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1031
1031회. 진실보다 효과적인 건 없다
귀족들의 시선이 일제히 손을 든 토비아스 푸토코아를 향했다.
에스카토스 공작이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
“오, 푸토코아의 젊은 후계자께서 할 말이 있나 보군. 무슨 일인가?”
그러자 토비아스 푸토코아가 에스카토스 공작에게 정중하게 인사를 올린 후 입을 열었다.
“어제저녁, 기사들의 식당 앞에서 베르나르도 후작님의 기사와 저희 푸토코아의 남작들 간에 시비가 있었습니다.”
토비아스 푸토코아의 말에 베르나르도 후작은 참모인 오스카 아비드 자작에게 고개를 돌렸다.
오스카 아비드 자작이 모르겠다는 듯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고개를 갸웃하던 베르나르도 후작은 토비아스 푸토코아로 다시 시선을 돌렸다.
정보통인 참모도 모를 정도로 은밀하고 신속하게 이루어진 싸움이라니 조금은 흥미가 생겼다.
가만히 듣고 있던 에스카토스 공작이 황당한 얼굴로 토비아스 푸토코아에게 물었다.
“기사들 간의 사사로운 싸움을 우리가 알아야 한다고 생각하나?”
여러 사람들이 모인 곳이니만큼 주둔지에서도 기사들 간에 시비가 자주 일어났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사과나 결투 등을 통해 당사자들끼리 해결했지 귀족 회의에 끌고 오는 일은 없었다.
에스카토스 공작의 지적에 토비아스 푸토코아가 자못 심각한 얼굴로 답했다.
“문제가 될 만한 게 없는 평범한 싸움이었다면 그랬을 것입니다.”
“뭐가 문제라는 건가?”
“작위를 받지 않은 베르나르도 후작가의 기사가 푸토코아의 남작을 모욕한 것 때문에 그러는 것이 아닙니다.”
왕궁에서 정치 공작을 질리도록 본 에스카토스 공작은 피식 웃었다.
애송이 주제에 ‘준귀족인 기사가 귀족을 모욕했다’는 깨알 같은 고발까지 곁들이다니 제법이지 않은가.
‘그런데 기사 혼자서 소드 비기너 셋을 상대했다니 대단하군. 베르나르도 후작가에 그 정도 실력자가 있었나? 아…….’
그가 ‘엘리오라면 가능할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할 때 토비아스 푸토코아의 입에서 그 이름이 나왔다.
“어제저녁 ‘균열의 기사’ 엘리오가 그리폰 기사단의 남작 셋을 무력화시킨 후에, 그들의 마나를 소멸했습니다.”
“마나를 소멸했다는 건 무슨 소린가?”
“엘리오가 강제로 기사들에게 영기를 주입해…… 마나가 흩어졌습니다.”
순간 귀족들이 술렁거렸다.
대부분의 귀족들은 기사와 남작의 싸움보다 ‘마나 유저를 폐인으로 만들었다’는 데 주목했다.
무표정하던 에스카토스 공작의 얼굴도 대번에 굳었다.
“이상하군. 경도 마나 유저이니 알 텐데. 스스로 영기를 수련하지 않는 한 마나홀이 깨지지 않음을.”
“그렇습니다. 엘리오 경이 남작들의 엘릭서 필드(단전)를 강제로 개방하여 영기 수련자로 만들었습니다.”
“아하!”
에스카토스 공작은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엘리오의 무지막지한 영기라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
마나 유저와 대등한 영기 수련자니 그 어마어마한 영기로 마나의 반발력을 무시했으리라.
에스카토스 공작이 별것 아닌 것처럼 여기자 토비아스 푸토코아는 한발 더 나아갔다.
“그것만이 아닙니다. 그보다 더 중요한 문제가 있습니다. 그 싸움에서 엘리오가 무려 5서클 마법인 블링크를 사용했습니다. 저와 그리폰 기사단에서는 엘리오가 흑마법의 도움을 받지 않았나 의심하고 있습니다. 때마침 마족이 출현한 것도 그렇고……. 정식으로 엘리오에 대한 조사를 건의드립니다.”
귀족들 사이에서 동요가 일어났다.
마족의 출현 때문인지 토비아스 푸토코아의 발언을 지지하는 귀족들이 많았다.
사실 토비아스 푸토코아의 말만 놓고 보면 수상한 게 사실이었다.
블링크는 무려 5서클의 마법인 까닭이다.
어지간한 마검사도 메이지(4서클) 수준까지 마법을 익히지는 않는다.
5서클 마법사면 굳이 검술을 익힐 필요도 없다. 그 자체만으로도 이미 국가적인 인재다.
그런데 야인 출신의 검사가 5서클의 마법을 썼다?
토비아스 푸토코아의 말처럼 흑마법을 의심하는 게 당연했다.
흑마법이 틀림없다며 쑥덕거리는 귀족들과 달리 에스카토스 공작의 표정은 별반 변화가 없었다.
이미 메이지 칼로스를 통해 엘리오가 흑마법과 무관하다는 것을 몇 번이고 확인했기 때문이다.
에스카토스 공작이 손을 들어 올리자 술렁거림이 멎었다.
“그 건의를 받아들이기에 앞서 해 주고 싶은 말이 있네. 엘리오 경은 베르나르도 후작가의 기사로 봉작까지 상신된 상태지. 어쩌면 지금쯤 국왕의 사신이 히르헤라로 달려오는 중인지도 모르겠군. 그러니 이쯤에서 베르나르도 후작의 생각을 들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은데. 어떤가?”
순간 토비아스 푸토코아는 멈칫했다.
흑마법에 집중해야 할 순간 갑자기 베르나르도 후작을 끌어들이니 당황한 것이다.
계속해서 조사를 밀어붙이고 싶었지만 공작의 말을 거역할 수는 없었다.
“그렇게 하시지요.”
결국 토비아스 푸토코아는 한발 물러섰다.
에스카토스 공작이 베르나르도 후작에게 시선을 돌렸다.
“후작, 엘리오 경에 대해 하고 싶은 말이 있소?”
베르나르도 후작은 마치 남의 일인 것처럼 고개를 저었다.
“따로 드릴 말씀은 없습니다. 메이지 칼로스께서 계시니 흑마법에 대해서는 명쾌하게 답이 나올 줄로 압니다. 푸토코아 백작가와 엘리오 경 사이에 원한이 있다고 들었는데, 그 일로 엘리오 경을 음해하는 것이 아니기를 바랄 뿐입니다.”
베르나르도 후작의 입에서 ‘원한’과 ‘음해’라는 말이 나오자 회의실이 다시 소란스러워졌다.
그게 사실이라면 ‘엘리오가 남작들과의 싸움에서 5서클 마법을 썼다’는 자체가 거짓일 수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몇몇은 이미 거짓이라고 단정하기까지 했다.
엘리오의 나이와 그의 검술 경지를 고려하면 마법까지 익히는 건 불가능에 가까운 탓이다.
토비아스 푸토코아가 급히 변명을 하려 했지만 에스카토스 공작이 빨랐다.
“엘리오 경과 푸토코아 백작가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소?”
그는 무슨 일인지 대충 짐작했지만 짐짓 모른 척 물었다.
베르나르도 후작이 별일 아니라는 듯 담담한 어조로 답했다.
“엘리오 경은 본래 푸토코아 백작령의 야인 부족 출신입니다. 그런 그가 푸토코아 백작가가 아닌 저를 택하자, 푸토코아 백작가에서 엘리오 경의 부족을 몰살시켰다고 하더군요. 그 일로 푸토코아 백작가와 엘리오 경의 관계가 좋지 않다고 알고 있습니다.”
베르나르도 후작은 엘리오가 ‘메테오 스웜의 생존자’라는 건 의도적으로 생략했다.
에스카토스 공작이 북방 3대 영주들에게 입단속을 주문하기도 했지만, 알려져 봐야 좋을 게 없어서다.
귀족들의 시선이 일제히 토비아스 푸토코아를 향했다.
토비아스 푸토코아는 황급히 변명을 늘어놓았다.
“야인 부족 토벌은 엘리오와 무관한 일입니다. 저희 기사단이 세금 도적들을 소탕한 것이었습니다. 엘리오가 오해를 할수는 있으나, 그게 흑마법을 익힌 것의 면죄부가 될 수는 없습니다. 그는…….”
에스카토스 공작이 토비아스 푸토코아의 말을 끊었다.
“푸토코아 경의 의견은 충분히 들었네. 중요한 건 그게 아니라 엘리오 경이 흑마법을 익혔는지 아닌지를 규명하는 것이겠지. 내 말이 틀렸나?”
“맞습니다.”
반론을 펼치던 토비아스 푸토코아는 아직 백작위 승계도 받지 못한 처지라 이내 수긍했다.
에스카토스 공작이 메이지 칼로스를 향해 돌아섰다.
“메이지 칼로스 경께서 엘리오 경을 가까이서 보셨으니 잘 알 것 같은데, 어떻소? 흑마법과 관계된 의혹을 풀어 주실 수 있겠소?”
메이지 칼로스가 자리에서 일어나 귀족들과 눈을 맞추었다.
에스카토스 공작과는 진즉에 이야기를 끝냈고, 이젠 귀족들 차례였다.
“결론부터 말하면 엘리오 경은 흑마법과 무관합니다.”
귀족들의 입에서 ‘아아!’ 하는 탄성이 흘러나왔다.
“푸토코아 백작가에서 엘리오 경이 블링크 마법을 썼다고 오해할 만도 합니다. 오늘 마족과 싸울 때도 블링크처럼 보이는 수법을 사용했으니까요.”
성질 급한 귀족 하나가 소리쳤다.
“블링크처럼 보이는 수법도 있습니까?”
“그 전에 여러분께 알려 드릴 진실이 있습니다. 엘리오 경의 검술은, 그가 영기 수련자임에도 불구하고, 마나 유저의 소드 익스퍼트에 이르렀습니다.”
“…….”
귀족들의 입이 쩍 벌어졌다.
스물일곱 살로 알려진 엘리오의 나이를 생각하면 그건 정말 믿기 어려운 이야기였다.
토비아스 푸토코아가 참지 못하고 끼어들었다.
“설사 그가 소드 익스퍼트라도 블링크를 쓸 수는 없습니다!”
“푸토코아의 후계자여 흥분하지 말게. 내가 말하지 않던가, 블링크처럼 보이는 수법을 사용했다고.”
“…….”
마법사의 납득하기 어려운 말에 토비아스 푸토코아는 불만 가득한 얼굴로 눈살을 찌푸렸다.
블링크면 블링크지, 블링크처럼 보이는 수법은 또 뭐란 말인가.
토비아스 푸토코아가 침묵하자 메이지 칼로스가 귀족들에게 설명을 이어 갔다.
“오늘 엘리오 경이 거인 싸이클롭스와 싸우는 장면을 보고 나도 놀랐습니다. 동에 번쩍 서에 번쩍 하며 싸우더군요. 그것은 얼핏 블링크처럼 보이기는 했습니다. 그래서 혹시나 하는 마음에 ‘진실의 눈’으로 관찰을 했지요. 그것은 마나나 흑마법이 아닌, 영기와 육체의 완전한 조화가 만들어 낸 기술이었습니다. 육안에 포착이 되지 않을 정도로 빨라 블링크처럼 보였던 것입니다. 내가 서두에 엘리오 경을 소드 익스퍼트라고 했지만, 어쩌면 그는 소드 익스퍼트의 끝자락에 도달해 있을지도 모릅니다. 에스카토스 왕국을 향한 창조신 마나 프트라스의 한없는 자애에 감사드립시다.”
말을 마친 메이지 칼로스는 우아한 인사와 함께 자리에 앉았다.
귀족들은 충격을 받았는지 한동안 조용했다.
잠시 후 귀족들이 동정의 눈으로 토비아스 푸토코아를 보았다.
아무리 백작가라 해도 소드 익스퍼트의 끝자락에 도달한 귀족과 척을 지면 고달픈 까닭이다.
더구나 모리츠 푸토코아 백작의 사망 이후 푸토코아 백작가의 소드 익스퍼트들은 죄다 초급 아니면 중급.
미친 척하고 엘리오가 푸토코아 백작가에 결투라도 신청하면 당해 낼 재간이 없었다.
에스카토스 공작이 앞으로 나섰다.
“푸토코아의 후계자여, 자네는 아직도 엘리오 경이 흑마법을 썼다고 주장할 텐가?”
“아닙니다. 저의 건의를 철회하겠습니다. 아울러 공작님께 푸토코아 백작가와 엘리오 경의 중재를 정식으로 요청드립니다. 쌍방 간에 오해로 벌어진 일이니 풀어 주십시오.”
에스카토스 공작이 묘한 얼굴로 토비아스 푸토코아를 보았다.
십팔 세의 어린 나이인데 처세술은 노회한 늙은이다.
겁이 많아 그런 건지 교활한 건지 아직은 알기 어려웠다.
“알겠네. 지금은 왕국의 위기를 해결하는 게 우선이라 받아들이겠네만, 사람과의 문제에서 진실보다 효과적인 건 없다는 걸 알아 두게.”
“…….”
토비아스 푸토코아는 대답하지 않았다.
에스카토스 공작의 말은 틀렸다.
사람과의 문제에서 가장 효과적인 것은 힘이다.
야인 따위가 감히 푸토코아 백작가에 복수 운운할 수 있는 것도 그에게 힘이 있어서였으니까.
***
알파 중대가 균열 감시 임무에 투입된 지 이틀째 되던 날.
정오 무렵.
중대장 데니스 로빈 남작, 엘리오와 함께 에너지 볼을 씹어 먹던 파비안이 손을 들어 하늘을 가리켰다.
“중대장님! 저거 비공정 아닙니까?”
데니스 로빈 남작과 엘리오의 시선이 파비안의 손끝을 따라 하늘로 향했다.
과연! 거대한 배 한 척이 주둔지로 다가오고 있었다.
데니스 로빈 남작이 바로 알은척을 했다.
“지원 요청을 했다더니 드디어 제국의 마법 병단이 왔군.”
순간 파비안이 호들갑을 떨었다.
“와아! 제국의 마법 병단요? 저는 말만 들었지 처음 봅니다. 그럼 7서클의 최고 마법사인 마구스 킬리언 헤일 님께서 오신 겁니까?”
‘제국의 마법 병단’이라는 말에 주변의 병사들까지 귀를 쫑끗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