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1029
1029회. 싸이클롭스를 막아 볼게요
에스카토스 왕국군 중에서 가장 먼저 정신을 차린 건 메이지 칼로스였다.
“무로 데 카마(불의 벽이여), 마고라(생겨나라)!”
어찌나 급했던지 그는 마법 영창의 장대한 서사마저 빼먹고 바로 ‘파이어 월’을 펼쳤다.
순간 싸이클롭스의 앞에 거대한 불의 벽이 생성됐다.
화르르륵―!
뜨거운 불길이 싸이클롭스를 휘감자 비로소 벨라토스 중대와 옵티머스 기사단이 움직였다.
벨라토스 중대의 총병들이 ‘불의 벽’ 위로 드러난 싸이클롭스를 향해 마력탄을 쏟아부었다.
퍼퍼퍼펑―! 퍼퍼펑―!
싸이클롭스의 상체에 ―마력탄 특유의― 파란 불꽃이 작렬했다.
마도 공학의 산물인 마력총이 쉬지 않고 싸이클롭스를 때려 댔지만, 싸이클롭스는 움찔거리기만 할 뿐 크게 타격을 입은 모습이 아니었다.
그래도 ‘불의 벽’이 부담스러운지 싸이클롭스가 집채만 한 거대한 해머를 휘둘렀다.
화르륵― 화륵―!
엄청난 풍압에 불길이 좌우로 갈라졌지만 이내 합쳐졌다.
순간 싸이클롭스의 외눈이 마법사를 향했다.
지능 있는 마족이라 ‘불의 벽’이 마법사의 작품이라는 것을 알아차린 것이다.
“모레토(죽어라)―!”
흉포한 외침과 함께 싸이클롭스가 들고 있던 해머를 던졌다.
부웅―.
성벽을 부수는 공성 병기보다 더 거대한 해머이니 맞으면 피떡이 될 터였다.
집채만 한 해머가 날아오자 옵티머스 기사단의 얼굴이 절망으로 물들었다.
해머가 당도하기도 전에 옵티머스 기사단들 속에서 기합과 ―기합을 빙자한― 비명이 터져 나왔다.
“으아아!”
“으아아악!”
절체절명의 순간 메이지 칼로스는 즉시 지팡이를 돌려 하늘을 가리켰다.
“에스큐도 아에레(에어 실드)!”
메이지 칼로스는 이번에도 고대어로 마법을 영창했다.
고대어 영창이 마법의 효과가 더 뛰어나기 때문이다.
우우웅―.
옵티머스 기사단 위로 마력장이 생겨났다.
마력장은 이내 ‘에어 실드’라 불리는 반투명한 에너지막으로 변했다.
거의 동시에 싸이클롭스의 해머가 에어 실드를 때렸다.
콰자자작―!
단 일격에 에어 실드가 산산이 부서졌다.
에어 실드의 충격으로 방향이 바뀐 해머가 옵티머스 기사단 위로 떨어졌다.
콰지직―!
기사 둘이 해머에 깔려 즉사했다.
그래도 에어 실드가 속도를 줄여 준 덕분에 더 이상의 피해는 발생하지 않았다.
하지만 에어 실드를 펼치는 동안 ‘불의 벽’이 약해졌다.
그 바람에 ‘불의 벽’이 제 무릎 높이까지 내려오자 싸이클롭스는 그걸 훌쩍 넘어 마법사에게 걸어갔다.
쿵. 쿵. 쿵―.
싸이클롭스가 내딛는 걸음에 설원이 가볍게 흔들렸다.
옵티머스 기사단장인 조엘 스트림 백작이 단원들에게 소리쳤다.
“근접 호위조는 메이지 칼로스 경을 보호하면서 질서 정연하게 후퇴한다! 나머지는 몸으로 막아라!”
잔인한 지시였지만 항명하는 기사는 없었다. 지금 당장은 마나를 소진한 메이지 칼로스의 안전 확보가 우선인 까닭이다.
열 명의 기사가 메이지 칼로스를 둘러싼 채 뒤로 빠지자, 그 빈자리를 다른 기사단이 메꿨다.
메이지 칼로스는 안타까운 얼굴로 기사들과 함께 물러났다.
‘아이스 월’과 ‘파이어 월’, ‘에어 실드’를 펼치느라 마나가 고갈된 지금,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다음 기회를 위해 눈물을 머금고 후퇴하는 메이지 칼로스의 눈에 알파 중대가 들어왔다.
균열의 감시를 맡은 부대답게 싸이클롭스 앞에서 후퇴가 아니라 돌격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 와중에 날벼락을 맞은 부대가 있으니 벨라토스 중대다.
본래 벨라토스 중대는 후방에서 마법사의 호위를 맡고 있었다.
그들은 빙벽의 수리 때만 마법사를 따라 잠깐 최전방으로 나오고, 대부분의 시간을 주둔지에서 보냈다.
당연히 벨라토스 중대원들은 베르나르도 후작가에서 재력 있는 집안의 평민들로 구성되었고, 소대장들과 중대장도 자작과 백작의 친인척이었다.
귀족과 왕궁 고위직 인사들 간 안면을 트게 하기 위한 배려로 베르나르도 후작가뿐 아니라 다른 백작가도 비슷했다.
그런 벨라토스 중대가 최정예 전투부대인 알파 중대보다 선두에서 싸이클롭스를 상대하게 된 것이다.
벨라토스 중대의 병사들과 지휘관 모두 잔뜩 겁먹은 얼굴로 알파 중대만 바라보았다.
돌격 준비를 끝낸 알파 중대장 데니스 로빈 남작은 엘리오에게 다가갔다.
“엘리오 경은 마족과 싸워 본 경험이 있습니까?”
마족과 싸워 본 경험이 있냐고?
마왕도 죽인 사람이다.
대답 대신 엘리오는 외눈박이 거인을 보며 되물었다.
“저게 마족인가요?”
“예, 싸이클롭스라고 불리는 마족입니다. 본래 마족은 마물을 부리는데…….”
그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싸이클롭스가 포효를 내질렀다.
“우워어어어어!”
그 소리가 어찌나 크던지 싸이클롭스 주변의 병사들이 귀를 손으로 막으며 고통스러워했다.
다행히 싸이클롭스의 외침은 길게 이어지지 않았다.
그러나 소리보다 더 큰 재앙이 뒤따랐다.
균열에서 싸이클롭스의 포효에 호응하듯 갑자기 마물과 마수 들이 쏟아져 나온 것이다.
다행히 그 숫자는 많지 않았지만 싸이클롭스를 상대하기도 벅찬 귀족들의 얼굴은 절망으로 물들었다.
베르나르도 후작령의 부대는 알파, 벨라토스, 찰리 중대다.
벨라토스 중대가 마법사의 보호라면 찰리 중대는 지원부대 성격을 띠고 있었다.
균열 입구에 마족과 마물, 마수가 출현하자 찰리 중대가 알파 중대의 바로 뒤까지 전진 배치됐다.
뒤를 힐끔 보던 알파 중대장 데니스 로빈 남작이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이거야 원, 가라고 등을 떠미는 기분이군. 알파 중대! 속보로 전진! 벨라토스 중대를 구하러 간다!”
데니스 로빈 남작의 목표는 하나다.
그는 마족과 마수, 마물을 지금의 왕국군으로 막아 낼 수 없으니 벨라토스 중대가 후퇴할 수 있게 도울 생각이었다.
알파 중대와 벨라토스 중대의 거리는 고작 이백여 미터.
달리기를 시작하자마자 알파 중대 앞에 싸이클롭스가 나타났다.
싸이클롭스는 그사이 옵티머스 기사단을 파죽지세로 깨부수고 자신의 해머를 되찾은 상태였다.
“쿠어어어!”
괴성과 함께 싸이클롭스가 해머를 휘둘렀다.
콰앙―!
얼어붙은 지면에 거대한 구덩이가 파였다.
구덩이는 이내 인간의 살과 피로 붉게 물들었다.
싸이클롭스가 해머질로 옵티머스 기사단을 피떡으로 만들고 있었지만 마법사가 빠진 기사단은 변변한 저항조차 하지 못했다.
쿵! 쿵! 쿠웅―!
외눈박이 싸이클롭스는 재미가 들렸는지 마법사를 추적하지 않고 해머로 기사단을 찍어 댔다.
이제 남아 있던 옵티머스 기사단이 몰살당하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엘리오는 빠르게 전장을 둘러보았다.
싸이클롭스를 저지하지 않고서는 희망이 없어 보였다.
무엇보다 싸이클롭스가 계속 마물과 마수를 불러들일 수 있다는 게 마음에 걸렸다.
지금도 부담스러운 숫자지만 히르헤라 주둔지에 있는 왕국군이 모두 모이면 더 많은 마물과 마수를 불러들일 것 같았다.
“중대장님. 저 싸이클롭스부터 처리해야 할 것 같습니다. 중대장님은 벨라토스 중대를 도우세요. 나는 싸이클롭스를 막아 볼게요.”
여기서 역할을 분담하자는 소리다.
갑작스러운 엘리오의 제안에 데니스 로빈 남작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하고 눈만 끔뻑였다.
싸이클롭스를 무슨 수로 막는다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그가 머뭇거리는 사이 엘리오가 싸이클롭스를 향해 달려갔다.
‘어?’
데니스 로빈 남작은 놀랐지만 엘리오를 잡지 않았다.
자신이 봐도 이 싸움의 시작과 끝은 싸이클롭스였다.
그는 엘리오에 대한 미련을 버리고 벨라토스 중대로 고개를 돌렸다.
차라리 잘된 일인지도 모른다.
만에 하나 싸이클롭스의 관심이 벨라토스 중대로 향한다면 기사단보다 더 큰 피해를 입을 게 분명했다.
알파 중대의 총병들이 벨라토스 중대와 대치 중인 마물과 마수에게 마력탄을 퍼부었다.
퍼퍼퍼펑―!
알파 중대의 기습 공격에 마물과 마수 들이 움찔했다.
알파 중대장 데니스 로빈 남작이 벨라토스 중대장에게 소리쳤다.
“레더 경! 우리가 엄호할 테니 후퇴하시오!”
벨라토스 중대장 어윈 레더 남작이 죽다 살아난 얼굴로 화답했다.
“알겠소! 후퇴! 벨라토스 중대는 알파 중대 뒤로 빠진다!”
이윽고 벨라토스 중대원들과 알파 중대원들이 뒤섞였다.
벨라토스 중대원들은 기다렸다는 듯 뒤로 물러났다.
그 바람에 알파 중대가 균열의 최전방으로 나서게 됐다.
그곳은 본래 알파 중대가 지키던 자리인지라 알파 중대원들은 당황하지 않고 자기 위치로 빠르게 복귀했다.
알파 중대 총병들이 마물과 마수를 향해 마력탄을 발사하자, 뒤에서 벨라토스 총병들도 한결 여유 있는 표정으로 마력탄을 쏘아 댔다.
퍼퍼퍼펑! 퍼펑―!
인간들의 반격에 마물과 마수는 폭주할 만도 한데 기이하게 소극적인 대응으로 일관했다.
전방을 주시하며 고개를 갸웃하던 데니스 로빈 남작의 입에서 ‘아!’ 하는 탄성이 흘러나왔다.
‘싸이클롭스 때문이구나!’
마족의 부름에 응한 마물과 마수 들은 마치 말 잘 듣는 개처럼 싸이클롭스의 곁을 떠나지 않고 있었다.
만약 이전처럼 마물과 마수가 제각각 날뛰었다면 벨라토스 중대의 피해는 걷잡을 수 없었을 터였다.
그러나 지금의 마물과 마수는 마족의 눈치만 힐끔힐끔 볼 뿐, 적극적으로 뭔가를 하려 하지 않았다.
싸움이 교착 상태에 빠지자 데니스 로빈 남작은 좌측 편의 싸이클롭스로 시선을 돌렸다.
“허!”
싸이클롭스의 무릎에도 미치지 못하는 작은 엘리오가 거인 싸이클롭스를 잡아 두고 있었다.
엘리오는 데니스 로빈 남작과 달리 싸이클롭스에 대한 공포심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는 오히려 이세계의 마족에 호기심을 느끼고 있었다.
그래서 처음에는 가볍게 검으로 싸이클롭스의 무릎을 노렸다.
퍼퍼퍽―!
싸이클롭스의 무릎에 선명한 자국이 남았지만 찢어지지는 않았다.
그 한 번의 칼질에 싸이클롭스의 눈은 엘리오에게로 향했다.
“모레토(죽어라)! 이에로(벌레야)!”
쾅! 쾅! 콰앙―!
집채만 한 해머가 엘리오의 머리 위로 떨어졌다.
이형환위의 신법으로 해머를 피하던 엘리오가 훌쩍 솟구쳐 올랐다.
뒤이어 엘리오의 검이 해머를 쥔 싸이클롭스의 손목을 찍었다.
콰직!
거목이 부러지는 소리가 났음에도 싸이클롭스의 해머질은 계속됐다.
“무식한 놈이네.”
엘리오는 구룡번신(九龍翻身)으로 허공에서 이리저리 자리를 바꿔 가며 싸이클롭스의 공격을 피했다.
인간이 날파리처럼 눈앞에서 계속 알짱대자 싸이클롭스의 외눈이 붉게 달아올랐다.
“모레토! 모레토! 모레토!”
죽으라는 고함과 함께 해머질이 점점 빨라졌다.
쾅! 쾅! 쾅! 쾅!
해머를 피하던 엘리오의 눈에서 빛이 번득였다.
덩치만 커다랬지 전투력은 기대만 못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사실 그건 경신술에 능한 그에게만 해당되는 사항이다.
대륙의 일반 기사들에게 싸이클롭스의 큰 키와 강철 같은 피부, 거대한 해머는 넘기 어려운 벽이었다.
마법사나 공성 병기가 있다면 모를까?
맨몸의 검사에게 싸이클롭스는 불가항력적인 존재였다.
부우웅―.
또다시 대기를 가르는 섬뜩한 파공음과 함께 거대한 해머가 엘리오의 머리 위로 떨어져 내렸다.
순간 엘리오의 한쪽 입꼬리가 위로 슬쩍 올라갔다.
‘망치질이 전부라면 너는 죽었다.’
마족이라기에 내심 긴장했는데 고작 육체의 힘만 믿고 덤벼들다니?
‘펑!’ 하는 소리와 함께 엘리오의 몸이 해머를 향해 수직으로 날아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