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1050
1050회. 그만해요! 눈을 깜빡이고 있잖아요!
엘리오는 찬찬히 불청객들을 살폈다.
그들은 모두 베일럼 왕국군 병사 복장을 하고 있었다.
롤프 프릿츠 남작보다 강한 남녀와 킬리언 헤일 공작 뺨칠 정도의 마법사가 일반 병사라니?
아무리 자신이 베일럼 왕국에 대해 모른다 해도 이건 아닌 것 같다.
그때 멀찍이 떨어져 있던 애나 로건이 조심스럽게 다가왔다.
엘리오가 발끝으로 오십 대 남자를 툭툭 차며 말했다.
“이거 베일럼 왕국 병사들이 입고 다니는 옷 맞죠?”
“네, 검술은 기사단장 수준인데……. 베일럼 왕국군에 저런 사람들은 없어요. 아무래도 베일럼 왕국군 병사로 위장한 것 같아요.”
“어쩐지, 농사짓다가 끌려온 병사들치고 칼 좀 쓴다 싶었어요.”
순간 애나 로건은 저도 모르게 엘리오 라고아 남작을 보았다.
칼 좀 쓴다 싶었다니.
그가 지금 발로 툭툭 차는 사람은 베일럼 왕국의 기사단장에 맞먹는 실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텔레포트 마법으로 달아난 마법사가 썼던 ‘붉은 화염의 띠’는 분명 인페르노였다.
“혹시 마검사세요?”
인페르노 앞에서 새처럼 날아오른 것도 그렇지만, 특히 두 남녀의 합공을 피할 때는 눈에 보이지도 않았다.
“아닌데요?”
“그럼 그, 하늘로 날아오르는 것과 순간 이동은 어떻게 된 거예요?”
“영기로 몸을 가볍게 하는 기술[輕身術]이에요. 바깥의 일[外功]을 통해서 누구나 배울 수 있어요.”
“바깥의 일요?”
애나 로건이 고개를 갸웃했다.
‘몸을 가볍게 한다’는 건 알아듣겠는데 ‘바깥의 일’은 또 뭘까?
“이런! 통역이 헛나왔네요. 마법이 아니라 육체를 수련한다는 소리예요.”
“아! 육체……. 정말 육체를 단련하면 누구나 그렇게 할 수 있나요?”
“그건 아니에요. 단련하는 비법이 따로 있어요.”
“아 네…….”
‘비법이 따로 있다’는 말에 애나 로건은 실망하지 않을 수 없었다.
마법만큼이나 신비한 기술을 어디서 누구에게 배운단 말인가.
엘리오는 다시 불청객들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녀의 어깨가 축 처지는 걸 봤지만 딱히 해 줄 말이 없었다.
자신의 무공은 영기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
파비안에게도 말했지만, 무공을 익히려면 영기를 수련해야 하고, 그렇게 되면 마나가 사라진다.
마나냐 영기냐의 선택에서 영기를 선택할 사람은 없을 터였다.
파비안에게 ‘드래곤 플라이[飛龍昇天]’를 가르쳤지만, 그건 그야말로 알맹이가 쏙 빠진 껍데기다.
실제로 파비안은 비룡승천의 모양만 흉내 내지 그 안에 담긴 오의(奧義)는…….
‘가만, 정말 파비안이 비룡승천의 오의를 깨달을 수 없을까?’
애초에 비룡승천은 영기를 기반으로 만들어진 무공도 아니다.
그럼에도 자신은 원영지체가 된 뒤에도 비룡승천을 자유자재로 사용했다.
아니 심지어 더 강력해졌다.
마나 유저인 파비안이 비룡승천에 담긴 오의를 깨닫는다면, 심통보다 더 강해질 가능성도 있었다.
곰곰 생각하던 엘리오는 뒤늦게 자신이 마나에 대한 선입견으로 착각하고 있었음을 알았다.
마나 유저라고 해서 무공 초식에 담긴 깊은 뜻을 깨닫지 못한다는 법이 어디 있다고!
물론 그 결과가 어떻게 나타날지는 모른다.
마나가 영기보다 우월하다고 하지만 자신이 보기에는 ‘글쎄’였다.
어쩌면 자신의 영기가 반신급이라 마나가 하찮아 보이는 걸 수도 있다.
거기까지 생각한 엘리오는 애나 로건을 불렀다.
“로건 경.”
“예?”
“혹시 몸을 가볍게 하는 기술, 배우고 싶어요?”
“예? 가르쳐 주시게요?”
“뭐, 그 전에 내가 해 주는 이야기를 들어 보고, 그래도 괜찮다고 하면 가르쳐 줄 수 있어요.”
“이야기라는 건……. 기술을 가르치는 조건인가요? 아니면 기술에 대한 주의 사항인가요?”
애나 로건은 조심스럽게 엘리오 라고아 남작의 눈치를 살폈다.
당연히 배우고 싶었다.
하지만 혹시라도 그가 다른 남자들처럼 자신을 욕심낸다면, 그때는 뭐라고 답해야 할지 고민이다.
‘물론 아버지는 검술에 뛰어난 사위를 좋아하시겠지만……. 오늘 처음 만난 사이고……. 아직 엘리오 라고아 남작에 대해서 잘 모르는데…….’
그녀가 한창 머릿속으로 미래를 상상할 때, 엘리오가 담담한 어조로 말했다.
“내가 익힌 몸을 가볍게 하는 기술은 영기를 기반으로 해요. 그래서 마나 유저에게 얼마나 도움이 될지 알지 못한다고 할까요? 그래도 배워 보겠다면 가르쳐 줄 용의는 있어요. 어떻게, 배워 볼래요?”
“아…… 그러시구나. 그런 거라면 상관없어요. 배워 보고 영 몸에 맞지 않으면 그때 포기해도 되잖아요?”
“맞아요. 영기만 수련하지 않으면 돼요.”
엘리오는 자신이 강제로 영기를 주입해 폐인으로 만든 푸토코아 백작가의 남작들을 떠올렸다.
마나와 영기가 한 몸에 깃들지 못한다는 이세계의 가르침은 거짓이나 과장이 아닌 진실이었다.
“네.”
애나 로건은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몸을 가볍게 하는 기술에 욕심이 나는 건 사실이지만 그걸 위해 마나를 포기할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었다.
어느 정도 이야기가 마무리되자 엘리오는 불청객들에게 고개를 돌렸다.
“자는 척 그만하고 눈들 뜨지?”
그제야 크레센트의 암살자들이 꾸물꾸물 자리에서 일어났다.
웨인 케이시가 애써 담담한 어조로 말했다.
“나에게 무슨 짓을 했소?”
“왜?”
“두 팔이 달려 있는데 잘린 것처럼…….”
“감각이 없다?”
“그렇소. 역시 당신의 짓이었구려.”
“짓은 당신들이 나한테 한 게 짓이고. 나는 단지 당신들의 구멍에 점을 찍은[點穴] 거뿐이야. 썅. 이게 무슨 소리지?”
점혈이 이상하게 통역되자 엘리오는 짜증을 냈다.
엘리오가 미친 사람처럼 행동하자 웨인 케이시는 슬며시 눈을 내리깔았다.
애나 로건이 놀란 눈으로 보자 엘리오가 변명하듯 말했다.
“내가 대륙 공용어를 몰라서 아티팩트의 도움을 받고 있거든요. 그런데 이게 통역을 가끔씩 엉망으로 해서요.”
“아! 그러셨군요.”
애나 로건은 속으로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솔직히 방금 엘리오 라고아 남작의 행동은 아무리 좋게 보려 해도 좋아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엘리오가 다시 우두머리로 보이는 중년 남자에게 물었다.
“그래서 어디의 누구시라고?”
“…….”
웨인 케이시는 아무것도 듣지 못한 척 딴청을 했다.
암살 조직의 기본은 비밀 유지다.
자신의 조직은 물론, 의뢰자의 정체도 무덤까지 안고 가는 게 이 바닥의 생리였다.
미치지 않고서야 제국에서 전설로 불리는 크레센트의 의장이 묻는 대로 답을 하겠나 말이다.
그러자 엘리오가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주억거렸다.
“내가 그 마음 잘 알지. 그러니까 나를 설득하려고 애쓰지 않아도 돼.”
웨인 케이시는 이게 무슨 개소린가 싶어서 엘리오 라고아 남작을 보았다.
무슨 마음을 알고, 또 자신이 언제 그를 설득하려 했다고 저러는지 모르겠다.
그러거나 말거나 엘리오는 넋두리를 늘어놓듯 계속해서 말했다.
“내가 알고 보면 인자한 사람이거든. 내가 먼저 나서서 누구에게 해코지를 한 적도 없어. 법이 없어도 살 사람이 나라고.”
그 말은 일정 부분 사실이다.
그는 법이 없어야 잘 사는 녹림도이기도 했으니까.
“속은 또 얼마나 여린지 몰라. 누가 싫은 소리를 하면, 진짜 오래도록 그 말이 기억에 남거든.”
분이 풀릴 때까지 상대를 곤죽 낸 것은 그런 이유에서다.
“그런 나를, 처음 보는 사람들이 왜 죽이겠다고 덤벼들었을까? 그것도 마법사와 전사가 제법 그럴듯하게 조까지 짜고서. 이건 누가 봐도 계획적인 짓이잖아. 안 그래?”
“…….”
이 순간 웨인 케이시는 어떻게 해야 죽을 수 있을지를 고민했다.
저 되지도 않을 헛소리를 듣는 것은 꽤나 고역이었다.
‘만약을 대비했어야 하는데…….’
소드마스터의 암살에 성공한 뒤로 이십 년간 위험한 의뢰가 없었다.
그래서 어금니를 치료할 때 독약을 갈아 넣지 않았다.
이번 의뢰도 상대가 소드 익스퍼트라는 말에 스쿠툼(빙벽) 관광을 생각할 정도로 안이했다.
자신만 그런 게 아니다.
지금쯤 피거품을 입에 물고 죽었어야 할 부의장도 생생하다.
소드 익스퍼드 초입인 그녀 역시 어금니를 비워 둔 게 분명하다.
이해 못 할 바는 아니다.
하루 종일 어금니에 독을 넣고 생활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니까.
호몰카, 헨리, 게인을 보니 절대 먼저 죽을 얼굴이 아니다.
‘저것들은 독을 챙겼을까?’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은 법이다.
의장과 부의장이 이 지경인데, 죽을 준비를 했을 리가 있나.
“……그러니까 이해해 줬으면 좋겠어.”
엘리오 라고아 남작의 말에 웨인 케이시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잠깐 딴생각을 하느라 그가 뭐라고 했는지 듣지 못했다.
“뭘 이해하라는 거요?”
“말했잖아. 내가 좋아서 힘줄을 나누고 뼈를 어긋나게[分筋錯骨] 하는 건 아니라고.”
“설사 팔다리를 자른다 해도 당신이 얻을 수 있는 건 없소. 괜히 주변 더럽히지 말고 그냥 죽이시오.”
웨인 케이시가 엘리오 라고아 남작을 빤히 보았다.
그건 진심이었다.
암살자들은 고통이나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두 사람의 섬뜩한 대화에 애나 로건은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아무래도 오늘 못 볼 걸 보게 될 모양이다.
때마침 엘리오가 그녀에게 말했다.
“지금부터 힘줄을 나누고 뼈를 어긋나게 할 건데, 괜찮겠어요? 힘들면 잠시 뒤로 빠져 있어도 돼요.”
애나 로건은 흠칫 몸을 떨었다.
사람 백정이나 할 소리를 저렇게 태연한 얼굴로 하는 남자라니!
검술이 아무리 뛰어나도 그와는 함께 살지 못할 것 같았다.
“저는 빠질게요.”
이번에는 엘리오 라고아 남작의 의사를 묻지 않고 선선히 물러났다.
함께 싸워 주는 것과, 사람의 해체를 옆에서 지켜보는 건 엄연히 다른 문제였기 때문이다.
애나 로건이 멀찍이 떨어지자 엘리오는 본격적인 점혈에 앞서 두 손의 뼈를 ‘으드득’ 소리가 나게 주물렀다.
웨인 케이시는 해 볼 테면 해 보라는 눈으로 상대를 노려보았다.
잠시 후 엘리오가 사내와 눈을 맞추며 말했다.
“말하고 싶어지면 눈을 깜빡거리면 돼. 알았지?”
“…….”
웨인 케이시는 대답 대신 그냥 눈을 감았다.
“그래, 다들 그렇게 시작하더라고.”
고개를 주억거리던 엘리오가 격공타혈로 사내의 혈도를 찍었다.
순간 웨인 케이시의 허리가 뒤로 홱 꺾였다.
으드드득―!
그것이 시작이었다.
웨인 케이시의 몸은 늘어났다 펴졌다를 반복했다.
빠드득! 빠득―!
쉴 새 없이 관절 꺾이는 기괴한 소리가 멀리까지 울려 퍼졌다.
급기야 그가 고깃덩이처럼 뭉쳐지는 걸 본 부의장 에일린 레이더의 입에서 침이 줄줄 흘러나왔다.
5분도 안 돼서 웨인 케이시는 눈을 깜빡거렸다.
그런데 엘리오는 제자리에서 몸을 푼다고 그걸 알아차리지 못했다.
보다 못한 부의장 에일린 레이더가 절규하듯 외쳤다.
“그만해요! 눈을 깜빡이고 있잖아요!”
여자의 외침에 엘리오는 하던 동작을 멈췄지만, 바로 남자의 점혈을 풀어 주지는 않았다.
“이봐 아줌마. 내가 눈을 깜빡이라고 했지 그만한다고 했어?”
“…….”
순간 에일린 레이더는 오싹 전율을 느꼈다.
‘악마다.’
자신도 범죄자지만, 멀쩡한 사람의 몸을 정육점 고깃덩어리 다루듯 하는 인간은 처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