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1056
1056회. 푸토코아 백작의 대전사가 누군지 알면 까무라칠걸?
히르헤라 에스카토스 왕국군 주둔지.
푸토코아 백작 막사.
약속대로 코드란테스 백작이 찾아오자 푸토코아 백작은 마치 죽은 아버지가 살아온 듯 격하게 그를 맞이했다.
“백작님! 어서 오십시오. 어떻게 치료는 다 끝나셨습니까?”
“염려 덕분에 잘 끝났네. 자네는 어떻게 지냈나? 참, 늦었지만 작위 승계를 축하하네. 푸토코아도 이젠 안정될 걸세.”
“감사합니다. 많이 부족합니다. 앞으로도 잘 이끌어 주십시오.”
엘리오와의 분쟁에서 연전연패를 한 토비아스 푸토코아는 하늘 높은 줄 모르던 후계자 시절과 달리 제법 성숙한 티가 났다.
“잘 이끌다니, 함께 이끌어 가야지. 코드란테스와 푸토코아는 오랜 동맹이 아닌가.”
“그렇게 말씀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토비아스 푸토코아는 더욱 자세를 낮췄다.
비단 철이 들어서만은 아니다.
코드란테스 백작은 왕국에서 세 번째로 배출된 소드마스터였다.
소드마스터는 일인군단이라 불릴 정도로 초월적인 무력을 지니고 있다.
‘소드마스터의 상대는 소드마스터다’라는 말은 과장이나 허튼소리가 아니다.
그러니 평소 안하무인인 토비아스 푸토코아라도 몸을 낮출 수밖에 없었다.
흡족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던 코드란테스 백작이 말했다.
“그래, 긴히 협의해야 할 일이 있다고?”
“예, 아시는지 모르겠지만 엘리오라고 하는 푸토코아의 야인 병사 하나가 진중을 이탈해 베르나르도 후작에게 붙었습니다.”
“그 일로 자네가 그의 부족을 전멸시켜서 시끄러워졌다는 말은 들었네.”
“엘리오는 후작의 추천으로 남작의 작위와 봉토까지 받았습니다. 그 뒤 그가 사사건건 시비를 걸어왔습니다만, 저희 쪽에 맞서 싸울 기사가 없어 공작께 중재를 요청했습니다.”
“저런.”
코드란테스 백작은 알고 있는 이야기임에도 적당히 장단을 맞춰 주었다.
“중재 이후 히르헤라에서 푸토코아 귀족들의 생활은 살얼음판 위를 걷는 것처럼 아슬아슬했습니다. 그러던 와중에 남작 하나가 독단적으로 야인의 암살을 의뢰했고, 그 일이 발각되자 유서를 남기고 자살을 했습니다.”
“그가 존 미치 남작인가?”
“예, 존 미치 남작의 자백이 담긴 유서를 공개했지만 끝내 결투장을 보내더군요. 내일이 그가 일방적으로 통보한 결투일 입니다.”
“긴 이야기 잘 들었네. 여기 오기 전에 에스카토스 공작과 만났네. 그분은 푸토코아와 엘리오 라고아 남작의 분쟁에 더 이상 관여하지 않겠다고 하시더군.”
“알고 있습니다. 공작님도 난처한 입장이라고 들었습니다.”
“하지만 베르나르도 후작은 끝까지 야인의 뒤를 봐줄 걸세. 본래 신의를 중히 여기는 사람이니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지.”
“예.”
“그래서 자네는? 어디까지 생각하고 있나?”
“어디까지라고 하심은?”
“후작이 귀족들과 만나고 있다 들었네. 엘리오 라고아 남작과 타협할 생각이 있나?”
“없습니다. 엘리오가 원하는 것은 푸토코아의 영지입니다. 놈에게는 한 뼘의 영지도 내어 줄 생각이 없습니다.”
“그럼 끝까지 그와 싸우겠다? 그를 상대할 기사가 없다고 하지 않았나?”
“도와주십쇼.”
결국 푸토코아 백작은 코드란테스 백작에게 손을 내밀었다.
본래 그러려고 만든 자리이기도 했다.
“자네도 알겠지만 엘리오 라고아 남작은 호락호락한 자가 아닐세.”
“그래도 백작님의 상대는 못 됩니다.”
“그를 소드 익스퍼트 상급이라고 말하더군. 그 정도면 싸우다가도 영감을 받아 소드마스터가 될 수 있네.”
코드란테스 백작은 앓는 소리를 했다.
푸토코아 백작은 코드란테스 백작이 따로 원하는 바가 있음을 눈치챘다.
“도와주신다면 무엇이든 하겠습니다.”
“코드란테스와 푸토코아가 함께 싸워 오기는 했지만 그게 단지 협정문 하나 때문에 그런 것은 아니네. 상대의 도움이 필요할 때면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지불했지.”
“알고 있습니다.”
“자네는 무엇으로 대신할 생각인가?”
“알바 누베스 산맥 초입에 있는 파이어 스톤 광산의 채굴권을 드리겠습니다.”
“…….”
코드란테스 백작은 즉답을 하지 않았다.
파이어 스톤 광산은 돈이 된다.
추운 날씨의 북부에서 파이어 스톤은 보석만큼이나 귀한 대접을 받는다.
‘제 아비보다 교활하군.’
하필이면 알바 누베스 산맥에 있는 파이어 스톤 광산이라니!
그걸 받으면 엘리오 라고아 남작과 광산 채굴권을 두고 또 싸워야 한다.
파이어 스톤 광산을 떠넘기면서 싸움까지 붙이려는 술책이 분명했다.
잠시 생각하던 코드란테스 백작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네. 그와 같은 내용으로 협약서를 작성해 인장까지 찍어 주게. 기한은 어느 정도가 적당하겠나?”
“삼십 년이면 되겠습니까?”
“나는 오십 년 정도로 생각하고 있었네. 그래도 알바 누베스 산맥이 걸린 일인데 그 정도는 해야지. 안 그런가?”
푸토코아 백작은 코드란테스 백작이 거기까지 알고 있자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결투일에 백작님께서 대전사로 나서 주시겠습니까?”
“대전사는 좀 그렇고. 내일 엘리오 라고아 남작을 만나 자중하라 하겠네. 내가 존 미치 남작의 유서를 들이밀면 그도 받아들일 걸세.”
“그가 거절하면 어떻게 되는 겁니까?”
그러자 코드란테스 백작이 서늘한 눈으로 푸토코아 백작을 보았다.
“소드마스터가 되니 한 가지는 편해지더군. 그게 뭔지 아나?”
“모르겠습니다.”
“어떤 무리한 요구를 해도 상대가 거절을 안 해. 하물며 합리적인 요구를 거절한다? 그건 죽여 달라는 소리지.”
“백작님만 믿겠습니다. 협약서는 오늘 중으로 보내 드리겠습니다.”
“알겠네. 기다리고 있지. 유익한 시간이었네.”
자리에서 일어난 코드란테스 백작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떠났다.
푸토코아 백작은 즉시 기사들을 불러 모았다.
잠시 후 막사를 나선 푸토코아의 기사들은 ‘코드란테스 백작이 푸토코아의 대전사로 나선다’는 말을 공공연하게 하고 다녔다.
***
히르헤라 에스카토스 왕국군 주둔지.
베르나르도 후작군 숙영지.
오후.
중대장 막사에서 한가하게 기초 마나론을 읽던 엘리오가 고개를 들어 올렸다.
곧이어 후다닥하는 발소리와 함께 파바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헉! 헉! 중대장님 계십니까!”
“또 왜?”
엘리오의 목소리를 확인한 파비안이 막사 안으로 뛰어 들었다.
“큰일 났습니다.”
“균열 감시부대가 뚫리기라도 했어?”
“그런 게 아닙니다.”
“그럼 뭔데?”
“내일 결투에 코드란테스 백작이 푸토코아의 대전사로 나온답니다.”
“확실해?”
“푸토코아의 기사들에게 직접 들었습니다.”
“알았어. 뭐 놀랄 일이라고 호들갑을 떨어? 그렇게 될 줄 몰랐어?”
“놀랄 일이죠! 몰랐습니다! 공작님이 코드란테스 백작과 만났다기에 잘 풀릴 줄 알았는데, 소드마스터가 대전사라니요.”
“푸토코아와 코드란테스가 그렇고 그런 사이라잖아.”
“아무리 그래도 그렇죠. 저는 이번에 코드란테스 백작님을 다시 봤습니다. 그분이 기사 중에 기사라고 들었는데……. 역시 사람은 겪어 봐야 안다는 말이 맞네요.”
“너무 뭐라 하지 마. 대전사가 나쁜 건 아니잖아.”
“푸토코아가 한 짓을 생각하면 대전사를 하면 안 되죠.”
“그거야 우리 쪽 입장이고. 팔은 안으로 굽는다는 말 몰라?”
“그런 말이 있습니까?”
“사람이 가까운 사이를 편드는 건 자연의 이치야. 나는 코드란테스 백작을 만나 본 적도 없다고. 하지만 푸토코아는 상호 방어 협정까지 맺은 사이라며. 대전사를 해도 욕할 건 아니지.”
“아니, 중대장님은 자기 일을 왜 남의 얘기하듯 하십니까?”
“그래야 세상이 평화로우니까.”
파비안이 황당한 눈으로 엘리오를 보았다.
중대장이 가끔씩 이상한 소리를 하지만, 지금의 저건 정말 이해가 안 된다.
“중대장님이 자기 일을 자기 일처럼 생각하면……. 세상이 뒤집어진다는 그런 말씀이십니까?”
“어. 이해가 빠르네?”
“참! 나! 소드마스터가 대전사랍니다. 이미 세상이 뒤집혔다고요. 자꾸 남 얘기하듯 말하지 마십쇼.”
엘리오가 읽던 책을 덮고 파비안에게 물었다.
“너 내가 코드란테스 백작에게 질까 봐 그러냐?”
“꼭 진다기보다는 소드마스터니까 뭔가 대책이 있어야 하지 않나 싶어서요.”
“파비안.”
“예?”
“코드란테스 백작이 이 세계의 평화를 지킬 수 있냐?”
“없죠.”
파비안이 단호하게 답했다.
이 세계의 평화라니? 아무리 소드마스터라고 해도 그건 무리였다.
“나는 할 수 있다. 그런 내가 고작 코드란테스 백작을 상대로 대책까지 세워야겠냐?”
“저어, 중대장님. 세계 평화와 내일의 결투는 비교 대상이 아니라고 보는데요?”
“됐으니까 가 봐.”
엘리오가 입구를 가리키자 파비안은 입을 꾹 다물고 돌아섰다.
하기야 타메이온에서 봤던 엘리오 중대장의 검술을 생각하면 걱정할 일은 아니다.
푸토코아 백작의 대전사가 소드마스터인 코드란테스 백작이라기에 놀라 호들갑을 떨었지만 왠지 엘리오 중대장이 당할 것 같지는 않았다.
‘우리 중대장님이 어떤 분인지 잊고 있었네.’
***
히르헤라 베일럼 왕국군 주둔지.
마력 총사대 셀레투스 기사단.
해거름 무렵, 부단장인 줄리 그린우드 남작은 막사 밖으로 애나 로건을 불러냈다.
“애나, 애나. 이를 어쩌면 좋니?”
애나 로건이 반응하지 않자 줄리 그린우드는 본론으로 들어갔다.
“네가 좋아하는 베르나르도 후작가의 루퍼스 중대장 말야.”
“길 안내를 도움받았을 뿐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만.”
“그렇게 말하고 싶겠지. 중요한 건 그게 아니야.”
“부단장님.”
“사석에서는 선배님이라고 불러도 돼. 그렇게 지내 왔잖아.”
“작위를 받기 전까지 그랬죠. 작위를 받으시고 나서 부단장님은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된 것으로 기억합니다.”
“중요한 건 그게 아니라니까. 루퍼스 중대장도 내일이면 끝난다.”
“끝이라니요?”
애나 로건은 저도 모르게 반문했다.
줄리 그린우드 남작이 지랄맞기는 해도 허튼소리를 할 사람은 아닌 까닭이다.
“저 봐, 저 봐. 관심이 있으면서 아닌 척.”
“루퍼스 중대장님에게 신세를 졌으니까 그러는 겁니다.”
“뭐, 그러든지 말든지. 루퍼스 중대장이 푸토코아 백작에게 결투장을 보낸 건 들었지?”
“알고 있습니다.”
“푸토코아 백작의 대전사가 누군지 알면 까무라칠걸?”
“대전사를 구했답니까?”
“그래. 캄포데네브의 별. 소드마스터이신 코드란테스 백작님이 대전사란다. 배신자의 최후치고는 너무 화려한 거 아닌가 몰라.”
“…….”
애나 로건은 한순간 할 말을 잃었다.
북부에서 코드란테스 백작의 이름을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그 찬란한 소드마스터가 푸토코아 백작같이 편협한 귀족의 대전사로 나서다니…….
“결투 결과를 두고 도박판 벌이려다가 다 엎어졌단다. 루퍼스 중대장이 이긴다에 건 사람이 하나도 없어서. 푸하하핫!”
“푸토코아 백작이 잘못한 일이니 웃을 일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만.”
“그건 아니지. 따지고 보면 모두가 루퍼스 중대장이 첫 단추를 잘못 끼워서 벌어진 일이잖아. 영주를 배신한 야인이 누굴 원망해?”
“그렇다 해도 부족을 몰살시킨 것은 손가락질받아 마땅합니다.”
“그거야 너같이 급진적인 사상가들이나 하는 소리고. 코드란테스 백작님 같은 분이 푸토코아 백작의 대전사가 됐다는 건, 그의 행동을 지지한다는 뜻이잖아.”
“…….”
애나 로건은 입술을 깨물었다.
분하지만 줄리 그린우드 남작의 말이 맞았다.
코드란테스 백작뿐 아니라 대다수 귀족들에게 야인은 노예보다 못했으니까.
“오늘 밤에 찾아가서 작별 인사라도 해 두지 그래? 아, 주둔지가 넓어서 못 찾으려나? 어쨌든 안됐다. 모처럼 순정을 바친 남자가 그렇게 됐으니. 로건 백작가가 선택한 사람들의 끝을 보는 것 같다고나 할까?”
이건 로건 백작가와 둘째 왕자의 사이를 빗대서 하는 조롱이다.
애나 로건은 대꾸하지 않고 자리를 떴다.
에스카토스 왕국군 주둔지로 향하는 애나 로건을 향해 줄리 그린우드가 소리쳤다.
“애나 로건! 진짜 작별 인사를 하러 가는 건 아니겠지? 곧 해가 질 텐데?”
애나 로건이 시야에서 사라지자 줄리 그린우드는 입술을 삐죽였다.
“못된 계집애. 야인이나 쫓아다니는 주제에 끝까지 도도한 척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