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108
108회. 가족도 그런 거야?
싸움에서 승리한 풍연초와 탁고명이 이번에는 해원상방을 향해 달려갔다.
그러자 금선상방의 무사들이 힘찬 함성과 함께 그 둘의 뒤를 따랐다.
풍연초와 탁고명은 그야말로 파죽지세로 몰아쳐 갔다.
두 사람의 박도가 그리는 궤적은 거의 비슷했다.
아래에서 위로, 갈지자로 거슬러 올라가는 수법은 일 식 비룡승천이다. 다시 위에서 아래로 이어지는 좌우 연격은 이 식 용무천상.
두 자루 박도가 위아래로 출렁거릴 때마다 시퍼런 도기가 쭉쭉 뻗어 나갔다.
이 자리에서 유형화된 도기를 막아 낼 수 있는 낭인은 없었다.
도검이 툭툭 잘려 나가고, 해운상방의 낭인들은 정신없이 뒷걸음질 쳤다.
말도 안 되는 광경에 놀란 연설주의 입이 쩍 벌어졌다.
자신이 알고 있는 비룡승천, 용무천상과 너무도 달랐다.
‘저게 구천검이라고?’
치링, 치링.
연설주는 갑자기 훅 다가온 구환도에 정신을 차렸다.
그녀는 얼떨결에 비룡승천의 수법으로 구환도를 쳐 냈다.
채앵-.
그러나 구환도는 튕겨 나기는커녕 더 강한 힘으로 검에 달라붙었다.
치리리리-.
거칠게 밀어붙이던 마상의 구환도가 연설주의 얼굴 앞에서 멈춰 섰다.
“연 대주, 계속하시겠소? 싸움은 이미 끝난 것 같은데.”
“…….”
마상의 말에 연설주는 이를 악물었다.
그의 말대로다.
해원상방의 무사들은 하나 둘 무기를 내리고 있었다.
삼십 대 오십의 싸움치고는 너무도 허망한 결과였지만 받아들여야 했다.
전투 의지를 상실한 연설주가 손에서 힘을 빼자, 마상도 천천히 뒤로 물러났다.
연적하와 함께 지붕 위에 숨어 싸움을 지켜보던 심통이 말했다.
“흐흐, 공자님 이제 좀 마음이 놓이십니까?”
“눈빛이 왜 그래?”
“제가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잘해낼 거라고요. 새들은 새끼가 날 때가 되면 둥지에서 막…….”
“밀어? 떨어뜨려?”
“그게, 험, 험, 어디선가 그 비슷한 이야기를 들은 기억이 있습니다. 그러지 않으면 나는 법을 배우지 못하니까요. 풍 형제와 탁 형제도 충분히 잘 해낼 겁니다. 그래도 한때는 산채에서 호령하던 사람들 아닙니까?”
“그야 그렇겠지.”
“공자님이 의형제들을 걱정하는 마음은 잘 압니다만, 그렇다고 평생 뒤따라 다니며 지켜볼 수는 없지 않습니까? 그러니 이제 그만 가시지요?”
“무슨 저승사자 같은 소리를 하고 있네? 무섭게 왜 그래?”
“으흐흐흐. 그렇게 들렸다면 죄송합니다. 공자님이 너무 미련을 두시는 것 같아서.”
“아닌데. 나는 지금 당장 딱히 할 일이 없어서 구경 온 거거든…….”
“아, 예. 그러시겠지요.”
심통은 건성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오랜 시간 곁에서 지켜보니 이제 그를 어느 정도 알 것 같다. 그는 뻔뻔한 것 같은데 의외로 소심해서 저런 말을 다 믿으면 안 된다.
“심 노인.”
“예.”
“나는 말야, 의형제들을 생각하면 그들이 다 잘되기를 바라.”
“예…….”
심통은 어딘지 쓸쓸한 연적하의 음성에 괜스레 마음이 무거웠다.
“가족도 그런 거야?”
“그게, 제가 의지할 곳 없는 천애 고아였기에……. 가족 간의 정에 대해서는 잘 모릅니다.”
“그렇구나. 천애고아라서 모르는 거구나. 그걸 이제야 알다니. 채연이와 소백이가 나를 볼 때마다 둔하다고 한 것도 틀린 말은 아니야. 가자.”
연적하가 어둠 속으로 훌쩍 몸을 날렸다.
우두커니 서서 그의 말뜻을 생각하던 심통이 황급히 그 뒤를 따랐다.
***
개봉 외곽의 토지신묘.
늦은 밤.
안쪽 마당 중앙에 모닥불이 활활 타오르고 있다.
거지로 보이는 노인과 청년이 모닥불에 뭔가 열심히 그슬리며 대화를 이어 갔다. 종종 그슬리는 일에 더 집중하기도 했지만, 심각한 얼굴을 보면 대화가 목적인 것 같다.
거지 청년, 소광개가 나무에 꿴 오리를 뒤집으며 말을 이어 갔다.
“그때 풍가와 탁가를 도운 자들이 바로 그 젊은 놈과 노인이었습니다. 여기저기 알아본 바에 따르면 그들은 모두 와룡장 출신의 사람들이었고요.”
“와룡장? 참월검객의 그 와룡장을 말하는 것이냐?”
“예, 그 젊은 놈이 연무룡의 넷째 아들 연적하라고 하더군요. 노인의 별호와 이름은 구천노도 심통이고요. 그런데 조금 이상한 점이 있었습니다.”
“이상한 점?”
“목격자들 말에 따르면 풍가와 탁가는 물론 심통까지 연적하를 어려워했다고 합니다.”
“흠! 연무룡의 아들이면 유명교와는 거리가 멀겠군.”
취걸신개는 마음에 드는 듯 고개를 주억거렸다.
“먼 정도가 아닙니다. 이건 상방에서 흘러나온 이야기인데, 그와 심통이 남양에서 유명교 고수를 죽인 적도 있다고 하더군요.”
“유명교 고수를 죽였다고?”
깜짝 놀란 취걸신개가 눈을 부릅떴다.
칠파이문도 피하는 유명교 고수를 낭인들이 죽였다니 믿어지지 않았다.
“그것도 무려 은하장의 사대신장 중 하나인 대력귀를 처죽였답니다.”
“헐! 대력귀라면 십두마병이 아니냐? 초능을 받았다는 자를 처죽였다고?”
취걸신개의 음성이 높아졌다.
공식적으로 칠파이문은 활동을 멈추었지만 그렇다고 모두가 그런 건 아니다. 은원으로 얽힌 협객들은 개인 자격으로 유명교도와 싸웠다. 하지만 지금까지 십두마병을 죽인 사람은 없었다.
“예, 그 일로 은하장에서 그 두 사람을 찾아다닌다고 하더군요.”
“허! 그렇다면 그들은 유명교와 완전히 척을 졌다고 봐야 하겠구나. 고기 탄다.”
“예.”
소광개가 급히 오리고기를 꺼내 겉에 붙은 불을 후후 불어 껐다. 그리고 곧바로 다리 하나를 쭉 찢어 취걸신개에게 내밀었다.
취걸신개는 건네받은 다리를 후후 불다가 입으로 가져갔다.
소광개도 고기 한 점을 들고 먹었다.
먹는 데 집중하느라 두 사람의 대화가 끊어졌다.
어느 정도 배가 차오르자 취걸신개는 소매로 입가를 쓱 문질러 닦았다.
“쩝! 술이 있었어야 하는데…….”
“그러게 말입니다. 요즘 구걸에 소홀하다 보니 술을 구할 수가 없었습니다.”
소광개가 멋쩍은 얼굴로 머리를 긁적였다.
오리는 아무거나 눈에 띄는 대로 슬쩍 집어 오면 되는데, 술은 돈을 주고 사야 한다. 이 순간만큼은 구걸할 시간까지 아껴 가며 뛰어다닌 게 조금 아쉽다.
“푸헐! 술보다 더 귀한 정보를 얻었으니 되었다. 마음에 담아 두지 마라.”
“그런데 스승님. 우리가 이렇게 열심히 뛰어다녀 알아낸 것들이 말입니다.”
“으응.”
“쓸모가 있는 겁니까?”
“당연하지. 사람들이 왜 돈을 싸들고 하오문에 찾아가는지 아느냐? 정보를 얻으려고 가는 것이다. 우리는 남는 게 시간인 사람들이라 직접 그 정보를 수집한 것이니라.”
“그러니까 제 말은 이걸 어디다 쓰느냐 이겁니다. 칠파이문에서는 우리를 방파 취급도 하지 않잖습니까? 남들 다 받는 무림첩도 받아 본 적이 없는데…….”
“언젠가는 알아줄 날이 있을 게다.”
“그 언제가 언제냐 이거죠.”
“인석아. 개똥도 약에 쓸 날이 있다지 않더냐. 너는 우리가 개똥만도 못하다고 생각하느냐?”
“개똥보다는 조금 낫지요.”
소광개의 얼굴에 자조 섞인 미소가 떠올랐다.
개똥보다 조금 나은 개방의 위치를 생각하면 정말 답답하기만 하다.
***
여주.
은하장.
혼세검마 척진경의 거처.
꽤 화가 난 듯 거친 숨을 몰아쉬던 척진경이 손바닥으로 탁자를 후려쳤다.
쾅!
“이런 병신 같은 것들! 남양에서 대력귀가 죽은 지 여러 날이 지났는데! 아직도 흉수들을 찾지 못했다는 게 말이 되느냐!”
탁자 맞은편에 서 있던 음산귀, 무쌍귀, 무영귀가 찔끔 놀라 어깨를 움츠렸다.
잠시 후 척진경의 숨결이 가라앉자 음산귀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놈들이 누군지는 알아냈습니다. 늙은이는 심통, 어린놈은 연적하라고 합니다. 다만 거주지가 일정치 않고 낭인으로 떠도는 놈들이라…….”
“고작 낭인 따위에게 대력귀가 당했다는 말이냐? 십두마병이 낭인에게 죽었다고?”
유명교의 역사가 긴 편은 아니지만 그래도 삼십 년이 넘었다. 그동안 적지 않은 고수들이 목숨을 잃었지만, 십두마병이 죽은 건 이번이 처음이다.
“알고 보니 단순한 낭인은 아니었습니다.”
“단순하지 않으면?”
“왕년에 월하선자와 싸워 유명해진 검객을 기억하십니까?”
“참월검객을 말하는 것이냐?”
“예, 그자가 세운 와룡장의 제자들이라고 합니다.”
“월하교당이 들어선 그 와룡장?”
“예.”
“이런 미친! 그게 지난해에 뿔뿔이 흩어진 잔당들이 벌인 짓이라고?”
“그렇습니다.”
“복수를 하려면 월하교당에 해야지 왜 은하장의 사대신장을 건드린단 말이냐?”
유명교 일곱 교당은 마치 독립된 문파처럼 다른 교당의 일에 관여하지 않았다. 팔주령을 차지하기 위한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생긴 부작용이다.
무쌍귀가 한마디 거들었다.
“뭘 알고서 한 짓은 아닐 겁니다. 대력귀가 홍방의 초대로 남양에 간 걸 아무도 몰랐다고 하니까요.”
“은하장이나 유명교를 노리고 한 짓은 아니다?”
“그렇게 보여집니다.”
“노리고 한 짓이 아니라고 해서 대력귀를 죽인 죄가 가벼워지는 것은 아니다.”
“…….”
세 마두는 송구하다는 듯 머리를 조아렸다.
그들도 대력귀의 복수를 하고 싶어 미칠 지경이다.
하지만 부평초처럼 강호를 떠도는 낭인들을 무슨 수로 찾는단 말인가!
답답하기는 척진경도 마찬가지였다.
상대는 십두마병인 대력귀를 죽인 자들이다.
일반 유명교도에게 척살령을 내려 봐야 의미 없으니 십두마병이 직접 잡으러 다녀야 한다.
이제 은하장의 십두마병은 사대신장 셋과 호법 둘.
다섯 명이 천하를 뒤지고 다녀 어느 세월에 그들을 잡는단 말인가!
눈치를 살피던 무영귀가 입을 뗐다.
“장주님, 그놈들이 와룡장의 제자라면 언제고 월하교당과 얽히지 않겠습니까? 월하교당 주변을 살피다가 기회를 잡는 것이 어떠할는지요?”
마뜩잖은 얼굴로 침묵하던 척진경이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그것 외에 뾰족한 수도 없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월하교당이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다는 점이다.
“월하교당에 우리를 위해 일할 자가 있겠느냐?”
“맡겨 주신다면 속하가 적당한 자를 포섭해 보겠습니다.”
“그렇게 하도록 해라.”
척진경은 암암리에 한숨을 내쉬었다.
유명교 백두마군도 손쓸 수 없는 일이 있다는 게 놀라울 뿐이다. 망해 버린 무가의 낭인 따위가 이렇게 속을 썩일 줄이야.
***
개봉.
해원상방.
연설주는 방주 도부영의 제안으로 상방에 딸린 별채에서 생활했다. 도부영이 돈 한 푼 안들이고 호위를 들여놨다면, 연설주는 공짜로 숙식을 해결한 셈이다.
깊은 밤.
침상에 누워 있던 연설주가 상체를 벌떡 일으켜 세웠다.
눈만 감으면 풍가와 탁가의 모습이 떠올라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대체 어떻게 한 거지? 왜 같은 형태인데 다른 결과가 나오는 걸까?’
궁금하고 답답해서 머리가 터질 것만 같았다.
그들이 오봉산에서 처음 연적하를 알게 됐다니 길어야 삼 년이다.
‘삼 년 만에 도기발출을 했다고?’
물론 풍가와 탁가의 무공이 높았다면 가능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들이 연적하에게 무공을 배운 걸 보면 그럴 가능성은 거의 없다. 결국 연적하가 그 짧은 시간에 그렇게 만들어 줬다는 소리다.
연설주는 당장에라도 연적하를 찾아가 묻고 싶었다.
그게 가능하냐고.
자신이나 오라비들이 모르는 선조들의 오의가 무엇인지 궁금했다.
한마디만 들으면 도약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단 한마디만 들으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