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1140
1140회. 몰랐다고 하면 믿을 건가요?
마탑의 역사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길다.
어떤 이는 천 년이라고 하고, 또 다른 이는 수천 년이라고 한다.
제국과 왕국의 역사가들도 잘 모를 정도로 마탑의 역사는 오래됐다.
마탑은 하늘을 향해 일직선으로 솟은 원통형의 기둥 모양인데, 주변이 허허벌판이라 그 형상은 더더욱 신비로웠다.
오랜 역사와 기괴한 형상의 마탑은 마법사와 더불어 인간에게 경외의 대상이었다.
당연히 마법사들은 마탑을 자신들의 상징으로 여겼다.
그래서 그들은 마탑의 영구적인 보존을 위해 아낌없이 투자했다.
수천 년 동안 마법사들이 이룩한 성과는 그때그때 마탑에 새겨졌다.
2서클 실드, 5서클 강화 인첸트, 6서클 그레이트 실드, 7서클 반사 마법 리플렉션, 재생 마법 레스토네이션은 물론 9서클의 임모탈(영구) 마법진까지.
그야말로 탑주들은 자신들이 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마법을 마탑에 때려 박았다.
그 결과 마탑에 대한 물리와 마법 공격은 무의미했고, 마탑이 입을 수 있는 손상은 ‘풍상으로 마모되는 것’ 정도가 전부였다.
제국의 삼대마탑 중 하나인 타불라 마탑도 예외는 아니다.
역대 탑주들은 타불라 마탑에 그들이 익힌 최고의 마법진을 새겨 넣었다.
타불라 마탑의 마법사들이 ―마탑 내부에서― 파이어 볼을 난사할 수 있었던 것도 그 때문이다.
이형환위로 자리를 벗어난 엘리오는 천둔검을 뽑아 거칠게 휘둘렀다.
쓔아아악―!
반월형 진검강이 전면으로 쏘아져 나갔다.
오라 블레이드가 날아오자 마법사들은 메뚜기 떼처럼 흩어졌다.
콰아앙―!
오라 블레이드가 직격한 석벽에서 큰 폭발이 일어났지만, 놀랍게도 석벽은 건재했다.
‘호오! 단단한데?’
마탑의 파괴가 목적이었던 엘리오의 눈에 이채가 어렸다.
진검강에 직격당하고도 멀쩡한 벽은 처음이었다.
‘에드가 오비도스 백작성에는 구멍이 뻥뻥 뚫렸는데 말이지.’
마탑이라고 마법진 따위로 보호하는 게 분명했다.
엘리오는 마법을 피한 후에 혹시나 싶어 용조할지(龍爪割地)를 펼쳤다.
다섯 개의 진검강이 바닥을 긁으며 전면의 석벽을 향해 날아갔다.
가가가각―! 콰앙―!
역시나 폭발음에 귀가 울릴 정도였지만 벽은 멀쩡했다.
그가 고개를 갸웃하자 율리아나 레올라 후작이 웃음을 터뜨렸다.
“호호홋! 마탑이 부서질 거라고 생각했나 보군. 마탑은 소드마스터의 칼에 부서질 정도로 약하지 않다.”
말을 마친 그녀는 마법사들과 엘리오 라고아 자작의 공방이 길어지자 지팡이를 휘둘렀다.
순간 엘리오를 중심으로 붉은 화염의 고리가 생성됐다.
화르르륵―!
6서클 화염 마법인 링 오브 파이어였다.
율리아나 레올라 후작이 지팡이를 한 바퀴 돌리자 화염의 고리가 점점 오그라들기 시작했다.
그녀는 단 한 번의 공격으로 상대를 제압하려고 암암리에 6서클 공간 장악 마법인 아티파티움의 주문까지 외웠다.
쓰아아아―.
무려 6서클 마법을 중첩시킨 것이다.
화염의 고리가 조여 오자 엘리오는 반사적으로 이형환위를 펼쳤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몸이 뜻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눈에 보이지 않는 힘이 움직임을 방해하고 있었다.
‘끝장을 보겠다 이거지?’
그가 옴짝달싹 못 하자 카비 크레이저 백작과 마법사들까지 합세했다.
파이어 월 두 개가 엘리오의 좌우에 생성되더니 서서히 거리를 좁혔다.
화르르― 화르륵―!
동시에 콜 라이트닝과 파이어 랜스들이 그를 노리고 날아갔다.
츠츠츠―! 쉬이익―! 쉬익!
소드마스터 한 사람에게 쏟아붓기에는 과도할 정도의 마법 공격이었다.
‘이것들이 진짜!’
울컥한 엘리오는 그 자리에서 회전하며 구천구검 오 식 산검멸지(散劍滅地)를 펼쳤다.
수백 개의 검영이 사방팔방으로 마력탄처럼 날아갔다.
콜 라이트닝과 파이어 랜스는 검영에 맞아 폭팔했지만, 화염의 고리는 기어코 그의 허리를 옥죄었다.
화르륵―!
엘리오의 전신이 불에 타올랐다.
아니, 그런 것처럼 보였다.
율리아나 레올라 후작의 입가에 회심의 미소가 떠오를 때, 활활 타오르던 불길이 거짓말처럼 푸스스 꺼졌다.
엘리오의 호신강기가 링 오브 파이어를 힘으로 찍어 누른 것이다.
율리아나 레올라 후작과 마법사들이 황망한 눈으로 엘리오 라고아 자작을 볼 때다.
엘리오가 허공으로 천둔검을 던졌다.
그리고 일과지유 포라천지[一颗只有 包羅天地] 즉, ‘한 알의 알갱이에 불과하지만 능히 하늘과 땅을 포용할 수 있다’는 천둔검의 구결을 읊조렸다.
순간 허공에 떠 있던 천둔검이 크기를 키워 나갔다.
쑤우우욱―.
한순간 길어진 천둔검의 퍼멀(손잡이 끝)과 검첨이 마탑 좌우편에 맞닿았다.
그것으로 성에 차지 않는지 천둔검은 점점 더 크기를 키우려 했다.
각종 마법진에 의해 보호받는 마탑과 크기를 키우려는 천둔검의 힘이 맞부닥쳤다.
그것은 마법진과 법기(法器)의 싸움이었다.
쿠르르르― 쿠르르―.
마탑이 진동하며 사방에서 기괴한 소리가 들렸다.
6서클 중첩 마법으로 마나를 소진한 율리아나 레올라 후작은 뒤로 물러나 마법검만 뚫어져라 보았다.
그건 다른 마법사들도 마찬가지였다.
탑주와 마법사들의 연합 공격을 막아 낸 엘리오 라고아 자작에게 다시 덤벼들 마법사는 없었다.
율리아나 레올라 후작과 마법사들의 목울대로 마른침이 ‘꿀꺽!’하고 넘어갔다.
그들은 마탑에 새겨진 마법진을 철석같이 믿었다.
하지만 엘리오 라고아 자작과 싸워 본 뒤로 모든 게 불확실해졌다.
그들은 어쩌면 마탑이 부서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어마어마한 크기의 마법검을 보면 누구라도 그렇게 생각할 것이다.
탑에 새겨진 9서클의 임모탈 영구 마법진은, 다른 9서클 마법처럼 파괴적인 힘이 아니다.
현상 유지 마법은 밸런스를 조절하는 기능에 불과하다.
실제로 외부 공격에 대항하는 마법은 6서클 그레이트 실드, 7서클 반사 마법 리플렉션, 재생 마법 레스토네이션이라 할 수 있다.
6서클과 7서클 마법으로 저 기이한 마법검을 막아 내야 한다는 뜻이다.
아니나 다를까?
조마조마한 눈으로 지켜보던 마법사들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콰르륵―! 콰륵!
마법검이 팽팽하게 버티던 마탑의 좌우편 석벽을 뚫고 밖으로 튀어 나갔다.
마탑을 보호하던 마법진이 깨진 것이다.
퍼멀과 검첨이 마탑을 뚫자 엘리오는 검결지를 허공에 한 바퀴 돌렸다.
순간 마법사들이 상상도 하지 못했던 괴사가 벌어졌다.
드드드득―!
거대한 마법검이 시계 방향으로 돌며 마탑을 부수기 시작한 것이다.
율리아나 레올라 후작과 마법사들의 입이 쩍 벌어졌다.
숨 몇 번 쉴 동안 마법검은 마탑 7층을 절단해 버렸다.
그럼에도 마탑의 지붕은 무너지지 않았다.
천둔검의 검신이 마탑 상단을 떠받치고 있었기 때문이다.
엘리오는 율리아나 레올라 후작을 보며 검결지를 더 빠르게 돌렸다.
가가가각―!
콰자자작―!
천둔검이 회전하며 떠받치고 있던 마탑을 갈기 시작했다.
노출된 7층과 마탑 주변으로 부서진 돌조각이 떨어져 내렸다.
천둔검이 마탑 상층부를 다 갈아 버리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마침내 더 이상 갈아 버릴 것이 없게 되자 천둔검은 다시 롱소드로 변해 엘리오의 손으로 돌아왔다.
습관적으로 롱소드를 어깨에 걸친 엘리오가 율리아나 레올라 후작에게 다가갔다.
그녀의 앞에 버티고 서 있던 마법사들이 좌우로 갈라졌다.
율리아나 레올라 후작이 억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대단한 마법검이군요. 이 세상에 그런 마법검이 있다는 말은 아직 들어 보지 못했어요. 설마 어비스에서 나온 것인가요?”
그녀는 마법사답게 이런 상황에서도 미지의 것에 대한 호기심을 드러냈다.
“알 거 없고. 내 눈과 혀를 뽑은 뒤에, 지하 감옥에 처넣으시겠다고?”
“그, 그건 자작님이 타불라 마탑을 악당들의 소굴처럼 말씀하셔서…….”
엘리오 라고아 자작의 검술 경지를 본 후작은 다시 말을 높였다.
“다시 묻지. 알았어? 몰랐어?”
“뭐, 뭐를요?”
“마법사들이 살인을 저지르고, 어린 수인에게 죄를 뒤집어씌운 거.”
“몰랐다고 하면 믿을 건가요?”
“믿든 말든 그건 내가 알아서 할 거고. 알았어? 몰랐어?”
“몰랐어요.”
“그런데 왜 나를 죽이려고 했어?”
“자작님이 타불라 마탑의 명예를 짓밟아서……. 함께 가기 어려운 사람이라고 생각했어요.”
“마법사들이 그런 짓을 했어도 내가 마탑의 명예를 짓밟은 건가?”
“그건…… 나는 타불라 마탑의 탑주로 마법사들을 믿어요. 우리 마법사들은 절대 그런 짓을 하지 않아요.”
“그야 확인해 보면 알겠지. 2년 전에 목격했다는 마법사들을 데려와. 지금 당장.”
“…….”
율리아나 레올라 후작은 머뭇거렸다.
하지만 엘리오 라고아 자작의 명을 거스를 용기는 나지 않았다.
그래도 탑주라고 마법사들을 위해 물었다.
“원하는 대답을 듣지 못하면 고문이라도 할 건가요?”
“마법사들은 어떻게 하는데?”
“정신 조작 마법을 걸지만……. 후유증으로 백치가 될 수 있어서 잘 쓰지 않아요.”
특히나 마법사들은 의지가 강해서 정신 조작의 후유증이 컸다.
그래서 큰 죄를 지은 마법사에게만 정신 조작을 사용했다.
고문은 당장의 고통을 피하기 위해 거짓으로 자백할 수도 있고, 정신 조작은 마법사를 폐인으로 만드니 이래저래 난감한 상황이었다.
“고문은 안 해. 내가 쓰는 방법으로 백치가 된 사람도 없고. 됐어?”
“예.”
율리아나 레올라 후작이 카비 크레이저 백작에게 손가락을 까딱였다.
카비 크레이저 백작이 기죽은 얼굴로 머뭇머뭇 다가왔다.
“2년 전 포메른부르크 공국에서 수인을 데리고 온 마법사들, 마공학 연구소 마법사들인가?”
“그렇습니다.”
“아직 마공학 연구소에 있나?”
“있습니다.”
“당장 데려와.”
“예.”
카비 크레이저 백작이 6층 계단으로 사라졌다.
잠시 후 백작은 삼십 대로 보이는 이 남 일 녀와 함께 돌아왔다.
이 남 일 녀가 율리아나 레올라 후작 앞으로 쭈뼛쭈뼛 다가갔다.
그들을 본 후작이 차갑게 물었다.
“이름.”
“조엘입니다.”
“토라입니다.”
“멜러니입니다.”
“2년 전 오비도스 백작령에서 살인을 하고 수인에게 죄를 뒤집어씌운 사실이 있느냐?”
“아닙니다!”
“모함입니다!”
“수인이 늑대를 부려 사람을 죽였습니다!”
자신들의 목숨이 걸린 일인지라 세 마법사는 극구 아니라고 부인했다.
율리아나 레올라 후작이 눈을 찌푸렸다.
‘진실의 눈’을 사용해 봤지만 거짓이라는 확신은 들지 않았다.
‘진실의 눈’이 만능은 아니다.
마나를 분석하는 것과 달리 진실과 거짓은 완벽한 판별이 어렵다.
예컨대 마법사들처럼 지능이 뛰어난 자가 강하게 자기 암시를 걸어 두면, 거짓말을 해도 알아낼 도리가 없었다.
율리아나 레올라 후작은 엘리오 라고아 자작에게 고개를 돌렸다.
“모두 3서클의 마법사들이에요. 흑마법의 기운은 없고요. 나는 저들이 정말 그런 짓을 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자작님에게 방법이 있다니 직접 확인해 보세요.”
앞으로 한 걸음 나선 엘리오가 세 마법사들과 눈을 맞추었다.
“빈 들판의 아들(공야자)과 늙지 않는 푸름(청불노)의 제자, 남쪽 하늘 연못(연남천)의 이름으로 명한다. 2년 전 오비도스 백작령에서 일어난 살인의 진실을 말해라.”
그러자 이게 무슨 소린가 싶어 눈을 끔뻑이던 마법사들이 번갈아 가며 말했다.
“오비도스 백작의 사냥터를 지나던 중에 오두막을 발견했습니다.”
“오두막에 숲지기와 가족의 시체가 있었습니다.”
“근처에서 늑대와 함께 있는 수인을 발견해 치안대에 넘겼습니다.”
“테이머를 마공학 연구소로 데려가려고 ‘직접 목격했다’는 말을 보탰습니다.”
“수인이 숲지기 가족을 죽인 게 틀림없습니다.”
마법사들의 말을 듣던 율리아나 레올라 후작의 얼굴에 쓴웃음이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