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105
105회. 당과(糖菓)로도 때리지 마
거지라고 모두가 다 같은 거지는 아니다.
예컨대 개방의 거지들은 빌어먹지만 무공을 익히고, 방파처럼 뭉쳐 다녔다.
개방의 총타는 남경에 있지만 대도시마다 분타를 두어 거지들을 관리했다.
당연히 개봉에도 개방의 분타가 있다.
개봉 분타주는 취걸신개로 개방의 장로이기도 하다.
소광개는 취걸신개의 제자로 이름에 광자가 들어갈 정도로 괴팍한 남자였다.
당연히 바가지가 아니라 발로 밟아도 뭐라고 할 사람이 없어야 정상이다.
그런데 고작 바가지로 머리통 한번 때린 일로 지적질을 받은 것이다. 그것도 생면부지의 새파랗게 어린 녀석에게 말이다.
소광개가 적의를 드러내자 덩치 좋은 거지 셋도 그의 좌우에서 눈알을 부라렸다.
연적하가 무심한 눈으로 소광개를 보며 말했다.
“자존심 있는 놈이 어린애를 때리냐? 돈도 없고, 자존심도 없는 놈이 어디서 입을 털어?”
“아니, 그런데 이 어린놈의 새끼가 누구 보고 자꾸 애를 때렸대? 바가지로 머리통을 살짝…….”
“밀었어?”
소년이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자 소광개는 소리를 버럭 내질렀다.
“이 개놈아! 아까부터 누가 누구를 때렸다고 난리야! 그래, 내가 때렸다! 그래서 어쩔 건데? 네놈이 저 병신의 가족이라도 되냐? 책임지지도 못하는 놈이 어디서 어쭙잖게 지적질이야!”
소광개는 자신이 거지들의 보호자이기에 당당하게 나갔다.
“책임진다는 이유로 저항도 못 하는 애를 때리지 말란 말이다. 데리고 있으면서 아무 때나 때리는 게 책임지는 거냐? 그런 게 책임이냐고!”
연적하가 상대를 노려보았다.
어린 거지를 보고 있노라니 매 맞던 과거가 떠올랐다. 그래서 더 화가 났다.
“그럼 잘난 네놈이 데리고 가든가. 책임질 자신이 없으면 나불거리질 마. 나는 입만 살아서 나불거리는 놈들이 제일 싫으니까. 알겠냐?”
말과 함께 소광개가 얼굴을 소년에게 바싹 들이댔다.
보통 이 정도로 도발하면 상대는 냄새에 질려서 물러나거나, 칼을 뽑거나 한다. 지금 소광개가 원하는 것은 소년이 칼을 뽑는 것이었다. 일이 커질수록 상대방에게 뜯어낼 돈도 늘어나니까.
철썩!
찰진 소리와 함께 소광개의 머리가 홱 돌아갔다.
한순간 소광개는 물론 주변에 있던 세 거지들까지 석상처럼 굳었다. 소광개가 백주대낮에 이렇게 맞는 걸 본 적이 없어서다.
개봉의 무가들도 어지간하면 소광개를 건드리지 않는다. 소광개의 무공이 뛰어난 것도 있지만, 그 뒤에 있는 취걸신개를 두려워해서다.
알고 보면 소광개가 대책 없이 얼굴을 들이민 것도 그런 자신감에서였다.
분노한 소광개의 입에서 욕설이 튀어나왔다.
“이 미친 새끼가!”
철썩!
동시에 소광개의 머리가 반대편으로 돌아갔다.
수치심에 사로잡혀 발작하려던 소광개는 갑자기 후다닥 뒤로 물러났다.
‘씨벌, 뭐지?’
아무리 방심하고 있었다 해도 두 번이나 얼굴을 맞았다.
상대가 평범한 무가의 공자님이 아니라는 소리다.
이젠 물귀신처럼 들러붙어 돈이나 뜯어내려던 생각을 버려야 했다.
“나는 개방의 소광개다. 너는 누구냐?”
“왜? 맞으니까 이제야 정신이 번쩍 들어?”
“누구냐고 물었다.”
소광개는 소년을 노려보며 이를 빠드득 갈았다.
감히 자신의 뺨을 때리다니?
스승인 취걸신개도 그러지는 않았다.
더구나 수하들 앞에서 당한 터라 소광개는 거의 돌아 버릴 지경이었다.
“어린애나 때리는 놈이 내 이름을 알아서 뭐하게?”
부르르 떨던 소광개가 거지들에게 소리쳤다.
“너희들은 빠져 있어!”
그는 세 명의 거지를 뒤로 물린 뒤 천천히 타구봉을 들어 올렸다.
붕붕붕-.
봉이 본격적으로 움직이자 말벌 떼 날아가는 소리가 들려왔다.
뒤이어 타구봉이라 불리는 봉이 연적하의 머리 위로 떨어졌다.
부우웅-.
치릿.
검 집에서 검이 빠져나오는 소리가 짧게 울렸다.
그리고 토막 난 타구봉이 소광개와 연적하 사이에 떨어져 내렸다.
투두두둑.
“헛!”
소광개의 입에서 다급한 비명이 터져 나왔다.
타구봉을 자른 상대의 검이 어느새 목젖에 닿아 있었다.
한차례 발검 하는 것만 봤을 뿐인데 어떻게 타구봉이 토막이 난 걸까?
소광개는 자신에게 일어난 일이 믿어지지 않았다.
자신의 거무튀튀한 타구봉은 흑철 나무로 만들어서 도검에도 끄떡없는데 말이다.
“다시 말해 봐. 누가 입만 살아서 어쨌다고?”
“소, 소협, 다 저를 두고 한 말입니다. 제가 어린애를 팼고, 주둥이만 산 놈도 접니다요. 제발 죽이지만 말아 주십쇼. 예에? 헤헤.”
“…….”
연적하가 지그시 바라보자 소광개는 더욱 속이 타들어 갔다.
철컥.
연적하는 번개처럼 납검을 하고 짧게 말했다.
“꼬맹이를 데리고 와.”
“예? 예, 예.”
소광개는 미친 거지라는 이름에 걸맞지 않게 꼬리를 내렸다. 그런 걸 보면 미친 짓도 상대를 봐 가면서 한다는 말이 맞는 것도 같다.
우르르 몰려간 어른 거지들이 꼬마 거지를 연적하 앞으로 데리고 왔다.
연적하가 꼬마에게 물었다.
“꼬맹아, 여기서 계속 매 맞으며 살 거야? 아니면 나를 따라올래?”
꼬마는 당황했는지 머뭇거리기만 했다.
“저 거지들을 무서워할 것 없어.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하면 돼.”
“……여기서 살 건데요?”
연적하가 꼬마의 아래위를 세밀하게 살폈다.
꼬질꼬질했지만 건강 상태가 그리 나쁜 것 같지는 않았다.
“알았어. 가 봐.”
연적하가 가라고 손짓했음에도 꼬마는 움직이지 않았다.
머뭇거리던 꼬마가 기어 들어가는 소리로 말했다.
“……한 푼만 주세요.”
연적하는 품 안에서 은자 한 냥을 꺼내 꼬마 손에 쥐어 주었다.
“감사합니다!”
꼬마는 허리가 부러져라 인사를 한 뒤 다른 거지들에게 촐랑거리며 뛰어갔다.
아이의 뒷모습을 멍하니 보고 있는 연적하에게 소광개가 다가갔다.
“저어, 공자님, 이제 그만 가 봐도…….”
“소광개라고 했지.”
“예.”
“애들은 당과(糖東, 과일사탕)로도 때리는 거 아니야.”
“예, 예. 명심하겠습니다.”
소광개를 향해 눈을 부라리던 연적하가 휘적휘적 걸어갔다.
구천노도 심통이 잰걸음으로 그 뒤에 따라붙었다.
소광개는 쪼그리고 앉아 토막토막 잘린 타구봉 조각을 줍기 시작했다.
거지들 중 하나가 낮게 가라앉은 음성으로 물었다.
“저 둘을 어떻게 할까요?”
“몰라서 물어? 애들 붙여 놔. 그리고 뭐하는 인간들인지 뒤도 좀 파 보고.”
“예.”
거지들 몇이 자리에서 사라졌다.
잠시 후 타구봉 조각을 들고 살피던 소광개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무리 봐도 이게 한 번 칼질에 네 토막이나 날 물건은 아니다.
‘누구냐 넌…….’
***
개봉 외곽의 토지신묘.
육십 대로 보이는 늙은 거지가 잘린 타구봉 조각을 이리저리 돌려 가며 살피고 있다. 소광개의 스승이자 개봉 분타주인 취걸신개였다.
“허! 도통 모르겠네. 일검에 타구봉이 네 토막 났다는 게 사실이냐?”
“그렇다니까요. 제가 이 나이 먹고 스승님께 헛소리하겠습니까?”
“이걸 대가리에 피도 안 마른 놈이 그랬다고?”
“예에. 몇 번을 물어보세요. 죽은 자식 부랄 주무르듯 만지작거리지만 말고, 어떻게 된 건지나 좀 말해 줘요.”
“험, 험, 그놈 급하기는. 이건 유형화된 검기로 동시에 성둥 자른 거야.”
“한 번에요?”
“그래. 한 번에.”
“대가리에 피도 안 마른 나이던데, 그게 가능하다고요?”
“인석아. 대가리에 피 마르면 죽어.”
“스승님, 농담 아니고요. 그 녀석 저보다 한참 아래로 보였다고요.”
“강함은 나이순이 아니니라. 당장 네 녀석만 봐도 그렇지 않느냐? 너도 후기지수 중에 좀 한다하는 축에 들잖아. 너보다 나이 먹었지만 하수인 사람이 한둘도 아니고.”
“저 같은 사람은 납득이 가는 수준에서 강한 거고요. 그 녀석은 진짜 애새끼처럼 보였다니까요. 스승님도 그놈을 봤어야 하는데…….”
소광개가 정색을 하고 말하자 취걸신개의 입에서 침음성이 흘러나왔다.
“흐음!”
확실히 나이대를 생각하면 이해가 되지 않는다.
이 정도 검기는 군자검(의천문 문주)쯤 돼야 가능하다. 칠파이문이 아니라 그 어떤 문파에서도 십 대에 그런 고수를 키워 낼 수는 없으리라.
“그렇게 신경 쓰인다면 개봉의 거지들을 죄다 풀어서라도 뒤를 캐 보거라.”
“전부 다 동원하라고요?”
“그래. 전부 다.”
취걸신개의 시선이 토막 난 타구봉으로 향했다.
균등한 길이로 잘려 나간 흑철목을 보고 있으려니 소름이 오싹 돋는다.
‘설마 유명교의 고수일까?’
유명교의 초능 외에는 딱히 떠오르지 않았다.
반로환동처럼 허황된 가정보다는 유명교의 초능이 훨씬 그럴듯해 보였다.
‘만약 유명교가 그런 소년 고수를 키워 냈다면…….’
그야말로 이 시대를 무림의 암흑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개방은 거지들이 굶어 죽거나 맞아 죽는 걸 막기 위해 만든 단체다. 가끔 떼로 몰려다니며 진상 짓을 해서 돈도 뜯어내지만, 그래도 악행은 저지르지 않았다.
비록 정의맹의 고상한 문파들에 손가락질받고 있지만 협의를 품고 산다.
그래서 취걸신개는 정체불명의 소년이 유명교와 관계가 없기를 소원했다.
“그리고 인마, 어린애를 왜 때려서 이 사달이 나게 만들어? 내가 너를 때리면서 가르치디? 제 놈은 맞지도 않아 놓고 왜 애를 패!”
“아, 진짜! 때리지 않았다고요! 그냥 멍하니 서 있길래 바가지로 머리통을 살짝, 딱 소리가 좀 나긴 했지만 아플 정도는 아니었다고요.”
“에라 이 답답한 놈아! 여우하고는 살아도 곰하고는 못 산다더니만. 여섯 살짜리 조막만 한 머리통을 바가지로 때리고서 뭘 잘했다고 주둥이를 놀려? 네놈 머리야 돌대가리니까 안 아프겠지. 다시 한 번 애들 때렸다는 소리 들리면 다리몽둥이를 부러뜨릴 줄 알아!”
“와아! 진짜 억울하다. 바가지로 살짝……. 진짜 살짝 그런 건데…….”
“저 곰 같은 놈이 그래도 살짝이래. 그 녀석이 당과로도 때리지 말라고 했다면서? 하지 말라고 하면 좀 하질 마! 그러다가 나중에 또 걸리면, 그때는 네놈 팔다리가 저렇게 잘려 나갈 수도 있음을 왜 몰라!”
취걸신개가 진심으로 화를 내자 소광개는 슬며시 눈을 내리깔았다.
하기야 당과로도 때리지 말라는 놈이니 그때는 무슨 일이 터질지 몰랐다.
***
낙양 동편 언사.
월하교당.
야심한 밤.
탁자 하나를 사이에 두고 중년의 두 여자가 마주 앉아 있었다. 월하교당 당주 월하선자와 은밀하게 그녀를 찾아간 백미주였다.
월하선자가 기이한 눈으로 탁자 위에 놓인 팔주령과 백미주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정파 무가에서 이걸 바친 건 유명교 역사상 처음이었다.
“백미주라고 했느냐?”
“예.”
“너는 이 물건의 쓰임새를 알고 있느냐?”
“모릅니다. 다만 상방 관계자가 말하기를 이걸 가져가면 돈이나 소원을 청할 수 있다고…….”
월하선자의 입가에 야릇한 미소가 떠올랐다.
“후후. 내 특별히 너에게 그 물건의 용처(用處)를 가르쳐 주마. 듣고 나서도 봉헌(奉獻)하고 싶다면, 네 소원을 들어주도록 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