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1023
1023회. 왜요? 아는 사람입니까?
히르헤라 균열 앞.
균열에서 크기가 5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곰이 어슬렁어슬렁 걸어 나왔다.
자이언트 베어의 출현에 균열을 감시하던 골리앗 중대(푸토코아 영지군)는 한순간 비상이 걸렸다.
1소대장이 총병 10명을 데리고 선두에서 마력탄을 갈겨 댔다.
퍼퍼퍼퍼펑―!
그러나 자이언트 베어는 끄덕도 하지 않았다.
자이언트 베어의 피부는 아이스 오우거보다 더 단단하니 당연한 일이다.
자이언트 베어의 눈동자가 붉게 물들자 1소대장은 총병들을 뒤로 빼고, 롱소드를 들고 달려 나갔다.
그의 좌우편으로 백인장과 십인장 셋이 빠르게 따라붙었다.
이윽고 자이언트 베어와 다섯 명의 전사가 맞부닥쳤다.
“야이 곰탱아!”
“덤벼! 덤벼 보라고!”
“와! 오라고!”
백인장과 십인장들이 자이언트 베어의 시선을 끄는 동안 기사가 달라붙어 롱소드를 휘둘렀다.
퍽! 퍽! 퍽―!
거죽이 어찌나 튼튼하던지 소리만 요란했지 피는 내비치지 않았다.
그래도 통증이 느껴지는지 자이언트 베어가 기사를 향해 와락 덤벼들었다.
기사는 좌우로 롱소드를 휘둘러 자이언트 베어의 앞발을 쳐 낸 후 재빨리 뒤로 물러났다.
기사가 안 되겠다 싶었는지 손을 들어 올렸다.
대기하고 있던 병사 100여 명이 ‘와아!’ 함성과 함께 자이언트 베어를 둘러쌌다.
정예로 안 되니 숫자로 밀어붙이려는 것이다.
병사들의 태반은 장창병이라 창끝으로 자이언트 베어를 계속 찔렀다.
자이언트 베어도 그냥 당하고 있지만은 않았다. 마수의 앞발에 걸려 세 명의 병사가 뒤로 날아갔다.
그래도 피로가 누적되자 외피를 보호하던 마력이 떨어졌는지 병사들의 창끝에 피가 맺히기 시작했다.
그제야 기사가 다시 수신호를 보냈다.
병사들이 일제히 뒤로 빠져나가고, 그 자리를 다시 기사와 백부장, 그리고 열 명의 십부장들이 메웠다.
백부장과 십부장들이 마수의 이목을 끄는 동안 다시 기사가 달라붙어 롱소드를 휘둘렀다.
퍽! 퍽! 퍼억―!
마지막 일격이 제대로 들어갔는지 자이언트 베어의 허벅지가 쩍 갈라지며 붉은 살을 내보였다.
“크허헝―!”
자이언트 베어가 흉포한 울음을 터뜨렸지만 병사들의 사기는 오히려 더 올라갔다.
“와아아!”
“죽어!”
기사는 동료의 지원 속에 착실하게 마수의 하체를 노렸다.
얼마 못 가 자이언트 베어의 하체가 붉게 물들었다.
다리가 너덜너덜해지자 움직임도 눈에 띄게 느려졌다.
기사가 다시 병사들을 가까이로 불러 모았다.
개미 떼처럼 모여든 병사들이 거대한 자이언트 베어를 조금씩 무너뜨리기 시작했다.
멀리서 그 광경을 지켜보던 골리앗 중대 신임 중대장 롤프 프릿츠 남작의 입에서 한숨이 흘러나왔다.
“하아!”
토비아스 푸토코아 백작의 지시를 이행하지 못한 죄로 기사단에서 쫓겨나 골리앗 중대에 좌천당한 지도 어언 보름이 넘었다.
대설원의 마수는 보기만 해도 토가 나올 지경이다.
잠시 후 자이언트 베어가 쓰러지자 병사들이 환호성을 내질렀다.
‘쯧! 좋기도 하겠다.’
병사 백 명이 달라붙어 덩치 큰 곰 한 마리 때려잡았다고 좋단다.
그때 기수(旗手) 스콘이 무료한 얼굴로 다가왔다.
“중대장님. 우리도 타메이온을 정찰하는 건 어떻습니까?”
“거기에 뭐가 있다고.”
“알파 중대 기사 둘이 타메이온에 다녀왔다고 ‘균열의 기사’ 소리를 듣고 있지 않습니까? 베르나르도 후작님과 왕궁에서 큰 포상이 있을 거라는 소문 못 들으셨습니까?”
“포상?”
“최초의 타메이온 정찰이라고 아주 난리입니다. 별것도 아닌 일을.”
“별것도 아닌 건 아니지.”
롤프 프릿츠 남작이 균열을 힐끔 보았다.
하얀 얼음벽 사이의 갈라진 틈바구니는 보기만 해도 섬뜩했다.
“기수와 기사, 그렇게 두 사람이 들어갔다가 나왔답니다. 딱 그 정도 수준이면 된다는 뜻이 아니겠습니까?”
“그런가.”
듣고 보니 그럴듯하다.
기수와 기사가 할 수 있는 수준이라니 만만한 느낌도 든다.
하지만 이내 남작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운이 좋았을 수도 있다.”
“그 운이 알파 중대에만 작용하라는 법 있습니까?”
스콘은 어떻게든 균열로 들어가고 싶어 하는 눈치였다.
하지만 롤프 프릿츠 남작은 그의 꾀임에 넘어가지 않았다.
그렇지 않아도 좌천당해 이곳까지 왔는데, 여기서 모험을 했다가 사고가 나면 끝장이었다.
지금은 아무리 순수한 의도를 가졌다 해도 ‘기사단으로 돌아가고 싶어서 발버둥 친다’는 소리만 들을 뿐이다.
“됐다. 우리는 균열의 감시에만 충실하면 된다. 알파 중대의 무리한 짓을 따라 할 필요 없다. 우리는 우리의 길을 간다.”
그러나 위험을 피하고 안전한 길만 걷겠다는 롤프 프릿츠 남작의 결심은 오래가지 못했다.
갑자기 균열에서 아홉 개의 머리를 가진 뱀, ‘광염의 히드라’라 불리는 마물이 튀어나온 것이다.
“마, 마물이다!”
“광염의 히드라다!”
마물의 등장에 골리앗 중대가 발칵 뒤집혔다.
지금까지 마수의 출현은 종종 있었지만 마물은 처음이었다.
그것도 저 악명 높은 타메이온의 마물이 균열 밖으로 나왔으니 놀랄 만도 하다.
마물은 나오자마자 아홉 개의 머리에서 화염과 석화액을 뿜어 댔다.
화르륵― 차아악―!
화염에 스치면 불덩이가 됐고, 석화액에 맞으면 그 자리에서 돌기둥으로 변해 버렸다.
골리앗 중대의 최전방이 눈 깜짝할 사이에 무너졌다.
상황을 주시하던 기수 스콘이 덜덜 떨며 롤프 프릿츠 남작에게 말했다.
“주, 중대장님! 광염의 히드랍니다! 우리 중대만으로는 당해 낼 수 없습니다! 지원을 요청하겠습니다!”
“요청할 것 없다. 눈이 있으니 알아서 지원을 올 게다. 따라와라!”
롤프 프릿츠 남작이 롱소드를 움켜쥐고 바람처럼 달려 나갔다.
그의 뒤를 내키지 않는 얼굴로 스콘이 따라붙었다.
기사 셋과 백인장, 십인장 30명이 광염의 히드라 주위를 에워쌌다.
하지만 병사들은 마물에게 섣불리 다가가지 못하고 주춤주춤 뒤로 물러나기만 했다.
아홉 개나 되는 머리에서 쉬지 않고 불과 석화액을 뿜어내니 접근이 용이치 않았던 것이다.
롤프 프릿츠 남작은 합류하자마자 총병들에게 발포를 명령했다.
퍼퍼퍼퍼펑―!
히드라의 가죽은 단단하지 않은지 금방 피가 튀었다.
하지만 무려 아홉 개나 되는 머리를 가진 마물이다.
광염의 히드라가 총병에게 전진하며 화염과 석화액을 뿜어 댔다.
혼비백산한 총병들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달아났다.
달아나는 총병들의 뒤통수로 화염과 석화액이 쏟아져 내렸다.
“아악!”
“뜨거워! 살려 줘!”
그나마 불에 타는 병사들은 소리라도 질렀지만, 석화액에 직격당한 병사들은 석상으로 변했다.
광염의 히드라가 총병들을 공격하는 동안 롤프 프릿츠 남작은 히드라의 뒤를 급습했다.
서걱―!
일격에 한 아름이 넘는 히드라의 머리 하나가 뚝 떨어졌다.
“캬아악―!”
“캬악!”
남은 여덟 개의 머리가 일제히 남작을 향해 머리를 돌렸다.
위기를 느낀 롤프 프릿츠 남작이 뒤로 물러나기도 전에 여덟 개의 머리가 남작을 에워쌌다.
“제, 제길!”
죽었다고 생각한 순간 히드라의 머리에 마력탄이 쏟아졌다.
퍼퍼퍼퍼펑―!
퍼퍼퍼퍼펑―!
8중대 히어로 중대와 9중대 아이콘 중대의 총병들이 마력탄을 쏟아부은 것이다.
거죽이 약한 히드라는 육십 명이나 되는 총병들의 마력탄에 발버둥 쳤다.
“캬악!”
“캭!”
여덟 개의 머리가 펄떡이며 마구잡이로 화염과 석화액을 토해 냈다.
그러나 원거리에 자리 잡은 총병들은 흔들리지 않았다.
빈틈을 노리던 히어로 중대장과 아이콘 중대장이 롱소드를 들고 히드라의 머리로 도약했다.
롤프 프릿츠 남작도 그들과 합세해 롱소드를 휘둘렀다.
단번에 세 개의 머리가 잘렸다.
이제 남은 머리는 다섯 개.
줄어든 머리로 마력탄이 집중됐다.
‘광염의 히드라’는 공격이 아니라 살기 위해 뒤로 슬금슬금 물러났다.
그걸 그냥 돌려보낼 중대장들이 아니다.
세 명의 중대장이 달라붙어 롱소드를 휘두르자 다시 세 개의 머리가 떨어졌다.
최후를 직감한 두 개의 머리가 가장 가까이 있던 롤프 프릿츠 남작에게 돌진했다.
그때 총병들의 마력탄이 다시 한번 불을 뿜었다.
두 개의 머리에 집중된 마력탄에 히드라는 눈을 뜨지 못했다.
그사이 롤프 프릿츠 남작은 연격으로 두 개의 머리를 베어 버렸다.
철퍼덕.
마침내 아홉 개의 머리가 모두 잘린 마물이 설원 위에 쓰러졌다.
“와아아!”
“광염의 히드라를 죽였다!”
꿈틀거리는 몸통을 병사들이 몰려가 칼과 창으로 토막 냈다.
롤프 프릿츠 남작은 지원을 와 준 히어로 중대장과 아이콘 중대장에게 감사 인사를 하고 터덜터덜 제자리로 돌아갔다.
그런데 조수처럼 따라다니던 기수 스콘이 보이지 않았다.
그가 기수를 찾고 있을 때 1소대의 기사 브렌트가 다가왔다.
“수고하셨습니다. 중대장님이 최고의 업적을 달성하셨습니다.”
“스콘은 못 봤나?”
“그는…… 화석이 되었습니다.”
“그렇군. 경이 스콘을 대신해 부상자와 사망자 들의 집계를 내 주게.”
“알겠습니다. 그리고 축하드립니다. ‘광염의 히드라’ 머리를 네 개나 자른 기사는 아직까지 없었습니다.”
“축하는 무슨, 운이 좋았을 뿐이야.”
롤프 프릿츠 남작은 손사래를 쳤지만 내심 뿌듯했다.
타메이온의 정찰 못지않은 큰일을 해냈기 때문이다.
그날 저녁, 푸토코아 백작 부대가 타메이온의 마물인 ‘광염의 히드라’를 척살했다는 소문이 히르헤라 주둔지에 널리 퍼졌다.
그와 더불어 ―히드라의 머리를 네 개나 참수한― 골리앗 중대 중대장 롤프 프릿츠 남작의 이름이 사람들 입에 오르내렸다.
***
기사들의 식당.
저녁 식사 시간의 화제는 당연히 ‘광염의 히드라’였다.
이곳저곳에서 푸토코아 백작 부대의 이야기가 나왔다.
빵을 스프에 찍어 먹던 쿠누트가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며 중얼거렸다.
“내가 가장 만나고 싶지 않은 마물이 ‘광염의 히드라’야. 아홉 개나 되는 머리에서 화염과 석화액을 뿜어낸다고 생각하면……. 으으…….”
리들리가 동감이라는 듯 고개를 주억거렸다.
“저도요. 푸토코아 백작 부대에서 사상자가 엄청 나왔답니다. 죽은 사람만 서른 명이 넘는다니……. 그런데 우리가 이곳에 온 뒤로 마물은 처음 아닙니까?”
“처음이지. 빙벽 주위에는 마물이 없었는데……. 왜 안쪽에 있어야 할 놈들이 빙벽까지 기어 나온 거지? 뭐 먹을 게 있다고?”
가장 연장자인 케일도 한마디 거들었다.
“골리앗 중대의 신임 중대장이 롤프 프릿츠 남작이라고 했나? 그 사람 좌천돼서 왔다는 소문이 있었는데, 잘하면 기사단으로 복귀하겠는데?”
롤프 프릿츠 남작이라는 말에 연적하가 고개를 번쩍 쳐들었다.
“골리앗 중대장이 누구라고 했어요?”
“롤프 프릿츠 남작이라고 그리폰 기사단에 있던 기사입니다. 기사단에 있을 때 물의를 일으키고 좌천됐다는 소문이 있었습니다. 왜요? 아는 사람입니까?”
“그리폰 기사단의 롤프 프릿츠 남작이라면……. 내가 아는 사람이 맞네요. 오늘까지 푸토코아 백작 부대가 균열을 감시하고, 내일 코드란테스 백작 부대와 교대하는 거 맞죠?”
“맞습니다. 그로부터 다시 사흘 후가 우리 차례고요.”
연적하의 입꼬리가 슬쩍 위로 올라갔다.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롤프 프릿츠 남작의 이름을 들으니 기분이 묘했다.
이건 설마 푸토코아 백작가에 빚을 받아내야 할 때가 됐다는 하늘의 뜻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