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1046
1046회. 중대장님이 계시지 않습니까?
‘마나를 포기할 수 있느냐?’는 질문에 파비안은 흠칫했지만, 바로 물러나지 않았다.
“그럼, 그 샤우팅(shouting)은요?”
“샤우팅?”
“왜 공중에서 크게 소리를 지르시지 않았습니까?”
“아! 그건 기술이 아니야. 개나 소나 할 수 있어. 너도 답답하거나 기분 좋을 때 소리 지르잖아. 나도 신나서 그래 본 거야.”
“에이, 아이스 오우거가 그 소리를 듣고 경직됐다는 소문이 파다합니다.”
“소문 믿지 마.”
“진짜 그냥 소리를 지른 거라고요?”
“너는 몸이 굳디?”
“아뇨. 깜짝 놀랐지만 몸이 굳지는 않았습니다.”
“아이스 오우거도 그랬을 거다.”
엘리오의 설명을 듣고 난 파비안은 더 묻지 않았다.
하지만 되짚어 볼수록 신비했다.
극강의 검술에 마치 마법을 보는 것 같은 도약력, 그리고 천지를 진동시키는 ‘샤우팅’까지.
‘중대장님은 어떤 사람이지?’
그에 대해 많이 아는 것처럼 떠들어 댔던 게 부끄러웠다.
두 사람은 에너지 볼을 꺼내 입에 넣고 우물거렸다.
그 와중에 어디서 요리를 하는지 구수한 냄새가 났다.
코를 킁킁거리던 파비안이 말했다.
“중대장님은 요리병 안 쓰십니까?”
“요리병?”
“중대장님들은 에너지 볼이 아니라 요리병이 해 주는 요리를 드시지 않습니까.”
“요리병은 아무나 시키면 돼?”
“예, 하지만 월급은 중대장님이 따로 주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월급까지 줘야 된다고? 그럼 안 써.”
“중대장님 월급이면 하나 둬도 될 것 같은데요?”
“나 돈 모아야 돼.”
“따로 계획하신 일이라도 있습니까?”
“어, 나중에 대륙 여행 갈 거야.”
“아! 그 정도는 영지에서 나오는 돈으로 되지 않습니까?”
“슬래시 랜드가 가난하대. 인구도 별로 없고. 말만 영주지 실속은 별로 없는 곳 같아.”
“에이, 그래도 요리병 월급 줄 돈은 나올 겁니다. 명색이 영주님이신데 요리병은 두셔야죠.”
당사자인 엘리오보다 파비안이 더 요리병에 집착하는 모양새다.
뒤늦게 그걸 깨달은 엘리오가 파비안을 보았다.
“어째 나보다 네가 더 열심이다? 얻어먹기라도 하려고?”
“그러면 안 됩니까?”
“꿈 깨라. 나는 요리병 둘 생각도 없고, 설사 두더라도 너까지 걷어 먹이지는 않는다.”
엘리오의 타박에 파비안은 얼른 화제를 돌렸다.
“그래도 지원부대가 좋네요. 오늘만 같으면 지원부대로 쭈욱 있어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알파 중대가 그 말을 들으면 퍽도 좋아하겠다.”
“아, 물론 알파 중대에게는 힘든 하루였지요. 제 말은 우리 루퍼스 중대에게 무난한 하루였다는 뜻이었습니다.”
“아유, 저 이기적인 인간. 어쩌면 저렇게 하는 짓이 누구와 똑같은지. 그런 건 타고나는 건가?”
엘리오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자기가 닮았다고 생각해서 그렇게 느끼는 건지 모르겠지만, 심통과 너무 비슷했다.
궁색해지면 말 돌리는 것까지 닮아도 너무 닮았다.
‘이놈의 전생이 심통인가?’
엘리오는 새삼스러운 눈으로 파비안을 보았다.
“왜 그런 눈으로 보십니까?”
“너를 닮은 고향 사람이 생각나서.”
“그 사람도 머리가 좋고 미남인가 보군요?”
“아니 징그러울 정도로 이기적인 인간이야.”
“아…….”
파비안은 딱히 부인하지 않았다.
이기적이라는 말은 어린 시절부터 하도 들어서 이젠 그러려니 할 정도로 익숙해진 탓이다.
사흘 후 루퍼스 중대가 알파 중대와 함께 주둔지로 돌아왔을 때, 주둔지의 분위기는 살짝 들떠 있었다.
중대장 막사로 돌아간 엘리오는 후작에게 선물받은 체인 메일을 벗어 T자형으로 생긴 목봉에 대충 덮어 씌웠다.
사실 그의 무위에서는 체인 메일을 입으나 안 입으나 별 차이가 없다.
그럼에도 무장을 갖춘 것은 ‘중대장이 솔선수범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는 주변의 권고 때문이다.
무게가 느껴지지 않는다 해도 체인 메일을 입었다 벗었다 하는 것은 번거로운 일이었다.
“귀찮아 죽겠네.”
엘리오가 복잡한 눈으로 체인 메일을 노려보았다.
이 쇠사슬 덩어리가 중대장의 석 달치 월급과 맞먹는 가격이라니 잘 가지고 있다가 나중에 팔아 치워야겠다.
그런 생각을 할 때 파비안이 헐레벌떡 뛰어 들어왔다.
“중대장님! 들으셨습니까?”
“뭘?”
“베일럼 왕국군이 히르헤라에 진입했답니다. 한 시간쯤 후면 주둔지에 도착할 것 같습니다.”
“수일 내에 온다더니 벌써 그렇게 됐나 보네.”
“그럼 균열 감시 투입 주기도 6일에서 12일로 늘어나는 겁니까?”
“모르지. 우리 영지처럼 한 번에 2개 중대를 배치할지도. 그렇게 되면 투입 주기는 여전히 6일일걸?”
“12일이면 좋은데. 그렇지 않습니까?”
“윗분들이 알아서 결정하겠지. 6일이든 12일이든. 그보다는 코르보 마법 병단이 더 문제야.”
“예? 왜요?”
“베일럼 왕국군이 합류하면 떠난다는 소리를 들은 것 같거든.”
“정말입니까? 그럼 안 되는데.”
“왜? ‘까마귀가 물어 간 보석(애슐리 넬슨 남작)’을 더 이상 볼 수 없게 돼서?”
“에이, 왜 그러십니까? 넬슨 남작님이 중대장님 따라다니는 거 이미 소문 다 났는데.”
“그건 또 무슨 헛소리야? 그 사람이 언제 나를 따라다녔다고 그래?”
“넬슨 남작이 다섯 번이나 중대장님을 찾아와 만나지 않았습니까. 그 정도면 따라다닌 거죠.”
“그걸 또 세고 있었어?”
“넬슨 남작의 추종자가 한두 명인 줄 아십니까? 가만히 있어도 귀에 들어옵니다.”
“넬슨 남작이 나 따라다닌 거 아니니까 헛소리들 하지 말라고 해. 그건 그렇고 왜 마법 병단이 떠나면 안 된다고 한 거야?”
“그야 당연히 코르보 마법 병단이 루퍼스 중대만큼이나 강한 전력이라서 그러지요. 루퍼스 중대를 대신할 정도의 부대가 하나쯤은 있어야 우리도 편할 거 아닙니까?”
“너는 진짜 처음 생각이 하나로 이어지는구나[初志一貫].”
“예?”
“일관성 있다고.”
“기사라면 무릇 그래야지요.”
“알았으니까 나가 봐.”
엘리오가 귀찮다는 듯 손을 까딱였다.
칭찬을 받았다고 생각한 파비안은 의기양양한 얼굴로 돌아서 나갔다.
휑한 막사 안을 둘러보던 엘리오는 마하담(공간 창고)에서 탁자와 의자를 꺼내 한구석에 설치했다.
강호에서 사용하던 가구들을 보니 가슴이 시큰거렸다.
이윽고 의자에 걸터앉은 엘리오는 손가락으로 탁자를 톡톡 두드렸다.
베일럼 왕국군의 합류는 환영할 만한 일이지만, 코르보 마법 병단의 철수는 아쉽기만 하다.
궁정 마법사들이 흑마법사들을 상대할 수 있을까?
에스카토스 왕국의 궁정 마법사인 칼로스 경은 흑마법사들의 마법을 알아보지 못했다.
베일럼 왕국의 궁정 마법사가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그 역시 칼로스 경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게다.
마구스 킬리언 헤일 공작에게 흑마법에 대한 조언을 더 이상 듣지 못한다고 생각하니 아쉽기만 하다.
‘지난번처럼 히르헤라에 유성우가 또 떨어지면 큰일 나는데…….’
자신은 죽지 않는다고 안심할 일이 아니다.
알파 중대와 루퍼스 중대의 기사와 병사 들을 생각하면, 유성우 마법만큼은 막아야 했다.
‘그놈일까? 아니면 다른 놈이 벌인 짓일까?’
타메이온에서 달아난 흑마법사도 7서클이라니 테르미누스의 결계 안에서 유성우 마법을 쓸 수 있었다.
‘젠장! 그날 잡아서 물어봤어야 하는데.’
엘리오가 지나간 과거를 아쉬워할 때 손님이 찾아왔다.
“엘리오 남작님, 계신가요?”
코르보 마법 병단의 애슐리 넬슨 남작이었다.
엘리오는 저도 모르게 인상을 찌푸렸다.
싫어서가 아니라 곤혹스러워서다.
파비안이 또 넬슨 남작의 일을 들먹일 걸 생각하니 벌써부터 머리가 아팠다.
그렇다고 찾아온 손님을 안 만날 수도 없는 노릇.
“네, 들어오세요.”
엘리오의 막사 안으로 들어간 애슐리 넬슨 남작은 투박하게 생긴 탁자와 의자를 힐끔 보았다.
가구점에서 구입한 게 아니라 손으로 대충 만든 것 같았다.
‘그런데 오래 사용한 것 같네?’
그녀는 탁자와 의자를 엘리오 경이 알파 중대에서 사용하던 걸 가져왔다고 생각했다.
“간이침대만 있을 줄 알았는데 분위기가 있네요?”
애슐리 넬슨 남작의 칭찬에 엘리오는 멋쩍게 웃었다.
파비안에게 이상한 말을 들어서인지 애슐리 남작과 있는 시간이 영 어색하기만 했다.
다행히 애슐리 넬슨 남작이 대화를 주도해 나갔다.
“인사를 드리려고 왔어요. 코르보 마법 병단은 오늘 점심 식사 이후에 철수할 거예요.”
“아! 베일럼 왕국군이 히르헤라에 진입했다는 소식은 들었습니다. 같은 날 움직이실 줄은 몰랐네요.”
“주둔지가 떠들썩할 때 나가야 금방 잊혀질 테니까요. 마법 병단은 잊어도 되지만, 저와의 약속까지 잊으면 안 되는 거 알죠?”
“아, 예. 기억하고 있습니다. 대수림으로 가게 되면 연락드리겠습니다.”
“하나가 더 있죠?”
“또 있었나요?”
“제도(帝都)에 오면 넬슨 백작가를 방문해 달라고 말씀드렸잖아요. 설마 벌써 잊으신 거예요?”
애슐리 넬슨 남작이 살짝 눈을 흘겼다.
다른 귀족들은 초대하지 않아도 뻔질나게 본가를 찾아왔다.
그런데 엘리오 남작은 와 달라고 먼저 청했음에도 저 모양이니, 한편으로 원망스럽기까지 했다.
“아, 잊다니요? 아닙니다.”
엘리오는 격하게 고개를 저었다.
그저 깜빡했을 뿐 잊은 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럼, 다시 뵐 날을 기다리겠어요. 그럼 이만.”
애슐리 넬슨 남작은 엘리오의 행동에 기분이 상한 것처럼 묵례를 하고 바로 돌아섰다.
“안녕히 가세요.”
이어진 엘리오 남작의 무덤덤한 작별 인사에 애슐리 넬슨 남작은 입술을 깨물었다.
‘이 남자가 진짜.’
귀족가의 자제들은 어려서부터 타인의 시선과 평가에 항상 귀를 기울이며 살아간다.
당연히 자신이 엘리오를 따라다닌다는 망측한 소문도 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를 찾아온 것은, 그렇게 하지 않으면 그와 대화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이런 게 따라다니는 거라면, 맞다.
하지만 그것은 자신에게 사심을 드러내지 않는 그에 대한 호감 때문이지, 그가 죽도록 좋아서가 아니다.
‘하아! 여기까지만 하자.’
애슐리 넬슨 남작은 그에 대한 생각을 털어 버리기로 했다.
그로부터 한 시간 후.
마침내 히르헤라 주둔지에 베일럼 왕국군 천여 명이 도착했다.
베일럼 왕국군은 장장 두 시간에 걸쳐 부대 배치를 끝냈다.
그리고 점심 식사 후 에스카토스 왕국군 지휘부와 베일럼 왕국군 지휘부의 연합 회의가 열렸다.
에스카토스 왕국군과 베일럼 왕국군 지휘부가 부대 운영 문제를 두고 신경전을 벌일 때, 히르헤라 주둔지에서 비공정 한 대가 이륙했다.
루퍼스 중대.
엘리오와 함께 주둔지 위를 날아가는 비공정을 보던 파비안이 중얼거렸다.
“드디어 코르보 마법 병단이 가네요.”
“왜? 아쉬워?”
“전혀요. 저는 코르보 마법 병단에 관심 없습니다.”
“전술 전략을 배웠다면서 관심이 없으면 되나?”
“코르보 마법 병단은 참모 선을 한참 넘는 곳에 있습니다. 후작님처럼 대장군은 돼야 코르보 마법 병단과 대화가 될 텐데요 뭐.”
엘리오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건 맞는 말이었다.
중대장들도 코르보 마법 병단의 운영은 꿈도 못 꾸는데 하물며 소위에 불과한 파비안이야 오죽할까.
“이제부터 진짜 긴장해야 돼.”
“왜요? 코르보 마법 병단이 없으면 주둔지가 위험해지기라도 합니까?”
“주둔지에 남아 있는 궁정 마법사들보다 흑마법사의 경지가 높잖아. 슬슬 흑마법사들이 움직일 때가 됐는데, 이쪽에서 대응할 마법사들이 없다고.”
“중대장님이 계시지 않습니까?”
“…….”
엘리오는 대꾸하지 않았다.
파비안의 태평스러운 소리를 듣고 있으려니 히르헤라에서 벌어진 일을 모르는 게 약인지 독인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