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1141
1141회. 트라노 코볼로룸, 검은 도깨비
율리아나 레올라 후작은 가슴을 쓸어내렸다.
다행히 마법사들이 숲지기 가족을 죽이지는 않은 것 같았다.
만약 그랬다면 감당하기 어려운 일이 벌어졌을 터였다.
이 어리석은 세 마법사들은 테이머 확보에 눈이 멀어 수인을 범인으로 몰고, 포획하듯 데리고 왔을 뿐이다.
엘리오 라고아 자작이 세 명의 마법사들에게 확인하듯 물었다.
“보지도 않고 본 것처럼 말했다는 거지?”
그러자 유일한 여자인 멜러니가 변명하듯 말했다.
“정황상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어요. 오두막 인근에 수인이 늑대와 함께 있었거든요.”
그 와중에도 멜러니는 수인의 체력을 고려했는지 늑대를 강조했다.
하지만 엘리오는 잔머리가 뛰어난 사람이다.
특히 자신이 관심을 가진 부분에서는 비범하다고 해도 될 정도로 예리했다.
“시체는 확인했고? 늑대가 물어 죽인 게 맞아?”
“아…… 그건…… 아니에요. 온몸이 피투성이였지만 베인 건지, 물어뜯긴 건지 확인하지는 않았어요. 집도 더러웠고, 파리 떼가 들끓어서 그 자리를 떠날 생각밖에 없었거든요.”
조엘이 그녀에 이어 말했다.
“냄새와 파리 떼 때문에 시체만 보고 나왔습니다. 그러다 오두막 주위에서 늑대와 함께 있는 수인을 발견한 겁니다. 틀림없이 늑대가 물어 죽였을 겁니다.”
“응, 그건 너희들 바람이고. 그래야 테이머를 끌고 가서 노예로 부려 먹을 수 있으니까. 어쨌든 보지도 않았으면서 봤다고 거짓말을 한 거네? 맞지?”
“예.”
“……예.”
“그렇지만 수인이 죽였을 거예요. 수인은 사람보다 동물에 가까우니까요.”
멜러니는 언법에 걸린 상태에서도 끝까지 수인이 죽였다고 주장했다.
그건 수인에 대한 그녀의 선입견이 유달리 강했기 때문이다.
“오두막에 불은 왜 질렀어?”
그 질문에는 세 사람이 각각 다른 대답을 했다.
“혹시라도 사인(死因)이 다르게 나올까 봐 그랬습니다.”
“빨리 마무리를 짓고 싶었습니다.”
“너무 더러워서 태우는 게 낫겠다고 생각했어요.”
더 이상 물어볼 이야기가 없자 엘리오는 언법을 풀었다.
언법에서 풀려난 세 마법사들은 한동안 멍한 얼굴로 눈만 끔뻑였다.
그러다 뒤늦게 자신들의 말이 떠올랐는지 허둥지둥 변명을 늘어놓았다.
“타, 탑주님, 저희가 목격했다고 한 것은……. 수인이 범인이라고 확신했기 때문입니다.”
“의도적으로 수인에게 죄를 뒤집어씌우기 위해서 그런 것은 아닙니다.”
“저희가 데리고 오지 않았다면 치안대에서 죽였을 거예요.”
묵묵히 듣던 율리아나 레올라 후작이 지팡이로 바닥을 찍었다.
그제야 세 마법사들은 입을 다물고 눈치를 살폈다.
“너희들의 거짓 증언으로…… 수인은 변호할 기회조차 얻지 못하고 살인자가 됐다. 수인을 데려올 생각이었다면, 죽음의 원인부터 파악했어야 한다. 하지만 거짓으로 증언하고, 사건을 덮기 위해 오두막에 불까지 질렀다. 인정하느냐?”
“예…….”
탑주의 말에 세 사람은 한목소리로 답했다.
이유는 조금씩 달랐지만 그런 행동을 한 것은 사실인 까닭이다.
율리아나 레올라 후작이 엘리오 라고아 자작에게 시선을 돌렸다.
“먼저 거짓말에 속아 자작님을 공격한 걸 사과드립니다. 아무쪼록 저와 타불라 마탑의 마법사들이 저지른 잘못을 용서해 주세요.”
엘리오는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후작과 마탑 마법사들이 계획적으로 자신을 죽이려 한 게 아닌 이상, 저들과 끝까지 싸울 이유는 없었다.
“용서해 드리지요.”
율리아나 레올라 후작이 계속해서 말했다.
“감사합니다. 저 어리석은 자들이 숲지기 가족을 죽이지는 않았지만, 그 외에는 자작님의 말씀대로였습니다. 자작님은 저들에게 어떤 벌을 내리기를 원하시나요?”
“마탑은 이런 경우 어떻게 하나요?”
“위증죄는 마나홀을 봉쇄하고, 십 년간 광산에서 노동을 하게 합니다.”
“그 정도면 만족합니다. 수인 소녀는요?”
“수인이 잡혔던 오비도스 백작령의 숲으로 돌려보낼까 합니다. 잡혀온 지 그리 오래되지 않았으니 자신이 살던 곳으로 찾아갈 수 있을 거예요.”
“괜찮네요. 그렇게 해 주세요.”
엘리오는 흔쾌히 허락했다.
인간들 세상에서 수인은 구경거리밖에 안 되니 고향으로 돌아가는 게 나았다.
율리아나 레올라 후작은 카비 크레이저 백작에게 수인 소녀를 찾아오라 명했다.
카비 크레이저 백작이 직접 6층 마공학 연구소로 가서 수인 소녀를 데리고 왔다.
잔뜩 주눅 든 얼굴로 눈치를 살피는 에밀리에게 엘리오가 다가갔다.
“이름이 에밀리 맞지?”
“네? 네…….”
“대륙 공용어는 마탑에서 배운 거냐?”
“네.”
엘리오는 그녀에게 그간 있었던 일을 간추려 들려주었다.
“……마법사들은 그에 합당한 벌을 받게 될 거야. 그리고 너는 오비도스 백작의 숲으로 돌려보내기로 했어.”
“오비도스 백작의 숲요?”
“네가 잡혀 온 곳이 오비도스 백작의 사냥숲이야. 그곳에 가면 네 집을 찾아갈 수 있겠지?”
“네, 네. 갈 수 있어요.”
“이제 너는 자유야. 탑주님이 그곳으로 보내 준다니까, 그 전까지 마음 편히 지내도록 해.”
그러자 에밀리가 불안한 얼굴로 말했다.
“그때까지 탑에 있어야 하나요?”
“어. 왜? 가고 싶은 곳이 있어?”
“그동안 자작님과 함께 있으면 안 되나요?”
에밀리는 자신을 잡아 온 타불라 마탑에 남아 있고 싶지 않았다.
또다시 마공학 연구소의 컴컴한 골방으로 끌려갈까 봐 무섭기만 했다.
“안 될 건 없는데. 탑주님? 오비도스 백작령으로 언제 보낼 건가요?”
“내일 아침 날이 밝는 대로 호위대를 꾸려 보내겠습니다.”
“그럼, 에밀리를 북구에 있는 페르모사 에스텔라로 데리고 갈게요. 호위대가 준비되면 그리로 보내 주세요.”
“그렇게 하겠습니다.”
율리아나 레올라 후작은 선선히 상대가 하자는 대로 따랐다.
엘리오가 에밀리에게 물었다.
“마공학 연구소에서 가져갈 짐 있으면 지금 가지고 와.”
“없어요.”
“그래? 그럼 지금 나와 함께 가면 되겠구나. 가자.”
엘리오가 에밀리의 손을 잡고 부서진 탑 가장자리로 이동했다.
율리아나 레올라 후작은 그가 6층으로 향하는 계단을 두고 탑 가장자리로 향하자 고개를 갸웃했다.
그때다.
수인 소녀의 허리를 한 팔로 감아 안은 엘리오 라고아 자작이 밤하늘로 솟구쳐 오르더니, 야조처럼 날아 멀어져 갔다.
‘헉! 설마 마검사였던 건가? 하지만 마나가 느껴지지 않았는데?’
율리아나 레올라 후작이 황망한 얼굴로 밤하늘을 볼 때, 카비 크레이저 백작이 슬며시 후작의 옆으로 다가갔다.
“탑주님.”
“무슨 일인가?”
“문제가 있습니다.”
“아직도 남은 문제가 있다고?”
“에밀리에게 대륙 공용어를 가르친 수인이 에바 멜레스입니다.”
“에바 멜레스? 그 이야기를 왜 지금 하는 것인가!”
“저도 일이 이 정도로 급박하게 돌아갈 줄은 몰랐습니다.”
“에밀리가 어디까지 알고 있나?”
“그걸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둘이 오래도록 함께 지냈으니……. 알고 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백작이 직접 에바 멜레스를 심문하게! 내일이면 늦으니, 밤을 새서라도 알아내!”
“조사가 아니라 심문입니까?”
카비 크레이저 백작이 놀란 눈으로 후작을 보았다.
조사는 대화로 끝나지만 심문은 고문까지도 포함된다.
하지만 에바 멜레스는 상급 테이머로 각종 골렘 개발의 핵심 멤버.
그를 고문하면 골렘 개발 일정에 차질이 생기니 확인한 것이다.
“자칫 기가스 개발이 엎어질 수도 있는데 그깟 수인을 걱정할 때인가!”
율리아나 레올라 후작의 호통에 카비 크레이저 백작은 어깨를 움츠렸다.
***
제도 페트로폴리스 북구.
페르모사 에스텔라.
엘리오가 에밀리를 데리고 숙소로 돌아왔을 때는 늦은 밤이었다.
그는 잠든 관리인을 깨워 방 열쇠 하나를 더 받아 냈다.
물론 수인 소녀 에밀리를 위해서다.
에밀리가 방으로 들어간 뒤에도 엘리오는 한참 동안 방문 앞을 지켰다.
그럴 리는 없지만 혹시라도 마법사들이 그녀를 납치해 갈 수도 있다고 생각해서다.
얼마 전까지 테이머가 뭔지도 몰랐지만 이제는 다르다.
마법 공학자들에게 테이머는 보물이다.
수인들이 인간을 피해 첩첩산중으로 들어가는 이유를 알 것도 같다.
에밀리를 만난 뒤로 부쩍 딸이 보고 싶었다.
없는 시간을 쪼개어 오비도스 백작령까지 달려간 것도 그래서다.
영기를 방사해 숙소 주변을 점검한 후에야 엘리오는 자신의 방으로 돌아갔다.
침대에 누웠지만 그는 쉽게 잠들지 못했다.
처음에는 이 세계를 파멸로 이끄는 게 금사와 천자마라 믿었다.
당연히 그 둘만 제거하면 문제가 해결될 거라 생각했다.
하계에서 만난 구천현녀도 그런 식으로 말하지 않았던가!
하지만 이 세계에서 여러 인간들을 경험한 뒤로 믿음이 흔들리고 있다.
금사와 천자마는 분명 인간에게 해를 끼친다.
하지만 그런 인간도 수인과 야인에게는 해로운 존재였다.
에밀리는 수인이라서 누명을 쓰고, 마탑에서 노예처럼 지냈다.
멀리 볼 것도 없다.
자신도 무위가 뛰어나지 않았다면 멸시와 천대를 받았을 것이다.
‘금사와 천자마만큼이나 인간도 위험한 존재란 말이지.’
물론 금사와 천자마에 비하면 인간 개개인의 능력은 보잘것없다.
그래서 그 위험도도 상당히 낮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마탑이나 제국, 왕국은 다르다.
깃발 아래 똘똘 뭉친 인간은 강하고, 그만큼 위험하다.
마탑의 마법사들이 요상한 짓을 저지르고 다니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그런 생각이 꼬리를 물자 사명이라고 생각했던 게 우습기까지 하다.
‘아, 몰라. 나는 금사와 천자마만 죽이면 돼.’
이 세계 인간들이 무슨 짓을 벌이든 그건 그들의 문제다.
그렇게 생각하니 들끓던 마음이 조금씩 진정됐다.
다음 날 아침.
엘리오는 에밀리의 방에 들러 그녀를 데리고 식당으로 향했다.
여느 때처럼 라르바 오마르 백작과 파비안이 자리를 잡고 기다리고 있었다.
라르바 오마르 백작과 파비안이 황당한 얼굴로 수인 소녀와 엘리오 라고아 자작을 번갈아 보았다.
이윽고 혈기 왕성한 파비안이 참지 못하고 물었다.
“자작님, 설마 마탑에서 그 애를 데리고 나오신 겁니까?”
“어.”
엘리오가 자신의 옆에 에밀리를 앉혔다.
“얘가 에밀리야. 어제저녁에 데려왔어. 에밀리, 인사해라. 저분은 라르바 오마르 백작님, 그리고 이쪽은 파비안 남작.”
에밀리가 벌떡 일어나 공손히 허리를 숙였다.
“안녕하세요? 에밀리예요.”
백작과 파비안의 시선이 흔들리는 작고 연약한 사슴뿔을 따라갔다.
에밀리가 착석하자 파비안이 주변 눈치를 살피며 말했다.
“살살하신 거 맞죠?”
“일단 죽거나 팔다리가 잘린 사람은 없어.”
그 말에 파비안은 안도의 한숨과 함께 제 가슴을 쓸어내렸다.
“후우! 다행입니다. 마법사들에게 문제가 많지만 그래도 마탑과는 좋은 관계를 유지해야 합니다. 마탑에 찍히고 잘된 사람이 없거든요.”
내심 찔렸던 엘리오는 얼른 화제를 돌렸다.
“탑주가 에밀리를 오비도스 백작령으로 다시 돌려보내 줄 거야.”
“언제요?”
“오늘. 마법사들이 점심 전까지는 올 거야.”
“타불라 마탑의 마법사들을 믿을 수 있겠습니까?”
“어.”
엘리오의 확신에 찬 대답에 파비안은 더 이상 그 문제는 묻지 않았다.
부드러운 눈으로 에밀리를 보던 라르바 오마르 백작이 물었다.
“네가 에밀리구나. 2년 전 숲지기의 오두막 근처에서 잡혔다고?”
“네, 사슴숲 가장자리에서…… 마법사들에게 잡혔어요.”
“너는 그곳에서 무엇을 하고 있었느냐?”
“늑대들과 놀고 있었어요.”
“혹시 그곳에서 마법사 외에 다른 사람은 못 보았느냐?”
“트라노 코볼로룸이 지나갔어요.”
“트라노 코볼로룸?”
“네, 수인 말로 ‘검은 도깨비’라는 뜻이에요.”
파비안이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끼어들었다.
“유령을 봤다는 거냐?”
“아뇨. 그들은 야인을 잡아가는 사냥꾼이에요. 검은 옷을 입고 다녀서 그렇게 불러요.”