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1055
1055회. 욕심이 과한 친구군요
엘리오가 의미심장한 눈으로 글랜 테일러 남작을 보았다.
“내 생각이 궁금한 건가요? 아니면 내가 어떻게 해 주기를 바라고 계시나요?”
그러자 글랜 테일러 남작의 얼굴에 묘한 미소가 떠올랐다.
“후작님은 코드란테스 백작을 두려워하지 않으십니다. 그랬다면 코드란테스 백작가와 푸토코아 백작가가 손을 잡지도 않았겠지요.”
“아!”
그제야 엘리오는 자신이 후작의 의도를 오해했음을 알았다.
“그러시다면 시원하게 말씀드리지요. 유언장에는 관심 없습니다. 그걸 존 미치 남작이 원해서 썼다고 생각하지도 않고요. 푸토코아 백작이 직접 사죄할 때까지 깨부술 겁니다.”
“알겠습니다. 후작님께 남작님의 뜻을 가감 없이 전해 드리겠습니다.”
말을 마친 글랜 테일러 남작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묵례를 해 보인 후 돌아서려는 그에게 엘리오가 물었다.
“그런데, 후작님은 왜 소드마스터인 코드란테스 백작을 어려워하지 않나요? 실례되는 질문인 줄 알지만 궁금해서.”
“에스카토스 공작은 왕국에서 첫 번째로 소드마스터가 된 분입니다. 코드란테스 백작은 세 번째고요. 두 번째가 용병들의 왕으로 불리는 크리스 두나미스인데 후작님의 지인이십니다.”
“아주 가까운 사이인가 봐요?”
“후작님께서 크리스 두나미스가 곤경에 처했을 때 도와주신 적이 있습니다. 그 뒤로 흉금을 터놓는 사이가 되었지요.”
“그래서…….”
“소드마스터들 간의 우열을 비교해 본 적은 없습니다만, 먼저 그 경지에 든 사람이 조금 더 유리하지 않겠습니까? 하물며 그가 현역 용병이라면 실전의 기회도 더 많았을 테고요.”
“용병단도 있을 테니 코드란테스 백작에게는 껄끄러운 상대겠군요.”
“사실 용병단까지는 필요가 없습니다. 백작가 기사보다 후작가의 기사가 훨씬 많으니까요.”
“질과 양에 있어 후작님 쪽이 훨씬 낫다는 거군요?”
“그렇습니다. 그런 분이 남작님을 후원하고 계시니 뒤는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든든하네요.”
그건 엘리오의 진심이었다.
후작이 사사건건 제동을 걸면 그것도 신경 쓰이는 일이기 때문이다.
“후작님께서는 단 한 번도 신의를 저버린 일이 없습니다. 푸토코아 백작을 보고 귀족들이 모두 그렇다는 편견은 가지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럼 이만.”
“아, 예.”
글랜 테일러 남작의 진중한 태도에 엘리오는 저도 모르게 고개를 꾸벅 숙였다.
홀로 남은 엘리오는 다시 책을 펼쳐 더듬더듬 읽어 나갔다.
그렇게 한 시간쯤 지났을까?
공터에서 검술을 연마하고 있어야 할 파비안이 찾아왔다.
“왜?”
“참모님이 중대 지휘관들을 소집하셨습니다. 지금 참모님 막사로 가 보셔야겠습니다.”
“무슨 일인지는 모르고?”
“베일럼 왕국군과의 임무 분담 때문에 그러는 것 같습니다. 이틀 후부터 베일럼 왕국군의 차례가 아닙니까?”
“아, 말이 나올 때가 되기는 했네. 알겠다.”
“그런데 중대장님.”
“왜?”
“혹시 마나에 관심이 있으십니까?”
“있는데 왜?”
“마나와 영기가 한 몸에 공존하지 못한다는 건 아시죠?”
“어. 그걸 이용해서 푸토코아의 남작 셋을 바보로 만들었잖아.”
“아신다니 됐습니다. 혹시나 해서요.”
“내가 마나를 수련할까 봐?”
“예.”
“어차피 수련한다고 마나 유저가 되는 건 아니잖아. 마나의 축복을 받아야 하는데 나한테 그런 게 오겠냐?”
“그렇기는 하네요.”
그 점에 있어서 파비안은 순순히 납득했다.
엘리오 중대장의 마나 프트라스에 대한 태도를 생각하면 마나의 축복은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그런데 너는 마나의 축복을 받았잖아? 어땠냐?”
“뭐가 어땠냐는 겁니까?”
“받을 때의 상황이나 느낌 같은 거 말야.”
“저의 경우 자고 일어나니까 갑자기 마나가 느껴졌습니다.”
“모른다는 거네?”
“예.”
“가 봐.”
엘리오가 손을 휘휘 내저었다.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 인생에 도움이 되지 않는 녀석이다.
***
잠시 후.
베르나르도 후작군 참모 막사.
베르나르도 후작군의 참모인 오스카 아비드 대위가 알파, 벨라토스, 찰리, 루퍼스 중대장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알다시피 이틀 후부터 베일럼 왕국군이 균열 감시에 투입된다. 그런데 한 가지 걱정되는 게 있다. 베일럼 왕국은 남쪽에 있다 보니 북방의 마수나 마물과 자주 마주칠 일이 없다는 점이다. 우리야 눈 뜨면 보는 게 대설원의 마수니 뭐 그러려니 하지만, 저들은 다르다. 경험이 적은 만큼 초반에 상당한 피해가 예상된다. 저들은 괜찮다고 장담하지만 주둔지까지 휘말릴지 모른다. 그런 이유로 베일럼 왕국군의 첫 임무 기간 동안 우리 베르나르도 후작군은 비상대기 상태를 유지할 것이다. 질문 있나?”
“없습니다.”
알파, 벨라토스, 찰리, 루퍼스 중대장이 이구동성으로 답했다.
모두 불만이 없는 얼굴들이다.
초심자들에게 맡기고 후방에 퍼져 있다가 화를 당하느니 9일 동안 긴장의 끈을 늦추지 않는 편이 나았기 때문이다.
“그 기간 동안 부대원들 관리 잘해라. 이상이다. 해산.”
오스카 아비드 대위의 명령에 중대장들은 하나 둘 막사를 떠났다.
루퍼스 중대로 돌아가던 엘리오가 알파 중대장 데니스 로빈 남작에게 다가갔다.
“로빈 중대장님.”
“예?”
“비상대기 상태라는 게 뭡니까? 처음 들어 보는 소리라서요.”
“아, 별거 아닙니다. 방어구와 무기를 항시 착용하고 지내면 됩니다. 주둔지에서는 다들 숙소에 벗어 놓고 지내지 않습니까? 그러지 말라는 거죠.”
“아하! 설마 화장실에 갈 때도?”
“맞습니다. 항시 휴대하게 해야 합니다. 소위들에게 지시하면 알아서 잘 통제할 겁니다. 기사 아카데미에서 필수적으로 가르치는 것들이라서요.”
“베일럼 왕국군이 그 정도로 시원치 않아요?”
“대인전은 어느 왕국이나 비슷비슷합니다. 하지만 마수나 마물을 상대로 하는 싸움은 편차가 좀 심합니다. 무엇보다 경험이 중요한데, 대설원의 흉포한 마수가 베일럼 왕국까지 내려가는 일은 흔치 않습니다. 그런 만큼 초반에는 상당히 고전을 할 겁니다.”
“주둔지까지 휘말릴 정도로요?”
“균열 감시 부대에서 주둔지까지 1킬로미터도 안 되지 않습니까? 일단 뚫리면 주둔지에서 대비할 틈도 없이 휘말릴 겁니다.”
“그렇겠네요. 편안하게 잠자기는 틀린 건가.”
“그래도 비상종은 칠 테니까 너무 신경 쓰지는 마십쇼.”
“그 다섯 번씩 막 연타로 때리는 거요?”
“하하. 맞습니다. 그 소리가 들리면 균열 감시부대가 뚫렸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감사합니다.”
엘리오는 데니스 로빈 남작에게 인사를 하고 돌아섰다.
***
다음 날.
코드란테스 백작은 예정보다 조금 이른 오전 10시쯤 히르헤라에 도착했다.
코드란테스 왕국군 지휘부는 물론 베일럼 왕국군 지휘부까지 소드마스터인 코드란테스 백작을 환영하기 위해 모여들었다.
코드란테스 백작은 모여든 양국 고위 귀족들에게 손을 흔들어 보인 후 에스카토스 공작의 막사로 사라졌다.
코드란테스 왕국과 베일럼 왕국의 고위 귀족들이 흩어지지 않고 기다렸지만 떠난 코드란테스 백작은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에스카토스 공작 막사.
에스카토스 공작이 코드란테스 백작을 찬찬히 살피며 말했다.
“어서 오시오. 부상 소식을 듣고 방문하려 했지만 보는 눈이 많아 그러지 않았소. 몸은 좀 어떠시오?”
“괜찮습니다. 목숨이 위태로울 정도의 부상은 아니었습니다. 주둔군의 전멸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몰라 칩거한 거니까요. 그런데 뒤처리를 어떻게 하셨길래 아직까지도 사람들이 모르는 겁니까?”
“히르헤라의 출입을 통제한 것 외에 딱히 한 일은 없소.”
“배후에 흑마법사들이 있었다는 연락은 받았습니다. 메테오 스웜을 사용할 수 있는 흑마법사라니……. 상상이 되지 않습니다. 더 알아내신 것이 있습니까?”
“제국의 마구스 킬리언 헤일 공작이 말하더이다. 빠르면 한 달, 늦어도 석 달 이내에 그 흑마법사가 다시 활동할 거라고. 어쩌면 히르헤라에 메테오 스웜이 다시 떨어질지도 모르오.”
“끔찍하군요. 그런데 왜 아직도 히르헤라에 왕국군이 남아 있는 겁니까?”
“그야 당연히 균열에서 쏟아져 나오는 마수와 마물을 막기 위해서가 아니오. 메테오 스웜이 두렵다고 히르헤라를 지키지 않으면……. 북부의 영지들은 피에 잠길 거요.”
“그렇기는 합니다만 너무 위험합니다. 솔직히 저는 히르헤라에서의 철수를 논의하기 위해서 왔습니다.”
“가 봐야 우리가 어디로 가겠소? 옮겨 간 그곳에 또 메테오 스웜이 떨어진다면……. 그게 무슨 의미가 있겠소?”
“…….”
그것도 맞는 말인지라 코드란테스 백작은 반박하지 않았다.
침묵하던 코드란테스 백작이 물었다.
“균열은 두 배로 커졌다면서요?”
“그렇소. 7서클의 마법으로도 수리가 불가능하더이다. 킬리언 헤일 공작은 마법으로 안 되니 성벽을 쌓으라던데……. 북부 왕국들이 감당할 수 있을지 모르겠소.”
“제국은요? 언제까지 뒷짐만 지고 있겠답니까?”
“남부의 상황이 좋지 않아 북부의 일까지 신경 쓸 여력은 없어 보였소. 오죽하면 욕먹을 거 뻔히 알면서 코르보 마법 병단까지 철수시켰겠소.”
“남부에서 전쟁이 터지기라도 했답니까?”
“코르보 마법 병단까지 남부에 배치시키겠다는 걸 보면 내일 전쟁 소식이 들려도 놀랄 일은 아니오.”
“남부는 잠잠하지 않았습니까? 제국과 전쟁을 할 만큼 미친 왕도 없고. 남부인들의 게으른 성격을 생각하면 이해할 수가 없군요.”
“어비스에서 강철 골렘의 매장지가 발견되었다는 소문이 있소. 그걸 독차지하기 위해 아드리아, 마스다르, 보스타니아가 대수림의 출입을 통제하려 한다는구려.”
“강철 골렘요?”
“뭐, 아직 진위 여부는 모르겠지만 지금까지 알려진 것은 그렇소.”
“허어!”
코드란테스 백작의 입에서 탄성이 흘러나왔다.
강철 골렘이라니? 그게 사실이라면 전쟁이 날 만도 했다.
“남부의 일은 그렇다 치고, 우리는 히르헤라에 집중하도록 합시다. 오후에 푸토코아 백작과의 회동이 있다고 들었소. 푸토코아 백작이 처한 상황에 대해 알고 있소?”
“푸토코아 영지 출신의 남작에게 꽤 몰리고 있다면서요?”
“그 이상이오. 베르나르도 후작이 물밑에서 조율 중인데 배상으로 푸토코아에서 알바 누베스 산맥을 내줘야 끝날 것 같소.”
“푸토코아의 영지를 원한다는 겁니까? 욕심이 과한 친구군요.”
“푸토코아 백작이 그의 부족에게 한 짓을 생각하면 이해 못 할 것도 아니오.”
“억울하게 죽은 야인이 어디 ‘산의 부족’뿐이겠습니까? 그럴 때마다 영지를 배상해 주면 남아날 영지가 없을 겁니다.”
에스카토스 공작은 가타부타 말하지 않았다.
사실 그건 일반 영주들이 야인을 보는 시각이기도 했다.
“푸토코아 백작의 문제에 나는 나설 뜻이 없소. 경이 어떤 결정을 내려도 마찬가지요. 하지만 베르나르도 후작은 끝까지 엘리오 남작을 지원할 게요. 그걸 염두에 두면 좋겠소.”
“후작님이 신의를 지키는 것은 유명하니까요. 후작님을 봐서라도 너무 거칠게 하면 안 되겠군요. 일단 저도 푸토코아 백작을 만나 본 뒤에 어떻게 할지를 결정하겠습니다.”
“경도 알겠지만 히르헤라에서 벌이지고 있는 일을 생각하면……. 푸토코아 백작과 엘리오 남작의 분쟁은 아무것도 아니오. 아무쪼록 현명한 선택을 기대하겠소.”
“물론이지요. 왕국의 번영에 누가 되지 않게 하겠습니다.”
코드란테스 백작은 에스카토스 공작에게 고개를 까딱여 보인 후 떠나갔다.
홀로 남아 뭔가를 생각하던 에스카토스 공작이 중얼거렸다.
“엘리오 남작에 대해서는 묻지도 않는군. 그래 봐야 소드 익스퍼트라는 건가? 뭐, 알아서 잘 하겠지.”
말과 달리 에스카토스 공작의 표정은 좋지 않았다.
야인 부족에 대한 코드란테스 백작의 말을 생각하니 가슴이 답답했다.
“지금 푸토코아의 일로 다툴 때가 아닌데…….”
빙벽의 균열이라는 어마어마한 문제 앞에서 왜 사소한 일로 싸우는지 알다가도 모르겠다.
문득 푸토코아 백작과 엘리오 남작의 얼굴이 떠올랐다.
푸토코아가 교활하다면 엘리오는…….
모르겠다.
문득 에스카토스 공작은 자신이 엘리오에 대해 전혀 아는 바가 없음을 깨달았다.
“이래서야 나도 코드란테스 백작과 다를 바가 없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