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1134
1134회. 마침 악독해 보이는 놈을 발견해서요
제국 군주령.
아크몰린 공국.
발도벤토.
정오 무렵, 뜨거운 태양 아래 세 기사가 깊은 계곡으로 들어섰다.
엘리오, 파비안, 라르바 오마르 백작이다.
파비안이 이마에 맺힌 땀을 손등으로 닦으며 탄식했다.
“하아! 제도에서 고작 하루 거리에 이렇게 높은 산이 있어도 되는 겁니까?”
“하루라고 하지만 날수로는 이틀 동안 말을 달려 왔으니까, 고작이라고 할 정도는 아니지. 그만 헐떡거리고 드라코나 찾아.”
“예, 예.”
엘리오의 타박에 파비안은 거칠어진 호흡을 가다듬었다.
‘빨리 잡아서 제도로 돌아가자.’
그는 페르모사 에스텔라의 시원한 맥주와 요리가 너무도 그리웠다.
하지만 처음 예상보다 산과 계곡이 많아 잘될지 모르겠다.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다.
엘리오 일행은 석양이 질 때까지 돌아다녔지만 드라코를 발견하지 못했다.
멀리 산기슭 너머로 노을이 지나 싶더니 이내 어둑어둑해졌다.
그래도 딱히 파비안이 잠자리를 준비하지 않자 백작이 넌지시 운을 뗐다.
“파비안 남작, 이제 슬슬 잠자리를 준비해야 하지 않나?”
“그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평평한 땅만 찾으면 됩니다. 이쯤이면 괜찮겠네요. 자작님? 여기 어떻습니까?”
파비안의 말에 엘리오가 마음에 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공간 창고 마하담에서 천막과 침구류는 물론 탁자와 의자까지 꺼냈다.
그걸 본 라르바 오마르 백작의 입이 쩍 벌어졌다.
“헉! 아공간 창고라니! 라고아 경, 마검사셨습니까?”
엘리오가 별거 아니라는 투로 답했다.
“아뇨. 마법은 이것만 할 줄 알아요.”
엘리오와 파비안이 익숙한 동작으로 천막을 치고 간이침대 침구류를 안으로 옮겼다.
엘리오가 몸을 쓰자 백작도 서둘러 한 손 거들고 나섰다.
탁자와 의자는 천막 안으로 들이지 않았다.
날씨가 좋으니 그냥 밖에서 사용하기로 한 것이다.
파비안이 파이어 스톤에 불을 피우고 그 위에 솥단지를 걸었다.
그리고 계곡에서 떠 온 물을 솥단지에 붓고 스튜의 재료를 투하했다.
스튜가 끓자 엘리오는 제도에서 사 온 빵을 꺼내 탁자에 올렸다.
스튜에 빵을 곁들여 먹던 라르바 오마르 백작이 행복한 얼굴로 말했다.
“이렇게 깊은 산중에서 이런 식사라니…….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잠자리도 그렇고 제도의 여관이 부럽지 않습니다.”
솔직히 그는 파비안이 마지막 마을에서 사 온 빵을 점심때 다 먹은 뒤로 저녁 식사와 잠자리를 살짝 걱정하고 있었다.
그런데 엘리오 라고아 자작의 아공간 창고로 모든 게 해결됐다.
저녁을 건너뛰고 맨바닥에서 쪼그려 잘 거라 생각했는데, 깊은 계속에서 이런 환상적인 식사와 아늑한 잠자리를 갖게 될 줄이야!
파비안이 실실 웃으며 말했다.
“저도 자작님의 아공간 창고를 처음 알았을 때는 깜짝 놀랐었습니다. 이제는 하도 많이 봐서 그러려니 합니다. 그런데, 발도벤토가 생각보다 넓네요? 산이나 협곡의 이름이려니 생각했는데 이 정도 규모면 산맥 아닙니까?”
“나도 그렇게 생각하네. 라고아 경의 아공간 창고가 아니었으면 제도로 되돌아가야 했을 걸세.”
“그걸 노리고 사무장이 자세한 정보를 알려 주지 않은 것 같습니다. 어쩐지 거짓말까지 한 것치고 술술 가르쳐 준다 싶었습니다.”
“라고아 경, 아공간 창고에 식품이 어느 정도나 들어 있습니까?”
라르바 오마르 백작의 질문에 엘리오가 고개를 갸우뚱하며 생각하더니 답했다.
“우리 셋이면 한 달은 지낼 수 있을 겁니다.”
“그 정도면 드라코를 잡아서 갈 수 있겠군요. 이렇게 될걸 미리 알고 대비하신 겁니까?”
“아니요. 히르헤라에서부터 챙기다 보니 쌓인 거예요. 그렇지 않아도 한번 정리할 때가 되긴 됐는데, 잘됐네요. 이 기회에 공간 창고의 음식물을 싹 비워야겠습니다.”
그러자 파비안이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
“왜 비우십니까? 공간 창고에서는 음식이 상하지도 않는다면서요?”
“히르헤라의 숙영지에 뭐 좋은 게 있었냐? 제도의 음식 재료로 싹 바꿔야지. 에너지 볼만 남기고 다 먹어치울 거야.”
“그럼 에너지 볼도 먹지 그건 왜 남겨 두십니까?”
“고향의 가족들에게 맛보여 주려고. 고향에도 비슷한 음식(벽곡단)이 있거든. 군대에서 이걸 먹었다고 하면 재밌어 할 거야.”
고향 이야기가 나오자 라르바 오마르 백작이 알은체를 했다.
“라고아 경의 고향이라면 알바누베스 산맥을 말씀하시는 거겠죠?”
“거기서 더 들어가요.”
“더 들어간다고요?”
“네, 지도를 뚫고 저기까지.”
엘리오가 손가락으로 하늘을 가리켰다.
‘산의 부족’이 몰살당했다는 것을 알고 있던 라르바 오마르 백작은 더 묻지 않았다.
파비안은 숙연한 백작의 표정에 웃음이 터지려 했지만 꾹 참았다.
다음 날에도 엘리오 일행은 드라코의 그림자조차 발견할 수 없었다.
파비안이 ‘아무리 발도벤토가 넓어도 이건 말이 안 된다’고 투덜거릴 정도였다.
발도벤토에 들어온 지 사흘째 되던 날.
그간의 불운을 보상이라도 해 주듯 엘리오 일행은 드라코 무리를 만날 수 있었다.
파비안의 입에서 탄성이 나왔다.
“와아! 저게 드라코구나! 말로만 들었지 실제로 보는 건 처음입니다. 날개 없는 와이번이라더니 정말 무섭게 생겼네요?”
“와이번은 본 적이 있냐?”
엘리오의 물음에 파비안은 고개를 저었다.
“아직 없습니다. 와이번을 본 사람치고 살아 있는 사람이 없다지 않습니까. 저도 봤으면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을 겁니다.”
“진짜 흉악하게 생기기는 했다. 저런 게 지능마저 높으면 장난 아니겠다.”
“용병단 정도는 동원해야 잡을 수 있겠는데요?”
“그러게.”
엘리오는 그제야 ‘용병들에게 받은 드라코가 하루 만에 죽었다’던 타불라 마탑 마법사의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파비안이 의기양양한 얼굴로 말했다.
“어떻습니까? 실제로 보니까 미안한 마음이 싹 사라지죠?”
“어.”
그건 빈말이 아니었다.
흉포해 보이는 드라코를 보니 왜 보호종이 아닌지 알 것 같았다.
그때 파비안이 어딘가를 가리켰다.
“와아! 사람만큼 지능이 높다더니 하는 짓도 비슷하네요?”
엘리오의 시선이 파비안의 손가락을 따라갔다.
드라코 한 마리가 집요하게 작은 드라코를 따라다니며 물어뜯었다.
작은 드라코의 몸에서 피가 나오는 데도 멈추지 않았다.
“파비안, 드라코가 동족도 잡아먹냐?”
“아뇨. 그런 소리는 못 들어 봤습니다.”
옆에서 함께 지켜보던 라르바 오마르 백작도 고개를 저었다.
“먹이가 없는 극단적인 환경이라면 모를까? 일상생활에서 동족은 잡아먹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는 동안 작은 드라코가 쓰러졌다.
덩치가 큰 드라코는 작은 드라코의 목줄기를 문 채로 움직이지 않았다.
누가 봐도 사냥을 하는 모습이었다.
그러나 물고 있던 드라코가 죽자 놈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유유히 자리를 떠났다.
순간 엘리오의 눈에서 불꽃이 튀었다.
“저 새끼로 데려가야겠다.”
***
페트로폴리스 중구.
타불라 마탑.
이른 아침.
타불라 마탑의 입구를 향해 한 남자가 타박타박 걸어갔다.
거리의 사람들이 남자를 중심으로 좌우로 쫙 갈라졌다.
“드라코다!”
“테이머인가?”
“테이머는 수인만 있다면서?”
“그런데 어떻게 목줄 하나로 저 드라코를 끌고 갈 수 있지?”
사람들의 수군거림을 뒤로하고 엘리오는 탑으로 다가갔다.
젊은 기사와 드라코를 번갈아 보던 경비병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어떻게 오셨습니까?”
“율리아나 레올라 후작님과 만나기로 약속한 사람입니다.”
“헉! 안으로 들어가십시오. 안내인이 안내해 줄 겁니다.”
경비병은 탑주와 만나기로 약속했다니 군소리 없이 통과시켰다.
엘리오는 드라코와 함께 탑 안으로 들어갔다.
아브락사스 학파처럼 1층에 앉아 있던 안내인, 3서클의 디사이플(제자) 티토스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마공학 연구소장님을 찾아오셨습니까?”
드라코를 본 그는 젊은 기사가 마공학 연구소를 찾아왔다고 생각했다.
“아뇨. 율리아나 레올라 후작님과 약속이 되어 있습니다.”
“아, 예. 성함이 어떻게 되십니까?”
“엘리오 라고아 자작입니다.”
“자,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자작이라는 말에 조금 놀랐는지 티토스는 허둥지둥 탑 위로 달려갔다.
한참 만에 다시 나타난 티토스가 정중히 말했다.
“탑주님의 집무실로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그런데 그 전에 마공학 연구소에 드라코를 인계해 줘도 될까요?”
“그러세요. 어차피 그쪽에 주려고 가져온 거니까.”
“감사합니다. 마공학 연구소의 마법사님을 모시고 오겠습니다.”
티토스는 다시 탑 위로 올라갔다.
잠시 후 티토스는 5서클 메이지인 카비 크레이저 백작과 함께 나타났다.
카비 크레이저 백작은 멀쩡한 드라코를 보더니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오! 라고아 자작. 생각보다 빨리 드라코를 가지고 왔구려. 이놈 정말 튼튼해 보이는군. 수고했소. 혹시라도 다른 계획이 없다면 드라코를 계속 포획해 줄 수 있겠소? 한 마리 잡아올 때마다 사례로 200실버를…….”
“생각 없습니다.”
엘리오는 여지를 남기지 않고 거절한 후에 잡고 있던 줄을 백작에게 넘겼다.
카비 크레이저 백작은 미련이 남는 눈치였지만 차마 더는 제안하지 못했다.
그동안 엘리오 라고아 자작이 북부에서 어떤 일을 했는지 나름 뒷조사를 한 때문이다.
카비 크레이저 백작이 드라코를 끌고 사라지자 티토스는 엘리오 라고아 자작을 탑주의 집무실로 안내했다.
티토스를 따라 7층으로 올라간 엘리오는 드디어 타불라 마탑 탑주인 율리아나 레올라 후작과 대면할 수 있었다.
율리아나 레올라 후작이 예의 그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예상보다 빨리 왔군요. 건강한 드라코를 잡아 오셨다고 들었어요. 역시 히르헤라의 수호자다우시네요.”
“마침 악독해 보이는 놈을 발견해서요.”
“후후. 드라코는 성질이 난폭해서 길들이기도 쉽지 않은 야수죠. 달리 ‘날개 없는 와이번’이라고 불리는 게 아니랍니다.”
“그런 것 같더라고요.”
“우리가 다시 만나는 게 페르모사 에스텔라에서 뵙고 칠 일 만인가요?”
“그럴 겁니다.”
“참, 코르보 마법 병단은 남부에 파병을 갔어요. 킬리언 헤일 공작님이 제도에 계셨다면 이리로 달려오셨을 거예요. 저에게 자작님 말씀을 많이 하셨거든요.”
“저도 천공성의 일을 끝내면 남부로 갈 예정입니다. 그때까지 그곳에 계실지 모르겠지만.”
엘리오는 슬쩍 천공성을 거론했다.
율리아나 레올라 후작이 ‘아!’ 하고 짧은 탄성을 흘리더니 말했다.
“천공성에 대해 알려 달라고 하셨죠. 자작님과 만나고 난 뒤에 기록들을 찾아봤어요. 세 권의 책과 하나의 시가 있더군요.”
“시를 연구한 책이 세 권인가요?”
“맞아요. 시 한 편에 책이 세 권이라니, 놀랍죠?”
“그렇네요. 시가 난해한가요?”
엘리오는 걱정부터 들었다.
얼마나 난해하면 고작 시 한 편에 대한 책이 세 권이나 된단 말인가!
이럴 때는 남궁연이 더 그립다.
‘누님이라면 시 한편으로 천공성에 대한 걸 알아차렸을 텐데…….’
“시는 어렵지 않아요. 그냥 천공성에 관심을 가진 탑주들이 이런저런 개인적인 소회를 기록한 것뿐이더라고요.”
“다행이네요. 제가 시와 조금 거리가 있어서요.”
“후훗! 짧은 시라서 저는 다시 찾아 읽으면서 외워 버렸답니다. 그러니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
“저도 여기서 외울 수 있을까요?”
“그럴 거예요. 지금 제가 낭송해 볼까요? 아니면 종이에 적어서 드릴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