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1077
1077회. 자신감인지 자만심인지 모르겠습니다
세 왕국의 마력총 부대가 노도처럼 밀려오는 마수들에게 마력탄을 쏘아 댔다.
퍼퍼퍼펑―!
퍼퍼펑―!
왕궁 마력총사대와 영지군 소속인 마력총병의 숫자는 거의 천여 명에 달한다.
그 많은 숫자가 일시에 마력탄을 쏟아붓자 선두의 마수들이 픽픽 고꾸라졌다.
그러나 마수가 얼마나 많은지 표시도 나지 않았다.
결국 접근전에 취약한 총병을 보호하기 위해 보병 부대가 전진했다.
주둔지에 세워 두었던 목책들은 이미 마수들에게 짓밟혀 가루가 된 지 오래.
마침내 마수들과 세 왕국의 보병 부대가 정면으로 맞부닥쳤다.
가장 먼저 중대장들이 선두로 치고 나가 마수를 베어 넘겼다.
중대장들이 놓친 마수는 소위와 백인장의 차지였다.
중대장, 소위, 백인장을 거치면서 약해진 마수들은 병사들 손에서 최후를 맞이했다.
세 개 왕국군 중 가장 안정적인 곳은 베르나르도 후작군 진영이었다.
선두에 선 엘리오의 오라 블레이드에 마수 대부분이 죽거나 중상을 입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모든 부대가 그렇게 안정적으로 마수를 상대하지는 못했다.
중대장들이라고 해 봐야 소드 비기너.
소드 비기너에게 마수는 어려운 상대가 아니지만 숫자가 너무 많았다.
왕국 기사단까지 집어삼킨 마수들이 아니던가.
시간이 지나면서 왕국군 중앙까지 마수들과의 싸움에 휘말려 들었다.
공작과 후작, 백작, 자작 들에게 마수는 별 위험이 되지 못하지만 지휘부가 싸움에 뛰어들면서 체계적인 부대 운영은 물 건너가 버렸다.
무심한 얼굴로 마수를 베어 넘기던 에스카토스 공작이 좌측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의 눈에 베르나르도 후작군 진영이 들어왔다.
푸토코아 백작가는 물론 코드란테스 백작가까지도 지휘부가 싸우고 있는데, 베르나르도 후작가는 조용했다.
모두가 선두에서 마수들을 청소해 주고 있는 엘리오 라고아 남작 덕분이다.
물론 소드마스터인 자신과 코드란테스 백작이 선두로 나아가면 지휘부까지 휘말릴 일은 없다.
‘흠! 이제 시작인데 초반부터 엘리오 남작이 너무 힘을 빼는군.’
마족과의 전쟁에서 마수는 선발대에 불과하다.
마수들의 뒤로 마수보다 열 배쯤 강한 마물들이 몰려오고 있었다.
그리고 마물의 뒤에 버티고 있는 마족이 이 전쟁을 일으킨 원흉이다.
마물에 마족까지 상대하려면 아무리 소드마스터라 해도 힘을 아껴야 했다.
생각은 그렇게 하면서도 느긋하게 전장을 살피고 있는 베르나르도 후작가 지휘부가 부러웠다.
그때 참모장 메토 로베르트 자작이 말했다.
“벌서부터 전면에 나서다니 자신감인지 자만심인지 모르겠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에스카토스 공작은 피식 웃었다.
이럴 때 보면 사람들 생각은 거기서 거기인 것 같다.
“감당할 만하니 그러는 거겠지. 믿어 보자고.”
엘리오 남작은 왕국의 핵심 전력이니 그래야 했다.
만약 그가 마족과의 싸움에서 힘을 쓰지 못하면 왕국군은 퇴각하는 수밖에 없었다.
“아직 자신의 위치를 잘 알지 못해 그러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후작에게 엘리오 라고아 남작의 컨디션을 관리해 달라고 요청할까요?”
잠시 생각하던 에스카토스 공작은 고개를 저었다.
엘리오 남작을 소드마스터의 눈으로 재단하고 싶지 않아서다.
“그냥 두게. 어쩌면 우리가 그에 대해 몰라서 걱정하는 것일 수도 있으니까.”
그건 에스카토스 공작의 바람이었다.
엘리오 남작이 마족까지 밀어붙이지 않으면 히르헤라를 포기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푸토코아 백작군이 의외로 잘 버티는 것 같습니다?”
“푸토코아가?”
“지휘부가 흐트러질 줄 알았는데……. 코드란테스 백작군과 별 차이가 없지 않습니까.”
그제야 에스카토스 공작은 푸토코아 백작군으로 고개를 돌렸다.
과연! 전체적인 분위기가 코드란테스 백작군 진영과 비슷했다.
“그동안 대비를 했나 보군.”
“소드 익스퍼트가 3명밖에 없는 것치고 상당히 안정적으로 보입니다.”
“전술 전략 쪽으로도 밝았던 모양이군. 에스카토스 왕국이나 본인을 위해서 잘된 일이야. 끝까지 제 몫을 해 주면 좋겠어.”
“베일럼과 라미노프 왕국군도 아직은 잘 막아 내고 있는 것 같습니다.”
“마수 따위에게 무너져서야 왕국군이라고 할 수도 없지.”
“그런데 공작님.”
“뭔가?”
“마수와 마물을 이 정도로 끌어모으려면 평범한 마족은 아니겠지요?”
“군주가 왔다고 생각하나?”
“저 정도 숫자면 군주가 왔다고 봐야 하지 않습니까?”
“…….”
에스카토스 공작의 표정이 어둡게 가라앉았다.
마수와 마물의 숫자만으로도 왕국 연합군 전력을 한참이나 뛰어넘었다.
거기에 마족 군주까지 있다면 이 전쟁에서 이길 수 있을까?
아니, 이기는 건 고사하고 몇 명이나 살아서 퇴각할 수 있을지 예측이 되지 않았다.
마수들에게도 본능이라는 게 있다.
불나방처럼 세 개 왕국군을 향해 몰려가던 마수들의 흐름에 변화가 생겼다.
언제부터인가 마수들은 에스카토스 왕국을 피해 베일럼과 라미노프 왕국군 쪽으로 더 많이 몰려갔다.
베일럼과 라미노프 왕국군은 파도처럼 끝없이 밀려오는 마수들에 점점 지쳐 갔다.
보다 못한 양국의 원수들은 남아 있던 왕궁 기사단을 최전방으로 내보냈다.
그제야 흔들리던 왕국군 진영이 안정됐지만 최고 지휘관인 허버트 리베라토 공작과 이스크라 라미노프 공작의 표정은 밝지 않았다.
마물과 마족과의 싸움에 대비해 아껴 뒀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해서다.
그렇게 30분쯤 지나자 마수들 사이에 마물이 보이기 시작했다.
마수의 후미와 마물의 선두가 뒤섞인 것이다.
마수는 덩치가 큰 동물의 영역에 속하지만 마물은 완전히 다르다.
생김새도 마수와 달리 기괴했고, 힘은 마나 유저들도 씹어 먹을 만큼 강했다.
마수들과 섞여 있던 마물은 자연스럽게 베일럼과 라미노프 왕국군으로 몰려갔다.
베일럼 왕국의 허버트 리베라토 공작은 속으로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하아!’
세상의 이치가 이렇다.
마수와 마물조차 강자를 기피하고 약자부터 씹어 삼키려고 한다.
‘마물들은 에스카토스 쪽으로 좀 가 주지…….’
그런 바람과 달리 마물은 베일럼과 라미노프 왕국 쪽으로 먼저 오고 있었다.
가장 많은 개체는 개의 머리를 가진 이족 보행 마물 코발로스였다.
그들은 두 발로 걷는 마물답게 손에 녹슨 칼과 조잡한 활까지 들고 있었다.
그 뒤로 세 개의 머리를 가진 케르베로스와 시체를 즐겨 먹는 구울들이 보였다.
저것들의 공통점은 하급 마물이라는 점이다.
하급이지만 마나 유저가 아니면 상대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한 마력으로 보호받고 있으니 영지병들에게는 재앙이나 다름없다.
마수를 상대할 때와 달리 이제부터 피해자가 폭증하게 될 것이다.
당연히 지금부터는 기사단과 기사들이 선두를 지켜 줘야 한다.
허버트 리베라토 공작이 손을 까딱이자 기사단과 기사들이 최전방으로 이동했다.
문득 셀레투스 기사단이 떠오르자 공작은 고개를 돌렸다.
저 멀리 마나 유저라는 이유로 최전방에 배치된 셀레투스 기사단이 보였다.
애나 로건 부단장과 줄리 그린우드 남작을 후방으로 빼고 싶었지만, 이내 포기했다.
히르헤라 주둔지에서 전방과 후방을 나누는 건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아무쪼록 살아남기를 바란다.’
그가 막 그런 생각을 할 때 마물이 기사단과 기사들의 영역으로 진입했다.
곧이어 기사와 마물 간에 피 튀는 싸움이 시작됐다.
“쏴라! 쏴!”
셀레투스 기사단장 조르바 아미쿠스 백작이 미친 사람처럼 소리 질렀다.
마력총의 발사 간격은 10초.
마력이 재충전되는 10초 동안 총사들은 아무것도 할 수 없다.
그럼에도 조르바 아미쿠스 백작은 계속해서 쏘라고 소리를 질러 댔다.
그 정도로 위기감을 느끼고 있는 것이다.
애나 로건은 머리에서 흘러내린 땀이 눈으로 파고들자 손등으로 닦아 냈다.
설원에서 땀을 흘릴 정도로 몸이 혹사당하고 있지만 쉬고 싶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개미 떼처럼 몰려오는 마물들을 보면 누구라도 그럴 것이다.
우웅―.
마력이 재충전되자마자 그녀는 방아쇠를 잡아당겼다.
펑―!
마력탄이 코앞까지 달려온 코발로스의 머리통을 꿰뚫었다.
코발로스의 머리가 뒤로 젖혀지는가 싶더니 맥없이 픽 나자빠졌다.
심장이 쿵쿵 뛰었다.
운이 좋았다.
만약 단발에 쓰러뜨리지 못했다면 코발로스에게 죽는 건 자신이었을 것이다.
큰 위기가 지나가자 마음이 차분하게 가라앉았다.
그제야 주변 상황이 눈에 들어왔다.
폴라리스 기사단의 엄호를 맡았는데 이미 난전이 벌어져 각자 살아남기에 급급한 상황이었다.
‘살아남을 수 있을까?’
왠지 그럴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폴라리스 기사단이 정면을 막아 주고 있었지만 좌우측으로 몰려오는 마물이 너무 많았다.
그때 문득 그녀의 눈에 줄리 그린우드 남작이 들어왔다.
한 마리 코발로스를 쏘아 죽인 그녀에게 또 다른 코발로스가 달려들고 있었다.
설상가상으로 줄리 그린우드 남작은 뒤로 넘어지기 까지했다.
코발로스가 그녀의 목덜미를 물어뜯기 직전 애나 로건의 마력총이 불을 뿜었다.
퍼엉―!
관자놀이에 구멍이 뚫린 코발로스가 줄리 그린우드 남작의 위로 풀썩 쓰러졌다.
운 좋게 단발로 줄리 그린우드 남작을 살렸지만 애나 로건의 상황은 좋지 않았다.
마력이 충전되기를 기다리는 그녀에게 케르베로스가 달려든 것이다.
깜짝 놀란 애나 로건은 마력총을 휘둘러 케르베로스의 입을 쳐 냈다.
“캐앵!”
한 개의 머리가 옆으로 홱 돌아갔지만, 아직 남은 두 개의 머리가 앞으로 쭉 뻗었다.
절체절명의 순간 애나 로건은 발을 굴렀다.
순간 애나 로건의 몸이 ―마치 누가 잡아당기기라도 한 듯― 3미터나 뒤로 쭉 물러났다.
거의 동시에 케르베로스의 입들이 그녀가 사라진 허공을 물었다.
딱! 딱!
‘우웅―’ 하고 마력총 충전되는 소리가 들리자 애나 로건은 방아쇠를 잡아당겼다.
‘펑!’ 소리와 함께 케르베로스의 머리 하나에 구멍이 났다.
다른 두 개의 머리가 복수라도 하려는 듯 집요하게 그녀를 노렸다.
애나 로건은 케르베로스에 물리기 직전, 또다시 기이할 정도로 빠르게 거리를 벌렸다.
‘펑!’ 소리와 함께 또다시 머리 하나가 덜렁거렸다.
두 개의 머리를 잃은 케르베로스는 겁에 질려 다른 방향으로 내달렸다.
달아나는 케르베로스의 하나뿐인 머리로 애나 로건의 마력탄이 날아갔다.
‘캥!’ 소리와 함께 케르베로스가 앞으로 고꾸라졌다.
그 뒤로 요령이 생긴 애나 로건은 셀레투스 기사단 주위를 뛰어다니며 마력총을 난사했다.
기사단장 조르바 아미쿠스 백작이 그런 애나 로건을 보며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 댔다.
“그래! 부단장! 잘한다! 다 죽여! 죽여 버려!”
에스카토스 왕국군 진영이라고 마물의 물결이 비껴 간 것은 아니다.
주둔지 일대가 마물에 뒤덮이자 에스카토스 왕국군 진영도 마물과 싸우게 됐다.
최전방에서 홀로 마물들을 베던 엘리오는 문득 주위를 둘러보았다.
베르나르도 후작군은 자신이 이끄는 루퍼스 중대, 푸토코아 백작가와 코드란테스 백작가는 왕궁 기사단을 중심으로 뭉쳐 있었다.
베일럼 왕국과 라미노프 왕국은 마수와 마물에 가려 보이지도 않았다.
마족 군대를 막는다던 처음의 목표와 달리 지금은 다들 살아남기에 급급한 모습이다.
어쩌면 히르헤라에서 마족 군대를 막겠다던 것은 헛된 희망 사항인지도 모르겠다.
살겠다고 뭉쳐 있는 각 진영 사이로 마수와 마물이 꽤나 빠져나갔으리라.
‘뭐, 그래도 마족만 막으면……. 어떻게든 되겠지.’
자기들을 위해서라도 북부 왕국과 제국에서 마수와 마물 토벌에 나설 것이다.
비록 처음 목표에서 상당히 어긋났지만 아직은 희망이 남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