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1038
1038회. 앞으로도 입에서 나오는 대로 말해
토비아스 푸토코아와 대화를 끝낸 기사단장은 측근인 존 미치 남작을 은밀히 만났다.
“존, 자네가 푸토코아를 위해 해 줘야 할 일이 있네.”
“명만 내려 주십시오. 목숨 걸고 완수하겠습니다.”
“목숨까지 걸 일은 아니고, 제도(帝都)에 다녀오게.”
“제도요?”
“그래. 최고의 암살 조직을 찾아 의뢰를 하게. 청부금은 관행에 어긋나지 않는 범위에서 정하되, 달라는 대로 맞춰 줄 생각을 해. 아쉬운 건 이쪽이니까.”
“…….”
순간 존 미치 남작의 얼굴이 굳었다.
기사단장은 목숨까지 걸 일은 아니라고 했지만, 고위 귀족들의 암살 의뢰를 대행하는 것만큼 위험한 일도 없었기 때문이다.
“영주님의 지시입니까?”
“나에게 그런 의뢰를 맡길 돈이 있다고 생각하나.”
기사단장의 말에 존 미치 남작은 쓴웃음을 지었다.
“대상이 누굽니까?”
“엘리오.”
“베르나르도 후작가의 그 엘리오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히르헤라에 그 이름을 쓰는 다른 사람이 있나?”
“없습니다.”
“자네에게 푸토코아로 돌아가는 토드 프리먼, 켈리 렌, 듀크 윌리암스 남작의 호위를 맡기지. 지금 즉시 그들을 데리고 주둔지를 떠나도록 하게. 어디까지 그들과 동행할지는 자네의 판단에 맡기도록 하겠네.”
“푸토코아까지 그 셋이 자력으로 갈 수 있습니까?”
“그게 중요한가?”
기사단장 콜라시오 키퍼 자작이 차가운 눈으로 존 미치 남작을 응시했다.
그제야 존 미치 남작은 기사단장이 그 셋의 안위에 신경 쓰지 않음을 알았다.
‘나를 히르헤라 주둔지에서 내보내기 위해 그들을 이용하려는 것이구나.’
상황을 파악한 그는 단호하게 답했다.
“아닙니다. 지금 즉시 출발하겠습니다.”
“잘 생각했네. 이번 일은 빠를수록 좋다는 걸 명심하게.”
그 세 남작의 일에 신경 쓰지 말라는 경고다.
“예.”
존 미치 남작은 폐인이 된 세 남작에 대한 미련을 버렸다.
지금은 그 셋을 동정할 때가 아니다.
청부 암살에 문제가 생기면 자신의 목숨이 날아갈 터였다.
“그런데 단장님, 위임장은 없습니까?”
“청부 암살에 위임장을 써 주는 얼간이를 본 적 있나?”
“허면 무엇으로…….”
“경의 얼굴이 곧 위임장이라고 생각하게. 이런 일이 처음도 아니면서 뭘 그리 허둥대나? 제도라고 해서 긴장할 것 없네. 왕도보다 조금 더 클 뿐이야. 거기도 사람 사는 곳이라고.”
“아, 예…….”
존 미치 남작은 왠지 꺼림칙했지만 기사단장의 말이 맞는 터라 반박하지 못했다.
‘쩝, 청부 암살에 위임장이라니.’
자신이 생각해도 바보 같은 소리다.
암살 조직에서 자신의 뒷조사를 하다 보면 그것이 새 영주의 의뢰임을 대번에 알게 될 터였다.
알파 중대가 균열 감시 임무에 투입되던 날, 존 미치 남작은 폐인이 된 남작 셋과 함께 주둔지를 떠났다.
***
해거름 무렵.
균열 주위를 살피던 알파 중대장 데니스 로빈 남작이 중얼거렸다.
“너무 조용하군. 그렇지 않습니까?”
“그렇네요.”
중대장이 자신의 의견을 묻자 엘리오는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 하루 동안 균열로 넘어온 마수는 한 마리에 불과했다.
어제까지 하루 평균 대여섯 마리가 넘어오던 걸 생각하면 눈에 띌 정도의 변화다.
깃발 옆에 서 있던 파비안이 끼어들었다.
“그동안 우리가 계속 때려잡아 근처에 있는 마수의 씨가 마른 게 아닐까요?”
데니스 로빈 남작은 가타부타 말하지 않았다.
아니라고 하기에는 그동안 히르헤라 주둔군이 잡은 마수의 숫자가 상당한 때문이다.
“그래도 해가 지면 마수도 돌아다니지 않으니 좀 쉴 수 있겠군.”
데니스 로빈 남작의 말에 파비안이 입방정을 떨었다.
“야행성 마수인 흡혈 파리도 있잖습니까?”
흡혈 파리는 크기가 성인 어른만 한 마수다.
파리라고는 하지만 흡사 창같이 기다란 촉수에 몸통이나 머리를 쏘이면 즉사할 수 있었다.
“재수 없게 그런 이야기는 왜 하나?”
피곤했던지 데니스 로빈 남작이 까칠하게 받아쳤다.
생각 없이 흡혈 파리를 입에 올렸던 파비안은 찍소리도 하지 못하고 중대장의 눈치만 살폈다.
그러는 동안 해가 떨어지고, 불길한 어둠이 장막처럼 히르헤라에 스르륵 내려앉았다.
묵묵히 어둠을 응시하던 데니스 로빈 남작이 엘리오에게 고개를 돌렸다.
“엘리오 경, 제가 깨어 있을 테니 잠시 눈이라도 붙이시지요.”
엘리오를 배려한 것 같지만 실은 교대로 쉬자는 소리다.
“그럴까요?”
엘리오는 사양하지 않았다.
사흘 동안 뜬눈으로 자리를 지키기 어려우니 요령껏 쉬어야 했다.
그는 즉시 방풍벽 뒤로 돌아갔다.
화로대 주변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에너지 볼을 먹고 있던 기사들이 일어나 불가 자리를 양보했다.
엘리오는 사양하지 않고 한 자리를 차지 하고 앉아 눈을 감았다.
‘탁탁!’ 소리를 내며 타들어 가는 장작과 달리 파이어 스톤은 아무런 소리도 내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간헐적으로 ‘쩝쩝’ 하고 씹는 소리만 났다.
눈을 감으면 오감이 더 예민해지는 법.
그 게걸스러운 소리가 엘리오의 공복감을 흔들어 깨웠다.
슬그머니 눈을 뜬 엘리오는 주머니에서 에너지 볼 하나를 꺼내 입에 털어 넣고 씹었다.
그때 바람결에 지금껏 들어 본 적 없는 소리가 들렸다.
“이게 무슨 소리예요?”
엘리오의 물음에 기사들이 도리어 되물었다.
“무슨 소리요?”
“바람 소리 아닙니까?”
엘리오는 기사들이 아직 이 기묘한 소리를 듣지 못했음을 알았다.
“멀리서 ‘붕붕’ 하는 소리가 들려서요. 설원에도 말벌이 있어요? 덩치가 큰.”
“말벌은 없습니다.”
“아무 소리도 안 들리는데요?”
기사들은 귀를 쫑긋 세우고 주변을 살폈다.
하지만 여전히 ‘쉬익! 쉬익!’ 하고 균열 사이로 부는 날카로운 바람 소리가 전부였다.
긴장하고 있던 기사들이 다시 에너지 볼을 입으로 가져갈때, 균열에서 시커먼 덩어리들이 쏟아져 나왔다.
부우우우―.
“흡혈 파리다!”
부우우―.
“불! 불을 밝혀!”
부우웅―!
요란한 날갯짓 소리와 알파 중대 병사들의 외침이 한데 뒤섞였다.
흡혈 파리 떼가 몰려오자 알파 중대장 데니스 로빈 남작은 칼을 뽑아 들고 소리쳤다.
“총병들을 중앙에 모으고 원형으로 둘러싸라! 겁먹고 단독 행동을 하면 죽는다! 원형으로 뭉쳐!”
중대장의 지시에 알파 중대원들이 소대별로 모이기 시작했다.
워낙 정예 병사들이라 겁먹고 자리를 이탈하는 사람은 없었다.
허겁지겁 기사와 병사 들 가운데 자리를 잡은 총병들이 시커먼 덩어리로 마력탄을 발사했다.
펑! 펑! 펑―!
펑! 펑―!
몸통에 마력탄이 박힐 때마다 흡혈 파리들은 움찔했지만, 이내 불나방처럼 인간에게 달려들었다.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다.
날개가 관통당한 흡혈 파리들이 육중한 자신의 무게를 감당하지 못하고 지면에 처박혔다.
그럴 때면 병사들이 달라붙어 흡혈 파리들을 난도질했다.
그러나 설원에 떨어진 흡혈 파리는 소수고, 대부분 인간을 향해 촉수를 빳빳하게 세우고 날아갔다.
기사와 병사 들이 칼로 다가오는 촉수를 후려쳤다.
퍽! 퍽! 퍽―!
곳곳에서 둔탁한 소리가 터져 나왔다.
방어에 급급한 병사들과 달리 기사들은 흡혈 파리의 머리를 찍었다.
머리를 직격당한 흡혈 파리들은 끈적한 체액을 뿜으며 절명했다.
그러나 흡혈 파리와 인간의 싸움은 결코 인간에게 유리하지 않았다.
어둠과 벼락처럼 내리꽂히는 흡혈 파리들의 공중 공격에 병사들이 픽픽 쓰러졌다.
“억!”
“윽!”
쓰러진 병사들은 도우러 갈 틈도 없이 눈 깜짝할 사이에 체액을 빨리고 미라가 됐다.
시간이 지날수록 흡혈 파리의 숫자가 점점 늘어나자 데니스 로빈 남작의 얼굴은 절망으로 물들었다.
흡혈 파리 떼는 굶주린 메뚜기 떼에 비유되곤 한다.
그 정도로 뾰족한 대처 방안이 없는 마수가 흡혈 파리 떼다.
‘엘리오 경은?’
데니스 로빈 남작은 혹시나 하는 기대감으로 주변을 살폈다.
그라면 마족 싸이클롭스를 물리칠 때처럼, 뭔가 해 줄 것만 같았다.
그 시간 엘리오도 처음 보는 마수를 베어 넘기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또다시 그의 일검에 양단된 흡혈 파리 한 마리가 떨어졌다.
투둑!
그의 주변으로 흡혈 파리의 시체가 수북이 쌓였지만, 여전히 흡혈 파리는 숫자를 세기 어려울 정도로 많았다.
엘리오가 짜증 어린 눈으로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파리와 모기를 섞은 것처럼 생긴 괴물이 알파 중대 위에 가득했다.
붕붕거리는 날갯짓 소리가 어찌나 큰지 소리를 지르지 않으면 의사소통이 불가능할 정도다.
‘이대로면 희생자가 많이 나올 텐데…….’
기사들은 괜찮았지만 하급 병사들에게 마수의 촉수는 치명적이었다.
그는 재빨리 주변을 살폈다.
어둡기도 했지만, 병사들의 시선이 하늘로 향한 터라 누가 뭘 하는지 알기 어려운 상황이다.
영기를 끌어 올린 엘리오는 지체 없이 구천세법 육 식 천뢰무망(天雷無望)을 펼쳤다.
쿠르르릉― 번쩌어억―!
밤하늘에서 돌연 수백 개의 번개가 떨어졌다.
설원 위에 박히는 낙뢰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허공에 떠 있던 흡혈 파리를 강타했다.
촘촘하던 흡혈 파리의 무리에 구멍이 숭숭 뚫렸다.
그에 고무된 데니스 로빈 남작의 외침이 알파 중대를 흔들었다.
“흡혈 파리가 흩어지고 있다! 조금만 더 힘내라!”
전세가 안정되자 진형 안에서 이리저리 달아나던 총병들이 일제히 마력탄을 발사했다.
퍼퍼퍼펑―! 퍼펑―!
총병들의 가세로 구멍이 더 넓어졌다.
무리의 절반이 죽자 흡혈 파리들은 더 높이 날아올랐다.
달아나려는 것이다.
흥분한 기사들이 허공에 롱소드를 휘두르며 총병들에게 소리쳤다.
“쏴!”
“떨어뜨려!”
퍼퍼퍼펑―! 펑!
날개에 마력탄을 맞은 흡혈 파리 십여 마리가 병사들 머리 위로 떨어졌다.
기사와 병사 들이 개떼처럼 달려들어 추락한 흡혈 파리를 도륙 냈다.
그사이 높게 날아오른 흡혈 파리들은 빙벽을 따라 멀리 사라져 버렸다.
마수가 사라지자 균열 앞은 거짓말처럼 고요해졌다.
곳곳에 널브러진 흡혈 파리의 사체가 아니라면 꿈이라고 생각될 정도다.
기사들이 뛰어다니며 피해를 조사하고 다녔다.
엘리오는 알파 중대 지휘부가 모인 곳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알파 중대장 데니스 로빈 남작이 롱소드에 묻은 마수의 체액을 닦고 있는 파비안에게 한마디 했다.
“파비안. 너 예지 능력을 보니 주술사를 해도 되겠다.”
실없는 중대장의 농담에 파비안은 머리를 긁적였다.
“죄송합니다. 말조심하겠습니다.”
“아냐. 앞으로도 입에서 나오는 대로 말해. 그래야 대비를 하지.”
‘뭐지?’
파비안은 고개를 들어 중대장의 안색을 살폈다.
하지만 표정만 봐서는 농담인지 진담인지 알 수가 없었다.
그가 ‘진심이십니까?’라고 물으려 할 때 엘리오가 다가왔다.
“피해를 많이 입었나요?”
그러자 데니스 로빈 남작이 자세를 바로하며 답했다.
“아닙니다. 때마침 발생한 라이트닝 스톰(Lightning storm)으로 피해가 적었습니다. 수습은 저에게 맡기고 쉬십시오.”
“아, 예. 파비안 경은 괜찮나?”
“저요? 당연하지요. 칼림바움이 나타나면 모를까? 흡혈 파리 떼 따위로는 끄떡없습니다.”
칼림바움은 주야를 가리지 않고 출몰하는 마물로 그 위험도는 흡혈 파리 떼에 비할 바가 아니다.
땅 밑으로 다니는 칼림바움의 별명은 불가사리.
땅 밑에서 솟구쳐 올라 산 것은 물론 쇠붙이까지도 으적으적 씹어 먹는 북부 최강의 마물이다.
순간 데니스 로빈 남작이 이를 악물고 말했다.
“파비안! 그 입 좀 어떻게 안 되겠나?”
“헙! 예, 주의하겠습니다.”
중대장의 살기등등한 눈빛에 파비안은 어깨를 움츠렸다.
조금 전 ‘진심이십니까?’라고 물었으면 큰일 날 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