늘어트리고 한동안 움직이지 않았다.
그 뒤로 진가희의 움직임이 미묘하게 달라졌다.
흰자위가 없는 칠흑같이 검은 눈으로 주변을 힐끔거렸다.
멀리 튕겨 난 검을 허공섭물로 끌어당기던 연적하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설마? 달아나려고 그러는 건 아니겠지?’
저 괴물이 달아난다는 건 생각해 본 적이 없다.
하지만 대력귀와 다른 몸놀림을 생각하면 불가능할 것 같지도 않았다.
다른 이도 아닌 월하교당의 적을 도망치게 둔다?
이미 사람이라 하기도 어렵지만 연적하는 놓치고 싶지 않았다.
그는 검이 손바닥에 잡히자마자 진가희처럼 검을 앞세우고 날아갔다.
쉬이이익.
진가희는 아직 움직일 수 없는지 제자리에서 두 손을 휘저었다.
놀랍게도 진가희의 검은 손에서 불기둥에 뿜어져 나왔다.
화르르륵. 화르륵.
연적하는 날아가던 기세 그대로 구천세법 삼 식 운룡풍호를 펼쳤다.
검 끝에서 일어난 검풍은 이내 용권풍으로 변했다.
용권풍 속에서 똬리 틀고 있던 청룡이 불기둥을 갈기갈기 찢었다.
퍼펑. 펑.
연적하는 활짝 드러난 진가희의 가슴에 검 끝을 밀어 넣었다.
순간 위기를 느낀 진가희가 맨손으로 검을 후려쳤다.
콰앙.
진가희의 손에서 검은 연기와 재가 풀썩 피어났다.
그 반동에 옆으로 살짝 밀려났던 검이 부드럽게 반원을 그렸다.
구천구검의 이 식 행지무강(行之無疆, 행함에 경계가 없다)이다.
진가희가 다시 손바닥으로 검면을 후려쳤다.
하지만 이번엔 통하지 않았다.
연적하의 검은 마치 한 마리 나비처럼 부드럽게 손을 타고 넘었다.
푹.
검 끝이 진가희의 피부를 파고들었다.
역시나 구천세법 때와는 다르게 검 끝으로 막강한 구천기가 뻗어 나갔다.
“크아아악!”
진가희가 괴성을 지르며 상체를 뒤흔들었다.
구천기는 진가희의 가슴을 관통하고도 삼 장(약 9미터)이나 더 나아갔다.
콰아아아-.
또다시 신맥이 화끈거리며 눈앞에 무저갱과도 같은 흑암의 동혈이 떠올랐다.
대력귀 때처럼 거대한 형상의 검은 괴물이 진가희와 똑같이 몸부림치고 있었다.
‘뭐냐 너는!’
이번에는 좀 유심히 살펴보려는데 눈앞이 번쩍이더니 모든 게 사라졌다.
연적하는 검을 거두고 황급히 뒤로 물러났다.
“크으으…….”
진가희의 신음이 점점 잦아들었다.
설명할 수 없지만 생명의 근원이 빠져나가는 게 확연히 느껴졌다.
스스스스.
다음 순간 대력귀처럼 그녀의 몸도 재로 변해 흩날렸다.
이번에도 십여 개의 파란빛 덩어리들이 튀어나와 노을 진 하늘로 날아갔다.
연적하가 터벅터벅 마당을 가로질렀다.
대행수 이화수는 눈도 마주치지 못하고 이리저리 시선을 피했다.
그런다고 넘어가 줄 연적하가 아니다.
“노인장.”
“예, 예.”
“무슨 짓을 한 거야?”
“저어, 그게, 방주님께서…….”
이화수는 너무 놀라 자기도 모르게 방주를 끌어들였다.
사실 모두 상재용이 시켜서 한 일이니 책임을 전가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 늙은이가 뭐라고 했는데?”
“월하교당의 십두마병을 초대해서 복수를 하라고 하셨습니다.”
“무슨 복수?”
연적하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정작 피해 본 사람은 풍 형님과 탁 형님인데 왜 그 늙은이가 복수 운운한단 말인가?
“와룡장 분들이 방주님을 모욕했다고…….”
듣고 있던 탁고명의 입에서 대뜸 욕설이 튀어나왔다.
“뭐? 모욕? 그 개만도 못한 놈이 용서해 줬더니 주제 파악도 못 하고!”
“…….”
이화수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진가희와 연적하가 싸우는 걸 보니 방주를 변호할 엄두도 나지 않았다.
‘이건 확실히 방주님의 잘못이다.’
장사하는 사람은 저렇게 무시무시한 고수와 척을 지면 안 된다. 아직까지 천외천의 고수를 적으로 돌리고 흥한 상방은 없었다.
“뭔가 오해가 있었을 겁니다. 제가 방주님을 모시고 와서 사죄를…….”
“뭐? 오해? 어디서 개수작이야! 유명교 고수를 끌고 온 사람이 누군데! 이 늙은이가 어디서 어물쩍 넘어가려고 그래? 우리가 그렇게 물로 보여? 엉?”
말과 함께 탁고명이 이화수 앞으로 걸어갔다.
그제야 이화수가 하얗게 질린 얼굴로 굽실거렸다.
“요, 용서해 주십시오. 제가 유명교 사람을 데리고 온 건 사실입니다만, 저도 지시를 받는 처지다 보니. 제발 한 번만 봐주십시오.”
“당신은 우리를 죽이려고 한 거라고! 알아? 연 아우가 약했으면 우린 다 죽었어! 이! 이…….”
탁고명은 이화수를 후려칠 듯 손을 쳐들고 부들부들 떨었다.
그러나 그는 끝내 주먹을 휘두르지 못했다.
이 기분에 한 대 쳤다가는 늙은 이화수가 절명할 것 같아서다.
뒤따라간 풍연초가 위로하듯 탁고명의 어깨를 다독였다.
그러다가 갑자기 돌아서서 손바닥으로 이화수의 면상을 후려쳤다.
철썩!
강한 타격에 이화수의 머리가 홱 돌아갔다.
무림인에게 얼굴을 정통으로 얻어 맞고도 이화수는 쓰러지지 않았다. 아직 풍연초의 몸이 회복되지 않아 견딜 만했던 모양이다.
오히려 그 한 번의 동작으로 풍연초의 호흡이 거칠어졌다.
“하아! 하아! 늙은이 잘 들어. 내일 아침에 상재용을 데리고 와. 알겠어?”
“예, 예.”
“꺼져.”
이화수는 죽다가 살아난 얼굴로 굽실거리다 돌아갔다.
잠시 서 있던 세 사람은 하나둘씩 전각의 마루에 걸터앉았다.
풍연초가 혼잣말하듯 중얼거렸다.
“아까는 네가 치면 죽을 것 같아서 내가 쳤다.”
“잘했소, 형님. 칠까 말까 많이 망설였소. 내가 때렸으면 죽었을 거요.”
“그럴 거 같더라. 시킨 놈이 나쁜 놈이지. 대행수는 그냥 심부름꾼 아니냐.”
“하아! 그러게 말이우. 그나저나 상재용 그놈을 어떻게 하면 좋겠수?”
탁고명이 풍연초를 힐끔 보았다.
상재용은 두들겨 패면 원한을 가질 놈이었다. 그렇다고 죽이자니 일만 키우는 것 같다. 이래저래 골칫덩어리가 아닐 수 없다.
“내일 하는 꼬라지를 보고…….”
풍연초도 답답한지 인상을 찌푸렸다.
상방의 방주쯤 되면 보통 인맥이 아닌지라 쉽게 건드릴 수 없다. 유명교 고수를 불러들인 일 따위는 별것 아닌 것으로 치부될 수 있다.
그렇게 상재용의 처리는 내일로 미루어졌다.
밤하늘을 올려다보던 탁고명이 문득 생각난 듯 말했다.
“연 아우, 아까 그 시커먼 거 말야. 그건 대체 뭐냐? 사람이냐? 귀신이냐?”
“저도 모르겠어요. 그래도 칼이 통하는 거 보면 귀신은 아닌 것 같긴 한데…….”
연적하가 애매하다는 얼굴로 말꼬리를 흐렸다.
“처음에는 칼에 맞고도 멀쩡했잖아. 그런 걸 대체 어떻게 해치운 거냐?”
“구천구검요. 전에 남양에서 비슷한 걸 만난 적이 있거든요. 그런데 이상하게 구천구검에는 맥을 못 추더라고요. 이번에도 역시 그러네요.”
“아, 구천구검!”
탁고명의 입에서 탄성이 흘러나왔다.
그도 연적하의 구천구검이 특별하다는 걸 알고 있다. 구천구검은 구천세법에 통달하지 않으면 익힐 수도 없는 신기한 검공이었다.
풍연초가 알 것 같다는 듯 고개를 주억거렸다.
“우리가 모르는 구천구검의 공능이려나. 연 아우의 무공은 신묘하니까.”
“와! 형님, 저도 방금 비슷한 생각을 했습니다. 그나저나 그게 귀신이 아니면 뭘까요?”
“유명교가 만들어 낸 사악한 거겠지.”
“휴우! 저는 여자가 두 배로 커지는 걸 보고 지릴 뻔했습니다.”
“벌써 지린 건 아니고?”
“말이 그렇다는 거죠. 애도 아니고 제가 왜 지립니까.”
“나는 네가 지리는 거……”
“형님, 쓸데없는 얘기 그만하고 앞으로 어떻게 할지나 의논해 봅시다.”
탁고명은 얼른 화제를 돌렸다.
다행히 풍연초는 ‘킬킬’거리면서도 더 이상 그 일을 거론하지 않았다.
***
다음 날.
태양이 머리 위에 걸릴 즈음, 대행수 이화수와 방주 상재용이 찾아왔다.
이화수는 정해진 시간을 지키지 못해 고개를 들지 못했다.
상재용과 함께 오전 내내 대책을 궁리하다가 그렇게 된 것이었다.
상재용은 지은 죄가 있는지라 먼저 말을 꺼내지 못하고 눈치만 살폈다.
의형제들의 맏형인 풍연초가 마루 한가운데 앉아 입을 열었다.
“상재용. 어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대행수에게 들었겠지?”
풍연초는 처음부터 강하게 나갔다.
상대는 유명교 고수를 불러 자신들을 죽이려 했으니 적이나 다름없다. 적에게 말을 높일 만큼 풍연초는 맹한 사람이 아니었다.
기루 호위의 반말에 상재용은 눈가를 실룩거렸지만 이내 담담히 말했다.
“하아! 모두가 내 부덕의 소치요.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소. 풍 대협께서 용서해 준다면 다시는 이와 같은 일을 벌이지 않으리다.”
“…….”
풍연초가 아우들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탁고명은 얼굴에 짜증이 가득했고, 연적하는 경험이 없어 머리를 긁적였다.
풍연초는 다시 상재용을 바라보았다.
‘저걸 죽여? 살려?’
고민하던 풍연초가 막 한마디 하려 할 때다.
“으흐흐흐! 저런 십팔 대 조상까지 따먹을 개 후레자식 같으니! 자아! 내 선물이다! 이걸 보고도 역겨운 소리를 할 수 있겠느냐?”
말과 함께 심통이 한 사내의 뒷덜미를 잡고 하늘에서 뚝 떨어져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