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1041
1041회. 이전에 없던 일들이에요
참모장의 설명에 콜린 스트롱 백작은 탄성을 내뱉었다.
“놀랍군, 놀라워. 그 정도면 아무리 야인 출신이라도 자작의 작위를 내렸어야 하는 것 아닌가.”
그러자 왕실 서기관 패트릭 듀렌드 남작이 끼어들었다.
“북부 귀족들의 반발을 최소화하기 위해 높은 작위 대신에 봉토를 하사하기로 한 것입니다.”
참모장이 거들듯 말했다.
“히르헤라에서 공을 세운 뒤에 작위를 높이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엘리오 경이 작위나 봉토에 연연하는 것 같지 않으니 괜찮을 겁니다.”
“그렇다면야 뭐.”
콜린 스트롱 백작은 더 이상 작위를 거론하지 않았다.
자신이 엘리오의 후견인도 아니고, 오늘 처음 본 사람의 권익을 위해 나서 줄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오후 4시.
왕궁의 지원부대를 이끌고 온 부장군 콜린 스트롱 백작의 환영식과 봉작 행사가 함께 열렸다.
연회로 이어진 환영식과 달리 봉작 행사는 간단했다.
에스카토스 공작이 국왕을 대신해 엘리오에게 남작의 작위와 봉토로 슬래시 랜드를 하사하는 것으로 끝났다.
이어진 연회에서 고위 귀족들은 발에 채일 정도로 많은 남작에게는 별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연회의 주인공은 원수인 에스카토스 공작과 새로 부임한 부장군 콜린 스트롱 백작이었다.
한쪽 구석에 어정쩡하게 서 있던 엘리오에게 대장군인 베르나르도 후작이 다가갔다.
“축하하네.”
“감사합니다.”
엘리오가 멋쩍은 얼굴로 묵례를 해 보였다.
베르나르도 후작이 자연스럽게 그의 옆에 섰다.
“자네의 공훈에 못 미치는 작위지만, 그래서 봉토를 내리는 것으로 대체했다고 하더군. 남작이 봉토를 받은 건 전시 때에나 가능한 일이라네. 그만큼 빙벽의 균열을 중요시하고 있다는 뜻이지.”
“그렇군요. 그런데 슬래시 랜드는 어디에 있나요?”
“내 영지 서북쪽에 있네. 남작령치고는 아주 넓지. 넓이로만 본다면 자작령보다도 크다네.”
“마을도 있고요?”
“일곱 개의 마을이 있네.”
“많네요?”
엘리오는 문득 치료소가 있던 엔아르케를 떠올렸다.
그런 마을이 일곱 개라고 생각하니 갑자기 부자가 된 느낌이다.
“슬래시 랜드는 설원 지대에 있어 사람이 많지 않네. 마을 인구도 백 명을 넘지 않은 곳이 수두룩하지. 그래도 영주가 하기 나름이니까. 자네라면 큰 어려움 없이 잘 운영할 수 있을 걸게.”
부유하지 않고 인구가 적다는 말에 엘리오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한밑천 잡나 보다 좋아했는데 어째 그게 아닌 것 같다.
“저어, 운영이라고 하셔서 드리는 말씀인데……. 혹시 세금을 걷어서 위에 바치고 뭐 그래야 하나요?”
“빙벽과 거리가 먼 북부의 영토에서는 왕궁에 세금을 내기도 하네. 하지만 빙벽에서 가까운 지역은 세금이 면제되는데, 슬래시 랜드가 그런 곳이네. 워낙 척박해서 살아가기도 급급한 곳이거든. 그러니 슬래시 랜드에서 나는 모든 것은 자네의 것이라 할 수 있지.”
“…….”
엘리오가 고개를 갸웃했다.
슬래시 랜드가 ‘살아가기도 급급한 곳이라 세금이 면제됐다’는 게 좋은 건지 나쁜 건지 모르겠다.
“다만 왕국에 일이 생기면 자네는 슬래시 랜드의 영주 자격으로 지원을 해 줘야 하네. 그건 영주들에게 부여된 기본적인 의무거든. 의무를 다해야 권리도 주장할 수 있다는 걸 명심하게.”
“아, 예. 한 가지 더 궁금한 게 있는데요.”
“뭔가?”
“슬래시 랜드를 팔 수도 있나요?”
그러자 베르나르도 후작이 황당한 얼굴로 엘리오를 보았다.
모든 하급 귀족의 꿈이 영지를 갖는 것인데, 그 귀한 영지를 받자마자 팔 수 있냐고 묻다니?
“진심인가?”
후작이 인상을 찌푸리자 엘리오는 황급히 변명했다.
“그냥 궁금해서요. 영지를 매매하는 게 가능한가 싶어서. 영지도 결국은 땅이니까.”
“물론 영주들끼리는 영지의 거래를 할 수가 있네.”
“영주들만 된다는 건가요? 귀족은 안 돼요?”
“안 되네.”
“왜죠?”
“법적으로 영주만이 기사단과 군대를 거느릴 수 있네. 누구라도 돈으로 기사단과 군대를 소유할 수 있다면, 왕국이 어찌 되겠나. 그래서 왕국과 제국에서는 영주들끼리만 영지를 거래할 수 있게 법으로 정해 두었다네. 영주들만큼 왕국의 번영을 바라는 사람도 없으니까.”
“아!”
엘리오가 격하게 고개를 끄덕이자 후작은 피식 웃었다.
영지를 되찾는 것은 처음 왕에게 봉토를 하사받는 것만큼이나 어렵다. 그러니 아무리 작은 영지라도 손에 꼭 쥐고 있는 게 나았다.
“혹시라도 나중에 돈이 필요하면 나를 찾아오게. 괜히 슬래시 랜드를 처분할 생각은 하지 말고.”
베르나르도 후작은 그렇게라도 엘리오를 곁에 두고 싶었다.
“감사합니다. 그런 날이 오면 꼭 그렇게 하겠습니다.”
엘리오는 고개를 꾸벅 숙였다.
베르나르도 후작도 필요에 의해 자신에게 잘 대해 주는 것일 테지만, 고마운 건 사실이었다.
잠시 후 베르나르도 후작은 귀족들이 모인 곳으로 자리를 옮겨 갔다.
베르나르도 후작 외에 엘리오에게 다가가는 귀족은 없었다.
엘리오의 보잘것없는 출신과, 그가 이미 베르나르도 후작가의 사람이라는 이유로 귀족들은 그에게 가까이 가지 않았다.
뻘쭘한 얼굴로 서 있던 엘리오는 조용히 천막을 빠져나갔다.
“엘리오 경.”
알파 중대를 향해 터벅터벅 걸어가던 엘리오가 멈춰 섰다.
목소리의 주인은 애슐리 넬슨 남작이었다.
“축하드려요.”
“감사합니다.”
엘리오가 멋쩍은 얼굴로 머리를 긁적이자 애슐리 넬슨 남작이 ‘풋!’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이윽고 두 사람은 어깨를 나란히 하고 걷기 시작했다.
잠시 걷던 애슐리 넬슨 남작이 운을 뗐다.
“정식으로 봉토를 받으셨으니 이젠 푸토코아 백작가에서 함부로 행동하지 못할 거예요.”
“봉토가 그것과 상관이 있어요?”
“그럼요. 이젠 그냥 남작이 아니라 영주님이시잖아요.”
“에이, 그래 봐야 척박하고 가난한 땅이라던데요 뭐.”
엘리오는 베르나르도 후작에게 들은 이야기를 떠올렸다.
슬래시 랜드의 영주는 이름만 거창하지 인생에 도움이 될 것 같지 않았다.
하지만 귀족들의 분쟁을 보며 자란 애슐리 넬슨 남작은 다른 소리를 했다.
“슬래시 랜드만 보면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어요. 하지만 엘리오 경이 봉토를 받았다는 게 중요해요.”
“무슨 소리예요?”
“이제부터 푸토코아 백작가와 엘리오 경 사이에 싸움이 나면, 그건 영지전으로 인식되거든요. 푸토코아 백작령과 엘리오 남작령의 싸움이 된다는 거예요. 아, 엘리오 남작령이 맞나요? 엘리오 님의 성을 몰라서.”
“엘리오 라고아입니다.”
“라고아의 성을 쓰시는군요. 정정할게요. 오늘 이후로 또 싸움이 일어나면 푸토코아 백작령과 라고아 남작령의 싸움으로 불리게 될 거예요.”
“이름이 거창하게 바뀐다고 해도 달라질 건 없을 것 같은데요?”
“영지전의 승자가 패자에게 재물이나 영지의 일부를 배상으로 요구할 수 있어요. 패자는 승자의 요구를 따라야 하고요. 아시겠어요? 엘리오 경이 이기면 푸토코아 백작령의 일부를 정당하게 요구할 수 있게 돼요.”
“와아! 그게 가능하다고요?”
“영지전은 영주들이 영지를 넓히는 가장 흔한 방법이에요. 그렇게 놀랄 만한 일은 아니랍니다.”
“왕실에서 그걸 허락해요?”
“왕실이 직접적으로 손해를 보는 일은 없으니까요. 어차피 영주들의 땅이 왔다 갔다 하는 거잖아요.”
“그렇군요. 그런 게 있다는 건 전혀 몰랐어요.”
“영지전에서의 토지 요구는 영주들만의 특권이에요. 일반 귀족이 영주를 상대로 싸워 이길 일은 없겠지만, 만에 하나 이기더라도 재물로밖에 배상을 못 받아요. 하지만 영주들은 분쟁이 일어난 지역의 땅을 요구할 수 있어요. 그런 식으로 영지를 넓힌 영주들이 많답니다.”
“하지만 나와 푸토코아 백작가는 땅 때문에 싸운 게 아니잖아요. 분쟁 지역이라고 할 만한 게 없는데……. 땅을 요구할 수 있어요?”
“그거야 말하기 나름이죠. 푸토코아 백작가가 엘리오 경의 부족을 몰살시켰다면서요? 이런 경우 엘리오 경의 부족이 살던 지역을 요구하는 건 정당한 권리예요. 그다음에는 그 지역을 중심으로 조금씩 확대해 나가는 거죠.”
“아하!”
엘리오가 새삼스러운 눈으로 애슐리 넬슨 남작을 보았다.
얼굴만 이쁜지 알았는데 머리도 상당히 뛰어났다.
“왜 그런 눈으로 보세요?”
“머리가 상당히 좋으신 것 같아서요. 저는 그런 쪽으로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거든요.”
“후후. 감사하기는 한데 사실 제국의 영주들에게는 흔한 일이라서요. 그래서 영주들은 뛰어난 기사들을 곁에 두고 싶어 해요. 가신들에게 인근의 영지를 주는 것도 그래서고요. 당장 슬래시 랜드만 해도 베르나르도 후작의 영지와 맞닿아 있잖아요.”
“베르나르도 후작님 같은 고위 귀족들도 그런 걸 염려하나요?”
“미래가 어떻게 변할지는 모르니까요. 당장 북부의 3대 영주들의 사이도 좋은 건 아니라고 들었어요. 북부 설원의 마물들만 아니었다면 서로 간에 많은 전쟁이 일어났을 거예요.”
“왕실에서 금지하지 않나요?”
“영지전은 왕실에서 관여하기 전에 끝나는 경우가 많아요. 배상 절차에 들어가면 왕실에서도 어쩔 수 없죠.”
“그렇구나.”
엘리오는 ‘푸토코아가 시비를 걸면 바로 영지전을 일으켜야겠다’고 다짐했다.
생각에 잠긴 그의 귓가로 애슐리 넬슨 남작의 음성이 들려왔다.
“그러니 이제는 푸토코아 백작가에서도 신중하게 행동할 수밖에 없어요.”
“영지를 팔면 안 되겠네요?”
“훗! 슬래시 랜드를 처분할 생각이셨어요?”
“북부에서 살 생각은 없어서요.”
“아! 혹시 중부나 남부로 진출할 계획을 가지고 계신가요?”
“언젠가는요.”
“그러시구나. 혹시 중부로 오시게 되면 넬슨 백작가를 꼭 한번 찾아 주세요.”
“넬슨 백작가요?”
“네. 코르보 마법 병단이 제도(帝都)에 머무르는 동안은 저도 집에서 생활을 하거든요.”
“아하. 그때 가서 기억이 나면 들러 볼게요.”
엘리오는 대충 얼버무렸다.
제국에 언제 가게 될지도 모르고, 또 그때까지 애슐리 넬슨 남작의 초대를 기억할 자신이 없어서다.
“꼭 기억이 나실 거예요.”
애슐리 넬슨 남작은 살짝 엘리오의 안색을 살폈다.
그는 항상 이런 식으로 여지를 남기지 않았다.
처음에는 그게 좋아서 그와의 만남이 즐거웠다.
하지만 그런 것도 한두 번이다.
매번 만날 때마다 저런 식이니 이제는 ‘나에게 여자로서의 매력이 없나?’ 우려가 될 정도다.
멀리 알파 중대의 막사가 보이자 애슐리 넬슨 남작은 급히 말했다.
“참, 조만간 코르보 마법 병단은 히르헤라를 떠나게 될 것 같아요.”
“제국에서 돌아오라는 연락이 왔나 보네요?”
“네, 이곳에서 코르보 마법 병단이 할 수 있는 일도 없지만, 남부의 상황이 점점 안 좋게 되는 것 같아요.”
“남부라면 역시 대수림의 출입 문제 때문인가요?”
“알고 계셨네요? 당장 전쟁이 난 건 아니지만, 코르보 마법 병단이 남부 접경지에 배치되는 것만으로도 남부 왕국들은 긴장할 거예요.”
“그래도 남부 왕국들이 제국의 요구를 거부하면 어떻게 되나요?”
“제국도 대수림의 문제에 진심이라는 걸 보여야 하니까……. 가장 제국에 반대하는 왕국으로 진격할지도 몰라요.”
“전쟁이 난다는 건가요?”
“아마도요.”
“히르헤라의 균열을 막지 못하면 대륙이 뒤집어질 텐데, 남부에서 전쟁을 벌인다고요?”
“제국의회는 빙벽의 균열을 북부의 문제로 생각해요. 그에 반해 대수림은 제국의 안보와 직결되었다는 거죠.”
고개를 설레설레 젓던 엘리오가 물었다.
“로디나 대륙이 항상 이렇게 시끌시끌했나요?”
“그건 아니에요. 스크툼(빙벽)의 균열도 처음이고, 대수림은 모험가들의 땅으로 남부 왕국들이 쳐다보지도 않았어요. 모두 이전에 없던 일들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