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1139
1139회. 후작님도 알고 있었던 거죠?
미녀 바르도스가 다가오자 엘리오 일행은 잡담을 멈추고 그녀를 응시했다.
아리에트 알바노는 성을 쓰고 있지만 귀족이 아닌 라무스다.
자연히 먼저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아리에트 알바노라고 합니다. 제 연주가 마음에 드셨나요?”
엘리오가 멍하니 보고 있는 파비안의 정강이를 탁자 밑으로 걷어찼다.
따끔한 타격에 정신을 차린 파비안이 나섰다.
“아주 마음에 듭니다. 그런데 우리에게 무슨 볼일이라도?”
“아, 지난번에 율리아나 레올라 후작님과 말씀 나누시는 것을 보았어요. 그래서 혹시 후작님과 가까운 사이시라면 인사를 드려야겠다 싶어서요.”
라르바 오마르 백작이 무덤덤한 얼굴로 말했다.
“왜 그런 생각을 했지? 혹시 후작님 때문에 그러는 건가?”
라르바 오마르 백작은 아리에트 알바노가 후작에게 접근하고 싶어서 그러는 것으로 생각했다.
그런 목적 외에 처음 보는 기사들에게 접근할 이유가 없어서다.
뜨끔할 만도 한데 아리에트 알바노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네. 후작님이 저를 후원해 주고 계시거든요. 후작님의 지인이신 것 같고……. 또 제 연주를 좋아해 주시는 것 같아서 겸사겸사 인사드리러 왔어요.”
그녀는 기사들의 분위기가 예사롭지 않아 탁자 끝에 가만히 서 있었다.
뻘쭘한 얼굴로 서 있는 그녀에게 엘리오가 빈자리를 가리키며 말했다.
“서 있지 말고 앉으세요. 누가 보면 야단치는 줄 알겠네.”
그러자 아리에트 알바노는 망설임 없이 젊은 기사의 옆에 앉았다.
“감사합니다.”
파비안이 부러운 눈으로 엘리오 라고아 자작을 볼 때 아리에트 알바노가 물었다.
“기사님들은 어디서 오셨어요? 제가 처음 뵙는 분들 같아서요.”
그러자 파비안이 기다렸다는 듯 답했다.
“이분은 베일럼 왕국의 라르바 오마르 백작님이시고, 저쪽에 계신 분은 슬래시 랜드의 영주이신 엘리오 라고아 자작님, 그리고 나는 자작님의 기사인 파비안 클라우드 남작입니다.”
“아! 그러셨군요. 그런데 세 분은 후작님과 어떤 관계세요? 혹시 답하기 곤란한 질문이라면 그냥 넘기셔도 돼요.”
“백작님과 나는 후작님과 만날 일이 없습니다. 그 부분은 자작님이 직접 말씀해 주시죠.”
파비안이 엘리오 라고아 자작에게 짐을 떠넘겼다.
타불라 마탑과의 관계를 어디까지 말해야 하나 몰라 그런 것이다.
아리에트 알바노는 엘리오 라고아 자작에게 고개를 돌렸다.
“후작님은 내가 아는 마법사의 후배입니다. 그래서 알게 된 겁니다.”
“아! 후작님의 선배라면 굉장히 유명하실 것 같아요. 혹시 저도 아는 마법사님이실까요?”
“글쎄요. 혹시 킬리언 헤일 님을 아세요?”
“헉! 킬리언 헤일 공작님요? 알죠. 제국에서 그분의 이름을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다고. 혹시 자작님이 아신다는 마법사가…… 그분이세요?”
“네.”
순간 아리에트 알바노의 입이 쩍 벌어졌다.
킬리언 헤일 공작은 제국에서 가장 무서운 마법사였다.
그가 이끄는 마법 병단은 왕국 하나를 초토화시킬 수 있을 정도로 강력했다.
어찌나 긴장했던지 아리에트 알바노의 허리가 꼿꼿하게 펴졌다.
그녀가 필요 이상으로 긴장하자 라르바 오마르 백작은 슬쩍 화제를 돌렸다.
“후작님의 후원을 받는다고 했지? 후작님은 어떤 분이신가?”
“인자하신 분이세요. 저 같은 바르도스조차 후원해 주실 정도로 예술을 사랑하시고요.”
“마법사들은 차갑고 이성적인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인자하다니 뜻밖이군.”
노련한 백작이 던진 미끼를 순진한 아리에트 알바노가 물었다.
“마법사들 사이에서는 그럴지 몰라도…… 바르도스들에게는 어머니 같은 분이세요.”
“후후. 마법사들 사이에서는 차갑고 이성적이긴 한 모양이군.”
백작이 온화한 얼굴로 중얼거리자 아리에트 알바노가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
“타불라 마탑이 제국의 삼대마탑이잖아요. 그런 곳을 이끌어 가려면 어느 정도는…….”
라르바 오마르 백작이 엘리오 라고아 자작을 돌아보았다.
“그렇답니다. 라고아 경.”
엘리오는 고개를 끄덕였다.
백작은 바르도스의 입을 빌려 ‘율리아나 레올라 후작이 온화해 보이지만, 차갑고 이성적인 사람이다’라는 걸 말하고 있었다.
세 사람의 대화를 구경하던 엘리오는 분위기가 무르익자 슬며시 자리에서 일어났다.
“볼일 좀 보고 오겠습니다.”
그걸 ‘화장실에 간다’로 알아들은 아리에트 알바노는 빙긋 웃어넘겼다.
파비안이 걱정된다는 얼굴로 한마디 했다.
“살살 보세요. 살살.”
“풋!”
아리에트 알바노가 웃음을 참지 못하고 고개를 떨구었다.
***
제도 페트로폴리스 중구.
타불라 마탑.
저녁 8시경, 마탑의 입구로 한 청년이 다가갔다.
운종술로 북구에서 중구까지 단숨에 날아온 엘리오다.
엘리오를 알아보지 못한 경비병들이 그의 앞을 막아섰다.
“멈추시오. 6시 이후로 외부인의 출입은 금지되어 있소. 무슨 용무로 왔는지 모르지만…….”
“탑주님에게 엘리오 라고아 자작이 찾아왔다고 전해요.”
다행히 엘리오 라고아의 이름을 알고 있던 경비 조장이 급히 나섰다.
“자작님, 탑주님과 늦게라도 만나시기로 약속하셨습니까?”
“약속은 안 했는데, 가서 전해 봐요. 뭐라고 하시는지.”
“아, 예.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그는 경비병 중 하나를 탑 안으로 들여보냈다.
잠시 후 경비병이 헐레벌떡 뛰어나왔다.
“헉! 헉! 안으로 모시랍니다.”
그제야 경비병들이 좌우로 갈라져 길을 텄다.
엘리오는 경비병들 사이를 가로질러 탑 안으로 들어갔다.
낯선 안내인을 따라 7층으로 올라가던 엘리오가 중얼거렸다.
“이거 번번이 7층까지 오르내리는 것도 일이네. 좀 더 편하게 할 수 없나?”
그러자 안내인이 웃으며 말했다.
“그렇지 않아도 비공정의 원리를 이용해 부유판을 개발 중에 있습니다. 그게 만들어지면 부유판 위에 가만히 서 있기만 하면 됩니다.”
“마공학 연구소에서 개발 중인가요?”
“예. 제작까지 끝냈고, 지금은 안정성을 시험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대화를 나누다 보니 어느덧 탑주의 집무실 앞이다.
문을 열어 준 안내인은 어쩐 일인지 함께 들어가지 않고 엘리오만 들여보냈다.
“어서오세요. 늦은 시간에 갑자기 찾아와서 깜짝 놀랐네요. 무슨 급한 일이라도 생겼나요?”
율리아나 레올라 후작이 엘리오 라고아 자작을 빤히 보았다.
다른 사람이면 내일 찾아오라고 했을 것이다.
그러나 엘리오 라고아 자작은 킬리언 헤일 공작이 극찬하던 기사.
사람 보는 눈이 깐깐한 킬리언 헤일 공작을 생각하면 이 정도는 받아 줄 수 있었다.
엘리오는 후작의 맞은편에 앉자마자 거두절미하고 말했다.
“수인의 일로 오비도스 백작령에 다녀왔습니다. 살인의 목격자가 마법사들이더라고요? 그것도 타불라 마탑의 마법사.”
“그랬나요?”
“증거도 자백도 없이, 목격자의 진술만으로 수인을 마탑으로 끌고 왔는데……. 여기까지만 들어도 촉이 오지 않습니까?”
“무슨 촉일까요?”
율리아나 레올라 후작이 궁금하다는 얼굴로 엘리오 라고아 자작을 보았다.
지금까지 그와의 관계는 좋았다.
‘소드마스터일지도 모른다고 했던가.’
마법사로치면 자신과 카비 크레이저 백작의 사이에 속하는 위치다.
마탑의 힘으로 누르면 그도 손을 들겠지만, 그러고 싶지는 않았다.
물론 ‘아직은’ 그렇다는 거다.
소드마스터를 상대로 싸우는 것은 타불라 마탑에게도 득 될 게 없으니까.
“마법사들이 숲지기들을 죽인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 죄를 말이 안 통하는 어린 테이머에게 전가하고, 그 어린 테이머를 마탑으로 잡아 온 거죠. 마공학 연구소에서 골리앗을 제작하는 데 테이머가 필요하니까.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우리 타불라 마탑의 마법사들이 살인을 저지르고, 엉뚱한 수인에게 죄를 뒤집어씌웠다는 건가요?”
상상을 초월한 발언에 율리아나 레올라 후작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그런 것 같습니다. 그걸 확인하기 위해서 늦었지만 방문했습니다. 후작님이 도와주시면…….”
“거기까지만 듣겠어요. 엘리오 라고아 자작님이 킬리언 헤일 공작님과 친하다 해도 지금의 발언은 선을 넘은 거예요.”
“킬리언 헤일 공작님의 이름이 여기서 왜 나옵니까?”
“그분이 아니었다면 자작님과 내가 만나지도 않았을 테니까요. 제국의 삼대마탑 탑주가 왜 북방의 자작을 만나 주겠어요?”
율리아나 레올라 후작은 쌀쌀맞게 엘리오 라고아 자작을 몰아세웠다.
그를 환대하던 조금 전까지의 태도와 완전히 달라진 모습이다.
그녀는 이쯤에서 엘리오 라고아 자작이 수그러들기를 바랐다.
마탑과의 관계야 서먹해지겠지만 파국으로 치닫지 않으려면 그래야 했다.
어지간한 사람은 위축될 법도 한데 엘리오는 그러지 않았다.
‘와아! 백작님의 말대로네.’
후작은 온화해 보이지만 차가운 사람이었다.
그럴수록 더더욱 마법사들의 증언이 의심스러웠다.
파비안의 말처럼 어쩌면 후작도 모든 걸 알고 있을 것 같았다.
거기까지 생각한 그는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후작님도 알고 있었던 거죠?”
흠칫하던 율리아나 레올라 후작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닥치세요! 자작은 지금 나와 타불라 마탑의 명예를 짓밟았어요! 천공성에 대한 정보를 아낌없이 줬는데, 보답이 이건가요?”
“공짜로 받은 것도 아닌데 무슨 보답까지 바라세요? 나도 탑주님의 요구대로 건강한 드라코를 잡아다가 넘겼습니다만.”
“하! 상종 못 할 사람이었군요. 당신이 아무리 소드마스터라 해도 더 이상은 못 참아 주겠습니다. 오늘 이후로 제국의 마탑은 당신과 어떤 거래도 하지 않을 거예요. 가세요.”
“다른 마탑과의 관계도 막겠다는 건가요?”
“타불라 마탑을 모욕하고도 다른 마탑과 거래가 가능할 줄 알았나요?”
“이거 참, 보기와 달리 질이 나쁜 분이시네. 친절하고, 바르도스들에게도 잘해 주길래 인성이 바른 사람인 줄 알았는데. 윗사람이 이러니까 마법사들도 돌아다니며 그런 악행을 저지르겠지? 살인 누명을 씌우고 잡아다가 노예로 부려 먹는다. 누구 생각인지 아주 창조적이네요. 설마 탑주님의 머리에서 나온 건가요?”
“닥쳐라! 자작 따위가 제국의 후작 앞에서 함부로 입을 놀리다니! 죽고 싶은 것이냐!”
율리아나 레올라 후작이 옆에 세워져 있던 지팡이를 들어 바닥을 힘껏 찍었다.
쿠우우웅―!
묵직한 진동이 타불라 마탑을 휘감았다.
탑에 새겨져 있던 강력한 보호 마법진들이 일제히 활성화됐다.
곧이어 집무실 문을 열고 십여 명의 마법사들이 뛰어 들어왔다.
후작이 마법사들의 선두에 선 카비 크레이저 백작에게 명했다.
“백작! 엘리오 라고아 자작이 타불라 마탑을 살인자 집단으로 매도했다! 그의 눈과 혀를 뽑고 심연에 가두어라!”
심연은 타불라 마탑 지하에 있는 감옥의 별칭이다.
율리아나 레올라 후작은 어차피 관계가 틀어졌으니 상대를 철저하게 파괴할 생각이었다.
후작이 말하는 동안 암암리에 마법 주문을 준비한 카비 크레이저 백작과 마법사들은, 대답 대신에 지팡이로 엘리오 라고아 자작을 가리켰다.
순간 사람 머리통만 한 십여 개의 불덩어리(파이어 볼)가 엘리오를 향해 날아갔다.
화르르륵―! 화륵―!
파이어 볼은 비록 3서클 마법에 불과하지만, 열 개가 한자리에 모이면 더 이상 3서클이라 부를 수 없다.
열 개의 불덩이는 소드마스터도 한순간에 숯덩이로 만들어 버릴 것만 같았다.
엘리오는 눈 뜨고 구경만 하지 않았다.
히르헤라에서 마법사들과 싸운 경험이 있던 그는 불덩이가 날아오자 이형환위의 신법으로 자리를 피했다.
쿠쿠쿠쿵―! 쿠쿵―!
파이어 볼에 집무실 안에 있던 모든 것이 재가 되어 흩날렸다.
그러나 마탑의 벽은 보호 마법진의 효과로 살짝 그을리기만 했다.
그걸 본 엘리오의 눈이 번득였다.
‘마법사들이 마탑을 굉장히 아끼는구나!’
적이 아끼는 건 부숴야 제맛이다. 아니, 그게 병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