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1129
1129회. 아브락사스 학파의 마법사를 만나러 왔습니다
중년 사내는 잠시도 쉬지 않고 엘리오 일행에게 설명을 늘어놨다.
예컨대 ‘이곳은 제도의 북구며, 저기 굴뚝처럼 솟은 건물이 북구의 상징과도 같은 천문탑이고, 현재 북구에서 가장 유명한 바르도스는 아리에트다’ 등등…….
귀가 따가워진 파비안이 넌지시 사내에게 말했다.
“우리 심심할까 봐 그러는 거면 괜찮습니다. 조용히 가도 됩니다.”
“아, 그게 기사님들이 초행길인 것 같아서 그만……. 듣기 싫었다면 죄송합니다.”
“모두가 초행길은 아닙니다. 일행 중에는 제도를 내 집처럼 드나든 분도 계시니까.”
“아, 그러셨군요. 미처 몰라뵙고 제가 주제넘은 짓을 했습니다. 그럼 조용히 가겠습니다.”
그 뒤로 사내는 목적지에 도착할 때까지 입을 열지 않았다.
잠시 후 사내가 멈춰 선 곳은 화려하게 꾸며진 석조 건물 앞이었다.
“이곳이 북구에서 가장 고급스러운 휴식처인 페르모사 에스텔라입니다.”
엘리오의 눈이 휘둥그렇게 떠졌다.
페르모사 에스텔라는 흡사 왕궁을 보는 것처럼 크고 아름다웠다.
‘빛나는 별’이라는 이름에 어울린다고 할까.
파비안도 난생처음 보는 화려함에 넋을 잃은 표정이다.
라르바 오마르 백작만 여유로운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비록 처음보는 건물이지만 이 정도 수준의 건물은 제도에 많았기 때문이다.
“지은 지 얼마 안 되는 모양이군. 5년 전에 왔을 때는 못 보던 건물인데.”
백작의 말에 사내가 반색을 하며 말했다.
“5년 전이라면 못 보셨을 겁니다. 3년 전에 지어진 것이니까요. 이제 안으로 모시겠습니다.”
백작과 파비안이 무심코 그를 따라가려 할 때 엘리오가 제동을 걸었다.
“그 전에 마탑은 어딨죠? 여기서 보일 정도로 가깝다면서요?”
엘리오가 시위하듯 좌우를 휘휘 둘러보았다.
아무리 봐도 마탑이라고 추측할 만한 건물은 보이지 않았다.
그제야 백작과 파비안도 사나운 눈으로 사내를 쏘아보았다.
그러자 사내가 만면에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마탑은 3층으로 올라가시면 한눈에 쏙 들어옵니다. 아시겠지만 마탑 옆에는 건축을 하지 못하게 되어 있습니다. 대부분 마탑 소유의 땅이기도 하고요. 3층으로 올라가시면 마탑이 잘 보일 겁니다. 가서 직접 확인해 보시고 결정하셔도 됩니다.”
사내의 준비된 듯한 설명에 엘리오는 고개를 끄덕였다.
결국 엘리오 일행은 사내를 따라 페르모사 에스텔라로 들어갔다.
3층으로 올라간 사내는 객실 창문을 열고 자랑스러운 얼굴로 말했다.
“정면에 보이는 탑이 아브락사스 학파의 마탑입니다. 제도에서 나고 자란 사람들은 ‘캄파나리오 탑’이라 부르기도 합니다.”
엘리오가 창가로 다가갔다.
저 멀리 언덕 위에 거대한 탑이 우뚝 서 있었다.
두 발로 걸어다니는 일반인이라면 거리가 멀다고 푸념했겠지만, 기사들에게는 가깝게 여겨질 만도 한 애매한 거리다.
백작과 파비안도 거리에는 불만이 없는지 사내를 비난하지 않았다.
찬찬히 탑을 살피던 엘리오가 물었다.
“여기 사람들이 ‘캄파나리오 탑’이라고 부르는 이유가 뭐예요?”
“저 탑이 있는 언덕을 캄파나리오라고 불렀습니다. 그래서 그렇게 부르기도 합니다. 마탑이라고 하면 좀 삭막하니까요.”
“아하. 거리가 좀 애매하지만 방은 마음에 드네요. 이곳에 묵기로 하죠. 방 세 개를 쓸까 하는데, 하루에 얼마예요?”
“1실버에서 10실버까지 다양한 방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
뜻밖의 금액에 엘리오는 한순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헉! 1실버부터라고?’
하급 귀족인 남작의 월급이 30실버니 딱 한 달치 숙박료인 셈이다.
10실버짜리 방은 3일밖에 못쓴다.
아름다운 건물 외관과 고급스러워 보이는 내부 장식에 비쌀거라고 생각했지만 그 정도일 줄은 몰랐다.
지금까지 자신이 3골드 정도 모았으니 당장은 문제가 없지만 앞으로의 일을 생각하면 쉽게 결정하기 어려웠다.
제도에서 얼마나 오래 지내야 할지 모르는 데다가, 대수림으로 갈 여비를 남겨 놓아야 하기 때문이다.
갈등하는 엘리오에게 사내가 말했다.
“저희 페르모사 에스텔라에서는 매일 밤 유명한 바르도스의 공연이 열립니다. 숙박하시는 손님은 무료지만 외부인의 경우 50코퍼의 입장료를 내야 합니다. 이틀만 관람해도 1실버를 절약하게 되니 엄청난 혜택이지요.”
그래도 엘리오의 표정이 풀어지지 않자 사내는 설명을 이어 갔다.
“기사님들을 위한 수련장도 따로 구비되어 있습니다. 제도에서 수련할 장소를 구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지요.”
그 말에 백작이 반응했다.
엘리오 라고아 자작을 따라다니면서 검술의 경지를 높이려는 그에게 페르모사 에스텔라는 안성맞춤이었다.
“라고아 경. 제도에 계시는 동안 제가 경비를 대고 싶은데, 그래도 괜찮겠습니까?”
당연히 엘리오는 거절하지 않았다.
대수림의 경비를 고민하는 그에게 백작의 제안은 가뭄의 단비나 마찬가지였다.
“그래 주시면 저야 고맙죠. 대수림까지 가려면 경비를 아껴야 하거든요.”
엘리오가 승낙하자 라르바 오마르 백작이 사내에게 말했다.
“숙박료는 나와 이야기하면 되네. 이 방은 얼마짜리 방인가?”
“하루에 2실버입니다.”
“이 방과 나란한 방 2개를 더 쓰도록 하지. 그럼 하루에 6실버인가?”
“예, 그리고 식사는 1층의 식당에서 별도로 사 드셔야 합니다.”
제도 생활이 처음이 아닌 백작은 당연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네.”
“방은 이 방의 좌우에 붙은 방이 비어 있습니다. 제가 바로 열쇠를 가지고 오겠습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사내가 돌아서려 하자 파비안이 급히 말했다.
“바르도스의 공연은 몇 시에 시작됩니까?”
“저녁 식사 시간인 6시에서 8시까지 공연이 있습니다.”
“오늘도 공연이 있는 거 맞죠?”
“예, 북구에서 가장 인기 있는 바르도스인 아리에트 알바노 양과 오르기스 바르바 군이 공연을 하고 있습니다.”
“오르기스 바르바 군? 남자인가요?”
“손님의 절반은 여성이시니까요.”
사내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어 보인 후 돌아서 나갔다.
파비안이 충격을 받은 얼굴로 중얼거렸다.
“와아. 여자들도 남자 바르도스를 보러 오는 모양이네.”
그러자 엘리오가 황당한 얼굴로 말했다.
“뭘 그렇게 놀라? 남자만 눈과 귀가 있는 건 아니잖아.”
“아니 그래도 어떻게 여자가…….”
“너는 되고? 여자는 안 돼? 이기적이네.”
“저는 안 된다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냥 놀랐을 뿐이지.”
“두 번 놀라면 칼 빼 들고 공연장에 뛰어들겠다?”
“에이, 놀리지 마십쇼. 저 그렇게까지 꽉 막힌 사람 아닙니다.”
“알지. 넌 선택적으로 개방된 사람이잖아. 너에게만 유리하게.”
엘리오의 말에 라르바 오마르 백작이 웃음을 터뜨렸다.
때마침 중년 사내가 열쇠를 가지고 돌아왔다.
그렇게 최고급 숙박업소에서 엘리오 일행의 제도 생활이 시작됐다.
***
방에다 짐을 푼 직후 엘리오는 홀로 페르모사 에스텔라를 나섰다.
활기찬 거리를 걷고 있노라니 이제야 사람 사는 세계에 온 것 같았다.
대륙 중부에 자리한 제국은 한여름 햇살로 뜨거웠다.
더위에 허덕이는 사람들을 보고 있으려니 히르헤라에서 보낸 날들이 아주 오래된 과거처럼 느껴진다.
그래서일까? 문득 북부의 빙벽과 눈 덮인 벌판이 그리웠다.
두 번의 환골탈태로 오감이 극도로 발달된 그에게는 땀 냄새 가득한 거리보다 설원이 훨씬 좋았다.
‘차라리 말을 가지고 나올걸.’
맨몸으로 나온 게 후회가 됐지만 이미 너무 많이 와 버렸다.
구시렁거리며 한참을 걷던 엘리오는 마침내 아브락사스 학파의 마탑에 도착했다.
마탑의 입구로 다가가자 경비병이 불쑥 튀어나와 앞을 막았다.
“무슨 일로 왔습니까?”
엘리오가 경비병을 빤히 보았다.
기사 복장을 하고 다니면 이런 게 좋다.
초면임에도 성문이나 탑의 경비병들이 말을 함부로 하지 않는다.
마치 강호에서 명문 정파의 제자를 알아보고 대우해 주는 것과 비슷하다.
“아브락사스 학파의 마법사를 만나러 왔습니다. 어떻게 하면 됩니까?”
“마법사십니까? 아니면 거래를 하러 오셨습니까?”
말과 함께 경비병이 기사로 보이는 청년의 아래위를 훑어보았다.
마탑은 마법사나 거래를 하러 오는 경우가 아니면 찾지 않기 때문이다.
“그 두 가지 경우가 아니면 들어갈 수 없나요?’
“그렇습니다.”
엘리오는 잠시 머리를 굴렸다.
마법사라고 거짓말을 할 수는 없으니 남은 건 거래다.
‘내가 거래할 만한 게 뭐가 있지?’
공간창고 마하담에 넣어 둔 물건을 떠올리던 엘리오의 눈이 한순간 반짝였다.
부라퀴족이 준 수정 목걸이라면 마법사들이 관심을 가질 것 같았다.
“거래를 할까 합니다.”
“거짓말이면 안에서 큰 벌을 받게 될 수도 있습니다. 거래가 맞습니까?”
“나는 거짓말은 안 합니다.”
“들어가십쇼.”
경비병은 청년 기사의 말에 반신반의했지만 한 걸음 옆으로 비켜섰다.
자신의 역할은 잡인들을 막는 것이지 기사와 실랑이하는 게 아닌 까닭이다.
마탑 안으로 들어간 엘리오의 눈에 이채가 어렸다.
밖은 무더운 한여름인데 마탑의 안은 베일럼 왕국처럼 선선했다.
‘과연 마탑이다!’라는 생각이 저절로 들었다.
어디로 가야 하는지 고민하는 그의 눈에 탁자와 사람이 보였다.
갈 곳을 모를 때는 물어보면 된다.
엘리오는 지체 없이 탁자를 향해 뚜벅뚜벅 걸어갔다.
마법서를 읽고 있던 여자, 3서클 디사이플(Disciple, 제자) 클라라가 고개를 들어 올렸다.
“오랜만에 기사가 오셨네. 이곳에서 만나기로 약속한 마법사님이 있나요? 아니면 거래를 하러 왔나요?”
그녀는 젊은 기사와 눈이 마주치자마자 용무부터 확인했다.
“거래를 할 게 있다고 했지만……. 사실은 탑주님에게 물어보고 싶은 게 있어서 찾아왔습니다.”
“거짓으로 경비병을 속였다는 건가요? 그건 죄가 되는데.”
“거짓말은 아니고요. 거래를 할 만한 물건도 있지만, 방문 목적이 탑주님과의 만남에 있다는 걸 말한 겁니다.”
무덤덤하던 클라라의 눈빛이 차가워졌다.
“마법사를 속이면 처벌받는다는 걸 아나요? 당신에게 마탑의 관심을 끌 만한 물건이 있어야 할 거예요. 그 정도 가치가 없는 물건이라면 벌을 받게 될 테니까. 그래도 거짓말이 아니라고 할 건가요?”
“나는 거짓말은 안 해요. 과장이나 축소는 간혹 필요하다 싶으면 하지만.”
“알겠습니다. 당신 말의 진실성 여부를 가린 후에 탑주님에게 연락해 보겠습니다. 당신이 주장하는, 거래할 만한 물건을 꺼내 보세요.”
엘리오는 마하담에서 부라퀴족 족장에게 받은 트레듀서를 꺼내 탁자에 올렸다.
아공간 창고에서 물건을 꺼내는 모습에 흠칫하던 클라라는, 검은 수정 목걸이에서 풍겨 나오는 마력에 소스라치게 놀랐다.
“어멋!”
깜짝 놀란 그녀가 비명과 함께 벌떡 일어났다.
그녀의 오금에 밀린 의자가 우당탕 소리와 함께 뒤로 넘어갔다.
“이, 이 마력은 뭔가요? 악신 샤이틴의 저주받은 물건인가요?”
“아닌데요? 트레듀서라고 마족의 언어를 통역해 주는 아티팩트예요.”
“진짜요? 마족의 언어를 통역해 주는 아티팩트가 있다고요?”
클라라는 마력에 놀라 감히 검은 목걸이에 손도 대지 못했다.
아티팩트가 아니라면 정말 큰일 날 물건이기 때문이다.
“있더라고요? 이런 것도 있는데 저런 게 없겠어요?”
말과 함께 엘리오가 손을 여마법사 앞으로 불쑥 내밀었다.
청년 기사의 손가락에 끼워진 반지를 발견한 클라라는 황당한 눈으로 청년 기사와 수정 목걸이를 번갈아 보았다.
남들은 하나도 구하기 어려운 아티팩트를 두 개나 가지고 있다니?
게다가 수정 목걸이는 무려 마족의 언어를 통역해 준단다!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감정이 가능한 마법사님을 모시고 올게요. 목걸이가 정말 아티팩트라면, 탑주님과 만날 수 있을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