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1099
1099회. 뱁새가 어떻게 봉황의 뜻을 알겠냐
눈 깜짝할 사이에 얼음숲 일대가 흑운차일의 먹구름으로 가득 차 한 치 앞도 보이지 않게 되었다.
갑자기 사방이 캄캄해지자 흑마법사 딜런 던포드는 크게 당황했다.
‘저 마법은 뭐지?’
아니 그보다 메테오 스웜이라는 강력한 마법 앞에 저게 무슨 의미가 있다고?
무시하면서도 한편으로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저 청년이 불필요한 마법을 사용할 리가 없기 때문이다.
주문을 외우며 연신 주위를 살폈지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는 반구형 보호막 바깥 상황이 궁금했지만 아폴루토스 프로텍트를 해제하지 않았다.
반구형 보호막이 괴청년의 검술에서 자신을 보호할 유일한 방법인 까닭이다.
그는 답답함을 누르고 메테오 스웜의 마법 주문에 더 집중했다.
딜런 던포드의 이마에서 땀방울이 또르르 굴러 떨어졌다.
마음이 급해서 그런지 오늘따라 유난히 주문이 길게 느껴졌다.
메테오 스웜의 주문을 거의 마쳐 갈 즈음이다.
콰직―!
머리 위에서 ―뭔가 부러지는 듯한― 묵직한 소리가 들려왔다.
“폴로 탄토 아고라(그러므로 이제)……. 헉!”
무심코 고개를 들어 올리던 딜런 던포드의 입이 쩍 벌어졌다.
메테오 스웜의 마법 주문 영창이 멈췄음은 물론이다.
신의 권능으로도 뚫지 못한다는 보호막이, 지금껏 본 적 없는 거대한 붉은 검에 갈라지고 있었다.
쓰아아아―.
메테오 스웜의 마법 주문이 중단되자 반구형 보호막 안에 마나가 휘몰아쳤다.
갑자기 마법 영창이 중단되자 방향을 잃은 마나가 폭주한 것이다.
“으윽!”
딜런 던포드의 입에서 묵직한 신음이 흘러나왔다.
마나의 반동은 마법사에게 치명적이다.
고서클 마법으로 갈수록 위험도는 높아지는데, 9서클 마법쯤 되면 그 반동으로 마법사가 죽을 수도 있다.
그는 망설이지 않고 자신의 마나홀을 봉인했다.
지금은 보호막을 부수는 붉은 검보다, 몸 안에서 미친 말처럼 날뛰는 마나가 더 큰 문제였다.
그가 가까스로 마나홀의 봉인에 성공하자, 반구형 보호막 안의 마나 태풍은 거짓말처럼 가라앉았다.
그와 동시에 반구형 보호막, 아폴루토스 프로텍트도 위에서부터 서서히 부서져 내렸다.
흑마법사 딜런 던포드는 꼼짝도 하지 않았다.
마나홀을 스스로 봉인했으니 스스로를 묶어 검사에게 바친 꼴이었다.
거대한 붉은 검이 그의 정수리 위에 닿았다.
딜런 던포드는 차라리 저 검이 자신을 짓뭉개 주기를 바랐다.
그러나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붉은 검은 아폴루토스 프로텍트처럼 종적도 없이 사라졌다.
뒤이어 엘리오가 흑마법사 앞으로 떨어져 내렸다.
그는 흑마법사와 대면하자 점혈부터 했다.
그런 뒤 후환거리를 남기지 않는 성격답게 흑마법사의 마나홀을 부숴 버렸다.
“윽!”
마나홀이 깨지는 고통에 딜런 던포드가 부르르 몸을 떨었다.
점혈당한 상태에서도 경련하는 걸 보면 충격이 어땠는지 알 만하다.
한순간에 모든 것을 잃고 멍하니 서 있는 딜런 던포드에게 엘리오가 물었다.
“이름은?”
“……딜런 던포드.”
“그래, 딜런 던포드. 4개월 전쯤 히르헤라에 메테오 스웜을 떨어뜨린 것도 당신이야?”
“그렇다.”
“왜?”
“…….”
딜런 던포드는 답하지 않았다.
그는 너무도 엄청난 사건 앞에서 현실을 부정했다.
‘이건 꿈일 거야.’
아무리 생각해도 실제로 이런 일이 일어날 수는 없었다.
입을 꾹 다물고 있는 그에게 엘리오가 말했다.
“하긴 너무 순순히 대답하는 것도 이상하지. 마법사는 정신이 육체를 지배한다면서? 그런데 나는 육체가 정신을 지배한다고 믿거든? 누가 맞는지 보자고.”
엘리오가 딜런 던포드의 몸을 손가락으로 푹푹 찔렀다.
“힘줄을 나누고 뼈를 어긋나게 하는 수법[分筋錯骨]이야. 말하고 싶어지면 말하겠다고 해. 그럼 돼. 간단하지?”
으드드득―.
뼈가 뒤틀리자 균형을 잃은 딜런 던포드가 풀썩 쓰러졌다.
“아악! 말하겠다! 말하겠다!”
채 1분이 지나기 전에 딜런 던포드가 소리를 질렀다.
그래도 엘리오는 분근착골을 풀어 주지 않았다.
어설프게 맛만 보면 또 귀찮은 일이 생기기 때문이다.
5분이 지났다.
말하겠다고 고래고래 소리 지르던 딜런 던포드는 물에서 건져 올린 물고기처럼 입만 뻥끗거렸다.
그의 숨이 깔딱거리자 그제야 엘리오는 격공타혈로 분근착골을 풀었다.
딜런 던포드는 한참 동안 일어나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숨만 헐떡였다.
그러는 동안 먹구름이 걷히고 다시 별들로 가득한 밤하늘이 나타났다.
루퍼스 중대원들을 뒤에 남겨 두고 파비안이 허겁지겁 달려왔다.
“자작님! 어둠의 에테르가 왜 갑자기 나타났던 겁니까?”
“멍청아. 너는 어둠의 에테르와 먹구름도 구별할 줄 모르냐?”
“먹구름이었다고요?”
“똥인지 된장인지 꼭 찍어 먹어 봐야 알아? 먹구름이었잖아.”
“아, 어쩐지…… 오싹한 느낌이 없더니만……. 그런데 웬 먹구름입니까?”
“마법의 일종이겠지. 그 흑마법사 놈을 잡았다. 정보를 알아낼 동안 중대원들이나 잘 통제해. 마력 신호탄 때문에 지원군이 올 수도 있으니까, 맞이할 준비도 하고.”
“예.”
파비안은 남아서 구경하고 싶었지만 엘리오의 지시에 순순히 물러났다.
흑마법사와 둘만 남게 되자 엘리오가 다시 물었다.
“왜 히르헤라에 메테오 스웜을 날린 거야?”
어느 정도 기력을 회복한 딜런 던포드는 순순히 답했다.
“빙벽을 부수고, 마족이 히르헤라에 진출하는 걸 돕기 위해서다.”
“돌 하나 새 두 마리[一石二鳥]라 이거지. 그렇다 치고, 너도 인간인데 왜 마족을 위해서 그런 일을 하는 거냐?”
“마족을 위해서가 아니다. 나는 존엄하신 한 분을 위해 그런 것이다.”
“뒤에 또 누가 있다는 거야? 어쩐지, 그럴 줄 알았어. 누구야? 그 미친 짓을 원하는 놈이.”
“나도 그분의 이름은 모른다. 단지 그분이 마그눔 오프스(Magnum opus)라는 것밖에…….”
“마그눔 오프스?”
“9서클의 대마법사를 마그눔 오프스라고 부른다.”
“그러니까 누군지는 모르지만 9서클의 대마법사가 당신에게 그런 일을 시켰다고?”
“그렇다.”
“이곳에 설치된 결계와 메테오 스웜은 누가 가르쳐 준 거야?”
“존엄하신 분이 가르쳐 주셨다.”
“대단하신 분이네? 그 존엄하신 분은 사람이야? 신이야?”
엘리오는 속으로 천자마와 금사를 떠올렸다.
왠지 그 둘이 관계된 것 같았다.
순간 딜런 던포드가 푸들푸들 웃었다.
“흐흐. 너는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구나. 마그눔 오프스는 이미 신과도 같다. 신과도 같은 분에게 사람이냐 신이냐를 묻다니. 의미 없는 질문이다.”
“의미고 지랄이고 묻는 말에나 대답해. 사람이야? 신이야?”
기이한 눈으로 엘리오를 보던 딜런 던포드가 마지못해 답했다.
“그분은 육신을 가지셨다. 하지만…….”
엘리오가 그의 말을 끊었다.
“사람이라는 거네? 젠장. 왜 사람이지?”
천자마나 금사였으면 신이라고 했을 텐데 사람이라니 실망이 컸다.
“지금 그놈 어디 있어? 아니, 어떻게 하면 만날 수 있어?”
“가르쳐 줘도 너는 만나지 못할 게다.”
“어떻게, 다시 한번 힘줄을 나누고 뼈를 어긋나게 해 드릴까?”
그의 말이 끝나자마자 델런 던포드가 말했다.
“그분은 천공성으로 돌아갔다.”
“역시! 그래야 말이 되지.”
엘리오의 얼굴이 환하게 밝아졌다.
그는 흑마법사가 말한 존엄하신 분이 천자마라고 확신했다.
천자마도 ‘왕들의 하늘’에서 육신을 가지고 있지 않았던가!
이제야 실마리를 손에 잡은 느낌이다.
그가 고개를 주억거릴 때 파비안이 일단의 사람들과 다시 왔다.
베르나르도 후작군 본진의 귀족들이었다.
불사조 기사단장 엘런 파레스 백작과 참모 오스카 아비드 자작이 다가오자 엘리오는 가볍게 묵례를 해 보였다.
엘런 파레스 백작이 황송하다는 얼굴로 인사를 받았다.
“루퍼스 중대장에게 보고는 받았소. 흑마법사들이 못된 짓을 꾸미던 중이었다지요?”
“예, 악신 샤이틴의 결계를 만들어 대단위 범위 마법을 사용하려고 했습니다. 다행히 그 전에 막을 수 있었습니다.”
“포로는 저자 하나뿐이오?”
“그렇습니다. 7서클의 마법사로 딜런 던포드라고 하더군요. 혹시 유명한 마법사입니까?”
“딜런 던포드라면……. 오래전에 사라진 제국의 마법사요. 죽었다고 들었는데 아직 살아 있었나 보구려.”
엘런 파레스 백작은 흑마법사 곁에 가까이 가기가 부담스러운지 딜런 던포드와 거리를 유지했다.
“혹시 몰라서 잡자마자 일단 마나홀부터 부쉈습니다. 아직 마법사를 다루는 법을 몰라서요.”
“아! 그러셨구려.”
그제야 엘런 파레스 백작은 경계를 풀었다.
주위를 둘러보던 오스카 아비드 자작이 조심스럽게 나섰다.
“제가 본진으로 데리고 가서 취조를 해도 되겠습니까?”
“예.”
어차피 더 알아낼 게 없던 엘리오는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후 불사조 기사단장과 참모장이 흑마법사를 끌고 균열 너머로 돌아갔다.
얼음숲에 홀로 서 있는 엘리오에게 파비안이 다가갔다.
“자작님? 아직 남은 게 있습니까?”
“없어.”
“그런데 뭐 하고 계십니까? 돌아가서 쉬시지 않고요.”
“생각을 좀 정리하느라고.”
“정리는 끝나셨고요?”
“거의?”
“무슨 내용인지 제가 알아도 됩니까?”
파비안이 엘리오 라고아 자작의 눈치를 살폈다.
호기심 때문만은 아니다.
히르헤라가 워낙 위태위태한 곳이라 뭐라도 알아 두고 싶었다.
“이제 나도 슬슬 히르헤라를 떠날 때가 된 것 같아서. 어떻게 마무리를 해야 잘했다고 소문이 날까?”
뜻밖의 말에 파비안의 눈이 화등잔만 하게 커졌다.
“히르헤라를 떠나신다고요? 진심이십니까?”
“언제 내가 거짓말하는 거 봤냐?”
“아뇨. 못 봤습니다. 잘 생각하셨습니다. 언제 가시게요? 저는 무조건 자작님을 따라가겠습니다. 이번에는 말리지 마십쇼.”
파비안은 위험천만한 히르헤라에서 당장이라도 떠나고 싶었다.
“히르헤라가 안전하다는 확신이 들면 갈 거야.”
“에이! 그게 뭡니까? 히르헤라가 안전해지려면 수백 년이 걸릴 겁니다. 그건 평생 히르헤라에서 살겠다는 말과도 같습니다.”
“그건 네 생각이고.”
“제 생각이라고요? 아이고, 주둔지에 있는 사람들을 잡고 물어보십쇼. 다 저처럼 말할 겁니다. 그러실 거면 떠나겠다는 말을 하지 마십쇼.”
“뱁새가 어떻게 봉황의 뜻을 알겠냐.”
“…….”
파비안은 답답했지만 물고 늘어지지 않았다.
현실과 동떨어진 소리지만, 엘리오 라고아 자작이라면 그걸 가능하게 해 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침묵하는 파비안에게 엘리오가 물었다.
“너는 히르헤라의 안전에 가장 큰 걸림돌이 뭐라고 생각하냐?”
“균열요.”
“쯧쯧! 기사 아카데미를 나왔다는 사람이 그렇게밖에 생각을 못 해?”
“균열보다 더 위험한 게 있습니까?”
“빙벽에 구멍이 뚫린 게 위험하냐? 그 속에서 쏟아져 나오는 게 위험하냐?”
“그야 당연히 균열에서 나오는 게 위험하지요. 그걸 뭉뚱그려서 균열이라고 표현한 겁니다. 뻔히 아시면서 왜 딴지를 거십니까? 본론만 말씀해 주십쇼.”
“마수와 마물은 기사들이 어찌어찌 상대할 수 있잖아. 안 그래?”
“그렇죠.”
“내가 마족을 만나 봤거든. 말도 안 통하는 괴물인 줄 알았는데, 대화가 되더라고.”
“그래서요? 설마 마족들에게 균열을 넘어오지 말라고 부탁이라도 하겠다는 겁니까?”
파비안이 황당한 눈으로 엘리오 라고아 자작을 보았다.
인간에게 마족은 악이다.
그것도 인간과 공존이 불가능한 절대의 악.
실제로 흑마법사들이 소환한 마족들은 인간을 철저하게 파괴했다.
그런 마족을 상대로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모르겠다.
‘아까는 중요한 건 공생이 아니라 옳고 그름이라고 하지 않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