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1069
1069회. 루퍼스 중대도 둘러보시렵니까?
타메이온.
모쿠바스 중심지에 있는 몰록의 성.
남자 하나가 보좌에 앉아 있다.
머리에 돋아난 두 개의 뿔이 아니라면 그냥 잘생긴 남자로 여겼을 것이다.
몰록이 권태로운 눈빛으로 보좌 아래에 시립한 드라고드를 내려다보았다.
타락한 용족의 우두머리인 드라고드가 머리를 조아리며 말했다.
“얼마 전 아나킨들이 인간과 전투를 치르고 돌아왔음을 보고드립니다.”
“단체로 마족을 소환한 흑마법사가 있었느냐?”
“아닙니다. 빙벽의 균열을 통해 인간들의 땅으로 나갔다고 합니다.”
“빙벽에 균열이 났다고?”
의자에 비스듬히 기대어 있던 몰록이 돌연 상체를 일으켜 세웠다.
흐리멍텅하던 눈에도 생기가 돌았다.
빙벽은 창조신이 타메이온과 인간들의 땅 사이에 세운 얼음벽이다.
창조신의 권능이 담겨져 있어 영구불멸하리라 생각했는데 균열이라니?
“예, 아나킨들도 자기들 거주지를 공격한 인간 마법사들을 추격하다 알게 되었다고 합니다.”
“후후후. 인간 마법사가 아나킨을 공격해? 그래서 인간들의 땅에 공포를 심어 주고 왔다더냐?”
“그 반대입니다. 균열 밖으로 나간 아나킨들은 인간들의 군대에 패퇴했습니다.”
순간 ‘콰직!’ 하는 소리와 함께 옥좌의 양쪽 팔걸이가 떨어져 나갔다.
곧이어 분노한 음성이 뒤를 이었다.
“아나킨의 족장은 뭘 하고 있었기에 인간 따위에게 꼬리를 말고 도망쳤단 말이냐!”
몰록은 아나킨의 족장이 방치한 동안에 생긴 일이라 여겼다.
아나킨의 족장은 하위 마족이지만 인간 정도는 가볍게 상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나킨의 족장인 프롬푸트도 인간에게 당했습니다.”
“…….”
몰록이 기막힌 얼굴로 드라고드를 보았다.
아나킨의 족장이 인간에게 당했다는 말을 들었지만 선뜻 믿기지 않았다.
한참 만에 몰록의 입이 열렸다.
“그사이 인간 세상에 그랜드 마스터가 출현했느냐?”
빙벽으로 두 세계가 나뉜 지도 어언 오천 년이니 그랜드 마스터가 하나쯤 나올 때도 됐다.
“모든 대륙을 통틀어 아직 그랜드 마스터라고 불리는 인간은 없습니다.”
“평범한 인간에게 프롬푸트가 당했다는 소리냐?”
“…….”
그 말에는 드라고드도 쉽게 답하지 못했다.
그랜드 마스터는 아니지만 프롬푸트를 꺾은 인간을 평범하다 말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로네미아의 발람이 이 사실을 알게 되면 천 년 동안 나를 조롱할 게다. 그냥 당하고 있을 수는 없지. 군단을 소집해라. 인간들을 모쿠바스에 있는 마물들의 먹이로 내어 줄 것이다.”
“예!”
무표정하던 드라고드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군단까지 소집하라는 걸 보니 이참에 아예 인간 세계를 점령할 모양이다.
***
히르헤라 에스카토스 왕국군 주둔지.
베르나르도 후작군 진영.
해거름 무렵.
파비안이 중대장 막사로 찾아가 지나가듯 말했다.
“중대장님은 순찰 안 하십니까?”
“네가 하잖아.”
“그래도 중대장님이 가끔씩 얼굴을 내비쳐야 중대원들 사기도 올라가고 그럽니다.”
“왜? 사기가 떨어졌어?”
“대기 시간이 길어지면 조금씩 가라앉기 마련 아닙니까?”
엘리오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베일럼 왕국군의 합류 이후 대기 시간이 보름으로 늘어나다 보니 잡생각을 하는 모양이다.
그는 읽던 책을 덮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가자.”
“예!”
파비안이 힘차게 대답했다.
소위 혼자서 돌아다니면 부대원들이 본체만체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중대장과 함께라면 그럴 일은 없으리라.
파비안은 중대장인 엘리오 남작과 함께 루퍼스 중대 구석구석을 돌아다녔다.
역시나.
구석에 짱박혀 도박판을 벌이던 기사와 병사 들이 벼락맞은 얼굴로 벌떡벌떡 일어났다.
엘리오는 그들의 무장 상태만 확인하고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슥 지나쳤다.
급기야 밀주를 마시던 병사들을 발견해도 그냥 넘어가자 파비안이 한마디 했다.
“중대장님. 도박이야 그렇다쳐도 밀주는 한마디 하셔야 하지 않습니까?”
“위에서 너무 쪼지 말라고 했어.”
“그래도 가볍게 주의를 주셔야 합니다.”
“놔둬. 그런 낙이라도 있어야지. 주둔지에 술과 도박 빼면 뭐가 있어? 없잖아.”
녹림에서 그보다 더한 것을 보고 지냈던 엘리오에게 도박과 음주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러자 파비안의 입이 툭 튀어나왔다.
이래서야 중대장까지 모시고 순찰을 나온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아무리 그래도 정도가 있지요. 너무 풀어 줘도 안 되는 거 아닙니까?”
“네가 중대장 하든지.”
“아휴! 됐습니다. 다음부터는 그냥 제가 혼자 순찰 돌겠습니다. 중대장님은 그냥 막사에 계십쇼.”
“왜? 내가 돌아 줘야 사기가 올라간다면서?”
“아닙니다. 제 생각이 짧았습니다. 중대장님은 그냥 막사에 계시는 게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그래? 그럼 그러든지.”
두 사람이 중대를 구석구석 한 바퀴 돌고 중대장 막사로 돌아갈 때다.
막사 밖에 나와 있던 병사들이 하늘을 가리키며 수군거렸다.
엘리오와 파비안도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비공정 한 대가 천천히 주둔지로 다가오고 있었다.
“칠 일 만에 다시 돌아오는 건가요? 바쁘게 돌아다니네요?”
“그러게.”
“라미노프 왕국까지 히르헤라 주둔지에 합류하면 대기 시간이 9일 더 늘어나겠네요. 빨리 왔으면 좋겠습니다.”
“좋을 것 없다.”
어딘지 시큰둥한 엘리오의 말에 파비안이 고개를 갸웃했다.
“왜요? 병력이 늘어나면 그만큼 히르헤라 주둔지도 안전해지는 것 아닙니까?”
“반대지. 병력을 계속 늘려 나가야 할 만큼 위험하다는 생각은 안 하냐?”
“그건 또 그렇네요.”
파비안은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균열이 점점 위험해져서 주변 왕국들을 끌어들이는 것도 맞았기 때문이다.
***
에스카토스 왕국군 중앙 지휘 통제 막사.
라미노프 왕국의 특사 에리히 바르네프 백작이 에스카토스 공작에게 허리를 숙였다.
“에리히 바르네프 백작 인사 올립니다.”
무덤덤한 얼굴로 지켜보던 에스카토스 공작이 손을 들어 화답했다.
“생각보다 빨리 움직였군. 라미노프 3세가 비공정을 압류하자고 하지는 않던가?”
“그럴 리가요. 에스카토스 4세 전하가 비공정을 얼마나 아끼는지는 저희도 잘 알고 있습니다.”
“알면서도 군말 없이 시찰단을 파견했다? 그 말을 믿으라는 건가?”
“실은 얼마 전 제국으로부터 연락을 받았습니다. 히르헤라의 상황이 좋지 않다면서 파병을 권유하더군요. 그래서 정보력을 히르헤라에 집중하던 참입니다. 제가 온 것은 파병 전 최종 확인을 위해서입니다.”
“제국이?”
“제국은 북부와의 유대를 강화하고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최근 들어 이것저것 많이 챙겨 주고 있습니다.”
“제국에 상당한 호감을 보이는 발언이군.”
“라미노프 왕국은 실리를 추구하니까요. 왕국에 도움이 된다면 누구와도 협력할 수 있습니다.”
“제국이 남부 왕국들과 전쟁을 준비 중이라는 걸 아나?”
“과장된 소문입니다. 요즘처럼 제국과 왕국 간 교역이 활발한 시대에 전쟁이라니요. 제국과의 교역은 오십 년 전에는 상상도 하지 못했던 일들이 아닙니까? 힘만 앞세워 점령전을 일삼던 오십 년 전의 제국이 아닙니다.”
에스카토스 공작은 애매한 눈으로 에리히 바르네프 백작을 보았다.
어비스의 보물을 몰라서 저러는 거든지, 알면서도 모른 척하든지 둘 중에 하나리라.
“소문이든 아니든 상관없다. 북부는 제국과 남부의 전쟁을 걱정할 처지가 못 된다. 참모장.”
“예.”
“경이 백작에게 북부의 현실을 똑똑히 보여 주도록 해라.”
“알겠습니다.”
참모장 메토 로베르트 자작이 에리히 바르네프 백작 일행에게 다가갔다.
“균열로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따라오십시오.”
메토 로베르트 자작은 소개도 생략한 채 자기 할 말만 하고 바로 돌아섰다.
그것만 봐도 에스카토스 왕국과 라미노프 왕국의 관계가 어떤지 알 수 있다.
에리히 바르네프 백작 역시 당연하다는 듯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그 뒤를 따랐다.
***
히르헤라 균열 앞.
참모장 메토 로베르트 자작이 거대한 동공을 가리키며 말했다.
“현재 폭이 8미터까지 늘어난 상태입니다. 매일 조금씩 빙벽이 녹으며 좌우와 상하의 폭도 늘어나고 있습니다. 조만간 상단을 떠받치고 있는 아치도 사라질 것으로 보입니다.”
그의 설명이 끝나기가 무섭게 ‘우르릉’ 소리와 함께 빙벽의 상단 부위가 떨어져 내렸다.
뻥 뚫린 빙벽 사이로 음습한 타메이온의 땅이 드러났다.
“…….”
균열 감시 부대와 달리 라미노프 왕국의 시찰단은 충격을 감추지 못했다.
굳은 얼굴로 타메이온을 보던 에리히 바르네프 백작이 떨리는 음성으로 물었다.
“저곳이 진정 마계라 불리는 타메이온이오?”
“그렇습니다. 하루에도 수차례 마수와 마물이 히르헤라로 넘어옵니다. 며칠 전에는 마족들까지 침공한 적도 있었습니다. 이곳을 지키던 베일럼 왕국군 한 개 중대가 전멸당하고, 주둔지까지 휩쓸렸었습니다만……. 반격에 성공해 균열 너머로 모두 밀어냈습니다.”
“아인종 마물을 잘못 본 게 아니오? 마족의 침공을 이곳의 병력만으로 퇴치가 가능하오?”
“4미터가 넘는 키의 아나킨을 아인종 마물과 착각할 수 있습니까? 아나킨들의 침공을 퇴치했습니다.”
“아! 히르헤라 주둔지에 소드마스터가 몇 분 계시오?”
“에스카토스 왕국에 셋, 베일럼 왕국에 한 분이 계십니다.”
메토 로베르트 자작은 설명을 피하기 위해 엘리오 라고아 남작까지 소드마스터에 포함시켰다.
소드마스터가 넷이나 있다는 말에 에리히 바르네프 백작은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 정도 전력이라면 아나킨들을 퇴치할 수도 있겠다 싶었다.
아직 아나킨의 족장 프롬푸트를 만나 본 적 없기에 할 수 있는 착각이다.
때마침 소리를 듣고 왔는지 자이언트 베어 세 마리가 어슬렁 어슬렁 균열을 넘어왔다.
긴장한 얼굴로 균열을 주시하던 베일럼 왕국의 프록스 중대가 빠르게 대응했다.
총병들이 자이언트 베어에게 마력탄을 퍼부었다.
곧이어 기사들이 달려 나가 부상 입은 자이언트 베어들을 베어 넘겼다.
자이언트 베어가 쓰러지자 병사들이 달라붙어 부산물을 챙기기 시작했다.
그 모든 과정을 지켜보던 에리히 바르네프 백작의 입에서 탄성이 흘러나왔다.
“오오! 실로 흠 없는 대처요. 저 부대는 어느 왕국 소속이오?”
“베일럼 왕국의 프록스 중대입니다.”
“프록스 중대라. 기억해 두어야겠구려. 베일럼 왕국의 부대는 모두 저처럼 강하오?”
에리히 바르네프 백작은 에스카토스 왕국군 참모장 앞에서 보란 듯 베일럼 왕국군을 칭찬했다.
“베일럼 왕국군이 강한 것은 사실입니다. 그들은 히르헤라 방어에 한 축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메토 로베르트 자작마저 베일럼 왕국군을 띄워 주자 에리히 바르네프 백작은 그를 힐끔 보았다.
담담한 표정이지만 눈에는 자부심이 가득했다.
에스카토스 왕국군을 칭찬한 게 아닌데 왜 저러는지 모르겠다.
마수의 뒤처리까지 끝나자 프록스 중대장이 시찰단을 향해 다가왔다.
“참모장님.”
“수고했네. 이분은 라미노프 왕국의 에리히 바르네프 백작이시네. 파병에 앞서 현장을 확인하기 위해 오셨지.”
“프록스 중대장 에릭 마이어 남작입니다.”
“반갑네. 자이언트 베어에 대한 대처는 잘 봤네. 베일럼 왕국군은 모두가 다 프록스 중대처럼 용맹한가?”
그러자 에릭 마이어 남작이 얼굴을 붉히며 답했다.
“과분한 칭찬이십니다. 루퍼스 중대에 비하면 저희는 새 발의 피입니다. 그럼 이만.”
에릭 마이어 남작은 참모장과 백작에게 꾸벅 고개를 숙여 보인 후 프록스 중대로 돌아갔다.
황당한 얼굴로 프록스 중대를 보던 에리히 바르네프 백작이 물었다.
“루퍼스 중대도 베일럼 왕국군이오?”
“에스카토스 왕국군입니다.”
“아……. 잘 봤소.”
에리히 바르네프 백작이 떨떠름한 얼굴로 돌아섰다.
잘 나가다가 마지막에 괜한 걸 물어서 라미노프 왕국의 체면만 구겼다.
메토 로베르트 자작이 따라붙으며 놀리듯 말했다.
“어떻게, 오신 김에 우리 루퍼스 중대도 둘러보시렵니까?”
“됐소. 거긴 나중에.”
에리히 바르네프 백작은 귀찮다는 듯 메토 로베르트 자작과의 거리를 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