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1136
1136회. 경은 큰 실수를 했소
파비안이 기가 막혀 하는 엘리오 라고아 자작에게 말했다.
“자작님도 며칠 전에는 마법사들이 무시무시하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잔인한 거하고 서류를 조작하는 건 다른 문제지. 백작님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엘리오가 라르바 오마르 백작을 보았다.
그래도 백작이 하위 귀족인 파비안보다 마법사에 대해 더 잘 안다고 생각해서다.
잠시 생각하던 라르바 오마르 백작이 입을 열었다.
“제국에서 범죄자를 체포하는 건 제국 치안대의 일입니다. 마탑의 설명대로라면 치안대에서 죄인을 체포해 마탑에 넘긴 것이겠지요. 혹시 서류에 기록된 구체적인 내용을 기억하고 계십니까?”
“대략은요.”
“제가 아는 한 치안대와 마탑은 딱히 이해관계로 얽혀 있지 않습니다. 마탑을 위해 서류를 조작할 이유가 없다는 뜻이지요. 수인이 체포된 지역 치안대에 가면 서류의 진위 여부를 확인할 수 있을 겁니다.”
“아!”
엘리오의 입에서 탄성이 흘러나왔다.
그때는 실망해서 거기까지 생각하지 못했는데 묘수다 싶다.
젊은 파비안이 급하게 물었다.
“어디서 체포됐는데요?”
“오비도스 백작령의 아페 뭐였는데. 아페…… 아페리오? 맞다. 아페리오. 백작님, 오비도스 백작령이 어딘지 알아요?”
“하하……. 제국은 넓어서 관청에 가서 확인하기 전에는 모릅니다.”
라르바 오마르 백작이 어색하게 웃어 보였다.
제국에는 공국만도 17개라 말만 들어서 알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수인에 대한 이야기는 그것으로 일단락 지어졌다.
당장 관청으로 갈 것도 아닌지라 화제는 자연히 본래의 목적으로 향했다.
“그건 그렇고 가셨던 일은 어떻게 됐습니까? 타불라 마탑에서 천공성에 대해 아는 게 있던가요?”
파비안의 물음에 엘리오는 후작이 준 종이를 꺼내 놓았다.
“천공성이라는 제목의 시를 하나 알려 주더라고. 원래 고대어로 기록된 건데 대륙 공용어로 번역한 거래.”
종이를 집어 내용을 확인한 백작이 파비안에게 건넸다.
그동안 엘리오는 시에 등장하는 단어와 문장 등을 풀이해 주었다.
파비안이 종이를 슬며시 내려놓으며 말했다.
“마법사들도 어지간히 할 일이 없나 봅니다. 이렇게 짧은 시 한 편을 수천 년이나 연구했다니.”
“감사하게 생각해야지. 덕분에 우리는 꼼짝도 하지 않고 내용을 알게 됐으니까.”
“대륙 동쪽 끝에 송곳처럼 튀어나온 땅이 어딜까요? 이것도 관청으로 가서 알아봐야 하나?”
파비안이 혼잣말하듯 중얼거렸다.
그러자 라르바 오마르 백작이 턱을 살짝 치켜들고 말했다.
“그 지역이라면 내가 알고 있네. 지금은 ‘피에스트라’라고 부르는 곳이네. 제국 군주령인 로렌 공국에 속해 있는 곳이지.”
“아! 그렇습니까? 지리에 해박하시네요?”
파비안이 감탄한 얼굴로 백작을 보았다.
그러면서 속으로 ‘역시 대귀족은 뭐가 달라도 다르다’고 생각했다.
엘리오가 종이를 갈무리하며 확인하듯 물었다.
“제국 군주령이면 제국의 일부라는 거죠?”
“그렇습니다. 17개의 공국들 가운데 하나입니다. 제국 전쟁 당시 그곳에서 일어났던 해전(海戰)이 유명해 기억하고 있습니다.”
“이곳에서 먼가요?”
“제도에서 출발하면 다섯 개의 공국을 지나야 하니……. 먼 거리네요.”
마차를 이용해 하나의 공국을 가로지르는 데 대략 열흘 정도 걸리니, 다섯 개의 공국이면 꽤나 먼 거리였다.
곰곰 생각하던 엘리오가 말했다.
“그 정도 거리면 사전답사는 힘들고, 탑주들을 만나고 난 다음에 움직여야겠네요. 오비도스 백작령은 가까웠으면 좋겠는데…….”
그는 피에스트라로 떠가기 전에 수인의 일을 조사하고 싶었다.
탑주들과 만나기 전에 처리하려면 제도에서 너무 멀어도 곤란했다.
파비안이 고민하는 엘리오 라고아 자작을 빤히 보며 물었다.
“왜요? 피에스트라만큼 멀면 포기하시게요?”
“포기했으면 좋겠냐?”
“자작님 성격에 그러실 것 같지 않아서 해 본 말입니다. 가깝든 멀든 밑바닥까지 확인해야 만족하실 거잖습니까?”
“너도 그 수인 표정을 봤어야 해. 오죽하면 내가 후작님을 만나러 돌아갔겠냐.”
“그런데요, 서류가 조작된 거면 어떻게 하실 겁니까?”
“후작님에게 알리고 구해 줘야지.”
“이건 제 느낌입니다만……. 어쩌면 후작님도 알고 있을지 모릅니다.”
“에이, 아니야.”
엘리오는 강하게 부정했다.
서류를 읽으며 씁쓸해하던 율리아나 레올라 후작을 생각하면 그건 지나친 억측이었다.
하지만 파비안은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탑주는 마법사들의 최고 우두머리입니다. 능력이 없으면 그 자리에 올라갈 수도 없어요. 후작님이 몰랐다면 무능한 건데, 그건 거의 불가능합니다.”
“바로 아랫사람이 작정하고 속이면 모를 수도 있다고. 내가 너한테 깜빡 속는다고 내가 무능한 건 아니잖아.”
“아니 왜 비교를 해도 그런 식으로 하십니까? 제가 언제 자작님을 속인 적이 있다고요?”
“누가 속였대? 예를 든 거지.”
“굉장히 기분 나쁜 예군요. 여하튼 후작님이 알고 있든 아니든 수인은 구해 낼 수 있겠네요. 자작님을 그렇게 우대하면서 설마 거절하지는 않겠죠?”
“서류가 조작되지 않았을 수도 있으니까 미리 예단(豫斷)하지 말자고.”
“알겠습니다.”
점심 식사를 마친 엘리오 일행은 사람들에게 물어물어 북구의 관청을 찾아갔다.
입구에서 만난 관청의 하급 관리는 엘리오 일행을 행정국으로 안내했다.
하급 관리는 행정국의 사십 대 남자에게 방문자들을 소개하고 먼저 돌아갔다.
사십 대 남자, 발터 베크 남작이 만면에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행정국의 책임자인 발터 베크 남작입니다. 오비도스 백작령이 어딘지 알기 위해 방문하셨다고요?”
파비안이 엘리오 라고아 자작을 대신해 나섰다.
“저는 파비안 클라우드 남작입니다. 백작령이라는 것만 가지고는 어딘지 알 수가 없어 찾아왔습니다.”
“그러셨군요. 그런데 무슨 용무로 오비도스 백작령을 찾으시는 건지요?”
파비안이 엘리오 라고아 자작을 슬쩍 가리키며 답했다.
“오래전 우리 자작님의 친우가 그곳으로 간다는 말을 남기고 떠나셨습니다. 자작님이 친우를 만나고 싶어 하시는데……. 오비도스 백작령이 어딘지를 몰라서요.”
“아, 그러시군요. 실례지만 어느 분이라도 작위 증명서를 보여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절차상 필요한 일이라서요.”
파비안은 흔쾌히 자신의 작위 증명서를 제출했다.
발터 베크 남작은 증명서를 꼼꼼히 살핀 뒤에 고개를 끄덕였다.
“확인했습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돌아선 그는 서가에서 두툼한 책자를 꺼내더니 빠르게 책장을 넘겼다.
그리고 5분쯤 지났을까?
“여기 있군요. 오비도스 백작령이라고 하셨죠? 제국 군주령 포메른부르크 공국에 있습니다.”
“포메른부르크 공국이면 제도에서 얼마나 떨어진 곳입니까?”
“가깝습니다. 제도에서 서남쪽으로……. 열흘쯤 가시면 되겠습니다. 물론 마차나 말을 이용한다면 그렇다는 겁니다.”
파비안이 엘리오를 돌아보았다.
“자작님, 열흘이랍니다.”
고개를 끄덕이는 엘리오의 표정이 애매했다.
왕복하려면 이십 일은 걸리니 자칫 북구의 탑주들이 모이는 날에 맞추지 못할 수도 있었다.
발터 베크 남작이 계속해서 설명을 이어 갔다.
“서남쪽으로 가시다 보면 헤드나르 공국이 나옵니다. 헤드나르 공국을 지나면 포메른부르크 공국입니다. 다행히 헤드나르 공국의 경우 영토가 넓지 않아……. 포메른부르크로 진입하는 데 오래 걸리지 않을 겁니다.”
“큰 도움이 됐습니다. 감사합니다.”
파비안이 발터 베크 남작에게 묵례를 해 보였다.
이윽고 엘리오 일행은 북구 관청을 떠나 숙소로 돌아갔다.
페르모사 에스텔라로 돌아온 엘리오는 관리인을 불러 장거리 여행에 쓸 마차와 마부를 구해 달라고 했다.
날짜가 촉박하니 일단 출발부터 할 생각인 것이다.
제도답게 관리인은 한 시간도 안 되어 이두마차와 마부를 구해 왔다.
비용을 지불하려는 엘리오를 극구 말리고 백작이 돈주머니를 열었다.
그날 오후, 이두마차 한 대가 페르모사 에스텔라를 떠나 서남쪽으로 달렸다.
***
구 일 후.
제국 군주령 포메른부르크 공국.
오비도스 백작령.
정오 무렵.
한 대의 이두마차가 오비도스 백작가 앞에서 멈춰 섰다.
엘리오 일행을 태운 마차다.
관청의 발터 베크 남작이 ‘십 일 거리’라고 했지만 엘리오가 휴식 시간을 아껴 하루를 앞당겨 도착한 것이다.
그런 만큼 마부와 말 모두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마차에서 내린 엘리오가 마부에게 말했다.
“마부 아저씨, 수고했습니다. 제도로 돌아가는 건 혼자 가시면 됩니다.”
‘혼자 가라’는 말에 죽어 가던 마부의 얼굴이 활짝 피었다.
“예, 예. 자작님도 먼 길 오시느라 고생하셨습니다.”
굽실거리던 마부는 행여나 잡을까 뒤도 돌아보지 않고 마차와 함께 사라졌다.
멍하니 지켜보던 파비안이 엘리오 라고아 자작에게 다급히 말했다.
“아니, 왜 마차를 그냥 보내십니까? 돌아갈 때는 어떻게 하시려고요?”
“더 빨리 가려고 그런다.”
“어떻게요?”
그러자 엘리오가 하늘에 뜬 구름을 가리켰다.
“아!”
파비안은 엘리오 라고아 자작의 말뜻을 알고 더 이상 묻지 않았다.
두 사람의 대화를 지켜보던 라르바 오마르 백작이 파비안에게 슬쩍 물었다.
“라고아 경에게 마차보다 더 빠른 수단이 있나?”
“나중에 보시면 압니다. 아마 깜짝 놀라실 겁니다.”
파비안이 의미심장한 말에 백작은 대귀족의 체면상 더 묻지 않았다.
엘리오가 강철 대문 뒤에 세워진 거대한 저택을 가리키며 말했다.
“파비안, 시간 없다.”
“예.”
파비안이 막 돌아설 때다.
그보다 한발 앞서 백작가를 지키는 경비병들이 다가왔다.
경비병들은 세 사람이 기사라는 걸 알아차리고 정중하게 물었다.
“여기는 오비도스 백작가입니다.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그러자 파비안이 나섰다.
“이분은 라르바 오마르 백작님, 그 옆은 엘리오 라고아 자작님, 그리고 나는 파비안 클라우드 남작이다. 오비도스 백작님을 만나러 왔다. 백작님은 안에 계시나?”
“계십니다. 안에 기별을 넣을 테니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경비병들은 손님들의 정체가 백작과 자작이라니 정중하게 대했다.
이윽고 똘똘하게 생긴 경비병 하나가 저택 쪽으로 달려갔다.
***
오비도스 백작가.
중앙 홀.
백작가의 집사인 아르민 리퍼스 남작은 예고 없이 방문한 북방 왕국 귀족들을 모시고 중앙 홀로 이동했다.
잠시 후 그는 상석에 앉아 있는 에드가 오비도스 백작에게 손님들을 소개해 올렸다.
“베일럼 왕국의 영주인 라르바 오마르 백작과 북방 영주인 엘리오 라고아 자작, 그리고 그분들을 수행하는 파비안 클라우드 남작이십니다.”
에드가 오비도스 백작이 고개를 끄덕이며 세 사람을 찬찬히 살폈다.
상대가 제국의 대귀족인지라 일행을 대표해 라르바 오마르 백작이 먼저 인사를 건넸다.
“라르바 오마르 백작입니다. 현명하신 백작님의 도움이 필요해 제도에서 달려왔습니다.”
“베일럼 왕국의 백작이라……. 우리 포메른부르크 공국과 베일럼 왕국은 교류가 없는데, 다짜고짜 찾아와 도움이라니 조금 당황스럽구려?”
같은 백작이라도 제국 백작의 위상이 현저하게 높다.
그런 이유로 라르바 오마르 백작은 존대를, 에드가 오비도스 백작은 하오체를 사용하고 있었다.
머뭇거리던 라르바 오마르 백작은 그냥 정공법을 택하기로 했다.
일면식도 없는데 찾아와 도와 달라는 것부터가 정상이 아닌 까닭이다.
그는 엘리오 라고아 자작이 타불라 마탑에서 수인 소녀를 만난 일을 털어놓았다.
“……하여 수인에 대한 기록이 사실인지, 거짓인지 판별하기 위해 이곳까지 왔습니다. 아무쪼록 조금의 억울함도 없게 조사를 도와주셨으면 합니다.”
그러자 에드가 오비도스 백작이 무덤덤한 얼굴로 말했다.
“경은 큰 실수를 했소. 만에 하나 나와 마탑이 밀접한 관계라면, 뒷감당을 어찌하려고 내 앞에서 그런 발언을 하는 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