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1057
1057회. 남작에게 돈을 건 사람도 있나?
히르헤라 에스카토스 왕국군 주둔지.
베르나르도 후작군 숙영지.
결투 결과에 대한 도박이 무산됐다는 것은 베일럼 왕국군만의 이야기다.
에스카토스 왕국군 사정은 조금 달랐다.
물론 코드란테스 백작의 승리에 거는 사람이 압도적으로 많았지만, 의외로 엘리오 쪽에 거는 사람도 제법 있었다.
균열 앞에서 엘리오와 함께 전투를 벌였던 기사와 병사 들 중 상당수가 엘리오에게 배팅을 했다.
소문만 무성한 소드마스터보다 자기 눈으로 본 엘리오의 검술을 더 높게 친 것이다.
특히나 엘리오와 같은 막사를 사용했던 알파 중대 기사들은 전부 엘리오에게 걸었다.
해거름 무렵, 알파 중대 기사 리들리가 오랜만에 파비안을 찾아갔다.
“파비안. 엘리오 남작님은 뭐라고 하시더냐?”
“뭘요?”
“내일 있을 결투 말이다. 자신이 있으시다냐?”
“우리 중대장님이야 언제나 자신이 넘치시죠. 얼마나 자신이 넘치는지 지금도 책을 읽고 계시다니까요.”
“자신감 있는 건 좋은데 준비를 좀 해야 하지 않을까? 네가 참모니까 가서 슬쩍 한 말씀 드려 봐.”
리들리가 적극적으로 나오자 파비안이 미심쩍은 눈으로 그를 보았다.
“이거 수상한데. 혹시 결투 내기에 판돈 걸었어요?”
“어? 어. 나만 건 거 아냐. 우리 알파 중대 기사들은 다 엘리오 남작님에게 걸었다. 함께 지낸 정이 있으니까.”
“의리 배팅이라는 거예요? 그럴 분들이 아닌데.”
멋쩍은 얼굴로 딴청을 부리던 리들리가 확인하듯 물었다.
“엘리오 남작님이 이기겠지?”
“제가 코드란테스 백작의 검술을 본 적이 없어서 장담은 못 하겠습니다만, 저도 엘리오 남작님이 이기는 쪽에 걸었습니다.”
“그래? 그럼 됐다. 가장 가까이서 모시는 네 안목을 믿으마. 그건 그렇고, 너는 앞으로 어떻게 할 거냐?”
“예? 무슨 말씀이신지?”
“엘리오 남작님도 이젠 영주님이 되셨잖냐. 그분의 기사가 될 거냐? 아니면 후작가에 계속 남아 있을 거냐?”
“아! 그 질문이었어요? 글쎄요. 아직 거기까지는 생각해 보질 않아서…….”
파비안은 말끝을 흐렸다.
엘리오 남작을 따라 루퍼스 중대로 오자마자 푸토코아 백작가와 일이 터져서 미래를 생각할 틈이 없었다.
“이젠 엘리오 남작님에게도 기사가 있어야 하잖냐. 너라면 벌써 마음을 정한 줄 알았는데 그건 좀 의외네.”
“중대원들 챙기느라 정신없이 바빴습니다.”
“그래도 지난번에 보니까 새로 편성된 부대치고는 잘 싸우더라.”
“아직 멀었습니다.”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는 두 사람 앞으로 베일럼 왕국군 복장의 미녀가 다가왔다.
“루퍼스 중대를 찾고 있는데 어디에 있는지 혹시 아실까요?”
여기사의 물음에 파비안이 나섰다.
“여기가 루퍼스 중대 숙영지입니다. 저는 중대장님 참모인 파비안 소위인데 무슨 일로 찾아오셨습니까?”
“아, 저는 셀레투스 기사단의 애나 로건이라고 해요. 루퍼스 중대장님에게 인사를 드릴 겸 찾아왔는데……. 만나 뵐 수 있을까요?”
애나 로건이 귀족임을 안 파비안은 정색을 하고 답했다.
“따라오십시오.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리들리 경, 저는 애나 로건 경을 중대장님께 모셔다드리겠습니다.”
파비안은 리들리에게 작별 인사를 건넨 후 애나 로건과 함께 엘리오의 막사로 향했다.
루퍼스 중대장 막사.
뻘쭘한 얼굴로 자신을 맞이하는 엘리오 라고아 남작에게 애나 로건이 말했다.
“갑자기 찾아와 놀라셨죠?”
“아, 예. 그런데 무슨 일로?”
그녀에게 사심이 없던 엘리오는 거두절미하고 본론으로 들어갔다.
애나 로건은 엘리오 라고아 남작이 사무적으로 대하자 조금 섭섭했지만 내색하지 않았다.
“늦기 전에 감사 인사를 드리려고요. 내일 남작님과 코드란테스 백작님의 결투가 벌어진다는 말을 들었거든요.”
“제 결투 상대는 코드란테스 백작님이 아니라 푸토코아 백작인데요?”
“그렇기는 하지만 코드란테스 백작님이 푸토코아 백작의 대전사니까, 결국 코드란테스 백작님과 결투를 하시게 되는 거잖아요.”
“뭐, 그럴 수도 있겠네요.”
“남작님의 검술이 뛰어나다는 건 알지만……. 상대가 소드마스터잖아요. 괜찮으시겠어요?”
“내 고향에 길고 짧은 건 대봐야 안다는 말이 있습니다.”
엘리오가 애나 로건을 빤히 보았다.
지금 상황에서 괜찮으면 어떻고 안 괜찮으면 어떻단 말인가.
“아, 예…….”
애나 로건은 말라 가는 입술을 혀로 적셨다.
다른 귀족들과 대화할 때는 아무렇지도 않았는데 엘리오 라고아 남작의 앞에만 있으면 왜 이렇게 긴장이 되는지 모르겠다.
그때 멀리서 저녁 식사 시간을 알리는 종소리가 들려왔다.
엘리오가 기다렸다는 듯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저녁 식사 시간이네요. 그만 일어나실까요?”
그는 빈말이라도 함께 식사를 하겠냐고 묻지 않았다.
그를 따라 엉거주춤 일어난 애나 로건이 용기를 내어 말했다.
“남작님! 꼭 이기시길 바라요.”
“감사합니다. 베일럼 왕국군 주둔지까지 길 안내를 붙여 드릴까요?”
“아니에요. 이젠 헤매지 않을 자신 있어요.”
엘리오는 피식 웃고는 먼저 막사 밖으로 나갔다.
역시나 근처에 있었던지 파비안이 강아지처럼 달려왔다.
뒤따라 나온 애나 로건이 엘리오와 파비안에게 눈인사를 하고는 빠르게 사라졌다.
그녀가 멀어지자 파비안이 슬쩍 물었다.
“지난번에 길 안내를 해 줬다던 베일럼의 여기사 맞죠?”
“어.”
“왜 그냥 보내셨습니까? 함께 식사라도 하시지.”
“그랬다가 나중에 무슨 소리를 들으라고?”
“소리 좀 들으면 어떻습니까? 혹시 압니까? 그러다가 잘되면…….”
“잘되긴 개뿔. 나 임자 있는 몸이다.”
“영주님 정도 되면 첩을 둬도 괜찮지 않습니까?”
“그 소리 네가 좋아한다는 그 여기사에게 가서 해도 되겠냐?”
“에이, 저 같은 일개 기사 나부랭이에게 첩은 과분하죠.”
“첩이 싫다고는 안 하네?”
“여자 마다하는 남자 없지 않습니까?”
“그런 식으로 말하면 남자 마다하는 여자도 없겠지. 집안 꼴 잘 돌아가겠다.”
“아, 그게 또 그렇게 되나요? 식사하러 가시죠.”
변명이 궁색해진 파비안은 얼른 앞장서 걷기 시작했다.
***
코드란테스 백작군 숙영지.
멀리서 저녁 식사를 알리는 종소리가 나자 참모인 베인 마리노 자작은 슬쩍 코드란테스 백작의 안색을 살폈다.
“할 말 있으면 하게.”
“내일 결투에서 푸토코아 백작의 대전사로 나가신다는 게 사실입니까?”
“내가?”
코드란테스 백작이 황당한 얼굴로 되물었다.
아무리 푸토코아와의 관계가 긴밀하다고 해도 소드마스터인 자신이 푸토코아 백작의 대전사라니? 이건 또 무슨 소린지 모르겠다.
“예, 푸토코아의 기사들 입에서 나온 소문입니다. 전혀 아닙니까?”
“내가 그 어린 녀석의 대부도 아닌데 왜 대전사를 한단 말인가?”
“아! 아니었군요. 결투를 앞두고 백작님이 너무 조용하셔서 이상하기는 했습니다.”
“내가 엘리오 라고아 남작에 대해 꼬치꼬치 케물을 줄 알았나?”
“예, 아무래도 상대가 엘리오 라고아 남작이니까요.”
순간 코드란테스 백작이 눈을 찌푸렸다.
고작해야 소드 익스퍼트를 상대로 물어볼 게 뭐가 있다고?
“그를 내가 알아 두어야 할 정도로 대단한 검사라고 생각하나 보군?”
“그는 홀로 싸이클롭스를 상대한 것은 물론 아이스 오우거까지 일검에 양단했습니다.”
“오호. 제법이군.”
짜증 가득하던 코드란테스 백작의 눈에 호기심이 어렸다.
보통의 소드 익스퍼트려니 했는데 그 정도면 소드마스터가 머지않은 것 같았다.
“그가 베르나르도 후작군에 합류하고 난 뒤 알파 중대의 사상자 숫자는 급격하게 줄어들었습니다. 지금은 비교가 불가능할 정도로 독보적인 수치라……. 병사들은 물론 기사들도 알파 중대를 부러워하고 있습니다.”
“그게 전부 엘리오 라고아 남작의 공이다?”
“사흘간 타메이온을 정찰하고 무사 생환한 것도 예사롭지 않습니다. 그와 동행한 기사는 단지 마나 유저에 불과했기 때문입니다.”
“그건 운이 좋았을 수도 있으니 패스. 그의 검술에 대해 알려진 게 있나?”
“전혀 없습니다. 마수를 상대할 때 간혹 검술로 보이는 동작을 할 때가 있는데…….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은 움직임이었다고 합니다.”
“야인의 검술인가 보군.”
“그럴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거야 그렇다 치고, 허면 내가 대전사라는 소문은 어디까지 퍼졌나?”
“베일럼 왕국군들 귀에도 들어갔을 정도니……. 히르헤라 주둔지에는 다 퍼진 것 같습니다.”
“그럼 엘리오 라고아 남작도 알고 있겠군?”
“그럴 겁니다. 그의 측근들이 내기 도박판에 뛰어들었다는 말까지 있습니다.”
“내기 도박이라.”
코드란테스 백작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귀족들이 결투를 하면 반드시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내기가 벌어졌다.
히르헤라같이 화젯거리가 없는 곳이라면 더하리라.
“남작에게 돈을 건 사람도 있나?”
“그게…….”
베인 마리노 자작이 말끝을 흐렸다.
그러자 코드란테스 백작이 괜찮다는 눈짓을 보냈다.
“남작과 같은 숙소를 사용한 기사들과 알파 중대, 디바 중대, 루퍼스 중대에서 남작에게 배팅한 사람들이 조금 있다고 들었습니다.”
“…….”
코드란테스 백작이 황당한 눈으로 참모를 보았다.
엘리오 라고아 남작이 몸담고 있는 부대라면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자신이 거느리고 있는 디바 중대까지 그에게 배팅을 했다니?
그가 불쾌해 하자 베인 마리노 자작이 급히 말을 이었다.
“극소수를 제외하고는 왕국군 전부가 백작님의 승리에 걸었습니다. 본래 배당금을 노리고 역으로 배팅하는 자들이 있지 않습니까? 대박을 노리는 심리일 겁니다.”
“아무리 그래도 영주의 상대에게 걸다니……. 그건 좀 도를 넘은 것 같군.”
코드라테스 백작이 빤히 보자 베인 마리노 자작은 슬그머니 눈을 돌렸다.
뭔가를 생각하던 코드란테스 백작이 물었다.
“여하튼 그 정도면 엘리오 라고아 남작의 귀에까지 들어갔겠지?”
“틀림없습니다.”
“그의 반응은?”
“아직까지 이렇다 할 움직임이 없습니다. 하루 종일 막사에서 나오지 않고 있다 들었습니다.”
“푸토코아 백작의 대전사가 나라는 걸 알고 있음에도 그렇단 말이지?”
“포기했는지도 모릅니다. 이제 와서 준비하기에는 너무 늦었으니까요. 아니, 십 년을 준비한다고 해도 되겠습니까?”
“과연 그럴까?”
그때 막사 밖에서 전속 요리사의 음성이 들려왔다.
“영주님, 저녁 메뉴로 어린 양고기 구이와…….”
“오늘 저녁은 됐다. 외식으로 할 테니 준비하지 않아도 된다.”
“예.”
두 사람의 대화를 멍하니 듣고 있던 베인 마리노 자작이 물었다.
“저녁 약속이 있으십니까?”
“없네.”
“그런데 왜…….”
코드란테스 백작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오늘 저녁은 베르나르도 후작군의 숙영지에서 먹도록 하겠네. 우리 영지를 돕겠다고 와 준 사람들인데 불편함이 없는지 살펴봐야지. 자네도 함께 가도록 하세나.”
“아, 예…….”
베인 마리노 자작이 엉거주춤 몸을 일으켜 세웠다.
엘리오 라고아 남작의 이야기가 나오기 전까지 일정에 없던 일인데 갑지기 무슨 바람이 불어서 그러는지 모르겠다.
***
베르나르도 후작군 숙영지.
기사 식당.
엘리오와 파비안이 안으로 들어섰다.
그렇지 않아도 조용하던 기사 식당이 한순간 무덤처럼 고요해졌다.
기사들의 시선이 한순간 엘리오를 향했다.
멋쩍은 얼굴로 내부를 둘러보던 엘리오가 성킁성큼 배식대로 걸어갔다.
식판에 배식을 받은 엘리오가 빈자리를 찾아 걸어갔다.
그래도 같은 후작가의 기사라고 본체만체하던 이전과 달리 그가 지나칠 때마다 기사들이 먼저 눈인사를 건넸다.
파비안이 엘리오의 맞은편에 식판을 내려놓으며 히죽 웃었다.
“인기 좋으십니다?”
“아무 의미 없다.”
엘리오가 퉁명스럽게 답하고 숟가락을 들어 올릴 때다.
갑자기 주변에서 달그락거리던 숟가락 소리가 완전히 멈췄다.
야릇한 긴장이 식당을 휘감았다.
기이한 느낌에 뒤를 돌아보던 엘리오의 눈에 이채가 어렸다.
코드란테스 백작가의 기사로 보이는 남자 둘이 ―마치 시찰이라도 나온 것처럼― 식당 내부를 이리저리 둘러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