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1047
1047회. 언터처블
히르헤라 주둔군.
중앙 지휘 통제 막사.
뜨겁게 달아올랐던 에스카토스 왕국군 지휘부와 베일럼 왕국군 지휘부의 회의는 시간이 지나면서 가라앉았다.
두 왕국이 힘을 합쳐야 하는 상황이기에 적정선에서 합의를 본 때문이다.
그렇다 해도 분위기는 화기애애하지 않았다.
에스카토스 왕국에서는 소드마스터인 에스카토스 공작을 주둔지 최고 지휘관으로 세우려 했으나, 베일럼 왕국의 반대로 무산됐다.
베일럼 왕국은 지원을 전담하겠다는 꼼수를 썼지만 에스카토스 왕국이 그걸 허락할 리가 없다.
그렇게 소득 없는 토론으로 한 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사회자로 나선 에스카토스 왕국의 부장군 콜린 스트롱 백작이 좌중을 둘러보며 말했다.
“그럼 에스카토스 왕국과 베일럼 왕국이 교대로 균열 감시 임무를 수행하는 것으로 하겠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부대 배치와 운영에 관한 논의를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현재 에스카토스 왕국군 1개 중대가 3일, 3교대로 균열을 감시하고 있습니다. 보셔서 아시겠지만 균열 입구가 좁아 1개 중대밖에 주둔하기 어려워서 그렇게 됐습니다. 최전선의 중대가 주둔지로 내려와 6일간 점검하고 다시 투입되는 상황입니다. 베일럼 왕국군의 편제도 우리 에스카토스 왕국군과 같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두 개 왕국이 따로 투입되면 3일 6교대가 가능해 재정비를 하는 데 15일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그러자 베일럼 왕국의 부장군 막스 체이드 백작이 끼어들었다.
“기존의 방식대로 운영하되 우리 베일럼 왕국군 1개 중대가 뒤를 받쳐 주는 것은 어떻소? 그편이 1개 중대가 단독으로 마수를 상대하는 것보다 훨씬 안정적일 것 같은데.”
콜린 스트롱 백작의 입가에 쓴웃음이 떠올랐다.
저 발언은 베일럼 왕국군이 지원을 전담하겠다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균열 최전선에 배치된 영지군의 피해가 어느 정도인지 안다면 말도 안 되는 주장이었다.
콜린 스트롱 백작이 베르나르도 후작을 힐끔 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후작은 기가 막힌다는 얼굴로 고개를 설레설레 젓고 있었다.
콜린 스트롱 백작이 막스 체이드 백작에게 되물었다.
“그건 베일럼 왕국군이 지원을 전담하겠다는 것처럼 들리는데 맞습니까?”
“그런 뜻이 아니라 한 개 중대보다 두 개 중대가 낫다는 차원에서 해 본 말이외다.”
“만약 그 지원 임무를 에스카토스 왕국군과 베일럼 왕국군이 교대로 한다면, 괜찮은 제안 같습니다. 어떻게 교대로 지원을 맡는 것으로 수정하시겠습니까?”
“뭐, 그것도 좋겠지만, 부대 운영이 너무 복잡해지니……. 제안을 철회하도록 하겠소. 그냥 각자가 운영하는 방식이 낫겠소.”
“그럼 3일 6교대에 베일럼 왕국도 동의하십니까?”
콜린 스트롱 백작이 확인하듯 되묻자 베일럼 왕국군 대장군 레토나 그라운드 후작이 짧게 말했다.
“그렇게 하지. 다른 중요한 안건이 없으면 다른 이야기로 넘어갔으면 하는데.”
베일럼 왕국 대장군이 나서자 에스카토스 왕국에서도 대장군인 베르나르도 후작이 나섰다.
“균열 감시에 관한 세부 사항 조율은 실무자들에게 맡기는 것으로 합시다.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소?”
“제국의 코르보 마법 병단이 왜 갑자기 철수를 한 거요? 혹시 빙벽의 관리를 우리 북부 왕국들에 떠맡기겠다는 뜻이오?”
사실 코르보 마법 병단과 교류가 전혀 없던 베일럼 왕국 입장에서는 다소 황당한 상황이었다.
게다가 왕위 계승을 두고 내부적으로 치열한 싸움 중이라 주변 상황에 어둡기도 했다.
베르나르도 후작은 연합국인 베일럼 왕국의 입장을 충분히 고려해 설명했다.
“남부 왕국들과 제국 간에 마찰이 있는 모양이오. 그래서 제국군을 남부 왕국 접경지에 배치 중이라 하더이다. 제국의 코르보 마볍 병단도 남부 왕국들에 대한 무력시위를 위해 동원되는 것으로 알고 있소.”
“그런 일이 있었소? 지난 오십 년간 조용했는데 남부 왕국들과 제국 간에 왜 마찰이 일어난 거요?”
“그것까지는 나도 잘 모르오. 베일럼 왕국에서 혹시 알게 되면 정보를 공유해 주시면 감사하겠소.”
베르나르도 후작은 노련하게 자세한 언급을 피했다.
그라운드 후작이 못마땅한 얼굴로 베르나르도 후작을 보았다.
‘흥! 지금까지 히르헤라에서 함께 지냈다면 모를 리가 없는데 잘도 저런 소리를 하는구나.’
하지만 이런 경우 상대가 잡아떼면 따지기도 어려웠다.
“알겠소. 그 문제는 우리 베일럼 왕국에서 자체적으로 알아보리다. 그 밖에 우리가 알아 두어야 할 중요한 사항이 있소?”
그러자 베르나르도 후작이 부장군에게 눈짓을 보냈다.
부장군 콜린 스트롱 백작이 헛기침으로 좌중의 시선을 모은 뒤, 입을 열었다.
“험! 험, 균열 주변에서 흑마법사들의 활동이 목격되었습니다. 참고로 코르보 마법 병단의 마구스 킬리언 헤일 공작은 ‘균열에서 흑마법의 기운이 느껴진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흑마법사들의 준동도 염두에 두셔야 할 것 같습니다.”
순간 베일럼 왕국군 지휘관들의 시선이 궁정 마법사 메이지 드레이크 로젠바움에게로 향했다.
베일럼 왕국의 자랑이자 6서클의 메이지 드레이크 로젠바움이 이미 알고 있다는 듯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베일럼 왕국의 지휘관들은 흑마법사에 대해 따로 거론하지 않았다.
그 부분에 문제가 생긴다면 메이지 드레이크 로젠바움이 알아서 대응할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다.
흑마법사에 대한 언급을 마지막으로 2시간에 걸친 두 왕국군 지휘부의 합동 회의는 끝이 났다.
잠시 후 두 왕국의 참모들만 남고 고위 귀족들이 하나 둘 회의 막사를 빠져나갔다.
***
그날 오후.
베르나르도 후작의 참모인 오스카 아비드 자작은 알파, 벨라토스, 찰리, 루퍼스 중대의 중대장을 자신의 막사로 불렀다.
“거두절미하고 다들 궁금해하는 부분부터 말해 주겠다. 3일 6교대로 결정이 났다. 6일 후 디바 중대(코드란테스 영지군)가 임무를 마치면, 베일럼 왕국군이 9일간 균열 감시에 투입될 것이다. 그 뒤는 우리 에스카토스 왕국군이 전과 동일하게 투입 된다. 알파 중대와 루퍼스 중대는 15일 후에 임무를 교대하게 될 것이다.”
오스카 아비드 자작의 말이 끝나자마자 벨라토스와 찰리 중대장이 데니스 로빈 남작과 엘리오에게 축하 인사를 건넸다.
“여어! 축하합니다.”
“이제 좀 어깨가 가벼워지겠습니다?”
데니스 로빈 남작과 엘리오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벨라토스 중대장 어윈 레더 남작이 문득 물었다.
“그런데 대위님. 베일럼 왕국의 궁정 마법사라면 6서클의 메이지로 알고 있는데, 그분은 균열에 대해 뭐라고 하던가요?”
“별말 없었다. 설령 뭔가 아는 게 있더라도 드러나기 전까지 감추고 있을 것이다. 왕국 간의 연합이라는 게 원래 그렇지 않나.”
“그래도 제국의 마구스 킬리언 헤일 공작은 이것저것 많이 가르쳐 주지 않았습니까?”
“제국은 우리를 상대자로 여기지 않으니까. 퍼 줘도 된다 싶으니까 퍼 주는 거다. 하지만 베일럼 왕국은 우리의 경쟁자이기도 하잖는가. 여하튼 그렇게 됐으니 15일간 중대를 잘 관리하도록. 특히 알파 중대, 정비 시간이 두 배로 늘어났다고 군기가 흐트러지면 안 된다.”
“예. 딴생각하지 못하도록 열심히 굴리겠습니다.”
이윽고 오스카 아비드 자작이 네 명의 중대장을 향해 말했다.
“이건 모두에게 해당되는 말이다. 주둔지에 밀주(密酒)가 유통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술을 금지하는 건 불가능하지만, 술에 취해 싸움이 일어나는 일은 막아야 한다. 특히 베일럼 왕국군과 싸움이 일어나지 않게 통제 잘 해라. 알겠나?”
“예.”
네 명의 중대장들이 이구동성으로 답했다.
만족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던 오스카 아비드 자작이 엘리오에게 시선을 돌렸다.
“후작님께서 엘리오 중대장이 바라는 게 있으면 들어주라고 하셨네. 따로 원하는 바나 필요한 게 있는가?”
“없습니다.”
“그런가? 생각나는 게 있으면 언제라도 말해 주게.”
오스카 아비드 자작은 과할 정도로 친절하게 나왔다.
그건 엘리오 라고아 남작이 베르나르도 후작의 총애를 받고 있어서가 아니다.
최근 아이스 오우거를 일검에 양단한 뒤로 베르나르도 후작가에서 엘리오는 ‘언터처블(건드릴 수 없는 존재)’이라 불렸다.
심지어 그를 원수이자 소드마스터인 에스카토스 공작과 비교하는 병사들도 많았다.
오스카 아비드 자작의 태도는 그런 베르나르도 후작군의 분위기가 반영된 것이었다.
잠시 후 회의를 마치고 길을 가던 엘리오가 데니스 로빈 남작에게 급히 다가갔다.
“남작님.”
“예?”
“아까 참모님이 주둔지에 밀주가 유통되고 있다는 말을 했잖아요. 그거 진짜예요?”
“사실입니다.”
“에? 알파 중대에 있을 때 기사들이 밀주 마시는 걸 본 적이 없는데요?”
“하하! 그건 1소대 기사들 중에 술 좋아하는 사람이 없어서 그랬을 겁니다.”
“그렇구나. 그 밀주는 누가 팔아요?”
“중대마다 뒷구멍으로 술을 반입하는 병사들이 있습니다. 그들이 상인들에게 몰래 구입해서 팝니다.”
“아! 병사들 중에 있다고요? 상인이 파는 게 아니라?”
“술은 주둔지로 반입이 금지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끼리끼리 몰래 사고파는 겁니다. 징집병들 중에는 영지에서 밀주 거래를 해 본 놈들이 많으니까요.”
“우리 루퍼스 중대에도 그런 병사가 있겠네요?”
“거의 틀림없이 있을 겁니다. 밀주 판매권을 두고 병사들끼리 싸움도 벌일 정도니까요. 왜요? 혹시 루퍼스 중대에서 밀주를 단속하려고 그러는 거라면……. 손대지 않는 게 좋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군요. 히르헤라에서 병사들도 어느 정도 숨 쉴 틈은 있어야…….”
“어이쿠! 저도 그렇게 꽉 막힌 사람 아닙니다.”
“혹시 술이 필요해서 그러시는 겁니까?”
“고향 생각도 나고 해서요.”
“아!”
뒤늦게 데니스 로빈 남작은 엘리오 남작의 부족이 몰살당했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제게 일등급의 밀주가 한 병 있습니다만. 드릴까요?”
“주시면 감사히 받겠습니다.”
엘리오는 정중하게 인사부터 했다.
그런 그의 태도에 데니스 로빈 남작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사실 알파 중대의 입장에서는 밀주 한 상자를 바쳐도 모자란데 한 병에 저렇듯 고마워하다니!
“오늘 저녁 식사 후에 가져다 드리겠습니다.”
“값은 얼마를 쳐 드리면 될까요?”
그래도 귀족이라고 엘리오가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했다.
“값이라뇨? 그냥 드리겠습니다. 루퍼스 중대에 얼마나 큰 도움을 받고 있는데요. 돈을 받으면 병사들이 저를 욕할 겁니다.”
“아, 예…….”
엘리오는 사양하지 않았다.
이세계의 술을 생각하니 벌써부터 입안에 침이 고였다.
***
대륙 북부.
미개척지대 파고노메스.
사람의 발길이 닿은 적 없는 거대한 얼음 숲 한가운데 얼음으로 된 성이 보였다.
성의 거대한 홀.
보좌에 앉은 이가 계단 아래의 흑마법사 딜런 던포드를 향해 말했다.
“딜런. 너의 경지를 높여 주고, 이제는 사라진 ‘테르미누스의 결계’와 ‘메테오 스웜’까지 가르쳐 주었건만 어째서 아직도 북부가 조용한 것이냐?”
“위대하신 마그눔 오프스시여. 에스카토스 왕국의 대처가 예상외로 빨라서 그리되었습니다. 하지만 테르미누스의 결계로 균열은 지금도 확장되고 있습니다. 에스카토스 왕국이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가 되면 북부는 손쓰지 않아도 저절로…….”
“마족을 끌어들여라.”
“…….”
순간 딜런 던포드는 흠칫 몸을 떨었다.
아무리 그가 흑마법사라 해도 타메이온의 마족을 상대하기란 쉬운 일이 아닌 까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