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1060
1060회. 살려는 드릴게
회심의 일격이 무산되자 코드란테스 백작은 바람처럼 달려 나갔다.
뒤로 살짝 기울인 그의 롱소드는 시퍼런 광망에 휩싸여 있었다.
소드마스터답게 상대를 처음부터 마나 블레이드로 압살하려는 모양새다.
엘리오 역시 천둔검을 뽑아 들고 마주 나아갔다.
그의 천둔검도 마치 태양처럼 눈부시게 빛났다.
이윽고 두 사람의 롱소드가 허공에서 맞부닥쳤다.
콰앙!
귀청을 찢는 듯한 폭발음이 결투장에 울려 퍼졌다.
두 사람은 검을 맞댄 채 상대를 응시했다.
무덤덤한 엘리오 라고아 남작을 본 코드란테스 백작은 이를 갈았다.
고작 야인의 오라 블레이드로 소드마스터의 마나 블레이드에 맞서다니!
어쩌다 한두 번은 가능하겠지만 영기는 마나의 상대가 되지 못한다.
“제법이구나!”
말과 함께 코드란테스 백작은 연격을 퍼부었다.
억지로 버텨 봐야 마나를 능가하는 힘은 없으니 곧 무너지리라.
쾅! 쾅! 쾅! 쾅! 콰앙―!
마나 블레이드와 오라 블레이드가 쉬지 않고 맞부닥쳤다.
천지를 뒤흔드는 폭발음과 함께 두 사람 사이에서 불꽃이 튀었다.
코드란테스 백작의 검술은 소드마스터답게 유려했다.
실전성과 정교함이 어우러진 그의 검술에 엘리오도 탄복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거기까지다.
코드란테스 백작의 검은 ‘왕들의 하늘’에 있는 팔왕에도 미치지 못했다.
‘만약 코드란테스 백작이 천 년을 산다면……. 팔왕을 능가할 수도 있겠지만.’
지금은 아니다.
코드란테스 백작의 잠재력과 마나는 훌륭하지만 그건 인간세계에 한정해서다.
그러는 동안 코드란테스 백작의 검격을 막아 내는 엘리오의 동작은 더욱 간결해졌다.
쾅! 쾅! 쾅―!
어느 순간 코드란테스 백작은 눈을 찡그렸다.
이마를 타고 내려가던 땀방울이 하필 눈으로 파고들어서다.
손등으로 땀을 훔쳐 내던 코드란테스 백작이 멈칫했다.
‘응?’
뭔가 자신이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는 것 같았다.
코드란테스 백작은 맞닿아 있는 검을 힘껏 밀어 상대와 거리를 벌였다.
‘허억! 허억! 허억!’
땀만 흘러내린 게 아니다.
아직 어깨를 들썩일 정도는 아니지만 심장 소리가 귀에까지 들리는 듯했다.
몸에 무리가 왔다는 뜻이다.
그러고 보니 소드마스터가 된 이래 지금처럼 ―짧은 시간 동안 셀 수도 없을 정도로― 많은 검격을 쏟아 낸 적도 없는 것 같다.
‘엘리오 라고아 남작은?’
상대의 상태를 살피던 코드란테스 백작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그는 처음 결투장에 들어섰을 때와 별차이가 없어 보였다.
땀조차 흘리고 있지 않으니 허세는 아니다.
‘이게 가능한가?’
영기 수련자가 마나 유저보다 한두 단계 아래라는 게 정설이다.
당연히 오라 블레이드로는 마나 블레이드를 막아 낼 수 없다.
그런데 어째서 엘리오 라고아 남작은 아직도 멀쩡하단 말인가!
‘흑마법?’
무심코 그런 생각을 했지만 이내 고개를 흔들어 떨쳐 냈다.
엘리오 라고아 남작의 오라 블레이드에서 흑마법 고유의 기운이 느껴지지 않아서다.
게다가 궁정 마법사들이 지켜보는 자리에서 흑마법이라니 가당치도 않다.
‘그게 아니라면 뭐지?’
코드란테스 백작은 엘리오 라고아 남작의 오라 블레이드를 이해할 수 없었다.
그때 엘리오가 말했다.
“벌써 지쳤어요? 나는 아직 시작도 안 했는데? 어떻게? 내가 가 드려?”
“이놈!”
코드란테스 백작은 이를 갈며 다시 상대에게 뛰어들었다.
쾅! 쾅! 쾅! 콰창―!
마지막 검격을 나눈 순간 코드란테스 백작의 검이 뒤로 튕겨 났다
그 바람에 백작의 가슴이 무방비하게 노출되고 말았다.
절호의 기회를 놓칠 엘리오가 아니다.
득달같이 달라붙은 그는 검으로 백작의 가슴을 내리찍었다.
순간 코드란테스 백작이 상체를 틀며 검을 수평으로 휘둘렀다.
이번에는 훤하게 드러난 엘리오의 허리가 코드란테스 백작의 검에 베일 판이다.
그러자 엘리오의 입꼬리가 슬쩍 올라갔다.
이건 누가 봐도 ‘살을 주고 뼈를 취하겠다’는 강호의 방식이었다.
녹림에서 닳고 닳은 엘리오가 당해 줄 리 없다.
그는 허공으로 도약하며 발끝으로 코드란테스 백작의 머리를 걷어찼다.
‘쾅!’ 하는 소리와 함께 코드란테스 백작의 머리가 뒤로 젖혀졌다.
엘리오는 마치 새처럼 그 자리에 멈춰서 연속으로 발길질을 해 댔다.
퍼퍼퍽!
코드란테스 백작의 머리가 이번에는 좌우로 요동쳤다.
일방적으로 얻어맞던 코드란테스 백작이 발작적으로 검을 휘둘렀다.
콰콰콰콰―.
통제되지 않은 마나 블레이드가 사방으로 날아갔다.
마나 블레이드가 자신들에게 날아오자 비명과 함께 병사들이 달아났다.
미친 듯 마나 블레이드를 쏟아 내던 코드란테스 백작이 멈칫했다.
뒤늦게 이성을 되찾은 것이다.
‘어디에 있는 거냐?’
엘리오 라고아 남작의 위치를 찾던 코드란테스 백작은 오싹한 느낌에 고개를 들어 올렸다.
‘헉!’
하늘 위에서 엘리오 라고아 남작의 검이 수직으로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코드란테스 백작은 급히 롱소드를 휘둘러 엘리오 라고아 남작의 검을 쳐 냈다.
그러나 엘리오 라고아 남작의 검은 마치 환영인 양 코드란테스 백작의 검을 뒤로 흘려보내고, 마침내 코드란테스 백작을 세로로 갈랐다.
서걱―!
투두둑.
조각난 코드란테스 백작의 투구와 갑옷이 설원 위로 떨어져 내렸다.
코드란테스 백작의 맨얼굴이 드러났다.
산발한 머리에 코피까지 줄줄 흘리는 그의 모습은, 비록 큰 부상은 없을지라도, 처참했다.
칼끝을 아래로 늘어뜨린 채 우두커니 서 있던 코드란테스 백작이 넋 나간 얼굴로 중얼거렸다.
“내가…… 졌다.”
한순간 결투장 주변이 침묵에 휩싸였다.
‘캄포데네브의 별’로 불리던 소드마스터의 패배에 기사들은 숨소리도 내지 못했다.
아슬아슬하게 진 것도 아니다.
결투 중반에 들어서면서부터 코드란테스 백작은 일방적으로 얻어맞았다.
마지막의 환영 같은 한 수를 제외하고, 엘리오 라고아 남작이 무슨 대단한 검술을 선보인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코드란테스 백작은 상대의 몸에 칼 한번 못 대 보고 패했다.
이해할 수 없는 결과에 기사들은, 결투 당사자인 코드란테스 백작만큼이나 충격을 받은 얼굴이었다.
그런 주변의 반응과 달리 정작 소드마스터를 이긴 엘리오는 별 감흥이 없어 보였다.
엘리오가 한쪽 어깨에 천둔검을 걸치고 푸토코아 백작에게 뚜벅뚜벅 걸어갔다.
푸토코아 백작이 하얗게 질린 얼굴로 소리쳤다.
“배상해 주겠다! 알바 누베스 산맥을 원한다고 들었다! 주겠다!”
“결투다!”
말과 함께 엘리오가 검면으로 푸토코아 백작의 어깨를 내리쳤다.
퍽!
“윽!”
짧은 비명과 함께 푸토코아 백작이 풀썩 주저앉았다.
그 일격에 어깨뼈가 부서졌는지 푸토코아 백작의 한쪽 어깨가 우묵하게 꺼졌다.
“결투라고! 일어나! 칼을 뽑아!”
엘리오가 검면으로 푸토코아 백작을 정신없이 후려쳤다.
“윽! 윽! 윽!”
연신 비명을 지르면서도 푸토코아 백작은 일어서지도, 검을 뽑지도 않았다.
그는 잔뜩 몸을 웅크리고 얻어맞기만 했다.
푸토코아 백작가의 기사들은 영주가 맞는 모습을 차마 보지 못하고 고개를 돌렸다.
그러나 감히 엘리오 라고아 남작을 만류하는 사람은 없었다.
결투 직전에 대전사인 코드란테스 백작이 용인한 일이기도 했지만, 엘리오 라고아 남작에 맞설 용기가 없는 까닭이다.
엘리오 라고아 남작은, 마치 오늘만 살고 말 사람처럼, 에스카토스와 베일럼 왕국군 앞에서 영주이자 백작인 토비아스 푸토코아를 개처럼 두드려 팼다.
고통을 견디다 못한 푸토코아 백작이 엘리오 라고아 남작의 발목을 두 손으로 움켜잡았다.
“살려다오!”
“말투가 마음에 안 들어요. 백작님.”
엘리오가 다시 천둔검을 높이 치켜들었다.
검이 아래로 떨어지기 직전, 푸토코아 백작이 울먹이며 말했다.
“살려 주세요!”
“살려는 드릴게.”
푸토코아 백작이 내심 안도할 때 다시 구타가 이어졌다.
엘리오의 무자비한 폭행은 푸토코아 백작이 기절할 때까지 계속됐다.
***
그날 저녁.
베르나르도 후작군 숙영지.
루퍼스 중대 기사 막사.
결투 내기로 큰돈을 벌었지만 파비안의 표정은 밝지 않았다.
그런 그에게 기수인 레이 모건이 슬쩍 다가갔다.
“어이 참모. 무슨 고민 있어?”
“왜요?”
레이 모건이 파비안보다 나이가 여섯 살이나 많은 관계로 말을 놓고 있었다.
“저녁 식사 때부터 표정이 안좋아서.”
“모건 경은 돈을 어디에 걸었어요?”
“백작. 난 재미 못 봤어. 너는 땄잖아. 그런데 왜 얼굴이 그래?”
“돈을 딴 건 좋은데, 우리 중대장님이……. 하아!”
파비안은 말을 맺지 못하고 한숨부터 내쉬었다.
“중대장님이 뭐? 귀족들에게 찍혀서?”
“귀족과 평민 들 앞에서 남작이 백작을 두드려 팼잖습니까. 결투의 승패를 떠나서 중대장님이 좋은 소리 듣기는 텄다고요.”
“소드마스터까지 이긴 중대장님 걱정을 네가 왜 해? 그거 쥐가 고양이 걱정하는 거랑 비슷한 거다.”
“우리 중대장님이니까 그러죠. 귀족들에게 찍히면 루퍼스 중대는 편안할 것 같습니까?”
“아, 그건 또 그러네? 우리 중대 앞날도 꼬인 건가?”
“꿀 빨아먹기는 틀렸다고 봐야죠.”
“쯧! 걱정도 팔자다. 히르헤라에 꿀 빨아먹을 데가 있기는 하고?”
“…….”
레이 모건의 말에 파비안은 눈을 끔뻑였다.
그러고 보니 히르헤라에는 꿀이라고 할 만한 일이 없었다.
“쓸데없는 걱정하지 말고 팬텀 기사단에 찍어 둔 여기사가 누군지나 말해 봐. 알파 중대에 있는 고향 친구에게 들었어. 아주 유명하던데?”
“예? 왜요?”
“혹시나 싶어서. 나도 봐 둔 여기사가 있거든.”
“모건 경 유부남 아니었습니까?”
“내가? 노총각이야.”
두 사람이 마력 총사단인 팬텀 기사단의 여기사들을 두고 속닥거릴 때다.
루퍼스 중대 병사 하나가 막사로 들어와 파비안을 찾았다.
“무슨 일이냐?”
“참모님이 부르십니다.”
“알았다. 그만 가 봐라.”
“예!”
병사는 파비안에게 꾸벅 묵례를 하고 사라졌다.
자리를 털고 일어나는 파비안을 향해 레이 모건이 말했다.
“나머지는 돌아와서 계속하자고.”
“뭐가 남았다고요?”
“아직 누군지 말 안 했잖아.”
“…….”
그의 집요함에 고개를 젓던 파비안은 서둘러 밖으로 나갔다.
***
후작군 참모 오스카 아비드 자작 막사.
파비안은 참모의 막사 앞에서 다시 한번 복장을 점검했다.
그런 뒤 조심스럽게 휘장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대위님, 부르셨습니까?”
“오, 늦은 시간에 불러서 미안하다. 긴히 할 이야기가 있어서 말이야. 앉아라.”
오스카 아비드 자작이 자신의 맞은편 자리를 가리켰다.
왠지 이야기가 길어질 것 같다는 생각에 파비안은 숨을 가다듬었다.
긴장한 파비안을 향해 오스카 아비드 자작이 웃으며 말했다.
“긴장할 것 없다. 사소한 이야기니까. 거짓말만 하지 않으면 된다.”
“예!”
“그렇게 큰 소리로 대답하지 않아도 된다. 둘밖에 없는 자리니까 편하게 가자. 알겠나?”
“예.”
“파비안 클라우드 소위. 자네를 지켜보는 귀족이 많아. 알고 있나?”
“모릅니다.”
“몰랐다면 알아 둬라. 16세에 마나를 각성해 ‘클루톤의 천재 기사’로 불렸다지?”
“옛날 일입니다.”
“처음으로 배치받은 곳이 험하기로 소문난 몬타노사 산맥의 폰티악 중대고.”
“예.”
“알파 중대로 전출 와서 엘리오 남작을 만났다지?”
“그렇습니다.”
마침내 올 것이 왔다.
내심 긴장한 파비안의 목울대로 마른침이 꿀꺽하고 넘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