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102
102회. 정주 어떻습니까?
구천노도 심통이 잡고 있던 사내를 상재용에게 내던졌다.
“억!”
“윽!”
쿠당탕.
사해상방 방주 상재용과 살인귀 추엽진이 한데 얽혀 뒹굴었다.
“풍 형제, 저놈이 바로 추엽진이라는 놈이오. 상재용이 천살마안 척도광을 시켜 죽이려는 걸 내가 살려 왔소. 진실은 이렇소. 풍 형제의 살인을 계획한 자가 추엽진이고, 결정한 자가 상재용이었던 거요. 모두 장문호의 포목점을 빼앗기 위해 한 짓이었소. 그런데 일이 틀어지자 상재용은 추엽진에게 모든 죄를 뒤집어씌운 뒤에, 죽이려고 했소.”
풍연초가 기막힌 얼굴로 상재용을 보았다.
“저 말이 사실이냐!”
“아, 아니오. 그날 추엽진이 청부 살인을 제안한 것은 사실이오. 그러나 나는 그에게 알아서 하라고, 이번 일에서 손을 떼겠다고 분명히 말했소.”
심통이 가소롭다는 듯 말했다.
“흐흐흐. 그래, 그리고 돈 한 푼 없는 추엽진에게 청부금 칠백 냥을 내주었지. 이 돈은 내가 준 돈이 아니라고 하면서 말이야.”
그제야 상재용은 사색이 되어 땅에 머리를 처박았다.
“요용서해 주시오! 잠시 욕심에 눈이 어두워서 그만…… 모두 내 부덕의 소치요.”
“어허허…….”
풍연초의 입에서 실소가 흘러나왔다.
살인을 청부한 늙은이가 또 ‘부덕의 소치’란다.
끝내 분노를 참지 못한 탁고명이 상재용에게 달려갔다.
“이 추잡한 늙은이야! 그건 찢어 죽일 사악한 죄지 부덕이 아니다!”
말과 함께 탁고명이 박도를 뽑아 들었다.
깜짝 놀란 풍연초가 급히 뛰어가 탁고명의 팔을 잡았다.
“그만! 참아. 지금 이 늙은이를 죽이면 아우만 피곤해져. 이 늙은이는 장문호와 다르다고.”
“그럼 어쩌자는 거요?”
“일단 저 둘을 관부에 넘겼으면 한다.”
“하지만 이미 장문호가 죽었지 않소. 저 두 놈이 관부에 가서 다 털어놓으면 우리는 개봉을 떠나야 하오. 그냥 깨끗하게 싹 죽이고 묻어 버립시다.”
그러자 상재용이 이마로 땅을 쿵쿵 찍으며 말했다.
“아닙니다! 절대로 두 분의 이름은 입에 올리지 않겠습니다! 장문호는 살인을 청부하고 그 죄가 들통나자 달아난 것으로 말해 두었습니다! 관부에서도 장문호의 일은 거론하지 않을 겁니다! 정말입니다!”
상재용은 필사적으로 매달렸다.
이 자리에서 목이 잘리느니 관부로 보내지는 게 훨씬 나은 까닭이다.
저들의 죄를 고발하는 건 꿈도 꾸지 않았다.
탁고명의 말대로 저들은 개봉을 떠나면 그만이다.
관병들의 재주로는 죽었다가 깨어나도 저들을 잡지 못할 테니까. 섣불리 저들을 고발했다가는 자신만 위태로워질 뿐이다.
씩씩거리던 탁고명이 상재용을 노려보며 말했다.
“만약 관부에서 풍 형님이나 나를 찾으면, 맹세컨대 네놈의 사지를 찢어 죽일 것이다.”
“저, 절대로 그럴 일은 없습니다. 맹세할 수 있습니다.”
상재용이 뜨거운 눈으로 탁고명을 보았다.
그건 진심이었다. 평소 관부에 뿌린 돈이 많다. 이화수를 통해 앞으로 더 뿌릴 계획이다. 그 돈이면 최소한 목숨은 건질 수 있다. 살아만 있으면 다시 풀려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마침내 탁고명이 박도를 회수했다.
“쩝, 형님이 당한 일이니 형님 뜻대로 하슈.”
“고맙다. 대행수.”
“예.”
이화수가 넙죽 허리를 숙였다.
“당신도 귀가 있으면 무슨 일이 있었는지 들었겠지?”
“……예.”
“지금 당장 저들을 관부로 끌고 가서 죄를 밝히시오. 만에 하나 허튼 짓을 했다가는, 탁 아우의 칼이 춤추는 걸 보게 될 거요. 알겠소?”
“예, 예. 말씀대로 하겠습니다.”
이화수가 상재용의 눈치를 힐끔 살폈다.
상재용은 그의 말에 따르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후 이화수는 호위를 불러 상재용과 추엽진을 포박한 뒤 데리고 나갔다.
“풍 형제와 탁 형제가 이번 일로 개고생을 했는데, 배상이라도 받아 내야 하는 거 아니오?”
심통의 말에 풍연초가 질린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싫소. 왠지 그랬다가는 나도 저놈의 돈을 받아먹은 사람 중에 하나가 될 것 같아서…….”
“쩝, 상재용이 제 발로 관부에 가겠다는 걸 보면 무슨 수가 있나 본데…….”
심통은 이대로 끝내기가 영 아쉬운 모양이다.
그러자 탁고명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심 노인, 우리가 본래 어떤 사람이었는지 잊었수? 오늘 그놈들을 살려 둔 것은 목격자가 많아서요. 그 놈들이 죗값을 치르지 않고 나오면……. 쥐도 새도 모르게 죽을 거요. 그렇지 않소, 형님?”
“두 번 말하면 잔소리지.”
“흐흐흐. 두 분 모두 복잡하게 사시는구려. 그냥 죽이고 산으로 와도 되는데.”
듣고 있던 연적하가 혀를 찼다.
“쯧쯧! 전에 주루에서 누가 그러더라. 자식을 낳아 보지 않으면 애라고. 늙은이가 입만 열면 죽이자 그러고, 뻑하면 산으로 가재. 인생을 몰라, 인생을.”
“…….”
심통이 머쓱한 얼굴로 수염을 매만졌다.
뭐라 반박하고 싶었지만 ‘자식이 없다’는 점에서 말문이 막혔다.
***
십이월.
개봉.
사해상방 방주 상재용과 낭인 추엽진은 살인을 청부한 죄로 투옥됐다. 그를 대신해 대행수 이화수가 사해 상방의 전면에 나섰다.
상재용이 투옥되고 닷새쯤 지나 풍연초와 탁고명은 용희루를 떠났다. 대행수 이화수와의 관계가 껄끄러워 사해상방을 나갈 수밖에 없었다.
사해상방을 떠난 두 사람은 금방 금선상방에 자리를 잡았다. 상방들 간에 이권 다툼이 치열해 검객들 일자리는 차고 넘쳤다.
연적하와 심통은 낙양에서처럼 객점에 방을 잡고 빈둥거리며 지냈다.
웬일인지 심통은 사합원을 구하자고 하지 않았다.
마치 연적하가 개봉에 오래 머무르지 않을 걸 아는 것처럼 말이다.
개봉에 머무른 지 열흘쯤 됐을까?
주루에서 함께 술을 마시던 풍연초가 말했다.
“연 아우, 위로 하나 있다는 누이의 이름이 혹시 설주가 맞느냐?”
“예. 그런데 왜요?”
“허, 오늘 낮에 금선상방의 무사들과 만났는데, 그들이 그러더구나. 해원상방에 와룡장의 연씨가 있다고. 혹시나 해서 물어보니 연설주라고 하더라.”
“…….”
연적하는 뚱한 얼굴로 안주를 집어 먹었다.
사실 그는 연씨들이 어디서 무얼하건 신경 쓰지 않았다.
탁고명이 간단한 설명을 붙였다.
“요즘 금선상방과 해원상방이 진안야시(晉安夜市, 진안 야시장)의 상권을 두고 다투는 중이거든. 이러다가 연설주와 마주치게 될지도 몰라.”
“와아, 징그럽네요.”
연적하가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이 넓은 세상에서 의형제들이 하필 연씨와 엮일 줄이야.
하지만 한편으로 생각하면 그건 검객들의 숙명이었다. 같은 지역에서 낭인으로 생활하다 보면 언젠가 마주칠 수밖에 없으니.
“연설주에게 아우가 누군지 알려 줘도 될까?”
풍연초는 슬쩍 연적하의 표정을 살폈다.
그는 연씨들과 싸우고 싶지 않았다. 미우니 고우니 해도 그들은 연적하의 피붙이였다.
탁고명이 거들었다.
“오봉산채에서의 일은 자기들도 양심이 있으면 뭐라 하지 못할 거야.”
탁고명은 연설주가 그 일로 앙심을 품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다. 연적하가 와룡장에서 받은 고난에 비하면 그건 애교 수준이었다.
연적하는 풍연초와 탁고명이 왜 그런 말을 하는지 단박에 알았다.
연설주와 싸우고 싶지 않은 것이리라.
“편한 대로 하세요. 어차피 이제 곧 여기저기서 소문이 날 텐데요 뭐.”
연적하는 딱히 숨길 생각이 없었다.
남양상방에서 대력귀와 싸운 일과 사해상방에서의 소란으로 슬슬 알려질 때가 됐다. 이제 와서 감출 이유도 없거니와 그러고 싶지도 않았다.
한쪽에서 의형제들의 대화를 지켜 보던 심통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런데 공자님, 겨울은 어디에서 나실 계획이십니까?”
연적하는 대답 대신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꽤나 여러 가지 의미가 포함된 질문이었다.
문득 남궁천의 얼굴이 떠올랐다.
-우리는 수일 내에 정주로 거처를 옮길 생각이다. 낙양은 월하교당과 너무 가까워서. 나중에라도 꼭 대연상방으로 찾아오거라.
그 말을 듣고 오랫동안 마음이 좋지 않았다.
유명교 눈치를 보며 떠돌아다녀야 하는 남궁세가에 대한 연민이랄까.
솔직히 와룡장의 연씨들은 ‘망해도 싸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남궁세가는 여러 모로 신경이 쓰였다. 그들이 보여 준 선의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들이 존중받고, 안락한 삶을 살기를 바랐다.
왜인지 심통에게 질문을 받는 순간, 남궁천의 말이 떠올랐다.
연적하는 속으로 나직이 중얼거렸다.
정주, 대연상방.
하지만 찾아가고 싶지는 않다. 그들의 슬픈 현실을 보고 나면 또 오래도록 방황하게 될 것 같다. 그래서 정주를 지날 때 의식적으로 대연상방을 피했다.
지금도 그들을 편안하게 볼 자신이 없다.
조금 더 시간이 지나면, 어쩌면 그때는 웃으며 만날 수 있지 않을까?
‘빌어먹을 유명교 놈들 같으니.’
모두가 그놈들 때문이다.
남궁세가의 멸문도, 남궁천 남매가 강호를 떠돌아다니게 된 것도.
가장 밑바닥인 십두마병이 그 정도로 강하니 남궁세가가 당할 만도 하다. 칠파이문이 숨죽이고 있는 것도 그들의 힘을 알아서일 것이다.
‘아버지는 왜 그들과 싸웠을까?’
그러고 보니 ‘참월검객이 검왕과 함께 싸웠다’는 이야기만 있지 ‘왜?’에 대한 답은 없다.
아버지는 왜 유명교와 싸움을 했을까?
죽은 뒤에까지 모욕당하면서.
“공자님?”
심통의 부름에 연적하는 생각에서 깨어났다.
“응?”
“이번 겨울은 어디에서…….”
심통은 ‘괜히 채근질로 보일 수도 있다’는 생각에 말끝을 흐렸다.
“글쎄, 어디가 좋으려나.”
“정주 어떻습니까?”
“…….”
심통이 예고도 없이 훅 치고 들어왔다.
연적하가 심통을 힐끔 보았다.
뭘 알고 일부러 저런 말을 하는 건지, 그야말로 우연인지 궁금했다.
“저, 정주는 왜?”
“일단 볼 게 많지 않습니까. 북쪽으로는 한 시진만 나가면 황하가 흐르고, 서쪽으로는 소림사가 있는 숭산, 동남쪽으로는 광활한 황해평원하며. 어디 그뿐입니까? 개봉과 낙양의 가운데 정주가 있으니 어디라도 휙휙…….”
“그래, 겨울에는 또 황하지…….”
연적하가 무심코 추임새를 넣자, 바로 탁고명이 물었다.
“아우야, 겨울에는 왜 황하냐?”
“그게, 그러니까, 큰물은 겨울에 보는 맛이 더하다고 누가 그러더라고요.”
“오, 그런 말이 있어? 왜 난 몰랐지?”
“나도 처음 듣는 소리다만, 우리가 산으로만 돌아서 못 들었겠지? 큰물은 겨울이라……. 허어.”
풍연초가 이제 알았다는 듯 고개를 주억거렸다.
“공자님, 그럼 정주로 정하신 겁니까?”
“그래. 심 노인이 그렇게 원하는데, 까짓것 가 보자고.”
“흐흐, 그렇게까지 생각해 주시니 감사합니다요.”
뭐가 그렇게 재밌는지 심통이 헤실헤실 웃으며 연적하를 보았다.
그런 심통을 향해 풍연초가 말했다.
“심 노인, 정주에 꿀단지라도 묻어 놨소? 좋은 일 있으면 같이 좀 압시다.”
“흐흐흐. 글쎄……. 그게 꿀단지가 될지 애물단지가 될지는 나도 아직 모르겠수.”
“쯧! 빼기는. 자기가 모르면 누가 안다고.”
“풍 형제, 사는 게 본래 그런 거요. 자기 마음을 잘 아는 이가 몇이나 되겠소.”
해시 초(밤 9시)쯤 되자 풍연초의 엉덩이가 들썩거렸다.
보다 못한 탁고명이 입을 열었다.
“형님, 똥 마려운 강아지처럼 그러지 말고 먼저 집으로 들어가슈. 나는 여기 있는 술병 싹 다 비우고 갈 거요. 새신랑도 아니고 원, 조만간 셋째 보겠수.”
“요즘 동네에 도적이 들끓어서 그래. 가족들이 불안하다는데 어쩌냐. 일찍 들어가 줘야지. 이 내가 좀도둑 때문에 속 졸이는 날이 올 줄이야. 젠장.”
풍연초가 툴툴거렸다.
녹림 산채의 채주였던 과거를 생각하면 참 웃음이 나는 현실이다.
그렇게 풍연초와 탁고명은 다시 일상으로 돌아간 것처럼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